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엔

이런 기술은 이미 수년 전부터 상업적인 용도로 활용됐지만 이젠 보편화되는 추세다. 워싱턴DC 소재 싱크탱크인 ‘프라이버시의 미래 포럼(FPF)’은 작은 부띠끄에서부터 메이시 같은 대형 백화점에 이르기까지 소매업체 약 1,000개가 이런 추적기를 설치해 두고 있다고 추산한다. 이들은 추적기가 수집한 정보가 온라인 소매상 등과 겨루는 데 경쟁의 우위를 줄 수 있다고 본다.

붐비는 연말 쇼핑시즌, 보석업체 알렉스&아니는 매장관리를 위해 프리즘스카이랩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실시간으로 고객들의 이동 상황을 모니터한다. 프리즘스카이랩은 보안 카메라 영상과 소프트웨어를 결합시켜 고객들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플로우차트를 구축하고 구매내역을 열 지도로 데이터화한다.

지난 블랙프라이데이에는 데이터화된 자료를 활용해 실시간 의사결정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촛불, 팔찌에 다는 장식물, 향수 등을 고객들의 왕래가 적은 곳에서 많은 곳으로 바꿔 놓는다거나, 병목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인기 아이템들을 매장 내 덜 붐비는 곳으로 옮기고,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경우 온라인 구매 유도하는 식이었다.

라이언 보니파시노 알렉스&아니 디지털전략 부사장은 “라이벌들보다 조금 현명해지게 도와주는 이런 정보를 찾고 있다”며 연말 쇼핑시즌은 쇼핑객 수가 많아 이런 기술을 시험하기에 더없이 좋다고 말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부띠끄를 운영하는 문선희씨는 최근 추적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품 위치를 변경했다. 뜻밖에도 고객들이 입구에서 먼 쪽에 전시된 제품에 더 오래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미국 내 약 20개 쇼핑몰을 운영하는 포레스트시티엔터프라이즈는 자사 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레스토랑 임차인들에게 블랙프라이데이에 평소보다 문을 일찍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추적기 데이터를 참고로 블랙프라이데이 쇼핑을 위해 자정부터 모여든 고객들은 오전 6시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쇼핑몰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는 걸 알게 된 후다. 스테파니 슈리버-엥달 디지털전략 부사장은 올해는 몇몇 레스토랑들이 오전 6시 전에 개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된다. 작은 변화지만 고객들의 쇼핑 경험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포레스트시티가 운영하는 쇼핑몰 책임자들은 고객들의 왕래가 잦은 지역과 왕래가 뜸한 지역이 다른 색깔로 표시된 열 지도를 제공받는다. 일부 쇼핑몰에서는 산타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에서 휴대폰을 등록하면 줄을 서지 않아도 차례를 알려주는 방식을 시험할 계획이다. 지난해의 경우 어떤 고객은 2시간반을 기다리기도 했다는 데이터를 참고한 것이다.

문제는 쇼핑객의 프라이버시다. 지난 봄 노드스트롬 백화점측이 17개 매장에서 스마트폰에서 발생하는 WiFi 신호를 사용해 손님들의 이동상황을 모니터한 후 일부 고객이 소셜미디어 사이트나 직접 소매업체측에 항의나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백화점측은 미리 표지판을 세워 이런 기술을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지했으며, 구매자들의 일반적인 쇼핑 행위에 관한 추세를 파악하려는 의도일 뿐 개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노드스트롬이 사용한 기기 제공업체인 유클리드애널리틱스 대변인은 “유감스럽다”며 “더 나은 데이터는 더 나은 쇼핑 경험을 의미한다. 프라이버시를 희생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노드스트롬측은 어디까지나 시험일 뿐이었다고 강조했다.

FPF 포럼은 추적 기술을 사용하는 소매업체들을 대상으로 고객들에게 이를 공지하도록 한다. 유클리드 등 추적기 제조사 8곳도 지난 10월 고객사들이 이 사실을 공개하도록 하는데 합의했다. 포레스트시티는 쇼핑몰 내에 표지판을 세워둔다. 슈리버-엥달 부사장은 손님들의 휴대폰에서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소매업체와 추적기 제조업체들이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일부 소매업체들은 추적 기술 사용을 연기하기도 했다. 의류업체 파타고니아의 로버트 코헨 소매 부사장은 “손님들은 누군가 자신을 추적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메이시백화점은 스타트업 숍킥과 손잡고 애플의 최신 아이폰에 내장된 센서를 활용하고 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점을 찾은 쇼핑객들이 숍킥 앱을 다운로드할 경우 그때그때 할인 등 판촉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메이시 대변인에 따르면 시험을 거쳐 프로그램을 확대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애플은 미국 내 250개 이상의 매장에서 ‘아이비콘(iBeacon)’ 기술을 선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블루투스를 통해 고객의 스마트폰으로 상품 위치, 고객서비스 업데이트,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제안 등의 정보를 보내주는 기술이다.

월마트와 홈디포 같은 업체들은 매장 내에 센서를 설치해 자체 앱을 통해 손님들에게 쿠폰을 제공하거나 원하는 물건을 찾도록 도와준다. 보스턴 소재 스타트업 스월네트워크는 올해 팀버랜드와 케네스콜 등의 매장에 블루투스 송신기를 설치했다. 고객별로 맞춤형 구매제안을 하기 위해서다.

힐미 오즈구크 스월 CEO는 “매장에 세번째 방문했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은 손님이 있다면 구미가 더 당길만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이라며 “손님이 구매결정을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적절한 제안을 하는 게 포인트”라고 말했다.

팀버랜드는 올 여름 스월의 기술을 시험한 후 올해 말 11개 매장에 설치하기로 했다. 라이언 샤드린 소매 부사장은 “스월 시스템에 대한 고객의 반응은 35% 이상으로 성공적인 이메일 광고(15%) 보다 훨씬 좋았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이런 기술이 매장 레이아웃과 영업시간, 심지어 모바일 결제를 조장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고 내다본다.

오즈구크 스월 CEO와 시리악 뢰딩 숍킥 CEO는 자사 프로그램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참여를 희망한 이용자들만을 대상으로 하는데다 손님 개인의 행동이 아닌 단체 행동을 분석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외신:월스트리트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