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4-09-16 |
[무비패션] 아르마니아를 위한 스타일 교본 <아메리칸 지골로>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는 80년대 섹시 아이콘 리차드 기어가 주연한 작품으로 남성복의 샤넬이라 불리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이야기 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영화다. "인생은 영화이고 내 옷은 그 영화의 무대의상”이라고 말할 정도로 영화 의상에 대한 이해가 깊은 아르마니는 약 100여 편의 영화 의상을 제작하거나 후원했다. 그가 처음으로 영화 의상을 작업한 아르마니아를 위한 스타일 교본 <아메리칸 지골로>를 만나보자.
영화 <아메리카 지골로>의
주인공 역은 애초 <토요일 밤의 열기>의 주인공
존 트라블라가 먼저 캐스팅되었다. 여기에 존 트라블타의 매니저가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친분이 있어 아르마니에게
영화 의상을 부탁해 허락을 받았는데 정작 존 트라블타는 조건이 맞지 않아 중도 하차 하고 당시 영화 <미스타
굿바를 찾아서>로 주목 받던 신인, 리차드 기어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영화에서 리차드 기어는 상류층 여성을 상대하는 고급 남창 줄리안 제이로 나온다.
적당히 신사적이고 자유분방한 줄리안을 상류층 사교계에 입문 시킨 앤은 그에게 많은 상류층 여성들과 관계를 주선하면서도 항상 자신에게
안주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상류층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줄리안을 소유하려는 포주 레옹은 그와 앤의 관계를
이간질하며 그를 함정에 빠뜨린다.
비버리 힐즈의 고급 호텔에 머물고 있는 줄리안은 우연히 호텔의 칵테일 바에서 여주인공 미쉘을 만나 호감을 느낀다. 오랫동안 진실한 사랑을 갈구해온 미쉘은 상원의원을 남편으로 둔 상류층 여성으로 자신을 순수한 사랑으로 받아주는
줄리안의 매력에 빠져든다.
미쉘과의 즐거운 시간도 잠시, 미쉘을 만나기 1주일 전 레옹의 부탁으로 줄리안이 하룻밤을 보냈던 한 여인의 살해 사건이 발생하면서 줄리안은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러나 그 동안 줄리안과 관계를 맺었던 여인들은 자신들의 부와 명예 때문에 알리바이 진술을
거부하고 경찰과 검찰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꺼리며 그를 외면한다.
모두가 외면하자 스스로 사건의 전모를 파헤쳐가는 줄리안은 살인 사건이 레옹의 함정임을 알게 되고 레옹을 찾아가
자신과의 비즈니스 계약을 성립하는 조건으로 알리바이 진술을 부탁한다. 하지만 사건이 커지면서 줄리안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한 레옹은 그의 조건을 거절한다. 결국 줄리안은 레옹과 말다툼을 벌이다가 레옹이
아파트 난간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이 사건으로 줄리안이 경찰에 체포되는데 이때 미쉘이 줄리안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줄리안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를 위해 알리바이를 증언함으로써 줄리안의 무죄가 입증된다.
영화가 시작되면 검은색 벤츠 오픈카를 탄 주인공 줄리안 케이가 LA 해안도로를
달리는 가운데, 블론디의 경쾌한 음악 '콜 미'가 흘러나온다. 원래는 느린 곡이었는데 블론디의 제안으로 빠른 곡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70년대 후반 모델인 벤츠 450 SL 컨버티블은 슬림하면서도 앞쪽과 뒷쪽에 툭 튀어 나온 범퍼가 도도한 매력을 풍긴다. 자동차와 함께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줄리안 의상은 은은한 회색 재킷에 붉은 도트 넥타이로 포인트다. 셔츠 칼라를 자세히 보면 세련된 스트라이프가 보이는데 무척 매력적이다. 이후
영화는 수트를 기본으로 컬러와 소재, 넥타이를 바꿔가며 TPO에
따른 아르마니 무비 패션쇼를 선보인다.
이 영화의 최고 미덕은 아마도 상투적인 해피 엔딩의 스토리 라인 보다는 마치 패션쇼를 보듯 펼쳐지는 조르지오
아르마니 스타일을 보는 재미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수트와 셔츠,
넥타이는 모두 아르마니가 직접 만든 것으로, 의상에 맞게 영화 세트도 이태리 분위기에 맞게
세팅되었다. 유럽풍의 배경 덕분에 아르마니 의상이 더 살아 보이는 것 같다.
특히 줄리안이 다 늦은 저녁 시간에 고객을 만나러 나가기 위해 옷과 넥타이를 고르는 장면은 이영화의 백미다. 바지를 입고 상체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옷장을 열고 세벌의 재킷을 골라 침대 위에 올려 놓는다. 그 다음에 각각의 재킷에 어울리는 셔츠를 꺼내 재킷 위에 던지고 마지막으로 넥타이를 고른다. 맨 윗 서랍에는 클래식한 타이들이 즐비하다. 두 번째, 세 번째 서랍에는 고급스러운 셔츠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또 다른
서랍을 열자 아르마니 스타일의 넥타이들이 가득 있다. 그 중 줄리안은 가로줄 무늬의 좁은 타이를
선택한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이 영화를 통해 남성복 수트에 ‘착용감’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착용감을 좋게 하기 위해 먼저 어깨선은 둥글게, 암홀은 넓게, 품은 넉넉하게 디자인했다. 덕분에 '착용감이 좋은 수트=좋은
수트'라는 공식을 만들어 냈다. 스타일링 전체는 둥글둥글하지만
수트 스타일의 정형이나 클래식한 느낌을 그대로 유지해 유로 아메리칸 룩의 전형을 보여준다. 지금 봐도
우아하고 심플한 영화 속 수트들은 인체 곡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선과 과장되거나 조잡스럽지 않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디자인은 과연 아르마니
패션의 정수다.
아르마니 쇼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기품 있는 블랙 수트는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날렵한 칼라가 살아있는 화이트 셔츠와 행거치프, 그리고 사선 스트라이프의
검정색 넥타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 색상만으로 훌륭한 룩을 연출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스타일의
키 포인트는 넥타이의 선택과 센스 입는 행커치프, 그리고 구두가 좌우한다. 위와 같은 스타일에 카멜 재킷으로 교체를 한 스타일도 근사한데요. 간단한
술자리나 모임에서 적당할 듯 하다.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기장이 긴 원 버튼 회색 재킷과 같은 톤의 넥타이를 매끈하게 맨 뒤 스트레이트 블랙 팬츠를
매치한 스타일은 모던한 뒷 배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다소 루즈하고 수동적인 재킷을 딱 떨어지는
어깨 선으로 날렵하게 잡아준 것이 포인트다. 또한 얇은 소재의 베이지 재킷과 매치된 톤 다운된 셔츠와
팬츠 스타일은 별다른 포인트는 없어 보이지만 편안하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에는 최고의 코디처럼 보인다.
영화에는 다양한 아르마니 스타일의 넥타이가 많이 등장해 넥타이 때문에 고민하는 남성들에게는 최고의 스타일 코치가
될 듯. 굵은 선이 들어간 유니크한 넥타이가 돋보이는 이 스타일은 연한 갈색 셔츠와 라펠이 예쁜 재킷이
환상적이다. 재킷과 셔츠, 넥타이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코디로 개성 있는 비즈니스룩으로 손색이 없다. 연어를 떠올리게 하는 고급스러운 컬러감의 셔츠와 같은
컬러의 넥타이, 그 보다 연한 원 버튼 재킷도 재미있느 코디다. 점점
연해지는 컬러 그라데이션이 감각적이고 세련된 느낌이다. 또한 견고한 어깨선과 상체를 따라 흐르는 라인은
매력적인 아르마니 스타일의 특징이다.
영화에서 거리를 걷는 장면. 연한 하늘 색 셔츠는 팔뚝까지 곱게 접어
벨트를 두른 진 팬츠 속으로 넣고 굽이 있는 구두를 매치해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었다. 갈색
선글라스와 자연스럽게 바람에 날리는 헤어 스타일로 인해 센스있고 부유한 청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어깨
위로 무심하게 걸친 재킷이 요즘 봐도 스타일리시하다.
독특한 소재의 캐시미어 재킷과 연한 회색 팬츠, 살짝 보이는 시계와
양말, 레이스업 슈즈로 마무리한 스타일은 겨자색 넥타이와 만나 환상의 하모니를 보여준다. 또한 커다란 포켓이 있는 블루 셔츠에 같은 톤의 진한 넥타이를 매치한 뒤 블루 그레이 톤 재킷을 매치한 스타일도
돋보이는데, 다소 독특한 컬러감으로 인해 시크한 스타일을 연출하고 있다.
80년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도 영화에서 리차드 기어가
입었던 아르마니 스타일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뉴요커 커리어우먼룩을 도나 카란이 만들었다면 뉴요커를
위한 비즈니스 룩은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을 아닐 정도로 일명 ‘유로 아메리칸 룩’으로도 불리는 아메리칸 지골로 스타일은 80년대 내내 인기를 구가했다. 아울러 그레이와 브라운컬러로 기본으로 패드와 심지 같은 몸에 압박을 가하는 구조물을 생략한 몸에 감기는 부드러운
실루엣이 특징인 아르마니 스타일은 70년대까지 클래식한 에드워디안 스타일이 주도하던 남성복 시장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 유재부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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