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 2014-12-10 |
[패션북] 샤넬이 질투한 그녀, 스키아파렐리의 ‘파격의 삶’을 엿보다
패션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기존의 패션 문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을 패션에 접목시켰다. 그녀는 숄더 패드를 처음 사용하고 이브닝 드레스에 지퍼를 달았으며, '쇼킹 핑크'를 개발하는 등 패션사에 길이 남을 업적들을 남겼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가브리엘 샤넬은 스키아파렐리의 이 같은 천재성을 경계한 것으로 알려진다.
샤넬이 미치도록 질투한 여자. 남과 같은 걸 죽기보다 싫어했던 여자. 패션 디자이너이기보다 예술가였던 여자.
여기 온 생애를 파격으로 채웠던 전설의 디자이너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 1890~1973). 한국인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그녀는 샤넬을 만든 가브리엘 샤넬이 질투했던 천재 디자이너였다.
1890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엘사 스키아파렐리는 1920~1930년대 파리와 런던, 미국의 패션계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그녀는 기존 패션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을 패션에 접목시켜 파격에 파격을 거듭한 것으로 유명하다. 숄더 패드를 처음 사용하고 이브닝 드레스에 지퍼를 달았으며, 쇼킹 핑크(shocking pink, 선명하고 밝은 분홍색)를 개발하는 등 패션사에 길이 남을 혁명적 공을 세웠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가브리엘 샤넬은 이 같은 스키아파렐리의 천재성을 매우 경계했다.
쇼킹 라이프(원제 : Shocking Life)는 스키아파렐리가 직접 쓴 자서전이다. 1950년대에 집필한 이 자서전은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삶과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진솔하게 담았다.
책에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장 콕토, 알베르토 자코메티, 장 폴 사르트르까지 당대 초고의 예술가들과 함께 패션의 문법을 만들었던 디자이너의 목소리가 진솔하게 담겨있다. 남다른 호기심이 빛났던 어린 시절부터 ‘최초’와 ‘파격’으로 대변되는 자신의 패션 철학, 당대 최고의 셀러브리티들과의 창조적 교류를 흥미롭게 서술한다.
파격의 아이콘인 만큼 자선전의 형식도 독특하다. 1인칭과 3인칭을 넘나드는 글쓰기 방식은 정공법을 따르지 않던 그녀의 디자인 방식과도 닮아있다. 이 책을 번역한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씨는 해제에서 “자서전 속에서 스키아파렐리는 깨진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듯, 여러 개로 분열된 자아를 글에 등장시킨다… 그녀의 글 속에는 예술을 지향하는 아티스트로서, 상업적인 패션산업의 요구에 맞서 변화와 혁신을 이어간 여성 디자이너의 치열한 삶의 흔적이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스키아파렐리의 패션세계는 ‘최초’와 ‘파격’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디자인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그녀는 우연한 계기로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인 폴 푸아레를 만나 패션의 길로 들어섰다. 눈속임 기법의 트롱프뢰유 스웨터를 최초로 개발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으며, 이후 해골모양의 스웨터와 드레스, 기상천외한 모양의 단추, 매드 캡(mad cap) 등을 선보였다. 숄더 패드와 가슴 패드를 처음 사용해 여성복의 라인에 혁신을 불러왔으며, 고급 의상인 이브닝 드레스에 지퍼를 달아 논란과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쇼킹’이라는 이름의 향수도 만들었다. 향수에 사용된 선명한 핑크는 이후 ‘쇼핑 핑크’라는 이름으로 스키아파렐리 디자인 하우스의 시그니처가 됐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주목된다. 스키아파렐리는 살바도르 달리, 장 콕토, 알베르토 자코메티, 크리스티앙 베라르, 만 레이 등과 친분을 유지하며 예술적으로 끊임없이 소통했다. 특히 달리와는 지속적인 협업을 진행해 유명한 랍스터 드레스를 제작했으며, 달리 역시 스키아파렐리의 태양왕 향수병을 제작해 그녀의 패션작품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자서전 말미, 스키아파렐리가 여성들에게 전하는 12가지 조언은 현대 여성들에게도 유익한 지혜로 다가온다. ‘비싼 드레스를 사서 수선했다가 망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돈 낭비도 없다’, ‘결코 다른 여자와 쇼핑하지 마라. 그들은 때때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질투에 빠지기 쉽다’, ‘옷을 많이 사지 마라. 최고의 것이 아니라면 가장 싼 것을 사라’, ‘절대로 몸에 옷을 맞추지 말고 옷이 맞도록 몸을 훈련하라’. 단순히 업적을 많이 남긴 디자이너가 아닌 여성들의 멘토로서 그녀의 삶은 우리시대 젊은 여성들이게도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트롱프뢰유(Trompe-l’oeil) 스웨터, 이 작품은 스키아파렐리 명성의 시작이 됐다. 1927
↑ 장 콕토의 드로잉을 활용한 ‘Cocteau’ 이브닝 재킷, 1937
↑ 울 펠트로 만든 구두 모자와 스케치 1937–38
↑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작업한 랍스터 원피스, 1937
↑ Bug Necklace, fall 1938 & Gold clawed gloves, 1938
↑ Skeleton dress, 1939
↑ ‘쇼킹(Shocking)’ 향수, 영화배우 메이 웨스트의 몸매를 모티브로 제작한 용기로 유명, 1938
↑ 스키아파렐리의 시그니처 컬러인 ‘쇼킹 핑크(Shocking pink)’ 작품들
패션엔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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