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4-04-07

4,10 선거와 신진사대부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CFDK)는 오는 4월 10일 목요일 오후 3시에 블루스퀘어에서 비밀투표를 통해 2기 회장단을 선출한다. 60년을 이어온 대한민국 패션 단체의 역사를 돌아보고 패션 코리아의 5세대로 불리는 젊은 신진 디자이너들의 역할론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요즘 대하사극 <정도전>에 꽂혀있다. 여말선초의 정치적 혼란기. ‘지는 달고려를 지키려는 훈구파와 떠오르는 해조선을 개국하려는 신진사대부(新進士大夫)간의 치열한 정권 싸움이 눈길을 끈다. 아시다시피 고려 멸망의 원인은 권문세족으로 불리는 훈구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이때 훈구파에 맞선 세력이 바로 정도전과 정몽주 등의 젊은 신진사대부 세력들이었다. 이들 신진사대부들도 온건파와 급진파로 나뉘어 치열한 명분 싸움을 한다. 모두가 백성과 나라를 위한 충정이었지만 접근 방법에 차이를 보인 이들의 게임은 결국 급진파 신진사대부의 역성혁명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들 급진파 신진사대부 역시 나중에는 훈구파가 된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말해주는 듯하다

내년이면 대한민국 패션사에서 디자이너들이 패션 단체를 만든 지 60년째가 되는 해다. 패션 불모지였던 20세기 식민지 조선에서 시작되어 한류의 한 축인 K패션으로 업그레이드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패션 디자이너들은 지난한 역사 속에서 신구 디자이너들이 역경과 고난을 함께 해왔다. 서로 다른 생각으로 때론 갈등도 빚었지만 대의명분 앞에서 통합의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4. 패션 단체들이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로 통합된 지 2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연합회 내에는 패션 단체 사이에 계파가 존재하고 신구 디자이너들의 갈등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 속에서도 한국 패션의 발전과 미래를 위한 디자이너들의 일편단심에는 신구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오는 410일 목요일,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는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른 비밀투표를 통해 앞으로 2년간 연합회를 이끌 새로운 2대 회장단을 선출한다. 앞으로 연합회가 발전적인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명분에 이의를 달 패션인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선배 디자이너들에 대한 후배 디자이너들의 불신은 벽은 여전히 높고, 회장단과 회원들과의 소통의 벽 또한 높다. 회원들의 불만이나 요구 사항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투명한 토론을 통해 건설적인 대안으로 도출되어야 하는 데 여전히 우물가 수다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세력화되지 못한 신진 디자이너들은 뒤에서 선배 디자이너에 대한 원망만 늘어놓을 뿐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피상적 결과에 대한 불만뿐이다.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신진 디자이너들의 비판을 받는 선배 디자이너들 역시 20~30년 전에는 지금 신진 디자이너와 같은 신진들이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당시 선배 디자이너들은 당시 시대 상황에 맞게 정부나 백화점과 치열하게 싸웠고 새로운 패션 아젠다를 만들기 위해 치열한 내부 토론을 벌였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과만 강조한 나머지 선배 디자이너들은 독선적일 것이라 선입견을 갖기도 하지만 이는 오해의 소치다. 대한민국 정치가 그렇듯 대한민국 패션사 역시 공과(公課)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은 계승하고 과는 지양하면 된다. 공은 외면하고 과만 부각시킨다면 그것은 소모적인 정쟁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공과는 있었지만 선배 디자이너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패션 코리아는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되었고, 또한 새로운 신진 디자이너들이 계속 배출되기에 패션 코리아의 미래도 기약할 수 있다.

2000년대 서울패션위크를 통해 배출된 젊은 신진 디자이너들을 흔히 5세대 디자이너로 부른다. 패션 디자이너에게 선생님이란 칭호를 선물한 최경자, 노라노, 앙드레김이 1세대라면 한국 패션의 세계화 물꼬를 튼 이신우, 진태옥, 트로와조는 2세대 디자이너다. 3세대 디자이너는 중앙디자인그룹 출신의 이상봉, 박윤수, 루비나와 같은 맞춤복 시대를 넘어 고급 기성복 시대를 연 80년대 디자이너일 것이고, 4세대 그룹은 정규 대학 의상학과 출신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만든 뉴웨이브인서울 출신의 우영미, 박춘무, 박윤정과 같은 디자이너다. 이러한 선배 디자이너들의 닦아 놓은 유산을 바탕으로 2000년대 이후 해외 시장 개척과 하이패션의 대중화 시대를 연 30~40대 신진 디자이너들이 바로 5세대 디자이너 그룹이다.

결국 패션 코리아의 미래는 한국 패션의 신진 사대부인 젊은 5세대 디자이너들의 어깨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을 아니다. 유학파와 국내파가 조화를 이루는 이들 5세대 디자이너들은 선배 디자이너들과 DNA부터 다르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스타 의식도 강해 특정 그룹에 속하는 것을 싫어한다. 또한 이기적일 정도로 정체성도 강하고 디자이너로서의 자긍심도 강하다. 이들 신진 디자이너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무척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선배 디자이너들과의 공개 석상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다. 유추컨대 이유는 둘 중 하나다. 하나는 괜히 입바른 소리했다가 찍힐까봐 눈치를 보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어차피 이야기를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지례 짐작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럼 이 대목에서 한국 패션 디자이너 단체의 변천사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 서양 패션을 처음 착용 한 것은 1895년 갑오경장(甲午更張) 이후로 단발령에 이어 문무백관의 양복 착용과 고종황제가 입은 대례복인 프록코트와 실크 모자 차림은 복장 개혁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어 상류층과 지식층부터 서양 복식을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일제 강점기인 1920~30년대는 모던걸, 모던보이로 불리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 서양복 착용이 급속하게 유행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때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디자이너 최경자와 같은 선각자들은 복장학원을 세워 보급형 생활패션에 주력한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패션의 중심인 도시 서울은 파괴되었고, 한국 패션은 침체기에 들어간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피난 갔던 디자이너들이 하나 둘 서울로 올라오면서 패션계는 다시 활기를 뛰기 시작했고 1955년에 디자이너들은 패션 그룹인 '대한 복식 연우회'를 만든다. 당시 초대 회장은 최경자가 맡았는데 양재와 한재, 편물 뿐 아니라 수예, 꽃꽂이, 인형, 목공예 등 9개 분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19604.19 혁명 이후 다양한 패션 단체가 설립되어 교류와 협력을 추진했지만 1년 후인 1961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군사 정부는 유사 단체 난립을 막는다는 취지로 유사 단체 통합령을 내려 패션 단체는 타의에 의해 1961827일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로 공식 출범하며 초대 이사장에 최경자가 선출되었다.

1970720일에는 중앙디자인그룹(JDG)이 설립되었다. <여성중앙> 창간을 기념해 열린 중앙디자인콘테스트가 계기가 되어 콘테스트 입상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그룹으로 1972년 제1회 중앙디자인클럽 패션쇼를 첫발을 내디딘 이후 80년대 중반부터는 JDG 컬렉션으로 명칭을 바꾸어 국내 최초의 그룹 정기 컬렉션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 이상봉, 박윤수, 루비나, 김철웅, 정욱준, 강진영 & 윤한희 등의 디자이너를 배출하며 신인 디자이너 발굴 및 육성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1978년에는 세계패션그룹(FGI) 한국협회가 설립되었다. 우리 패션 디자이너들의 국제 패션과의 교류 협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뉴욕 패션에서 주목을 받았던 트로아조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특히 세계패션그룹은 불우 이웃 돕기를 통한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에 중점을 두었다. 구체적으로 불우 아이들이 산타에게 보낸 편지들을 우체국에서 수집하여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산타클로스 클럽이나 유방암 치료를 위한 재정적 지원, 환경보호 캠페인 등 사회적 활동에 주력했다. 이전의 디자이너 개인 수준의 자선 패션쇼를 조직적인 사회적 공헌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1989년에는 진태옥, 박윤수, 박혜숙, 루비나, 설윤형, 지춘희, 김희진, 오은환, 이신우, 한혜자, 김동순, 박항치 등 12인의 디자이너가 발기인이 되어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를 결성했다. 도쿄 컬렉션에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들은 우리 역시 해외 프레스와 바이어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1년에 두 번씩 정기기적으로 열리는 컬렉션의 중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SFAA 컬렉션 이전에는 정기적인 해외 컬렉션에 우리 디자이너들이 초대 패션쇼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디자이너들의 도쿄결의는 그 결실을 맺어 19901123일부터 3일간 국내 최초의 정기 컬렉션인 ‘1991 /여름 SFA 컬렉션이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이어 이듬해인 1991429일부터 3일간 두 번째 정기 컬렉션인 ‘1991 가을/겨울 SFA 컬렉션이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리면서 대한민국도 글로벌 스탠다드의 정기 컬렉션 시대가 도래했다. 아마도 이때부터 파리, 밀라노, 뉴욕, 동경에 이어 서울을 세계 5대 컬렉션으로 만들자는 구호가 나왔다.

 

SFAA 디자이너들의 영향을 받은 신진 디자이너들의 움직임도 활발했다. 1992127일 당시 차세대 패션의 주역으로 부각되고 있던 양성숙, 최유미, 최성주, 전승현, 안혜영, 정혜진, 우영미, 박소용, 김안우 등의 9인 디자이너가 발기인이 되어 뉴웨이브인서울(NWS)가 창립되었다. 초대회장으로 양성숙을 선출한 뉴웨이브인서울은 문화체육관이나 전쟁기념관 야외 등 파격적인 장소와 앞서가는 디자인으로 SFAA 컬렉션과는 차별화를 꾀하며 90년대 한국 패션의 콘텐츠를 풍성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NWS 그룹이 주목받는 것은 이전 5년차 이상 10년차 미만의 30대 신진 디자이너들이 구성되었는데, 이전 선배 디자이너와 달리 대학 패션관련학과 출신인 대부분으로 국내외 컬렉션 참가 및 패션 콘테스트 수상자 중에서 추천을 받아야만 가입을 할 수 있었다.



그럼 디자이너 단체들의 통합은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그 시초는 1961년 군사정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패션 단체가 통합되었던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다. 하지만 이는 외부 강압에 의한 어쩔 수 통합이었기에 자발적인 통합이라고 볼 수 없다

디자이너들의 자발적인 통합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일어났다. 1988730일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 세계패션그룹한국지부, 국제패션디자이너그룹, 중앙디자이너그룹 등 4개 패션 단체가 모여 안윤정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장을 대표로 뽑고 강숙희, 앙드레김, 진태옥을 고문으로 한국패션디자이너단체연합회를 창립했다. 그러나 이 모임은 목전의 88올림픽을 연결 고리로 한 합종연횡이었기 때문에 88 올림픽 이후 추동력을 잃고 흐지부지되었다.

 

이후 디자이너들이 자체적인 자금으로 운영되던 컬렉션에 변화가 시작된다. 바로 정부의 지원이 시작되었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계속된 서울시와 한국패션협회가 주최의 서울패션위크와 1999년 문화관광부가 주최한 뉴밀레니엄 컬렉션이 대표적으로 이 때도 패션쇼를 위한 일시적인 통합 관계를 유지했다.

 

뉴밀레니엄인 2000년대 들어 서울에서 열린 아셈정상회의 갈라쇼를 통해 디자이너들의 새로은 길을 모색한다. 1021일 코엑스에서 열린 아셈 갈라쇼는 26개국 영부인들과 해외 관계자, 프레스들에게 K패션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취지로 이신우, 이영희, 트로아조, 박춘무, 이경원 등 12인의 신구 디자이너가 참가해 주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서울컬렉션은 산자부와 서울시의 지원 아래 민간기업인 우먼드림이 스폰서로 나선 민간 주도의 제1회 서울 컬렉션 개최에 디자이너들의 합의를 얻어냈다.

 

공무원과 디자이너, 마케팅 담당자들이 의기투합한 파사모(패션을 사랑하는 모임)까지 결성될 정도로 산업자원부와 서울시가 적극적 지원에 나선 의욕적인 민간 주도 통합 컬렉션이었지만 아셈 갈라 쇼부터 시작된 패션 그룹간 이견으로 인해 결국 반쪽짜리 통합 컬렉션인 2001 S/S 서울컬렉션이 1023일부터 4일간 20명의 디자이너가 참가한 가운데 JW 매리어트 호텔에서 열렸다. 이후 민간 기업에서 한국패션협회로 넘어간 서울컬렉션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에 힘입어 서울시가 주최하는 서울패션위크로 발전해 신진 디자이너 발굴과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시적인 효과를 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패션의 세대교체를 주도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신구 디자이너간 갈등 조장 의혹과 일방적 전시 행정적 행태 때문에 디자이너들의 원성을 받아왔다.

 

그러다 2011년 말 서울패션위크 운영 주체인 SBA 산하 서울패션센터를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해체하면서 디자이너들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된다. 디자이너들과의 아무런 협의 없이 서울컬렉션 운영 관련 단체를 갑자기 폐쇄한 서울시 처사에 분노한 디자이너들은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 세계패션그룹한국지회,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 뉴웨이브인서울 등 4개 패션 단체와 개별 디자이너들이 주축이 되어 2012220일 프레스센터에서 (가칭)한국패션디자이너엽합회 창립 선언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후 510일 청담동 비욘드뮤지엄에서 한국패션디자이너엽합회(CFDK) 창립총회를 가져 비빌 직접 투표로 초대회장에 이상봉을 선출했다. 특히 CFDK는 회원 누구나 나이나 경력에 관계없이 11표를 행사하는 디자이너 단체 최초의 민주적 선거를 실시해 신구 디자이너들의 소통과 조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이전 디자이너 단체와 한 단계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간략하게나마 한국 패션 디자이너 그룹의 변천사와 통합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패션 그룹들은 탄생에 있어 시대정신에 맞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 전후 패션 산업의 기초를 다진 50년대 대한복식연우회와 60년대 대한복식디자이협회, 7~80년대 신진 디자이너 발굴에 앞장섰던 중앙디자인그룹과 디자이너들의 해외 패션계와의 교류와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책임을 다했던 세계패션그룹한국지부, 90년대 정기적인 컬렉션 문화 도입에 앞장섰던 세계패션아티스트협의회와 뉴웨이브인서울에 이르기까지 돌이켜 보면 한국 패션 디자이너 역사에 있어 모두같이 소중한 유산(遺産)임에 분명하다.

 

지난 60년 동안 선배 디자이너들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혁신적인 사고와 주체적인 행동이 있었기에 2014년 한국 패션 디자이너 역사는 현재진행형의 생명력을 가지고 그 역사를 켜켜이 쌓아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 60년의 역사에서 공도 있고 과도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패션학자들이 평가할 문제다. 현재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패션코리아가 원하는 시대정신이 무엇인가와 그 시대정신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추체가 누구인가의 문제다.

 

어차피 태생적 한계로 인해 서울시나 문광부나 그리고 서울디자인재단은 서포터의 역할을 할 뿐이지 주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결국 모든 문제의 중심은 젊은 피 신진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어린 나이와 짧은 경륜으로 혹여 실수할 수 있을 것이고 시행착오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패한 경험조차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직의 리더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구세주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4,10 선거는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가 창립한 510일 못지않게 한국 패션에서는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이날 선거에서는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의 2대 회장과 감사, 이사를 뽑는다. 회장 후보로는 이상봉 초대 회장이 단독 후보로 올라 돌발 상황이 없는 한 무난히 당선될 것이고 감사 역시 한혜자, 최연옥 디자이너가 입후보해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새로 뽑힐 신임 이사들이다.

 

이번 4,10 선거에서 이사는 소위 교황선출 방식으로 선출한다. 연합회 정회원 누구나 이사 후보이자 동시에 선거인이 된다. 자신이 이사로 지지하는 5명의 디자이너 이름을 적어내 이를 합산해 최다 득표자 11명이 신임 이사로 당선 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잘못하다가는 인기투표가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과 의구심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거는 아주 중요하다. 200여명이 넘는 회원 중에서 어느 패션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2~30대 회원의 수는 50%를 넘는다. 무소속인 이들 연합회 최대 계파(?)의 표심에 연합회 미래가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럼 어떤 기준으로 투표할 것인가의 문제다. 먼저 일꾼론이다. 연합회의 회장과 이사진들은 회원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다. 2년간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연합회 일을 할 수 있는 참 일꾼을 뽑아야 한다. 그럼 참 일꾼의 기준은 무엇인가. 바로 성실성과 소통 능력이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동업자 정신이 투철한 디자이너만이 막중한 자리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며 올곧은 임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연합회 구조상 돌아가면서 이사직을 수행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두 번째로 리더론이다. 현재 연합회는 초기 상태이기 때문에 용장(龍將)도 필요하고 지장(智將)과 덕장(德將)도 필요하다. 연합회 내에는 자문기관인 운영위원회가 있지만 그야말로 회장단에 조언 역할만 할뿐이지 아무 권한이 없다. 지금까지 2년간 조직 정비를 위해 운영위원회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이제부터는 연합회 스스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를 찾아내야 한다. 좌우 날개가 있어야 하늘을 나는 새처럼 균형 감각을 가진 리더라면 더 좋을 것이다. 평소에 봐왔던 동료 디자이너들 중에서 리더로서 손색이 없는 디자이너에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은 한국 패션의 미래를 위한 회원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다.

 

세 번째로는 인재 양성론이다. 젊은 신진 디자이너들이 이사진에 들어간 행정 실무를 배워야 향후 연합회는 튼튼한 인재풀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인재 양성은 조직의 미래를 위한 피할 수 없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가 인기투표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대중적인 인기와 행정 수행 능력은 별개 문제다. 남들이 보든 안보든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일할 수 있는 희생정신이 투철한 미래 인재에게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물론 모두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겠지만 1~2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 소중한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길 바란다. 나 하나 정도야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회원들이 늘어날수록 신진 디자이너들이 비판하는 연합회의 혁신의 기간은 그만큼 지난하고 길어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부디 투표장으로 모여 젊은 디자이너들은 경륜 있는 선배 디자이너들의 경험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선배 디자이너들은 패기 넘치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열정과 가능성을 발견하는 즐거운 축제가 되길 바란다. 선거 결과에 따라 2기 연합회가 일보 전전을 하느냐 아니면 일보후퇴를 하느냐가 판가름 난다.

 

잘못된 선택이나 방관적인 자세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회원들에게 불이익으로 되돌아 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패션계의 신진 사대부들이 대거 등극하여 연합회에 K패션의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기대한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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