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4-06-13 |
아방가르드 패션의 최고봉 해체주의 패션, 커머셜 패션으로 가능성 인정받나?
해체주의 패션의 전도사로 불리는 마틴 마르지엘라가 가장 대중적인 SPA 브랜드 H&M과 함께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출시해 주목을 받았다. 일반인이 소화하기 어렵다는 아방가르드 패션의 최고봉인 해체주의 패션이 커머셜 패션으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덕분에 올 겨울 시즌에는 패딩이나 코트, 스커트의 경우 해체주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디자인이 등장해 대중들의 디자인 선택의 폭을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20세기 패션의 끝자락에 등장한 해체주의 패션에 대해 알아본다.
패션에 있어 해체주의는 습관적인 규칙이나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파리 중심의 옷 만드는 상식이나 관습을 파괴하는 것을 말한다. 해체주의는 인체 비례와 미의 기준에 대한 고정 관념에 무시하고 원단을 덧붙이거나 찢고, 날 것의 미완성 느낌을 그대로 살려 패션의 비합리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전 패션이 색에 집중하는 반면 해체주의 패션은 옷의 형태나 구조에 주목하기 때문에 관심을 일반적으로 블랙이나 회색 등 단색조 패션이 많다. 그래서 혹자는 우울한 영화의 대명사 <글루미 선데이>에 빗대 글루미 패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체주의 패션은 1980년대 파리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일본 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와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에 의해 동양철학적인 젠(Zen) 아방가르드로 시작되어 1990년대 벨기에 디자이너 앤 드묄르미스터와 마틴 마르지엘라, 드리스 반 노튼 같은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들에 의해 북유럽 풍의 음산한 해체주의 패션 미학으로 안착되었다.
1983년 요지 야마모토와 레이 카와쿠보가 파리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인 이후 일본 디자이너들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허리를 강조하고 넓은 어깨에 하이힐을 신는 팜므 파탈 스타일이나 값비싸고 유행에 민감한 슬론 레인저 스타일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푸어 룩을 선보였다.
넝마주의 패션이라고도 불리기도 한 푸어 룩은 거친 황마 리넨을 사용했고 헝겊 조각이 투박하게 교차되어 엉키고, 구멍 뚫린 니트는 의외성과 편안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전형이었다. 일본 디자이너들은 주류 패션 유럽이 보여주었던 패션 상식(?)을 뒤집는 아방가르드 패션으로 파리를 비롯한 세계 패션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일본 전통을 예술적이고 독특한 젠 스타일로 풀어가면서 과거와 미래적 시각의 완벽한 혼합을 보여주어 패션에 대해 서양인들이 갖고 있던 편견과 예상을 모두 날려 버린 것이다.
미니멀리즘의 대부이자 재단의 대가인 요지 야마모토는 전통적인 테일러링으로 몸에 딱 맞춘 옷을 만드는 대신 헐렁하게 몸을 감싸고 볼륨을 주는 레이어드를 다수 선보였는데 80년대 시각으로 보면 혁신적 아방가르드였다. 이런 방식의 옷은 서양 복식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새로운 것이었다. 그는 옷에서 솔기는 단순히 옷감을 보여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옷감에 동적인 힘을 주어 옷감과 패턴이 일부러 움푹 들어가게 하거나 비대칭으로 포인트가 나타나게 하는 데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꼼 데 가르송의 디자이너 레이 카와쿠보는 옷을 해체하여 새롭고 놀라운 형태로 재 조합하는 재주를 타고났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녀는 니트에 구멍을 내는가 하면 1996년 컬렉션에는 불룩한 형태의 패딩을 단 기괴한 드레스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이세이 미야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섬유와 의상을 다수 선보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폴리우레탄 시트로 만든 모자와 합성섬유와 메탈 원단으로 만든 주름 장식 튜닉과 스톨, 옷이라기 다는 낙하산을 연상시키는 바람막이 코트와 여성의 상체 모양을 틀로 주조한 코르셋 등이 유명하다.
일본 디자이너에 이어 해체주의 패션을 장르로 완성한 것은 90년대 파리에 등장한 벨기에 앤트워프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들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유럽 패션의 변방이라 불리던 벨기에의 앤트워프 왕립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한 여섯 명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런던을 통해 처음 그들의 존재를 알렸다.
1989년 파리 컬렉션에서 마틴 마르지엘라의 론칭을 시작으로 이들은 뉴 벨기에 디자인이라 불리는 급진적이면서도 절제된 아방가르드 패션을 선보였다. 이들 앤트워프 6인방 디자이너들은 의상의 재조합을 즐겼고 봉제되지 않아 안감이 드러나고 가장자리가 해진 옷을 선보였다. 그들 역시 일본의 해체주의 디자이너들과 마찬가지로 색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디테일과 대조적인 원단 조합에 관심을 가졌다.
불가사의하고 수수께끼 같은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는 영감의 원천을 아방가르드 운동에 두고 있습니다. 1984년부터 자신의 브랜드를 출시하자 마다 주목을 끈 그는 1989년 파리 컬렉션에서 해체주의 패션의 진수로 평가 받는 음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자신만의 다운 비트 스타일을 선보여 두각을 나타냈다. 의복 구성의 형식을 파괴한 마르지엘라의 작품은 어울리지 않는 낯설음의 어울림이었고 파편들이 만들어낸 진정한 해제주의의 산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단정한 테일러링과 섬세한 끝마무리에 소매가 찢겨져 나간 듯한 의상과 말려 올라가는 끝단 처리, 솔기와 안감의 노출 등 일부러 흐트러진 룩을 선보였다. 오래된 명주와 벼룩 시장에서 구한 천 조각을 재활용해 이어 붙이는 작업을 했고 솔기와 지퍼를 옷 밖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노출된 솔기, 마무리하지 않은 단 처리, 조직적인 해체 구조와 재구성으로 새로운 미래 패션의 장을 열었고 덕분에 동시대 패션 혁명가로 불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기괴한(?) 패션을 본 패션 기자들은 이때부터 ‘해체주의 패션’이라는 공식적인 단어가 자신들의 칼럼에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마르지엘라 본인은 “나는 해체주의 관념을 알지 못한다. 내가 헌 옷이든 새 옷이든 변형시킬 목적으로 가위질을 할 때 나는 그것들을 파괴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불어 넣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해체주의 패션에 대한 최고의 정의가 아닐까 한다.
1987년 시작 이래 앤 드묄르미스터는 직물을 장식으로 사용하는 대신, 화려한 색깔 없이 미끈하게 처진 옷을 겹쳐 입는 것에 관심을 두면서 앤트워프 6인방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디자이너입니다. 1991년 처음 파리 컬렉션에 참가한 이후 앤 드묄르미스터는 재능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해체주의 미학을 선보였다. 처음 그녀의 패션쇼를 본 사람들은 지저분하고 올이 풀려 있고, 비대칭적인 올이 나간 나일론 스타킹에 이르기까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의도적인 무질서에서 관객들은 ‘우연과 필연’ ‘유연함과 엄격함’ ‘노출과 통제’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질서와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심한 성격의 그녀는 매끄럽고 유연한 형태에 대조되는 요소를 집어넣는 모순적인 디자인으로 주목 받았다. 그녀는 겹쳐지고 흐르는 듯한 의상은 최고급 소재로 만들었으며 독특한 텍스추어와 오래된 빈티지 느낌도 가끔 사용했다. 그녀는 밑 위 길이를 극단적으로 짧게 잘라서 골반이 보이도록 한 바지 뿐 만 아니라 긴 코트와 드레스로도 유명하다.
직물회사 집안에서 태어난 드리스 반 노튼은 1985년 런던에서 남성복으로 첫 컬렉션을 가졌으며 이어 여성복과 구두 라인을 선보였습니다. 그의 작업은 탄탄한 테일러링 기술을 바탕으로 개성있는 스타일을 환상적인 터치를 섬세하게 반영한다. 특히 그의 해체주의 패션은 여성스러운 컨셉으로 유명하다. 그는 동양의 에스닉 영향을 받아 어두운 컬러와 최소한의 장식을 이용한 사롱(말레이 반도 사람들이 허리에 감는 천)을 재킷과 바지에 겹쳐 입는 스타일을 선보였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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