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4-09-04 |
[무비패션] 엔드로지너스의 원조 마를렌 디트리히의 섹시+매니시룩
요즘 컬렉션에서는 엔드로지너스와 젠더리스 바람이 거세다. 조셉 폰 스텐베르그 감독의 1930년 작품인 영화 <모로코>는 여성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한 30년대 매니시 룩을 잘 보여준다. 여주인공을 맡은 마를렌 디트리히는 섹시한 관능미와 남성적인 양성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패션에서 ‘머스쿨린 룩’ 혹은 ‘매니시 룩’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엔드로지너스 패션 아이콘 마를렌 디트리히를 영화 <모로코>로 만나보자.
이 영화는 독일 출신인 마를렌 디트리히가
미국으로 건너와 처음 찍은 영화다. 디트리히는 1930년대에
가장 섹시한 여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시기였는데 흑백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은 밀랍 인형 같은 매끈한 하얀 피부에 사선의 곡선을 그리는 엷은 눈썹,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에서 차갑지만 고혹적으로 반짝이는 묘한 눈 연기를 선보인다.
모로코의 한 클럽에서 가수로 일하는 에미(마들렌 디트리히)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남장을 하고 나온 그녀에게 야유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여유 있게 담배 연기를 흩날리며 묘한 미소를 지으며 관중을 보는 모습은 페미니즘적인 요소가 다분하지만 매니시한 느낌을 전달하기에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탑 햇에 턱시도를 입은 여주인공 마를렌 디트리히가 노래를 부르면서 객석의 한 여자와 입을 맞추는 키스 장면이 나오는데, 그녀는 이 장면 하나로 매니시룩의 원조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아울러 이 영화로 단 한 번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당시 인기가 대단했다.
이 영화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주둔한
외인 부대의 사병 톰 브라운과 술집에서 노래 부르는 여가수 에미 조리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었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실연의 상처를 입고 만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지만 상사와의 불화로 톰 브라운(게리 쿠퍼)이 다른 곳으로 배치를 받게 된다. 하지만 에미는 부자인 다른 남자의 청혼을 뿌리치고 톰을 따라 부대를 쫓아간다.
모래 바람이 몰아치는 사막을 화이트 실크 브라우스에 실크 바이어스 커팅 스커트와 하이힐에 스카프 한 장 만을 걸친 마를렌 디트리히의 모습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녀의 발은 자꾸 모래에 자꾸 발이 빠진다. 결국 불편한 하이 힐을 벗어버리고 맨발로 달려가는 영화의 라스트 신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 장면으로 남아있다. 도망간(?) 남자친구를 쫓아갈 땐 하이힐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라는 걸 영화를 보면서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마를렌 디트리히가 등장하는 첫 장면도 매력적입니다. 레이스 장식의 모자를 쓰고 등장한 그녀의 첫 장면은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다. 무엇인가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이 장면 때문에 매니시룩의 원조라는 그녀의 타이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공연을 위해 단장 중인 그녀는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진 매니시 룩을 입고 있다. 남성복을 입은 여성 중에서 이렇게 매력적인 여자는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여자가 보기에도 그녀의 매니시 룩에서는 남성의 터프함과 여성의 섹시미가 동시에 느껴진다. 그녀의 육감적인 섹시미나 신비한 매력은 딱딱한 남성복으로 숨길 수 없을 정도다.
일반적으로 매니시한 스타일 때문에 그녀에게 여성복이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은 금물이다. 영화 속 매니시 룩과 확연하게 상반되는 섹시한 룩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아찔한 길이의 점프 수트 스타일의 올 인원과 퍼 아이템으로 관능미 발산을 발산하는 모습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액세서리도 빼 놓을 수가 없다. 그를 짝사랑하는 남자가 선물해준 진주 목걸이로 시스루 드레스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마를렌 디트리히는 영화 속 드레스를 위해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다이어트를 감행했다고 한다. 영화가 만들어진 1930년대는 바이어스 컷이 나온 시점으로 드레스를 입으면 몸매 라인이 그대로 그러 나기 때문이다. 디트리히의 매혹적인 몸매 라인을 그대로 드러나는데 있어 바이어스 컷 드레스도 한 몫 한 셈이다.
영화 의상에 필수인 트렌치 코트 역시 압권이다. 스카프와 매치된 트렌트 코트는 비슷한 시기와 배경의 영화 <카사블랑카>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여기에 챙이 넓은 모자와 케이프 스타일의 재킷, 반짝이는 시퀸 드레스는 여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긴다.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가 쿨하게 굿 바이를 외치는 마를렌 드트리히. 심플한 블라우스에 하이 웨이스트 롱 스커트로 스카프를 매치한 레이디 라이크룩을 연출해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영화가 나온 1930년대는 우리나라 충무로에도 모던 걸이라 불리는 패셔니스타들이 생겨나던 시기였다.
영화 배경인 1930년대에는 여성의 라이프
스타일이 활동적으로 변함에 따라 패션도 기능적인 감각이 반영되기 시작한다. 운동이 대중화 되면서 스케이트용
스커트 길이가 점점 짧아졌으며 공공 장소에서도 짧은 반바지를 입었다. 마를린 디트리히의
상징이 된 턱시도도 파격적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팬츠도 잘 입지 않던 시절이라 턱시도 착용은
파격 그 자체였다. 마를렌 디트리히가 남성용 수트를 입고서도 관능미를 잃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헤어
스타일 때문이다. 적절하게 조절된 강약으로 곡선미를 준 물결 펌은 그녀의 날카로운 광대뼈와 눈매를 더욱
아름답게 표현했고 시가를 든 손끝에 긴장감응 불어 넣었다 남성복 착용에 대해 극도의 불안감을 느꼈던 당시 여성들로 하여금 앞다퉈 남자들의 옷장을
열게 만들었던 그녀의 머리 모양은 지금 봐도 우아하고 매력적이다.
마르렌 디트리히는 남성적인 터프함과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유일한 여 배우다. 육감적인 섹시미와 신비한 매력으로 인해 남자와 여자, 양성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그녀는 실제로도 양성애자였다. 시대를 앞서갔던 그녀의 패션은 지금도 많은 디자이너들에 의해 1930년대 클래식으로 재현되고 있다. 1966년에 발표된 이브 생 로랑의 여성 턱시도 수트인 ‘르 스모킹’ 역시 마를렌 디트리히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21세기의 디자이너들은 이제 남자와 여자를 위한 옷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대신 이제 부터는 피플(People), 즉 일반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지난 2015 봄/여름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에서 피우치아 프라다는 자신의 남성복 쇼에 남성복 소재로 만든 옷을 입은 여성 모델을 세워 주목을 끌었다. 그녀 역시 백스테이지에서 이제부터는 피플을 위한 옷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번 2015 봄/여름 밀라노 여성복 컬렉션에서는 어떤 모습의 남자 모델을 무대에 세울지 세계 패션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3년 전 부터 런던 컬렉션의 젊은 디자이너들의 주동이 되어 서서히 엔드로지너스 경향을 선보이더니 이제는 젠더리스 너머 젠더 중립지대를 만들어 여성복 같은 남성복, 남성복 같이 여성복이 등장해 남자들이 치마를 입고 플랫폼을 신고 타이즈를 입는 수준에 까지 도달했다. 남성복의 젠더리스 바람이 여성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번 2015 봄/패션 위크를 주목해야 할 듯 하다.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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