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4-08-15

피플에게 ‘패션 민주주의’ 선물한 칼 라거펠트의 ‘매스패셔니즘’

20세기 초 소수를 위한 사치와 속물주의 상징이던 하이앤드 패션을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대중문화 콘텐츠로 탈바꿈시킨 대표적인 인물 칼 라거펠트는 세계의 모든 여성들에게 패션 민주주의를 선물했다. 이제 패션은 소수를 위한 과시나 사치의 상징이 아닌 대중들을 위한 자기표현과 소통의 수단으로 탈바꿈했다. 온오프 매장을 오가며 쇼핑을 하는 ‘피플(People)’을 위한 패션 민주화의 산물인 매스 패셔니즘(Mass-Fashionism) 시대가 열린 셈이다.




20세기 패션의 주인공이 코코 샤넬이었다면 21세가 패션의 주인공은 바로 그 샤넬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패션 카이저 칼 라거펠트일 것이다. 20세기 초반 코코 샤넬이 가슴을 억누르는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켰다면 칼 라거펠트는 21세기 초반에 세계 여성들에게 패션 민주주의를 선물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브랜드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칼 라거펠트는 샤넬의 디자인을 노골적으로 카피하는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을 용서(?)하고 대신 그들과 손잡고 콜라보레이션으로 H&M 칼 라거펠트 리미티드 컬렉션을 출시해 1시간 만에 전 세계 매장에서 솔드 아웃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특히 샤넬의 대표적인 아이템으로 꼽히는 블랙 미니 드레스를 상징적인 가격인 99.99달러에 판매함으로써 전 세계 대다수 보통 여성들에게 세기를 뛰어 넘는 하이엔드 패션과의 조우를 선물했다.

 

현재를 사는 보통 사람들은 매일 고급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지 않는다. 때론 바쁜 도시 생활 때문에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나는 세계에서 최고로 비싼 옷을 만들어 보았고 하이 스트리트 브랜드 ‘H&M’과 함께 내 생에 가장 저렴한 옷도 만들어 보았다. 바야흐로 패션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소비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H&M’과 첫 리미티드 컬렉션을 발표하는 날, 칼 라거펠트는 내가 만드는 옷이 카피된다는 것은 내 디자인이 일반 여성들에게 유행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1930년대에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한 말과 똑 같은 말이다. 그는 비싼 브랜드와 싸구려 브랜드라는 기존 패션의 왜곡된 구도를 럭셔리 브랜드와 저렴한 매스밸류 브랜드라는 21세기형 패션 구도를 만들어 냈다.



그는 샤넬이나 ‘H&M’의 중간 가격대로 라거펠트 갤러리라는 브랜드를 다시 론칭하면서 가진 기자 회견에서도 오늘날 여성들은 비싼 재킷과 저렴한 탱크 탑 한 벌을 동시에 원한다. 이 극단적인 차이가 나는 가격대의 옷 한 벌을 맞추기 위해 소비자들은 고급 부티크와 스트리트 매장을 동시에 오가며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이것은 패션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집 앞 슈퍼마켓과 같은 매장이 바로 내가 만들고 싶은 패션 민주주의 매장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스마트폰 쇼핑이 대세로 등장하자 세계적인 인터넷 쇼핑몰인 네타포르테닷컴에서만 살 수 있는 (KARL)’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패션 민주주의를 사이버 세상에 까지 끌어 들여 하이엔드 패션의 오픈 마켓 진출에 가속도를 붙였다. 결국 전 세계에 걸친 직구족의 만들어 새로운 틈새시장 형성에 일조했다.


칼 라거펠트는 1938910(서류상으로 1933년생이지만 본인은 서류 오류라고 주장) 독일 함부르크에서 사업가인 스웨덴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재능을 꽃피웠다. 13세 때 어머니와 함께 찾아간 함부르크예술학교 교장 선생님이 당신 아이는 옷에만 관심이 있다.”고 충고하자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초상화 화기로 키우려던 꿈을 접고 이듬해인 195214세 때 파리로 패션 유학을 보냈다. 어쩌면 현재의 칼 라거펠트는 그의 재능을 일찍 알아보고 밀어준 어머니 덕분이었던 셈이다.

 



195517세 때 국제양모사무국 디자인경연대회에 나가 드레스 부문 1등을 탄 이브 생 로랑과 함께 코트 부문 1등을 수상한 칼 라거펠트는 수상 직후 디자이너 피에르 발망 밑에서 3년간 도제식 수업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은 르베르 드 지방시, 피에르 발망, 자크 파스였는데 이중 그를 눈여겨 본 발망에게 스카우트 당한 것이다. 이후 발망을 나와 1958년부터 1963년까지 디자이너 장 파투에게 도제 수업을 받던 도중에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제의받지만 일에 싫증을 느껴 1963년 독립을 선언한다.

 

이후 전 세계를 돌며 노마드(?)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다. 1965년에는 32세 나이에 프리랜서로 끌로에의 액세서리 라인에서 일하다가 1974년에는 끌로에 수석 디자이너가 되어 20년 동안 일했다. 또한 펜디의 모피 라인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때부터 역마살 패션 인생(?)인 노마드 디자이너의 삶이 시작된 셈이다. 1984년 드디어 칼 라거펠트는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됨과 동시에 자신의 기성복 브랜드 칼 라거펠트를 론칭하게 된다. 샤넬 영입 이후 세계 패션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한다.

흔히 세계 패션계에서 카이저 칼혹은 패션의 제왕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의 천재적인 소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명성을 유지해온 원동력은 무엇보다 열정적인 자기 관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몬테카를로, 로마, 브리타니, 함부르크, 베를린, 파리 등 전 세계 6곳에 저택을 두고 있는 칼 라거펠트는 소장하고 있는 책만 약 23만권에 이른다고 한다.



   디자인 작업이나 패션쇼가 없는 날이면 화려한 파티장에 가는 대신 책에 파묻혀 지낸다고 한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예술 관련 잡지나 전기, 역사책을 읽으며 디자인을 구상한다.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태리어에 두루 능통한 그는 신문이나 잡지에 서평을 기고하는 비평가이자 샤넬 홍보에 필요한 사진과 글, 광고, 단편 영화를 찍는 포토그래퍼이기도 하다. 이외에 인테리어 디자인, 광고 모델, 성우, 서점 운영에 이르기까지 그의 활동 영역은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그는 성직자처럼 단정하다. 차림도 늘 포니테일 머리, 검정 선글라스와 블랙 수트에 흰 셔츠, 가죽 장갑을 낀다. 한 때 부채를 들고 다녔지만 이는 담배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금연 구역이 많아 부채는 들고 다니지 않고 검은 선글라스 역시 시력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 물론 성직자처럼 담배와 술을 멀리한다.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디 슬리만이 디올 옴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던 시절. 그를 좋아하던 60대 할아버지 칼 라거펠트는 지나치게(?) 슬림한 디올 옴므 수트를 입기 위해 수술을 동반한 다이어트를 감행해 무려 42kg을 감량한 에피소드는 그의 철저한 관리의 좋은 예다. 반면 한결같은 외모나 절제된 라이프 스타일에 비해 그의 디자인은 늘 혁신적이다. “패션은 파괴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할 정도다. 더불어 옷은 순간을 반영해야 한다. 너무 빠르거나 늦으면 소용이 없다며 냉철한 현실주의자적인 인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70년대 중반 끌로에의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절, 그는 한발 앞선 포스트모더니즘을 도입해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을 혼합시킨 시도로 주목을 받았다. 세련되면서도 캐주얼한 옷을 원하는 당시 여성들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한 셈이다. 물론 너무 앞서간 덕분에 혹평과 시장의 냉대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진보적이었던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클래식이 되었다. 또한 그는 의상이 정말 패셔너블해지려면 액세서리나 메이크업, 모델, 음악, 이미지와 판타지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며 슈퍼 모델 시스템을 앞장서서 도입한 장본이기도 하다.

 

올해로 75(서류상으로는 80)인 칼 라거펠트는 브랜드 하나도 전개하기 힘든 패션 시장에서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인 샤넬의 기성복 라인과 쿠틔르 라인, 모피 제품을 생산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펜디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디자인 뿐 만 아니라 패션쇼와 광고를 위한 촬영까지 멀티플레이어형 그의 역할 때문에 젊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 역시 멀티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한다고 한다. 이제 패션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잘해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가 1984년 코코 샤넬의 후계자로 임명되었을 때 일부에서는 칼 라거펠트가 가죽 부츠를 신고 들어와 트위드 전통의 샤넬 정신을 망치고 있다는 혹평도 들었지만 그가 디자인을 맡으면서 고객 연령대는 50대 중반에서 20~30대로 젊어졌고 매출도 몇 배로 늘어나 현재 유럽의 럭셔리 명품 하우스 중 유일하게 문어발식으로 운영되는 LVMH 그룹과 같은 럭셔리 그룹에 넘어가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그는 현재까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대부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스타를 꿈꾸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전통과 혁신을 중재하는 균형 감각으로 20세기 럭셔리 브랜드 샤넬의 영광을 21세기로 이어가고 있는 칼 라거펠트. 현재 그가 이룩한 성과는 어쩌면 고인이 된 코코 샤넬조차 놀랄 정도로 21세기 최고 패션 디자이너라는 명성에 걸 맞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회상하고 존경만 한다면 창작은 불가능하다.”는 노장 칼 라거펠트. 여성을 사랑하고 여성의 자유를 추구한 코코 샤넬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는 패션의 사치와 독점이라는 억압으로부터 보통 여성들을 해방시켰다. 오늘도 카이저 칼은 변함없이 패션 민주주의를 통해 백화점의 값비싼 트위드 재킷과 저렴한 탱크 톱 한 벌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엄마와 딸이 SPA 매장에서 같이 쇼핑을 하는 모습은 분명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만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칼 라거펠트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패션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10대부터 20대까지는 이브 생 로랑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2인자의 슬픔을 경험했지만 2014년 지금 이브 생 로랑은 죽은 전설이 되었고 칼 라거펠트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누군가 필자에게 묻는다. “천재 디자이너는 타고 나는 것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이유 없는 결과가 없듯이 과정 없는 전설도 없습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치지 않고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패션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입니다. 1%DNA적 재능은 99%의 열정과 땀에 의해 전설이 되는 것입니다. 21세기의 레전드는 그리스 신화가 아닌 피플과 소통하며 얻어지는 민주주의의 꽃입니다.” 소통하지 못하는 21세기 패션은 대중 없는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21세기 매스패셔니즘은 매스미디어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덕분에 안나 윈투어로 대표되는 패션미디어는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했다. 매스미디어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형 디자이너들이 만들어가는 플래닛 지구의 피플을 위한 매스패셔니즘은 민주주의라는 선물을 주었지만 대량소비와 환경파괴라는 또다른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지속가능 패션을 통해 패션 민주주의 그 이상의 가치를 찾아야하는 시점이 온 셈이다. 지속가능 패션의 성공 여부는 패션 미학을 찾는 것에 달려있다. 물론 그 숙제는 디자이너의 몫이자 결과는 소비자의 선택이다. 이제 평등을 넘어 가치를 생각하는 새로운 패션 민주주의를 고대한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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