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 2014-06-26 |
<리뷰>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모나코. 배우냐 왕비냐, 그레이스 켈리의 선택은?
생애 마지막 작품을 끝낸 여배우가 스태프들의 환호를 받으며 스튜디오를 빠져 나간다. 슬로모션으로 찍힌 그녀의 뒷모습이 그레이스 켈리의 가장 화려했던 나날로 관객을 유인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 영화는 세 단락으로 나뉜다. 초반부의 그녀는 아직 할리우드의 추억에 젖어 있다. 수동적인 왕비 역할에 대한 불만을 떨치고자 히치콕의 신작 출연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중반부에 들어서면 프랑스의 경제 조치로 나라와 남편이 위기에 빠지자 왕비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후반부에는 왕비란 배역을 능숙히 연기할 수 있게 된 그녀가 모나코를 구해내면서 세기의 왕비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당시를 그대로 재현한 무비 패션과 운치 있는 모나코 풍경, 그리고 분위기 있는 OST가 관객을 매료시킨다.
왕과 결혼해 영화배우에서 동화 속 신데렐라가 된 그레이스 켈리. 50~60년대 오드리 햅번, 마릴린 먼로와 함께 세계 3대 여배우로 손꼽혔던 그녀는 26세 나이에 젊은 모나코 왕과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며 배우에서 왕비로 변신했다.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는 배우가 아닌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삶을 조명한다. 영화는 나이 어린 여배우의 성장기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프랑스의 모나코 합병이라는 국가적 위기에서 드러난 한 여인의 활약상을 버무려 내고 있다. 물론 그 효과는 미비하지만 말이다.
모나코에서 답답한 궁정생활을 이어 가던 그레이스 켈리(니콜 키드먼 분)는 어느 날 모나코를 방문한 히치콕 감독으로부터 신작을 제의받는다. 할리우드 시절, 히치콕 영화를 통해 톱스타로 발돋움했기에 감독의 러브콜은 여전하다. 궁정생활에 염증이 난 켈리는 남편 레니에 3세(팀 로스 분)에게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선언하지만, 할리우드로 돌아가면 다시 돌아오지 말라는 냉담한 대답만 듣는다. 실의에 빠진 켈리를 위로하고자 궁중의 터줏대감 터커 신부(프랭크 란젤라 분)가 다가와 제대로 된 왕비 역할을 해 보라고 제안한다.
이런 와중에 협상을 위해 모나코를 찾은 프랑스 관계자는 켈리에게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며 달가워하지 않는다. 남편도 모나코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기에 켈리의 정치적 행보에 불만이 많다. 하지만 모나코를 합병시키고 싶었던 프랑스는 할리우드로 복귀하고 싶어 하는 켈리를 이용해 모나코 왕실을 위기에 빠뜨리려고 한다. 작은 땅덩이에 군사력도 없는 모나코에 항구와 국경을 봉쇄하고 세금 납부를 강요하며 양국 간 갈등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배우와 왕비라는 경계에 서 있는 켈리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모나코 왕국은 인구 2만여 명에 불과한 꼬마 국가로 바티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인 탓에 프랑스는 호시탐탐 영토로 편입시키려 한다. 레니에 3세는 이런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잡지 화보 촬영차 모나코를 찾은 켈리에게 접근해 마침내 1956년 결혼에 골인한다.
이어 미스터리 스릴러의 거장 히치콕 감독은 결혼한 켈리를 찾아와 작품 출연을 제의하지만 그녀는 모나코를 택했다. 켈리는 모나코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발품 파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가 총칼로 위협하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켈리는 기품 있는 미소와 품격 있는 행동으로 대응했다. 극 중 국경 지역의 프랑스 군인들에겐 간식 바구니를 들고 찾아가 화사한 웃음을 선사했다. 또 모나코에서 세계적십자 연례 총회를 열어 각국의 정상들을 초대했다.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는 올해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을 받았지만 엄청난 혹평에 시달렸다. 영화가 혹평을 받게 된 것은 정치적인 이유 말고도 다른 원인이 있었다. 바로 주인공 그레이스 켈리가 어떻게 모나코 왕실을 대표하는 왕비로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지에 대한 드라마가 상당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드라마가 사라지고 그 부분을 위인전의 전기가 채워 넣은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또한 배우로서 왕실에 들어와 수많은 편견을 받던 그레이스 켈리가 어떻게 그 난관을 극복하고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역시 한 편의 신데렐라 스토리 같이 꾸며져 있다. 이는 우리나라 3040 관객들이 쉽게 영화에 빠져들어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의 흥행에 이유있는 비결인 셈이다.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는 맥스무비, 예스24, CGV, 롯데시네마 등 온라인 예매 사이트에서 여성 예매 율이 70%를 상회하고 있다. 이중 30~40대 여성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돼있어 여성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를 입증한다. 개봉 2주차에도 예매 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으며, 개봉 후 평점도 평균 8.5점대를 유지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3040 여성들이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에 지지를 보내는 가장 큰 이유는 일국의 왕비인 동시에 아내와 엄마였던 그레이스 켈리가 맞닥뜨리는 고민이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보이는 열정과 진심이 주부 관객들의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올리비에 다한 감독은 "그레이스 켈리라는 특별한 인물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모든 현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에 화려한 20대를 보내고 어느덧 주부의 삶을 살게 된 3040 여성들이 포기해야 했거나 고민해야 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모나코의 왕비가 돼야 했고, 왕비가 돼 모나코를 지켜내야 했던 그레이스 켈리의 감동 실화는 이상적인 여성 지도자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은 한 인물의 이야기를 너무나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영화에 대한 흥미를 떨어트리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다가 그레이스 켈리가 왕실에 들어가서 모나코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 역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이 정적으로 흐르고 있어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한편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의 장소 캐스팅과 무비 패션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미덕이다. 세계 여성들이 선망하는 스타일 아이콘 그레이스 켈리의 하이앤드 패션과 화려한 왕실 의상을 1년 6개월에 걸쳐 완성해 낸 코스튬 디자이너 기기 르퍼지가 관객들의 시선을 유혹한다.
그레이스 켈리를 상징하는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까르띠에와의 협력을 통해 그녀에게 헌정됐던 티아라와 목걸이까지 모나코 왕실의 고증을 거쳐 완벽하게 재현했다. 스타일리시한 패션 감각으로 '켈리룩'이란 명칭을 탄생시킨 그레이스 켈리가 사랑했던 '크리스찬 디올'의 마르크 보잉의 드레스까지도 복원돼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를 뛰어넘어 21세기 현대 여성들이 롤모델로 삼는 그녀의 스타일은 현대 패션사를 비롯한 패션 피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세계 최고의 관광대국 모나코의 아름다운 풍경과 지중해의 멋진 비경을 담아내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국적인 정취를 안겨준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모나코의 모습을 더욱 그림같이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프랑스 남부와 벨기에, 이탈리아를 옮겨가며 촬영한 제작진의 열의가 한몫했다. 그레이스 켈리가 머물던 모나코 궁전을 그대로 재건축하고 실제 그녀가 방문했던 장소를 모두 섭외하는 등 작은 골목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표현했기에 더욱 완벽한 영상미를 선보일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휴양지 모나코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는 스크린으로 떠나는 여행을 통해 그레이스 켈리의 나라, 모나코를 느끼며 그녀 생애 가장 빛났던 순간의 감동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그레이스 켈리의 우아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 난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는 수려한 미장센만큼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O.S.T로 관객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영화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전달하는 음악들은 <캐리비안의 해적>등에 참여했던 기욤 러셀이 총괄 감독을 맡았다. 에릭 사티의 연주곡 '짐노페디 No.3'를 비롯한 서정적인 사운드와 오페라 곡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나 이제 멀리 떠나리'등의 명곡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특히 극 중에 등장하는 모든 오페라곡은 실제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를 삽입, 한 층 업그레이드 된 완성도를 자랑하여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없이 좋은 선물이 될 듯하다.
“나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지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한 여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 그녀는 결국 프랑스로부터 약소국 모나코를 지켜 낸다. 상영 내내 모나코의 아름다운 풍광과 명품 패션의 향연이 이어진다. 드골 대통령이나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 그의 연인이었던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등장도 재미를 준다. <라비앙 로즈(2007)>의 올리비에 다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니콜 키드먼이 주인공 그레이스 켈리 역을 맡았다.
패션엔 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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