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5-10-22

[리뷰] 보자기로 30년 세월 보듬은, 2016 봄/여름 이상봉 컬렉션

올해로 브랜드 런칭 30주년을 맞은 디자이너 이상봉이 지난 10월 20일 남산제이그랜하우스 별관에서 자축 패션쇼를 가졌다. 초심으로 돌아간 '보자가'라는 태마를 통해 지난 30년 패션 인생을 되돌아보고 다시 신발끈을 조인 평생 37살 청년 이상봉의 진솔하면서도 애틋했던 패션쇼를 만나보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마음은 미래를 바라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되리니“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자라도중에서>

 

삶은 늘 행복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일에 상처받고 좌절하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싸우고 헤쳐 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지난 30년 동안 디자이너 이상봉은 오직 한 길 옷을 만드는 예인(藝人)의 삶을 살아왔다. 늘 최선을 다하는 아티스트의 길을 걸었지만 대중들이 자신의 진정성을 몰라줄 때마다 감정을 추스르며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묵묵히 버텼다. 올 한해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날을 보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그 속에 빠지면 미래는 보이지 않을 것이며, 억울하다고 숨어버린다면 그 역시 비겁한 행동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창작에 대한 어려움과 타인에 의해 억울한 일을 겪을 때마다 예인 이상봉은 자신의 방식으로 이겨내고 극복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순수한 자신의 영혼을 투영시킨 이번 컬렉션은 초심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레드와 블랙을 통해 열정을 분출했던 과거와 달리 블루와 화이트로 변주된 그의 진화는 강물과 구름을 닮았다. 지난 30년 동안 흘러간 강물만큼 내공에 휩싸인 그의 정서는 쇼 장 밖에서 시원하게 흐르는 폭포수가 대신 말해주는 듯 했다.

 

시원한 민머리에 동그란 뿔테 안경, 검은 망토와 수염으로 대표되는 이상봉은 K 패션의 상징이자 아이콘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얻은 대중적 인기는 국민 디자이너라는 별명을 선물했고, 우리 유산인 한글을 패션으로 변주해 한글의 조형미를 세계에 알렸고, 영화배우 줄리에뜨 비노쉬부터 국민 요정 김연아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스타들과 만들어낸 패션테인먼트는 패션 대중화를 이끌었다. 여기에 패션 디자이너 데뷔 이후 줄곧 추구해온 아트와의 만남이라는 패션 담론은 그의 패션에 혁신적 미학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패션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 스스로 물과 바람이 되고 싶었다. 담기는 대로, 움직이는 대로 변화하지만 본질만은 변하지 않는 그런 디자이너 말이다. 그래서 같이 출발한 동료 디자이너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도 그는 오버 페이스 하지 않고 자신만의 행보를 지속했다. 인위적인 것도 부자연스러운 것도 싫어하는 그의 패션은 무위자연(無爲自然) 그 자체였다. 그는 나이가 들고 경륜이 쌓이면서 스스로를 물에 담았다. 어느 용기에나 담기고, 흐르고 옮겨 가면서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고여 있으면 썩는 게 물이다. 때문에 스스로 고여 있고 싶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는 필자에게 보자기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의 삶의 흔적이 스며있는 보자기는 어떤 모양의 물건을 담아도 그 물건에 맞게 어울리면서 자신의 맞추기 때문이란다. 보자기는 담기는 물건에 따라 늘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펼치면 한 장 천 보자기의 본질은 그대로다. 여기에 조각조각 천으로 이어진 모던한 조각보는 보자기가 가지는 유동성을 잘 말해준다. 그는 늘 물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에 영혼을 맡겼고 조각보처럼 넉넉한 품에 육신을 맡겼었다.

 

이번 시즌 장소는 남산의 제이그랜드하우스 별관이었다. 패션쇼장을 들어서면서 런 웨이 곳곳에 설치된 대형 민들레가 마치 봄날의 들판에 서있는 느낌을 주었다. ‘솜 작가로 알려진 아티스트 노동식과의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한다. 이번 시즌 패션쇼는 이상봉의 시그너처인 정교하고 구조적인 디자인이 도형적으로 컷 아웃된 린넨과 실크 소재의 순수한 화이트 룩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다차원적인 주름, 비대칭, 과장된 핸드 스티칭으로 이어져 부드러우면서도 고도로 구조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이상봉 브랜드의 2016 /여름 컬렉션의 테마는 보자기였다. 한국의 전통인 보자기를 주제로 건축적이고 구조적인 실루엣을 선보였다. 이상봉은 컬렉션 노트에서 보자기의 조각을 보고 서양의 건축적 요소 중 하나인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렸다.”고 언급했다. 그 옛날 어머니들이 들고 다니는 보자기는 가족에 대한 폭넓은 사랑과 모든 것은 끌어안는 포용력으로 인해 한국적 모성애의 상징적인 오브제다. 그 전통적인 속내를 가진 보자기는 이번 시즌 이상봉을 통해 미래적인 패션 철학으로 승화되었다. 아울러 그의 숙제인 이스트 투 웨스트에 대한 고민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쇼를 선보였다.



 

이번 시즌 이상봉은 올 화이트 룩 그룹의 기하학적인 패치워크로 인해 한마디로 가볍고 공기 같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특히 크롭트 팬츠와 조화를 이룬 아름답게 구성된 코트와 오버사이즈 셔츠가 눈길을 끌었다. 또한 그래픽적인 선형 패턴이 포함된, 스테인드글라스 모티프와 노래 가사를 이용한 한글 문자가 들어간 블루 시리즈를 선보였다. 여기에 오리가미 기법의 스커트와 드레스 뿐 아니라 편안하고 루즈한 크롭트 트라우저도 눈길을 끌었다. 이번 시즌 이상봉 컬렉션의 가장 유니크한 룩 중 하나는 3-D 효과로 환상을 준 프린트된 투명한 오버레이 그래픽 프린트의 드레스였다. 시각적으로 흥미로운 아름답게 구성된 라인업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방식의 복잡함으로 심플하게 혼합되었다. 특히 쇼 피날레에서 희망의 파랑새를 연상시키는 여 배우 김규리의 댄스 퍼포먼스는 디자이너의 희망가가 그대로 투영되었다. 참고로 김규리는 지난 201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러 수교 20주년 전야제 패션쇼에서도 이상봉의 한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디자이너 이상봉은 K 패션을 세계에 알리고 국가 대표다. 육중한 부담감을 어깨에 지고 있는 그는 여전히 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험난한 무한도전을 즐기면서도 묵묵히 자신이 결정한 마이 웨이를 가고 있다. 가시밭 같은 험한 길은 그를 인간적으로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고 디자인적으로도 진화하게 만들 것이다. 그 축적된 디자인 나이테만큼 브랜드 이상봉의 앞으로으 30년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일 것이다.

 

언젠가 능력 있는 후배 디자이너에게 패션 하우스를 물려주고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연극 무대에서 못다 이룬 꿈을 언젠가 이뤄보고자 하는 소망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글을 포함한 우리의 전통 헤리티지를 통해 늘 도전 의식과 열정을 추구할 수 있기에 그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 마다 세종대왕이 가졌을 무한도전 열정을 떠올린다. 세계를 감동시키기 위한 이상봉의 꿈과 K 패션의 무한도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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