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토크 | 디자이너/ 빅토리아 배컴 2015-12-29

“나는 비판으로부터 배우면서, 나를 더욱 더 발전시켜 나갔다.”

90년대 아이돌 ‘스파이스 걸즈’ 출신의 영국 출신 패션 디자이너 빅토리아 배컴이 올 한해 전년대비 900만 파운드 증가한 3,400 파운드(약 591억 5천만원)의 매출을 올려 그녀만의 성공 스토리를 써 가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런칭 8년 만에 주목받는 패션 하우스를 세운 빅토리아 베컴의 성공 비결을 알아본다.





빅토리아 베컴은 10년전 단 10벌의 드레스로 구성된 메인 라벨을 런칭하며 패션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빅토리아 배컴은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통해 연간 3,400파운드의 매출을 올리는 패션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녀의 석세스 비결을 살펴보다.

 

패션 비즈니스는 디자이너의 창의적 역량과 함께 기술과 자본의 시스템이 서로 결합해 최고의 시너지를 낼수 있는 분야로 유행의 주기에 따라 매시즌, 시시각각 어려움이 산재해있는 쉽지 않는 사업분야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매시즌 매출 신장에 대한 압박을 암묵적으로 요구받고, 성과에 대한 부담감이 굉장히 크게 작용하며 성공여부에 따라 지속적인 명성을 누리거나 때로는 단명하는 등 부침이 많은 편이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디올, 랑방, 발렌시아가 등 세계적인 럭셔리 하우스의 간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럭셔리 하우스들과 수시로 결별하기도 하고 또다른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지난 2015년에는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인해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의 간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교체와 브랜드 및 미디어의 중단 사례가 많았다. 인디 디자이너 조나단 선더스 역시 불황으로 인한 매출 감소와 운영상의 어려움때문에 2015년 브랜드 사업을 접었다.


반면 빅토리아 배컴은 2015년 전년 대비 900만 파운드가 증가한 3,400만 파운드의 매출을 올렸다.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그녀만의 비결은 무엇일까?

 

올해로 8년차에 접어든 그녀의 라벨은 현재 런던 스튜디오와 뉴욕 사무소 그리고 런던 도버 스트리트의 3층 매장 등에 약 15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내년에는 홍콩에도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녀는 뉴욕 패션 위크에서 자신의 메인라인 컬렉션인 '빅토리아 베컴'을 선보이고 있으며, 세컨드 저가 라인 '빅토리아, 빅토리아 베컴(혹은 VVB)'은 선택된 프레스를 통해 개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난 2014, <매니즈먼트 투데이> 매거진으로부터 올해의 기업가로 선정되었던 그녀의 비즈니스는 브리티시 패션 어워즈에서 두번이나 수상했다. ‘2015 브리티시 패션 어워즈에서는 올해의 디자이너로 노미네이트되었다. 시상식에서는 그녀와 남편 데이비드 베컴은 세계 패션의 G2인 공로상 수상자 칼 라거펠트와 안나 윈투어가 같은 테이블에 동석해 눈길을 끌었다. 런칭 초반 빅토리아 베컴의 허영심이 투영된 허영심 프로젝트라는 평가절하와 비난을 받았던 그녀의 패션 사업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일깨워주며 패션 사업가로 능력과 역량을 발휘하며 승승장하고 있다.

 

1990년대 전설적인 아이돌 그룹 스파이스 걸즈출신인 빅토리아 배컴은 사치스러움과 익살스러움이 반영된 자신의 오랜 사랑 이야기를 이용한 데님과 선글라스 라이센스로 패션사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그들 부부가 살았던 대저택의 별명이었던 '버킹검 궁전' 여왕을 상상하며 초창기 진은 뒷 판에 왕관 자수를 놓아 소규모로 출시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디자인 팀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와 경쟁하고,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발견하고 점차 사업확장을 꾀했다.


 

빅토리아 베컴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재능 중 하나는 듣고 배울 수 있는 겸손함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녀는 <텔레그라프>와의 인터뷰에서 “패션사업 초반에 부정적이었던 미디어의 비판은 저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는 비판으로부터 배우고 저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과정에서 건네지는 비판과 충고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채찍질로 받아들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초창기 뒷판에 새겨진 왕관을 없앤 데님라인이 에디터들로부터 조용히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가방라인도 런칭했다. 진지하게 고급스러운 젯셋족을 겨냥했으며, 그 전략은 좋은결과로 이어졌다. 그 이후 그녀는 자신의 첫 기성복 라인을 선보였다. 10벌의 드레스 컬렉션으로 뉴욕의 패션 에디터들에게 자신이 직접 겸손하게 프리젠테이션을 했으며 바이어와 프레스들은 이미 그녀를 주목하고 있었다.

 

비록 적은 수량만 생산했지만 첫 드레스들은 매진되었다. 바이어들은 더 많은 것을 원했고 라인은 현재 1년에 두 번의 풀 컬렉션을 진행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녀는 롤랑드 뮤레가 그녀에게 소개한 컬렉션 헤드 멜라니 클락과 소싱 헤드인 트레이시 로우와 함께 일하고 있다. 그녀는 저는 함께 일하는 최고의 팀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 혼자만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이어 브랜드는 저 개인의 셀러브리티를 위한 옷이 아니라 퀄리티와 스타일, 고급스러움이 반영된 최상의 상품으로 철저하게 고객을 위한 옷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하비 니콜스의 바잉 디렉터 아니타 바는 <텔레그라프>에 그 비결을 털어 놓았다. 그는 우리는 시즌마다 라벨의 엄청난 에피타이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녀의 메인라인과 '빅토리아, 빅토리아 베컴' 디퓨전 라인은 둘 다 매출이 신장하고 있습니다.그녀의 옷들은 다수의 형태와 사이즈에 잘 어울리며 이것은 바람직한 비즈니스가 만든 결과입니다.라고 말했다.

 

베컴이 갖는 유명세와 인지도를 활용한 패션사업이라는 인식도 바뀌었다. 사실 20년동안 프레스의 관심을 받고 팬클럽에 둘러쌓여 있는 그녀는 360도 걸어 다니며 말하는 광고판이다.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전부터 '패션 인사이더였던 베컴은 옷에 대한 끝없는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WAG(유명 스포츠 스타들의 아내와 여자친구)부터 타이트한 소피스티케이트, 그리고 플랫 슈즈를 입은 캐주얼한 트라우저 미니멀리스트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스타일은 진화하고 발전하면서, 그녀의 옷장은 끊임없이 대중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그러나 빅토리아 베컴은 옷 잘입는 유명 스타, 유명 셀러브리티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관심과 취미를 발전시켜 패션 비즈니스로 승화시켰다. 빅토리아 베컴이 타 유명 스타와 다른점이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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