피플앤토크 | 패션 디자이너/ ‘유저’ 이무열 2019-08-07

만화적 상상력에서 출발한 스토리텔러의 꿈…이제 또 다른 시작점

해체주의와 레이어링이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는 ‘유저(Youser)’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무열. 2020 밀라노 봄/여름 컬렉션 데뷔 무대에서 자신의 만화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친 그는 이제 또 다른 시작점에 서있다.




지난 6월 16일(현지 시간), 밀라노에서 열린 2020 봄/여름 컬렉션에 카우보이들이 등장했다. 웨스턴 무드를 한껏 드러낸 모델들은 미래 지향적인 트렌치코트, 한없이 프린지가 길게 늘어진 셔츠, 해체주의적 팬츠를 입고 캣워크를 퓨처리즘 가득한 공간으로 물들였다.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가 4대 패션 도시 중 하나인 밀라노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이무열 디자이너가 전개하는 ‘유저(Youser)’는 ‘유(You)’와 ‘유저(User)’의 합성어다. 2011년 런칭한 유저는 스트리트웨어와 하이엔드를 결합한 컬렉션을 전개한다. 다소 충동적 요소가 다분해 보이는 두 요소의 만남은 그의 손을 거쳐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유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지난 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유저를 세계무대에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던 그는 이번 2020 봄/여름 밀라노패션위크에 참가해 패션쇼를 선보임으로써 그 꿈을 이뤄냈다. 겹경사로 밀라노에서 패션쇼를 선보이기 이틀 전 오랜 짝지와 웨딩 마치도 올렸다. 한창 허니문인 그를 성수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만화적 상상력이 하이-엔드 패션으로


유저의 컬렉션을 보고 있으면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이번 시즌 컨셉인 미래의 카우보이에서 영감을 받은 ‘퓨처 페이크(Future Fake)’, 그리고 전 시즌 2019 가을/겨울 컬렉션의 원시 부족에서 영감을 얻은 ‘윈디고칸((WINDIGOKAN)’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의 런웨이 쇼에서는 단순히 스타일리시한 ‘옷’뿐만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펼쳐진다.


디자인과 스토리텔링,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그의 능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답은 그의 만화적 상상력에 있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전 만화가를 꿈꿨다. 어릴때부터 수집가였던 할아버지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미술에 관심을 가졌고, 학창 시절에는 만화의 매력에 빠졌다. 그러다 패션 스쿨 사디(SADI)에서 공부하며 꿈을 패션 디자이너로 과감하게 전향했지만, 그에게 두 길은 나란히 놓여있는 길과 같았다.


“디자인, 애니메이션, 예술 모두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만화에 나오는 컨셉, 스토리, 캐릭터, 컬러, 심지어 만화 속 등장인물들이 입는 옷까지 모두 패션 디자인이랑 일맥상통하는 요소거든요. 쇼를 구성하는 것이 만화를 연출하는 것에서 연상되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요소들이 재밌어요.”




지금도 그는 쉬는 날에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이에서 영감을 얻은 상상력은 유저의 디자인에 고스란히 담긴다. 만화적 상상력과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해체주의가 만나면 과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크리에이터 이무열은 다른 요소로 균형을 잡는다.


그는 “소재, 기법, 부자재 등 전반적인 모듈에 들어가는 것으로 하이-엔드를 표방해요. 또한 스트리트도 자유분방하지만 통일된 컬렉션을 보여줌으로써 하이-엔드를 실현한다고 볼 수 있죠.”라며 유저의 모토인 ‘하이-엔드 스트리트’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명확한 대답에서 유저가 어떻게 이질적인 두 요소를 조화롭게 구현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엿보였다.



밀라노 컬렉션에 펼쳐진 한국 디자이너의 꿈


4대 패션위크 중 하나인 밀라노패션위크에서 선보인 유저의 2020 봄/여름 컬렉션은 보그 이탈리아 편집장 사라 마이노(Sara Maino)의 초청에 의해 이뤄졌다.


유저는 이번 밀라노 패션위크 런웨이 무대에 서는 유일한 한국 브랜드였기에 감회는 더 새로웠다. “영광스럽게 섭외된 것이어서 떨리고 기분이 좋았어요. 한국의 디자이너로서 4대 패션위크에 나가는 것이 큰 의미였습니다.”라며 패션쇼가 끝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저의 2020 봄/여름 컬렉션은 ‘퓨처 페이크’라는 컨셉 아래 미래 배경 속의 카우보이에서 영감을 받아 전개됐다. ‘미래에 카우보이가 존재한다면?’이라는 디자이너의 상상은 대담한 커팅, 해체주의적 소매의 변형, 다채로운 페이즐리 패턴과 그래픽 프린트, 프린지 장식의 옷들로 나타났다. 또한 전반적으로 클래식한 컬러 팔레트 속에 라임 그린 같은 네온 컬러가 추가돼 미래 지향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진 = 유저 2020 봄/여름 컬렉션


“카우보이가 나오는 영화와 만화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저번 2019 가을/겨울 컬렉션이었던 ‘윈디고칸’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윈디고칸의 원시 부족이 피해자라고 하면 카우보이는 침략자가 될 수 있잖아요. 둘을 연결하면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거죠.”


유저의 이번 밀라노패션위크 데뷔 무대가 더 특별한 것은 작년까지만 해도 그의 목표가 ‘세계무대에 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대하던 밀라노패션위크 데뷔에 대한 이후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현지에서도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해외 프레스와 바이어의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스트링이나 실루엣, 모듈 디자인에 대해 저보다도 디테일하게 봐줘서 좋았죠.”라며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사진 = 유저 2020 봄/여름 컬렉션


한국에서 출범한 유저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서 세계 무대 데뷔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그리고 운 좋게 들어온 기회를 ‘준비된 드리머’ 이무열은 놓치지 않았다.


“글로벌 무대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원래 파리패션위크에서 프레젠테이션 형태로 컬렉션을 선보이려고 했는데, 마침 밀라노패션위크에서 패션 쇼 제안이 들어와 오히려 더 좋은 방향으로 진행된 셈이죠”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 그에게 딱 맞는 말이었다.



패션과 함께 만들어져가는 그의 삶


이무열과 패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실과 바늘’처럼 보인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당연한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에게는 일상부터 사랑까지 모두 패션을 통해 이뤄졌다.


유저가 추구하는 하위문화와 하이-엔드의 조합은 이무열이 살아온 발자취에서 발현된다. “하위문화가 힙합, 펑크 이런 특정한 것들로 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90년대에 자랐고 제가 자라온 풍경 자체가 하위문화였어요. 그 시대 홍대 거리의 힙합 공연, 압구정의 길거리 문화… 그런 문화들이 영향을 많이 주었죠.”


그의 일상 역시 패션과 맞닿아 있다. 한 예로 그는 일상 속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공사장 인부의 모습에서 디자인적 요소를 발견한다. “인부들이 쓴 수건과 하이바를 머플러와 후디로 변주시킨 적이 있어요. 인부들 스타일을 해체주의적으로 반영한 적이 많죠.” 이렇게 그에게는 주변에서 보는 모든 것들이 디자인과 이어진다.



사랑의 결실 역시 패션을 통해서였다. 그는 밀라노에서 패션쇼 데뷔 무대를 가지는 동시에 ‘1159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민희와 결혼식을 올렸다.


일을 하면서 동료로 만난 둘은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다. 둘은 각각 유저와 1159 스튜디오의 디자이너와 조언자로서 함께 시너지를 내고 있다. 부부가 같은 디자이너 길을 가는 것에 대해 “전 너무 좋아요. 적극 찬성이에요.”라며 아내와 같은 취향을 나누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수다(?)를 떠는 그에게서 진정한 행복이 느껴졌다.


그에게 패션은 무엇이냐는 다소 원론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질문에 “예전에는 그런 질문에 곧바로 대답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점점 더 대답하기가 어렵네요.”라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찌 됐든 저에게는 패션이 전부예요. 패션으로 인해서 제 인생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좋아하는 것이 패션이고, 패션을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했어요. 앞으로도 계속할 거고, 저에게 원동력을 주는 일이에요. 패션을 죽을 때까지 뗄 순 없을 거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어느덧 유저는 브랜드를 런칭한 지 9년 차에 들어섰다. 이무열은 브랜드와 함께 성장하며 모교인 사디에서 수업도 진행하며, 후배들의 선망을 받는 선배 디자이너가 됐다. 하지만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얘기하는 그의 눈빛은 여느 신진 디자이너 못지않게 반짝였다.


그는 ‘글로벌 브랜드’가 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라고 분명하고 또렷하게 말한다. “우영미나 준지처럼 이름만으로도 해외에서 알아주는 한국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그의 말에서 세계를 향한 젊은 디자이너의 포부를 느낄 수 있었다.


한때 목표였던 ‘유럽 무대 데뷔전’을 무사히 마친 디자이너는 이제 또 다른 시작점에 섰다. 해외 무대를 밟은 이상 앞으로 몇 시즌 동안은 더욱더 세계 무대에서 부딪혀볼 것이라는 크레이에터 드리머 이무열. 패션이 곧 인생 자체라는 그에게 브랜드의 확실한 정체성과 노련함까지 갖춰진 지금, ‘글로벌 브랜드’라는 목표는 더 이상 막연한 꿈이 아닌 듯하다.


패션엔 이민지 기자

fashionn@fashion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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