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토크 | 디자이너 강동준, 디그낙 2013-11-21

디자이너 강동준, 국내 활동 접고 해외 진출 선언


“패션은 즐거워야 한다. 대중들이 패션을 즐겼으면 좋겠다.” 디그낙(D.GNAK) 디자이너 강동준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다소 딱딱한 느낌의 클래식한 정통 슈트를 추구하지만 그의 옷에는 재미와 유머러스한 감성이 녹아있다. 테일러링 전문인 그는 클래식 정장에 변형을 준 재미있고 창의적인 패션쇼로 요즘 상한가를 치고 있다. 서울패션위크와 런던패션위크를 통해 자신의 패션쇼를 선보이고 있는 그는 2006년부터 참가한 파리 트라노이 쇼와 뉴욕 트레이드쇼를 통해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고 있다. 최근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난 2014 봄여름 서울 컬렉션을 끝으로 잠시 국내 무대를 접고 본격적인 해외 진출에 나섰다.

미국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는 “우리는 너무 편리함에만 사로잡혀 있다. 사실 난 과도한 편안함이 싫다. 당신도 뭔가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은 위해서 편안함을 포기해보라”고 말했다.

우리는 패션을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통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패션 디자이너를 포함해 패션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스타일이라는 미명아래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불편함을 부추긴다. 디자이너 강동준도 그런 부류의 디자이너다. 가슴을 꽉 조이는 코르셋과 숨 막히는 가운이 사라진 지금도 패션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확고한 의지는 스타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고통을 감수할 수 있다는 희생(?) 정신이다.

그 희생정신을 요구하는 별난 디자이너 강동준의 창의적 미덕은 바로 규칙을 깨는 것이다. 그에게 규칙은 과대 평가된 형식에 불과하다. 시대에 따라 규칙도 변해야 한다고 믿는 그는 규칙을 깨뜨리는 행위 자체를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이라 여긴다. 오늘도 그는 아직 깨지지 않은 규칙을 깨기기 위해 고정관념과 전투중이다.

그는 ‘모든 규칙을 버리고 의상을 만드는 것’이 가장 소비자적인 마인드라고 말한다. 아울러 지난 6년간 옷쟁이로 살아오면서 그가 추구해온 소비자들과의 소통 방식이다. 그는 여러 가지 옷감을 섞고 붙이고 꿰매는 행위와 기대하지 않았던 형태의 옷을 만들었을 때 혼자만의 희열을 맛본다. 옷 만드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는 타고는 옷쟁이다. 클래식과 모던, 투박함과 세련됨이 믹스된 그의 옷은 그래서 늘 유쾌하고 당당하다.

그의 사무실은 신사동 가로수길 초입에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보면 놓칠 수밖에 없도록(?) 디그낙 간판이 유난히 작다. 한층은 고객을 위한 쇼룸으로 꾸며져 있고 한층은 생산과 디자인이 이뤄지는 사무실이다. 모두 브릭 & 콘크리트라는 콘셉트로 통일되어 있다. 노출 콘크리트 구조에 외벽을 붉은 벽돌로 붙여 정열과 터프함이 묻어난다. 지하가 아닌 지상의 탁 트인 오픈된 매장을 갖고 싶었던 그는 신사동 가로수길로 오면서 그 소원을 풀었다. 그 기쁨에 인테리어 역시 스스로 했다. 책상은 목공소에서 싼 가격에 주문 제작했고, 공사판에서 남은 철봉을 가져다가 옷걸이를 만들었다. 거울은 다른 사무실에서 주문 제작한 걸 그대로 하나 더 만들어 충당했고 벽에 걸린 근사한 그림들은 모두 서양화가인 어머니가 그려준 선물들이다.

세계 패션 시장 진출은 숙명이다

유럽 무대 진출을 위해 지난 10월 2014 봄여름 서울 컬렉션의 마지막 무대에 선 디자이너 강동준. 이번으로 열 두번 연속으로 서울 컬렉션 무대에 오른 그의 이번 패션쇼는 ‘이토록 화려한 마지막 인사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나는 무대를 선보였다. 영화 <맨 인 블랙(Men In Black)>에서 영감 받은 컬렉션답게 쇼의 오프닝은 <맨 인 블랙>의 영상으로 꾸며졌으며, <맨 인 블랙>의 주제곡은 쇼를 더욱 뜨겁게 달구었다. 컬러는 울, 코튼, 실크, 가죽 소재를 이용해 오직 블랙&화이트로만 꾸며졌다. 컬러를 배제하는 미니멀한 분위기였지만 비대칭적 실루엣으로 위트도 잃지 않았다. 무대 중간에서 모델이 튀어 나오거나 모델이 춤추고 윙크하고 손짓하는 퍼포먼스는 경쾌하고 자유로운 디그낙만의 패션 철학을 잘 표현했다. 다 함께 즐길 수 있던 리드미컬한 무대는 모처럼 신나는 캣워크이자 그가 국내 팬에게 남기는 정성 어린 선물이었다. 쇼가 끝난 후 그는 국내 팬들을 향한 그의 고마움을 무대로 표현했다.


“이번 쇼는 마지막 쇼인 만큼 대중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무겁고 진지한 느낌보다는 연출적 요소를 더해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리드미컬한 무대가 됐으면 한다. 마음껏 즐기는 쇼가 되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다”


현재 그는 해외 70개 매장 중 20개의 매장이 이탈리아에 있고, 특히 밀라노에서 강동준 디자이너 옷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이에 그도 몇 년간 밀라노 컬렉션에 진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최근에는 밀라노에 베이스를 둔 에이전트 보다 규모가 큰 영국 에이전트로 전환 후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과 지원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요즈음 그는 옷을 한다는 자체가 재밌다고 말한다. 국내 판매를 접고 해외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나게 됐기 때문이다. 이미 그는 두 시즌 전부터 국내 판매를 접고 해외에 집중했다. 마케팅이나 홍보에 전혀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퀄리티 있는 ‘내 옷’으로 고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한다.


애초 해외 진출을 모색하면서 꿈을 꾼 무대는 밀라노였다. 지금도 밀라노에 대한 동경과 이상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그이기에 일단 파리로 노선을 변경했다. 파리 시장 진출에 대한 물밑 작업은 이미 마친 상태라고 한다. 해외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걸음마를 뗀 것이다.

강동준의 목표가 ‘파리 컬렉션’이라면 그의 꿈은 ‘디자인 하우스 건립’이다. 디자이너에게는 안정적인 작품 활동 환경을 제공하고 소비자들에게는 보다 다양한 제품을 제안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갖게 된 꿈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디젤그룹처럼 디자이너 하우스를 설립하고 싶다.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해 해외에도 진출시키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물론 밀라노 컬렉션을 성사시킨 후의 일 이지만…”


해외 시장 개척 경험을 토대로 후배 디자이너나 신인 디자이너에게 해외 시장의 길을 열어주고 싶다고 말하는 강동준은 “우리나라에서는 패션계의 박태환․김연아가 돼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 디자이너가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기 전까지는 국내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국내 디자이너를 인정해주는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것이 해외 진출을 선언한 그의 소망이다.


그림 그리기 좋아했던 ‘패션 보이’

어머니가 화가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시장 구경은 취미였다. 디자인이 예쁜 물건을 보면 디자인 삼매경에 빠지기도 하는 ‘디자인 보이’였다. 유난히 스타일리시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멋쟁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집에서 이태원까지 걸어가 직접 옷을 샀고, 중학교에 가서는 명동으로 쇼핑을 갔고, 대학 시절에는 압구정동에서 쇼핑을 하며 무한한 스타일 호사를 부렸다,

대학 입학 전 그가 패션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들은 극구 말렸다. 부모가 알고 있는 디자이너는 앙드레김 정도였기에 생긴 편견이었다. 부모 바람대로 독문과에 입학했지만 패션에 대한 그의 열정을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패션에 대한 열망으로 의상학과를 들어갔지만 대학 역시 그의 열정을 만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유학이었다. 당시 그의 눈길을 잡은 것은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 당시 세계 패션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구찌의 톰 포드와 루이비통의 마크 제이콥스가 졸업한 학교였기 때문에 고민 없이 파슨스를 선택했다.

파슨스에 다닐 때는 성적도 좋아 학업과 프리랜서 디자이너를 병행하며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덕분에 졸업과 동시에 외국인 친구와 동업으로 뉴욕에 작은 브랜드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디자인만 담당하고 외국인 친구가 경영을 했는데, 학교 다닐 때보다 몇 배로 공부하고 일했다. 시장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이용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투자와 활동 모두 동업자보다 더 힘을 쏟는데도 분배를 할 때면 항상 제 몫이 적었어요.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점점 이해가 가지 않더라고요. 옷을 만들 줄 알았지 패션 비즈니스에 무지했던 셈이죠.” 동업을 통해 그가 얻은 교훈은 아무리 재능이 넘치는 디자이너라도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귀국 후 그는 KDI(한국개발연구원)에 들어가 2년 만에 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경영이라는 무기를 장착한 강동준은 뉴욕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에서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이번에는 수트를 선택했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불어 넣기에 제한이 많은 수트를 장착한 이유는 간단했다. 남자답고 강인한 자신의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는 수트가 최상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서울 청담동에 ‘디그낙(D.GNAK)’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브랜드명은 자신의 이름을 거꾸로 쓴 것이다. 당시 최고급 맞춤 수트가 콘셉트였지만 가격을 낮추는 대신 직원 을 쓰지 않고 디자인부터 청소까지 혼자서 다했다. 야근은 기본이고 몸이 남아나지 않을 만큼 일했다. 노력 덕분에 주문이 쇄도했고, 시작치고는 반응도 좋았다. 맞춤에 대한 수요가 많은 청담동 상권을 파고 든 것이 주효했던 셈이다.

“돌아보면 청담동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저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다림’이라는 단어와 친숙한 고객들이 많았거든요. 만약 청담동이 아니라 맞춤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상권이었다면 저 같이 영세한 젊은 디자이너는 도저히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처음 시작하는 젊은 디자이너에게 청담동은 너무 관대했고 소비자들은 그 자체로 강력한 패션계의 연줄이 되었다. 한국 패션계에 네트워크가 전혀 없었던 그는 패션 피플들이 고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미디어에 노출되었고 패셔니스타들의 입소문 덕도 보게 되었다.

맞춤 수트 성공에 이어 그는 캐주얼 시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때 그를 매료 시킨 것이 바로 청바지였다. 청바지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대중들과의 캐주얼 라인 전개와 함께 압구정동으로 매장을 옮겼다. 캐주얼한 라인을 통해 다양한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싶어서였다.

캐주얼 라인에서도 자신감을 얻은 그는 신사동 가로수길에 자신의 둥지를 틀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고객들이 오며가며 자신의 매장 간판을 잘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매장 위치가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디그낙에 대한 홍보는 충분히 덕을 봤다고 한다. 서울컬렉션에 참여하게 된 것도 홍보를 위한 수단이었다.

“서울컬렉션에 진출한 이유는 저를 포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어요. ‘서울컬렉션에 진출한 한류 디자이너’라는 그럴듯한 간판은 중국 바이어들에게 저를 어필해 주는 타이틀이 되었거든요.” 그가 컬렉션을 통해 노리는 최고의 목적은 옷을 시각적으로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바이어나 관객들이 패션쇼를 보고 ‘아 저 옷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면 성공한 쇼라는 것이다. ‘멋있는 쇼’라는 찬사보다는 ‘사고 싶은 옷이 너무 많다’는 찬사가 더 맘에 든다.

해외 진출에 무게를 둔 그는 올해 안에 백화점을 철수할 생각이다.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끌려 다니기 싫어서다. 백화점에 들어가면 대중적인 노출에 있어 강점이 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동준 만의 라인을 선보이고 싶지만 백화점에서 당장 매출이 좋은 브랜드를 거론하면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따라하라고 강요한다. 행사 때 마다 물건 공급 때문에 시달려야 하고 백화점 수수료도 장난이 아니게 비싸다. 위탁 판매를 하는 임대업 형태의 국내 백화점과 달리, 주문을 받으면서 50% 대금을 받고 제품을 배에 실어 보내면서 나머지 50%를 받는 완전 수주 형태의 해외 바잉 시스템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서서히 백화점을 기피하는 이유다. 왜곡된 대한민국 패션 유통이 유능한 젊은 디자이너들을 외국으로 등 떠밀어 보내는 셈이다.

정통 수트 예찬론자의 즐거운 패션 연주

디자이너 강동준은 '수트 예찬론자'. 캐주얼과 비즈니스 정장 열풍으로 인해 클래식한 테일러드 수트의 입지가 좁아져 가는 요즘에도 그는 늘 정통에 기반한 테일러드 수트를 바탕으로 남성복을 만든다. 그래서 옷은 편해야 한다는 요즘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입기에 다소 불편(?)한 옷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옷을 입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통제하고 감정을 콘트롤할 수 있는 남자만의 무기라고 보기 때문이다.

“뭐든지 너무 쉬우면 재미없잖아요. 남녀 관계도 그렇구요. 디그낙을 통해 그냥 걸치는 의미의 옷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옷 입기를 제안하고 싶어요. 여자가 하이힐을 신거나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는 경우 일정부분 육체적인 고통과 배고픔(?)을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남성들도 멋쟁이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봐요. 코르셋이 여성의 몸매를 교정해 주는 것처럼 남성의 몸을 더 날씬하고 섹시하게 강조해 주는 것이 바로 수트거든요.

하지만 클래식 수트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의 옷을 꼼꼼히 들어다 보면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다. 특이한 모양의 베스트, 원색의 강렬한 재킷, 변형된 모양의 소매와 옷깃 등 그의 수트에는 늘 독특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테일러드 수트를 뿌리로 하되 이를 새롭게 뒤틀어 보고자 하는 것이 그의 패션 철학이다. ‘남자의 코르셋’이라고 칭할 만큼 남성적인 모습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최고의 옷이 수트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2009 /여름컬렉션의 경우 크리에이터 강동준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부각시킨 잊지 못한 무대였다. 그의 패션쇼는 시작 전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스테이지 바닥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서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워킹 도중 미끄러질 염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찰랑찰랑하게 물을 채운 채 쇼가 시작됐다.

주제는 ‘댐피시 브리즈(Dampish Breeze). 고습한 바람이다. 비가 오는 날, 걸을 때 찾아오는 막연한 느낌을 무대에 옮겼다. 8톤 트럭 분량의 물을 사용했고 모델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에 맨발로 등장해 의상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모델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다소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디자이너가 책임지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무대였지만 기존 ‘강동준 스타일’의 이미지를 탈피한다는 데 의미 있었던 쇼였다.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남성다운 부드러움'이나, '일상 속 에서의 부드러움' 같은 것이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는 옷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디자이너 브랜드의 내셔널화'? 아니, 좀 더 멀리 보자면 '디자이너 브랜드의 인터내셔널화' 정도가 되겠네요"

그의 컬렉션 컨셉을 늘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일치한다. ‘워크홀릭’의 경우 바쁜 일정을 쪼개 콜렉션을 완성해야 했던 자신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쇼를 선보였다. 매일매일 막대한 업무량에 찌들다 못해 중독이 돼 버린 일 중독자들의 흐트러진 옷차림을 런웨이에 담아냈다. 셔츠는 바지 밖으로 비죽이 나와 있고, 거추장스러운 넥타이는 겉옷에 아무렇게나 찔러 넣었다

옷 하나하나에 열정을 바치는 이 시대의 옷쟁이 강동준. 엄격한 룰을 지켜야 하는 클래식부터 톡톡 튀는 젊은 스트리트 감성까지... 그는 수트를 통해 멋진 남자를 제안한다. ‘수트는 곧 인격이고 남자를 표현해준다’는 원저공의 말처럼 그는 대한민국 남성들이 멋쟁이가 되는 그날까지 수트 전도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해외 진출은 그 꿈에 날개를 달아줄것이다.


패션엔 유재부 대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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