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4-07-25

유행의 숨겨진 진실: 패션 국화빵 이론

요즘 패션은 흡사 ‘독재자의 횡포’와 같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패션의 상업화는 암묵적으로 획일화된 패션을 소비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 좋은 예로 스포티즘의 열기는 집에서나 거리에서나 모두들 두 줄짜리 트레이닝복을 입게 만들었고 프린트의 유행은 거리를 꽃밭으로 만들었다. 과연 누가 이들에게 획일화된 유행을 강요하는가? 그 독재자의 손길을 추적해 본다.




패션의 국화빵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파리에는 파리만의 패션이 있고, 뉴욕에는 소호만의 패션이 있었다. 그래서 쇼핑은 여행객들이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재밋거리였다.

 

하지만 요즘은 뉴욕이나 파리의 백화점이나 상점들은 약속이나 한 듯 획일화된 패션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면세점은 그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치 국화빵을 찍어낸 듯한 획일화된 패션은 이제 쇼핑을 위한 여행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럼 이러한 패션의 획일화는 우연일까? 아니면 어느 영향력 있는 위원회(?)가 소비자들 모르게 비밀리에 회의를 소집해 특정 아이템을 밀어주는 것일까? 그도저도 아니면 소비자들이 서로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일까?

 

요즘 세계 패션계를 보면 마치 코카콜라나 맥도날드처럼 하나의 거대하고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는 것 같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경향이 결국은 개성 넘치는 패션이 설 자리를 잠식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유명 해외 브랜드들의 경우, 대량생산이 어려운 독특한 원단이나 직접 손으로 만드는 재킷의 매력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매력만을 추구하기에는 뉴욕 주도의 세계 패션계는 너무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세계적인 컬렉션 일정 중 맨 마지막에 열렸던 뉴욕 컬렉션이 밀라노를 제치고 제일 처음 컬렉션을 열면서, 커머셜한 패션 시티 뉴욕 패션의 파워는 파리나 밀라노 등 여타 컬렉션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 뉴욕 컬렉션이 처음 열리다 보니 많은 바이어들이 바잉에 과잉지출(더러는 충동 바잉까지 포함)을 할 것이고, 그러다 보니 정작 뒤쪽에 있는 런던이나 파리에서는 많은 바잉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경쟁 때문에 밀라노는 호시탐탐 뉴욕에 앞서 컬렉션을 열기 위한 대책에 부심하다고 한다. 뉴욕 컬렉션이 첫 순서로 가면서 밀라노 컬렉션의 매출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21세기 들어 패션은 다른 생활용품처럼 대량생산되어 포장되는 일용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제는 할인점에서 누구나 쉽게 수트를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월마트를 비롯한 미국의 다목적 유통점의 역할도 컸던 셈이다. 요즘 패션산업을 주도하는 영향력 있는 결정권자(CEO 포함) 중에서 옷감 한번 만져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도 패션의 일용품화에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 패션 산업에 종사하는 고위층 인사들은 비즈니스에는 강할지 몰라도 앞을 내다보는 창의적인 사고력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주로 다른 사람을 통해 성공이 입증된 아이템만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획일화된 패션이 등장하는 것은 인과응보일지 모른다.

 

패션 트렌드 파악하기 매장에서 시즌마다 새로운 옷이 걸리기 위해서는 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패션 비즈니스에 성공하려면 세밀한 공식에 따라 성공적인 컬렉션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의 첫번째 관문은 바로 최신 트렌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다. 소재업체나 의류 생산업자, 그리고 바이어들은 대부분 패션정보회사의 도움을 받는다. 이들은 패션정보회사의 충고와 지시에 의존해 숨가쁘게 변하는 다음 시즌의 패션 트렌드를 접하게 된다. 따라서 잘나가는 족집게 패션정보회사에는 다음 시즌의 히트 아이템을 기대하는 한탕주의자(?)로 북적거린다고 한다.



 

보통 패션정보회사는 스와치나 사진, 오브제를 이용해 소위 무드보드(Mood Board)를 만든다. 여기에서 다음 시즌에 유행할 트렌드를 스포티즘, 메트로 섹슈얼리즘, 귀족적인 히피와 같은 트렌드 키워드로 제안해 준다. 물론 컬러와 소재, 실루엣을 함께 제시한다. 세계 패션 트렌드 포케스터 목록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 바로 컬러 컨설턴트들이다. 이들은 BICG(British & International Color Group) 위원회 소속으로 계절마다 3일 간 다음 시즌에 유행할 컬러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예전에 성공한 컬러와 실패한 컬러를 토대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컬러를 찾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한 컬러는 실패와 성공의 확률을 반반씩 가지고 있다. 예를들어 모든 패션쇼와 잡지를 도배하고 패션계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핑크를 유행색으로 제안한다고 해도 소비자들이 핑크를 위해 지갑을 열지 않으면 패션계의 색상 예측은 실패한 것이다.

 

2년전에 컬러 트렌드가 나오고 나면 그 바톤은 프리미에르 비종이 물려 받는다. 먼저 프리메에르 비종의 역사를 살펴보자. 1973년 리옹의 직물 생산자들 15명이 모여 그해에 생산할 옷감을 먼저 선보이는 전시회를 파리에서 열기로 약속 한다. 바로 프리미에르 비종 전시회의 시초다. 소재 전시회는 보통 시즌 1년 전에 열리는데 프리미에르 비종 전시회에 참여하는 직물 생산자들은 행사 전에 미리 만나 어떤 옷감을 제안할 것인지 같이 의논한다. 1980년 이후 프랑스 뿐 유럽의 국가들이 대거 참가하면서 한 번에 구매자들에게 옷감을 선보일 기회를 갖게 되었고 지금은 유럽의 직물 생산자 뿐 아니라 아시아와 미국의 직물 생산자들도 참여해 유행을 조작한다.

 

프리미에르 비종을 통해 직물 생산자들이 유행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자. 전시회에 참가하는 직물회사 사람들이 전시회가 열리기 전에 미리 만나서 앞으로 어떤 섬유가 등장하게 될지 이야기를 나눈다. 이때 사회 전반적인 흐름이며 세계 경제 이야기도 함께 할 것이다. 이렇게 몇 달 동안 새로운 트렌드를 가미한 시제품을 만들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마지막으로 프리메에르 비종을 통해 다음 시즌에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섬유들을 내 놓는다. 같은 섬유업체이니 경쟁관계라 서로들 보안을 유지할 것 같지만 오히려 정보를 나눔으로서 전체 힘을 키우는 전략을 쓴다. 이렇게 긴 준비 끝에 프리미에르 비종 전시회가 열리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작업에 쓸 수 있는 옷감들을 미리 주문한다. 이 때 고른 옷감이 다음 시즌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목숨을 걸고 유행할 좋은 옷감을 고른다. 이때 직물업체와 의류업체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미리 유행을 만든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 6개월 전인 9월과 2월 드디어 뉴욕을 시작으로 런던, 밀라노, 파리로 이어지는 약 한 달간의 패션위크가 열린다. 소위 파워플한 셈템버 이슈의 시작이다. 이미 1년 전에 프리미에르 비종 전시회를 통해 유행 조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받은 디자이너들은 자신만의 인스피레이션으로 창의적인 패션쇼를 열지만 쇼가 끝나면 컬러와 소재, 테마로 그룹이 형성된다. 소위 유행의 틀이 만들어진다.

 

4대 컬렉션에 선보이는 새로운 유행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어 이 주간에 로컬 브랜드들은 쇼를 보고 다음 시즌 트렌드를 예측하면서 옷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옷들이 백화점에 걸리면 발 빠른 SPA 브랜드들이 카피 옷을 만들거나 약간의 아이디어를 보태 새로운 스타일의 옷을 내 놓는다. 이때 즈음이면 파리에서 서울의 거리에는 샤넬 스타일과 루이비통 스타일 등이 활보한다. 패션 트렌드 만큼은 지구촌의 한 가족이다. 비싼 오리지널보다 값싼 모방에 사람들의 지갑은 더 쉽게 열린다. 최고 디자이너의 감각과 SPA가 맞춘 가격에 열광하는 이들이 바로 우리가 사는 시대의 소비자 대중들이다. 트렌드가 더욱더 중요해지는 요소다.

 

이렇게 프리미에르 비종을 준비하면서 태어난 새로운 아이디어인 트렌드, 즉 유행이 거리의 브랜드로 구현되기까지는 보통 1년 반이나 2년이 걸린다. 결국 프리미에르 비종이 틀을 만들고 패션위크가 살을 붙이기 때문에 쿠튀르나 레디투웨어에 대해 남보다 더 먼저 제대로 알고 싶다면 프리미에르 비종 같은 소재 전시회만 잘 연구해도 된다.


 

이제 컬렉션이 끝나면 그 바톤을 패션지가 물려받는다. 잡지를 통한 홍보를 위해 일부 디자이너들은 패션 에디터들에게 패션쇼 전에 미리 검사(?)를 받기도 하고 명품 하우스들은 미디어와의 광고주 회의에서 노골적으로 특정 아이템을 띄어달라고 부탁한다. 광고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결국 시즌 전까지 무수한 잡지들은 다가올 유행에 대한 기사를 근 5개월간 쏟아낸다.

 

결국 1년 전에 처음 태어난 원단은 1년이 지나 유행에 민감한 패셔니스타들이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한 벌씩 마련해야 하는 머스트 바이(Must buy) 아이템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잡지 커버와 화보와 광고를 통해 이미 소비자들을 트렌드라는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결국 트렌드는 소비지가 만드는 것이 아닌 기업이 만들어 간다는 점을 관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프로슈머에서 프리슈머로 진화하는 소비자들의 보폭을 따라가기 위한 트렌드 조작의 조건은?

 

셀러브리티 혹은 제트 족이라 불리는 패셔니스타들의 스타 패션의 파이프를 따라 패션 정보(트렌드)가 흘러나오는 수도 꼭지를 거슬러 올라가면 상수원에 패션 위크와 패션 산업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올라가면 프리미에르 비종과 직물 생산자들이 있다. 그들의 손에서 창의적인 패션의 세계가 창조된다. 바로 트렌드라는 시스템을 통해 유행은 은밀하게 그리고 위대하게 만들어진다.


 

글 유재부 패션펑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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