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4-04-25

와인과 여자는 닮았다

사랑에 목마른 이여. 와인을 마셔라. 이왕이면 싸구려 와인부터 마시도록. 혁명이 저 밑으로부터 시작되듯이...




독일의 유명한 시인 요한 볼프강 괴테에게 기자가 물었다. "외딴섬으로 떠나야 할 때, 세 가지를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그의 대답은 시와 아름다운 여자, 최고의 와인이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기자는 이번엔 두 가지만 고르도록 했다. 괴테는 아름다운 여자와 가뭄에 마실 최고의 와인을 선택했다. 시인이 시를 포기하겠다는 말에 놀라면서 기자는 "그럼 선생님, 만약 여자와 와인 중에서 하나밖에 못 가져간다면 무엇을 두고 가시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했다. 몇 분간 곰곰히 생각하던 괴테는 "글쎄요. 무엇보다도 가져갈 수 있는 와인이 몇 년 산인가를 먼저 따져봐야겠군요."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술을 마실 때 남자들의 태도를 보면 이중적이다. 맥주나 소주, 양주 등을 마실 때에는 엄청나게 빨리 마시지만 와인을 마실 때는 조신하게 마신다.

먼저 남자들이 소주나 위스키와 같은 독주를 마실 때는 기분이 안 좋거나 외롭거나 마음이 외로울 때가 대부분이라 죽자고 덤벼든다. 원(하는)샷을 가장한 완(전히)샷은 기본이고, 폭탄주를 말아주는 센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주도(酒道)다. 술이 마시는 이유는 취하고 났을 때의 몽롱한 기분과 약간의 어지러움, 그리고 알코올의 힘을 빌린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 아닐까. 겁 대거리를 상실한 만행(?)에 가까운 주사로 상대에게 할 말 못할 말 다 토하고 난 뒤 잠들면 만사가 형통이다. 물론 지난밤의 기억들은 머릿속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버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숙취를 풀려고 편의점에 들러 여명 한 병 비우고 돌아서니 유리창에 굴절된 자화상이 나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와인을 마실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어디서 들은 풍월은 있는지 비싼 차를 마시듯 홀짝거린다. 분위기 있는 재즈 풍 음악이 술맛을 고조시킨다. 이때 상대방의 잔에 남아있는 와인의 양을 확인하는 것은 잊지 말이야 할 에티켓. 와인은 상대방 술잔이 비면 첨잔을 해도 되기 때문이다. 소믈리에가 시키는 대로 와인을 음미했더니 폭탄주를 원샷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주님을 영접하는 듯 신세계다.

가끔 와인을 마실 때면 여자와 와인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만약 와인이 여자라면 매우 시크하고 도도한 여자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레드 와인의 빨간색을 보고 있으면 정열정인 여자가 와인의 곡선미를 따라 나를 유혹하는 듯 하고, 눈을 감고 와인의 향기를 맡고 있노라면 세련된 여자가 나에게 윙크를 하는 듯하다.

하지만 여자나 와인은 친구나 다른 술보다 돈이 많이 든다. 비싸게 획득한 와인을 벌컥 벌컥 마신다는 건 와인의 가치를 무시하는 바보짓이다. 와인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영화 <글루미선데이>의 주제 음악이 흐르는 음울한 재즈 조명 아래서 아름다운 와인 색깔에 반하고, 향기에 취하고, 입안에서 와인을 굴리면서 다양한 매력을 찾아내려는 집요함도 있어야 와인을 온전히 내 것으로 가질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귀찮다고 벌컥 벌컥 와인을 마신다면 와인을 가질 가격이 없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알아가는 과정부터 익숙해지는 과정까지 와인을 마시듯 여자를 대한다면 언젠가 꿈을 이루어졌다고 외치면서 와인 바의 골든 벨을 울릴 날이 오지 않을까?

사랑을 시작하려는 남자라면 브르고뉴의 피노누와 와인을 마셔보길. 신대륙의 피노누와가 두툼한 시골 처녀라면 브르고뉴의 피노누와는 세련된 금발의 프랑스 여자를 닮았다. 그 차이는 미세하지만 프로(?)는 알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업 타운 걸로 태어난 고귀한 핏줄인 브로고뉴 피노누아는 브르고뉴 와인 잔으로 마셔야 제 맛이다. 옷이 날개라는 여자들처럼 와인도 잔의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을 풍기기 때문이다.  

와인 전문가 박찬일이 쓴 <와인스캔들>을 보면 와인과 여성의 공통점을 말하고 있다. 좋은 와인은 첫 맛에 매혹되지 않는다. 헤어진 후에 향기를 남기는 여자처럼 와인은 다 마시고 난 후에 혀끝에 여운이 남아 있는 것이 진짜라는 것이다. 또한 와인은 여자처럼 단박에 친해지기 어렵다고 한다. 친해진다는 것은 속을 뒤집어 보이는 일인데 첫 만남에서 속을 다 보여주는 바보 같은 여자가 없듯 와인도 자신의 속을 좀체 다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탐색기와 시행착오를 거쳐야 비로소 와인의 제 맛을 알게 된다는 점도 와인과 여자가 닮은 점이다.

어설픈 와인은 설탕처럼 인공적인 달콤한 맛이 강해 처음에 혀를 쉽게 속이지만 이내 싫증이 난다. 반대로 오래 묵은 와인은 나이든 여자처럼 복잡하다. 생산년도가 오래된 와인은 코르크를 열고 나와 공기와 접촉하기 전까지 자신을 철저히 감춘다. 그래서 익히 명성이 높은 장기 숙성  와인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어야 실패 확률이 적다. 맛이 변질됐다면 바꿔 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 숙성 와인은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저장되고 숙성됐는지가 중요하다. 습도와 온도가 맞지 않는 곳에서 저장된 와인은 따는 순간 당신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쉽다. 그럼에도 오래된 와인은 원숙한 여인처럼 훌륭하다. 장기 숙성 와인은 병입 후 오랜 세월 고차원 방정식으로도 풀 수 없는 불가해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숙성의 깊은 맛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값이 비싼 것은 당연하다. 전 세계에서 매년 200억 병의 와인이 생산되는데 그들의 맛과 향은 모두 천차만별이다. 이 세상에서 나의 인연을 찾는 것과 같은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맛나게 살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주는 노래가 바로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곡 ‘와인, 여자 그리고 노래 (Wine, Woman and Song)’다. 이곡은 세상을 맛나게 살기 위한 세 가지 요소를 말한다. 그 첫 번째가 요소가 바로 와인이다. 우리는 기쁠 때도 와인을 마시지만, 슬플 때도 와인을 찾는다. 인간의 희노애락에서 와인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두 번째 요소는 여자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만나는 존재가 어머니인 여자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터 죽을 때까지 여자 품에서 나서 자라고 커서 결국 여자인 자연(mother nature)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요소가 노래다. 노래 역시 기쁠 때나 노여울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인간과 함께 한다.  결국 와인과 여자는 뗄래야 뗄 수없는 관계인 셈이다. 물론 재즈와 같은 음악이 함께 해야 제 맛이지만 말이다. 와인 칼럼니스트 박찬일이 외친다. "사랑에 목마른 이여. 와인을 마셔라. 이왕이면 싸구려 와인부터 마시도록. 혁명이 저 밑으로부터 시작되듯이."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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