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토크 | 패션 디자이너/ 에디 슬리만 2015-08-13

"스키니에 대한 강박관념은 어린 시절 왕따에서 비롯되었다"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디 슬리만은 야후 스타일(Yahoo Style)과의 인터뷰를 통해 라거펠트까지 감동시킨 자신의 시그니처 스키니 실루엣에 대한 강박관념은 어린 시절 왕따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생 로랑'의 리브랜딩, 로스엔젤리스에 대한 사랑 등에 대해 자세히 털어 놓았다.




미디어 인터뷰에 대한 수줍음이 많은 에디 슬리만은 거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생 로랑'에 합류했을 때도 그와 관련된 소식과 메세지들을 생 로랑 PR팀에서 너무 방어하고 통제하는 경향이 심해 다수의 저널리스트들은 취재활동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았다.


에디 슬리만은 '이브 생 로랑에서 이브를 빼고 브랜드 라벨을생 로랑’으로 변경한 리브랜딩 전략과 스토리, 로스엔젤리스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 등에 대한 궁금증과 질문에 대해서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와 그의 관계 등에 대해 지금까지 얘기한적이 없었다.


일부 미디어에서는  '생 로랑' 매출이 급증함에도 불구하고 언론 통제에 대한 과도한 신비주의 전략을 비난했다. 

 

야후 스타일의 편집장 조 지(Joe Zee)와 오랜 친구관계인 에디 슬리만은 '생 로랑' 꾸띄르 생산 재도입 시점에 맞추어 전 스타일닷컴 에디터 출신인 더크 스탠든(Dirk Standen)과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실시해 패션업계 관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에디 슬리만은 인터뷰에서 '생 로랑'을 현재와 같은 방향으로 리포지셔닝하게 된 배경과 이유 등에 대해 꽤 긴 글을 통해 소상하게 밝히며 팬들과 반대론자 모두에게 충분한 스토리를 제공했다. 그동안 디지털 시대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소셜 미디어와 소통을 단절하고 런웨이 쇼에 온라인 미디어 프레스를 초대조차 하지 않았던 에디 슬리만은 디지털 환경 변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밝히고 앞으로 대중들과 소통 채널을 확대해 갈 것이라는 긍정적인 메세지를 전달했다.

   

에디 슬리먼의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주목을 끈 부분은 그가 자신의 시그니처 룩으로 스키니, 앤드로지너스 실루엣을 선택하고 집중하게 만든 원인이 어린 시절 왕따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힌 부분이다. 그가 인터뷰를 통해 그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털어놓은 것은 처음이다. 다음은 기사의 일부 내용이다.


 

당신의 현재 모습을 만드는 일부분은 어린 시절 혹은 청소년기와 관련이 있다. 나는 내가 사진을 찍은 남자라면 누구라도 좋아했고 혹은 그들은 내 쇼에 섰다. 재킷은 항상 나에게 너무 컸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나 심지어  가족, 친척들까지  마른 몸을 갖고 있는 내 자신을 반쪽 남자로 느낄 수 밖에 없도록 대했으며, 나 스스로 위축된 청소년기를 겪을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나치게 마른몸을 갖고 있는 나를 왕따시켰다. 어린 시절 왕따 경험으로 인해 스키니가 동성애자 아이템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어려웠다.


 동성애 공포증에 사로잡혀 근육질의 운동선수 몸매를 갖추기 위해 아주 많이 먹고 운동을 많이 하는 등 나 자신과의 싸움으로 나의 가치를 훼손하는 청소년 시절도 겪었다. 그것은 내가 15~16세 혹은 17세때 나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극복하고 사회적 통념을 이겨내기 위해 나 스스로가 세운 방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뮤직 히어로들에게 의지했고, 나름 위안을 얻었다. 그들은 동일 인물로 보였고 나는 그들처럼 되기 위해서 모든것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배기 의상을 입고 나 자신을 숨기지 않기로 했으며 나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당당하게 맞서기로 했다. 데이빗 보위, 키스 리차드, 믹 재거, 폴 웰러, 나는 그들의 매력, 미학 그리고 스타일로 유대감을 느꼈다

 


에디 슬리만은 당신이 한 최초의 일 중 하나는 기성복 라인의 이름을 심플하게 생 로랑으로 바꾼 것이다. 당시 일부에세는 라벨에서 이브를 없앤 것은 경멸의 표시라고 여긴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치만 실제는 '이브 생 로랑' 이 처음으로 기성복을 소개할 때 사용했던 오리지널 브랜딩으로 다시 돌아 간 것에 불과했다. '생 로랑'으로 라벨을 변경한 배경은 무었이었나?”라는 인터뷰어 더크 스탠돈의 질문에는 다음 같이 답변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브(생 로랑)1966년 피에르(베르제)와 함께 그의 혁명적인 기성복을 생 로랑 리브 고쉬(Saint Laurent Rive Gauche)’로 이름 지었다. 이브는 그의 꾸띄르와 명확한 이분법을 원했고, 새로운 라벨을 위한 헬베티가 폰트를 골랐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독특한 모더니티의 기호였으며 아울러 꾸띄르 라벨의 급격한 변화였다. 이브는 생 로랑 리브 고쉬런칭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의 오뜨 꾸띄르 다음 단계인 레디 투 웨어의 형식과 가치를 변화시키기 위한 그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생 로랑 리브 고쉬아이디어였다. 또한 그것은 급진적 파열이었다. 이브는 그 자신의 세대인 이머징 플라워 제너레이션의 옷을 만들기를 원했다. 그것은 여자와 남자 모두를 위한 레디 투 웨어의 눈에 띄는 시기였다. 거의 50년이 지난 후, 그 필요성은 나를 이브의 자유순수의 시대라는 이 아이디어로 바꾸어 놓았다.

 


오리지널 이름으로 돌아간 것은 패션과 가죽 액세서리 사이의 합당한 이유가 있는 잃어버린 균형을 다시 창조하는데 있어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게다가 여성과 남성 패션을 나란히 유지하도록 해주었다. 그것은 진보적인 매력과 리브 고쉬의 메세지를 다시 복원하는데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것은이브와 피에르의 진정한 정신이었다,

 

생 로랑의 또 다른 기본은 바람직한 패션이다. 이브는 자신의 레디--웨어가 웨어러블하고 여유롭기를 원했다. 내가 돌아왔을 때 바로 느꼈던 모든 컨셉은 아주 정밀했다. 아마도 2012년 패션의 맥락으로 360도 완전히 특정 형식주의에 의해 흡수되었다.


생 로랑이름의 회복은 첫 해 작업을 둘러싼 비이성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유일한 옳은 일이라고 믿고 있다. 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투자된 모든 홍보활동은 축복이었고, 역사적으로 되돌아가 가장 존경스러운 이브의 뿌리가 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레디 투 웨어를 위한 복고풍 트렌드는 꾸띄르이브 생 로랑의 이름을 지키고 보존하는 리얼리티를 의미한다. ‘이브를 삭제했다기보다는 꾸띄르 정신의 회복을 몇 해 동안 철저히 준비했다. ‘이브 생 로랑은 아뜰리에, 전통, 완벽한 럭셔리에 대한 모든것이 될 것이다.


하우스 오브 꾸띄르가 이를 위한 완벽한 준비가 되었을 때 아틀리에 티이외르 앤 플루(Tailleur and Flou)’는 보다 강해지고 개혁된다. 이제 하우스 완료와 함께 두개의 이름은 그들이 항상 역사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함께 존재한다. 다음 모노그램은 아티스트 카산드라에 의해 디자인된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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