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4-07-31

포스트 젠더 시대: 패션은 더 이상 남성과 여성만을 위한 구속 아닌 피플을 위한 자유다

요즘 패션에서 러플이나 스커트를 입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여성들이라는 선입견을 버려할지도 모른다. 물론 남성들 역시 후드 베스트나 슬라우치 팬츠를 독점할 수 없다. 여성들에게 그 아이템을 빼앗긴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젠더리스에 이어 ‘젠더 중립 지대’가 생기면서 포스트젠더 시대가 서서히 오고 았다. 이제 남성들도 드레스와 블라우스를 입기 위해서는 몸매 관리부터 들어가야 할 듯하다.





지난 몇 년간 국내외 유명 스타들이 여성복 특유의 라인과 다양한 색감이 예뻐 여성 브랜드 옷을 사서 입는 모습이 뉴스로 나올 때 마다 대중들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동성애자나 이색 취향의 소유자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남성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여성스러운 몸짓과 말투에 성체성이 모호한 의상을 입고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유니섹스 패션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젠더리스 패션이 대세로 떠오르며 대중들의 주목을 받더니 이제는 젠더 중립 지대’가 생겨나면서 젠더리스룩을 즐겨입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바야흐로 포스트젠더 시대의 개막이다.

 

젠더리스 개념은 성의 파괴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패션의 새로운 경향으로, 성의 구별이 없거나 중성적인 패션을 말한다. 여성들이 남성복 스타일의 옷을 입던 유니섹스 패션과는 달리 군화를 신고 밀리터리룩을 입는 여성, 귀걸이를 하거나 허리 라인이 잘록한 옷을 입는 남성 등 젠더의 구분이 사라진 것이다. 최근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화려한 컬러의 액세서리나 컬러플한 의상을 입는 남성이 늘어나고 있고, 각진 어깨와 박시한 실루엣 등 남성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패션 요소가 여성복에 대거 등장하는 것 또한 파워 수트의 단순한 복고형 부활이 아닌 젠더 중립 지역을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이에 따라 워킹우먼들의 당당한 매니시룩이나 남성용 레깅스인 일명 메깅스(meggings)가 유행하는 등 일반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난해한 패션이 비주류에서 주류로의 부상을 꿈꾸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있다. 패션계에서는 이처럼 젠더리스 패션이 유행하는 이유에 대해 사회적 성 역할 변화를 꼽고 있다. 전형적인 사회적 젠더() 역할이 변하면서 기존의 성 역할 경계 자체가 무너졌다는 의미다.

 

지난 2015 /여름 남성복 컬렉션에서 미우치아 프라다는 나는 디자인을 할 때 젠더가 아닌 피플을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프라다 남성복 컬렉션에 남성복과 조화를 이루는 같으면서도 다른 여성 스타일을 다수 선보이며 자신만의 색다른 결정을 젠더리스 패션으로 정의했다.

 

최근에 열린 해외 컬렉션의 패션쇼를 보노라면 하이 패션계도 더 적극적으로 젠더 중립 지대산포에 앞장서는 느낌이다. 이제 몇 년 후면 머스쿨린(masculine)’ ‘페미닌(feminine)’ ‘톰보이(borrowing from the boys)’ 등과 같은 패션 용어는 더 이상 21세기 사람들의 옷 입는 방식에 적용되기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젠더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하이 패션계는 대중화를 위한 대안으로 젠더 중립 지대(gender neutral zone)’를 만들고 있다. 젠더 중립 지대에는 젠더리스와 달리 젠더가 존재한다. 다만 그 선택의 폭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자신의 여성이든 남성이든 페션에 있어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피플(People), 즉 사람으로서 패션을 소비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더운 여름이 한반도에도 상륙했다. 찌는 듯한 더운 열기는 옷차림에 대한 과감한 변화를 요구한다. 아내가 투명한 면 드레스를 입고 침대에서 산들 바람을 느끼는 사이 남편은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가기 전에 넥타이와 투쟁(?)하면서 나도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아내를 보며 질투 섞인 한숨을 내쉰다. 그때 아내는 남편하게 한마디 던진다. “...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도 할 수 있어라고. 물론 아내는 남편이 사롱이나 카프탄을 입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패션 중립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녀의 농담 같은 대답은 이제 더 이상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드레스를 입은 남자를 보고 게이라는 느낌보다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 파리 여성들을 리틀 보이로 변신시킨 코코 샤넬부터 1990년대 이후 남자들이 패션쇼에 스커트와 코르셋을 등장시킨 장 폴 고티에에까지 패션계는 거의 100년 동안 젠더라는 고정 관념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생활 습관이거나 혹은 교육을 통해 습득한 패션 에티켓 정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패션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중심으로 이러한 고정관념과 콘셉트를 또 다른 수준으로 변주하기에 이른 셈이다.


 

지난 2월에 열린 2014 가을/겨울 뉴욕컬렉션에서 컬트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 <후드 바이 에어>는 신비로운 젠더리스 연출한 모델을 패션쇼 무대에 세워 주목을 끌었다. 모델들이 입은 긴 머리의 가발과 유니섹스 가죽 레이스 보머 재킷, 지퍼 장식 진, 스커트와 튜닉이 그 좋은 예였다. 브랜드 <바하 이스트>는 소녀와 소년들이 옷을 쇼 중간에 바꿔 입는 프리젠테이션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들이 입은 슬라우치 새틴 팬츠와 후드 베스트, 린넨 카프탄은 남녀 모두에게 동등한 젠더리스 룩을 선물했다.

 

런던컬렉션에서는 J.W 앤더슨이 자신의 남성복과 여성복 라인 모두에 러플로 장식한 가죽 블라우스와 퍼프소매의 스웨터, 플로랄 자카트를 선보였다. 심지어 올슨 자매의 우버-레이디 라이크 브랜드 <더 로우>는 몸을 가린 카울 넥 스웨터와 망토로 모델들의 몸을 단단히 감쌌고 여기에 아주 큰 넓은 트라우저를 입혀 컬렉션을 본 다수의 마초들이 흥분시켰다고 한다.

 

의류, 패션 그리고 장식들은 지금까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확인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아이덴티티는 바로 젠더다라고 FIT의 뮤지엄 디렉터 발레리 스틸가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까지 많은 남성과 여성들에게 젠더는 그들의 옷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사람들처럼 옷 입는 것만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디자이너 라드 후라니도 7년 전 그의 그래픽적인 수도승 콘셉트의 유니섹스 오트 쿠튀르를 처름 선보였을 때도 같은 생각이었다.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나는 젠더나 혹은 나이, 인종, 국적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인간이 만든 구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만약 복식사적으로 볼 때 남자도 메이크업을 하고 가발과 하이힐을 신었었다. 또한 로마 남자들은 스커트를 입고 보석으로 장식했다. 누가 여자만 메이크업을 해야 하고 남자는 하지 말아야한다고 결정했는가의 문제다. 우리 삶에는 충분한 제한이 있을 수 있다. 무엇인가 중립적이고 젠더적인 제한에 대한 자유나 역사적 참조를 하는 것이 나의 중요한 임무다. 그것이 내가 오늘을 살면서 옷을 만드는 길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디자이너 후라니의 이러한 패션 철학은 선명한 화이트칼라 셔츠, 블랙 가죽 반바지 뿐 아니라 깨끗하고 편안한 형태감을 갈린 미니멀한 구조적인 블랙 재킷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도승 복장을 입었을 때 유니섹스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남녀 모두 동일하게 잘 맞는다.

 

바하 이스트 처럼 존 타곤과 스캇 스투덴버그 같은 젊은 디자이너들은 많은 여자 친구들로 부터 그들의 옷에 대한 질문을 들은 후 작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젠더 중립으로의 변화는 루즈한 럭셔리 시장을 위한 전략이다. 우리는 테일러드 셔츠나 디자이너 드레스에 대항해 반기를 들었다.” 유동적인 실크 트렌치와 볼륨감 있는 캐시미어를 만드는 존 타곤의 말이다. “똑같은 모든 사람을 위한 대중적인 룩과 달리 젠더 중립 지대의 옷은 옷 입는 사람들의 개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을 위해 옷을 만들기 때문이라는 존 타곤의 말이 다소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라드 후라니와 존 타곤, 스캇 스투덴버그와 달리 J.W 앤더슨은 남성복과 여성복 라인을 분리시킨다. 아직 튀는 페인팅의 튜닉은 여성 라인으로 부터 쉽게 남성 라인에서 끝이 난다. 그리고 그의 옷은 남자나 여자에게 전통적으로 여성적인 디테일의 아이디어를 연출한다. 예를 들어 러플 혹은 가죽이나 스웨이드 같은 터프한 소재와 병치한다. “이러한 긴장의 소스가- 다른 보디 형태에 다른 형태 추구하는- 바로 패션이다.” 보그닷컴 라이터 캐서린 버나그의 말이다. 이어 그녀는 러플이 남성복 몸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다고 말했다.

 

요즘 여성들이 옥스퍼드와 플랫슈즈를 신는 것처럼 남자들도 또한 플랫폼과 스커트를 입고 그들의 옷장에 여성 의류를 채워 놓고 있다. 팝 가수 카니에 웨스트의 경우 몇 년 전 코첼라 축제에서 셀린느의 여성용 플로럴 튜닉을 입고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꼼 데 가르송의 킬트를 훌륭하게 소화하기도 했다. 또한 A$AP 록키는 그의 친구 루드 바이 에어가 만든 스커트를 입기도 했다.

 

나는 거리에서 J. W. 앤더슨의 러플 셔츠를 입은 남자를 본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보그닷컴 캐서린 버나드 기자는 그러나 머스큘린이나 페미닌’ ‘톰보이같은 단어들은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옷을 입는 방식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히트를 예상했다.


 

그럼 어떤 이유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유니섹스포스트젠더라는 용어에 관심을 가졌을까 하는 문제다. 이유는 간단하다. 60년대와 70년대에 유니섹스 드레싱을 실험해 급진적이면서 정치적인 가장자리에 있었던 피에르 가르뎅과 루디 게른리히처럼 다소 앞서가기 트렌드지만 존 타곤이나 스캇 스투덴버그, 브랜드 <후드 바이 에어>의 셰인 올리버 같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선배들의 혁명 정신과 도전 정신을 이어받아 점점 증가하고 있는 을 입고 싶은 다양한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옷을 창조하는 것이다.

 

사실 셰인 올리버의 패션쇼를 살펴보면 인종이나 국적 뿐 아니라 젠더는 유동적인 뿐 아니라 거의 포인트 주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브랜드 <후드 바이 에어>의 프리젠테이션은 패션 위크 캘린더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시아인, 백인, 혼혈인, 여성, 남성, 성전환자 등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의 친구들이다.

 

 

혁명적이고 도전적인 젊은 디자이너들은 기존에 머스큘린페민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남자와 여성과 연관된 고정 관념에서 해방되기를 갈구한다. 젠더 적 고정관념 보다는 대신 느낌이나 순간, 룩과 연관된 패션 판타지를 가지기를 원한다. 이제 패션은 여성이나 남성이냐의 문제보다 태도나 행동에 관한 것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사실 20세기 100년 동안 선배 디자이너들의 창조적인 활공으로 나올 수 있는 실루엣을 모두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가 되지 실루엣에서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 젊은 디자이너들은 소재와 스타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소재 개발은 어느 정도 불이 붙었고 이제 남은 것은 스타일에 관련된 것이다. 현재 젊은 디자이너들이 내놓을 21세기형 스타일 1호는 젠더리스 룩이 아닐까 한다. 물론 대중화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늘 앞서가는 패션의 특수성상 밀려오는 젠더 중립 물결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패션의 꽃은 옷이고, 옷은 민중들의 삶과 시대적 변화와 함께 한다. 그 옷이 유행을 일으키면 스타일이 된다. 그게 패션의 진리다. 따라서 젠더 중립 존으로 클릭하고 있는 세계 패션계의 움직임에 우리 디자이너들도 어느 정도 반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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