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패션 | 2014-11-11 |
[히스토리] 1차 세계 대전이 여성 패션을 변화시킨 것들
새로 출간된 책 <Dressed for War>에서 전시에 농업에 종사하는 젊은 부녀자들을 뜻하는 랜드 걸들이 헴라인을 짧게한 이유와 아울러 코코 샤넬이 1차 세계 대전 후 어떻게 여성의 옷입는 밥법을 변화시켰는지 알려주고 있다.
전시 여성 농경부대 여성들은 바지 개척자였다
전쟁 전에 광산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바지를 입었지만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는 스커트를 바지를 은폐했었다. 전시 여성 농경 부대(Land Army)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은 실용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정규 유니폼으로 바지를 입지 않았다. 그들은 가족의 남성들로 부터 빌려입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테니스 코트를 떠나 여성들이 바지를 받아들이는 데는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메이크업은 전시에 더 발전했다
메이블린은 1915년에 시작했는데 그것은 메이크업이 받아들여진 때와 일치한다. 특히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이 메이크업을 좋아했다. 파우더와 콜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가 특히 인기가 좋았다. 한편 전선에서 간호사로 자원 봉사하던 부유한 여성들의 헤레나 루빈스타일 페이스 크림에 대한 수요가 급증되었다고 보도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피부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은 그대로인듯하다.
여성의 체모 노출이 해결되었다
여성들의 유니폼은 1914년의 관습보다 치마가 더 짧아졌다. 바닥으로 부터 6~10인티 길이였다. 약간의 다리 노출은 체모에 대한 인식 변화의 일부분이었다. 무엇인가 에로틱한 것부터 보기 흉한 것까지 다양한 시각이 존재했다. 질레트는 1915년에 밀레디 디컬티(Milady Decolletee) 면도기를 소개했다. 결국 다리를 면도하는 것은 기본적인 여성 미용의 일부가 되었다.
전시 주얼리는 창조적이었다
전쟁이 없을 때의 보석은 경솔한 것으로 취급을 받지만 군인이 그의 약혼자로 부터 받은 스위트하트 주얼리는 허용이 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인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탄약의 조각으로 만든 반지와 팔찌등의 패션으로 파리에서 주목을 받았다.
코코 샤넬의 상승은 1차 세계대전 동안 시작되었다
그녀의 주름 장식이 없는 디자인은 금전적으로 곤란한 시기의 차임벨 소리였다. 그녀의 첫 매장이 1913년 도빌에 오픈했다. 이어 그녀의 다시 작업한 스포츠웨어를 부유한 여성들이 구매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두번째 매장은 2년 후인 1916년 비아리츠에서 오픈했다. 그녀의 상승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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