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4-04-15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예술의 세계에서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경륜과 패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패션에 대한 열정은 선배 디자이너나 후배 디자이너나 매 한가지다. 나이를 초월한 동료 의식과 연대 의식만이 K패션의 미래를 담보할 수는 최고의 미덕이다. 대한민국 디자이너들의 하나됨을 위한 제언.




한 여가수가 있다. 그녀는 데뷔한지 얼마 안 되는 신인이건 선배든 간에 음악적 느낌이 통하면 열일 제쳐놓고 콘서트 장으로 달려간다. 그녀는 스스로 흥분하고 누군가의 노래에 취하는 감성이 죽는다면 그때부턴 감동을 주는 가인가 아닌 그냥 직업인에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후배들은 그런 그녀에게 무한 존경을 보내며, 그녀 역시 후배 가수들이 재능을 알아채고는 흠모의 정을 품는다.


유년시절 대처승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학교는 도심인 논현동이었지만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외부와 차단되는 숲속 절에서 자랐다. 산사에서 스님들과 함께 지내면서 불경 외는 소리를 따라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아버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목청이 트였다. 중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반 친구들은 그녀를 왕따 시켰다. 곧잘 창을 하는 할아버지 덕분에 풍류를 배웠지만 자기관리가 철저한 아버지 밑에서 엄하게 자랐다.



학창시절부터 밴드를 구성해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하지만 가수의 길을 가려는 그녀에게 부모의 반대는 커다란 벽이었다. 부모님 몰래 대학 가요제를 참가했다. 머리는 뽀글이 파마를 하고 의상은 관객의 옷을 빌려 입고 출전해 대상을 수상하며 결국 국민 가수가 되었다. 하지만 잘나가던 그녀에게도 슬럼프가 왔다. 다른 가수들의 노래는 자신을 뭉클하게 하는데 자신의 노래는 스스로를 뭉클하게 하지 않았다. 노래를 하는데 카타르시스가 안 느껴졌다.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스스로 채운 다음에 뿜어내야 하는데 소진만 했다고 생각을 들었다. 그래서 꿈은 안고 아이와 유학을 떠나 소진된 자신을 채우고 나서 다시 돌아온 그녀는 더 깊어진 음악으로 기다려준 팬들에게 보답했다.


158cm의 작은 키, 소곤거리는 작은 말투의 수줍음 많은 미소년 같은 외모. 하지만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흡사 작은 거인이다. 조용필과 인순이에 이어 국내 가수로는 세 번째로 미국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가진 그녀는 국민 디바로 여전히 팬들이 사랑과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바로 올해로 가수 데뷔 30주년을 맞은 51세 가수 이선희다.


"30년을 돌아보면 매년이 뜻 깊었지만 늘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 기쁠 수 있는 건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성공한 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취하려 노력했다. 물론 잘못 디딜 때도 있었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워지기 위해 도전하겠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도 음악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15집을 들고 돌아온 30년차 가인이 15집 앨범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한말이다.


예술의 세계에서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특히 매 시즌 새로운 유행을 창조해야 하는 패션계에서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래서 패션 디자이너들은 겉모습만 봐서는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안티 에이징의 시초는 패션 디자이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60~70대 거장들을 볼 때마나 청춘 디자이너의 감정을 느낀다.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은 나이를 공개하지 않는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가 된 뒤 서른일곱 되던 해 너무도 힘들었다. 영감도 떠오르지 않고 일도 되지 않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한다. 이제 부터는 나이를 잊어버리자. 그 후 그의 나이는 37살에서 정지되었다. 여전히 30대의 감성과 열정으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에게 은퇴는 언제할거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온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디자이너에게 정년은 없다.”


2010년 8월 12일, 76세의 나이에 폐렴으로 작고한 앙드레김 역시 투병 중에도 패션쇼를 준비하는 등 외길인생이자 자신의 전부였던 패션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투병 중에도 수십여 회 국내외 패션쇼를 강행한 그는 2010년 3월에도 북경에서 패션쇼를 가졌고 폐렴으로 입원할 당시에도 가을 패션쇼를 구상하고 있었다. 2005년 5월 대장암 및 담석증 수술 후 지난 5년여 항암치료를 계속 받으면서도 일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만약 일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건강을 챙겼다면 지금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했을 것이다. 그에도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평생 디자이너였다. 


지난 2014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에서 유난히 주목을 끈 패션쇼가 있었다. 바로 진태옥의 패션쇼였다. 내년이면 패션 인생 50년째를 맞는 대한민국 1세대 패션 디자이너의 패션쇼가 의미하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블랙 로맨스’를 테마로 한 올 블랙의 패션쇼는 마치 웅장한 패션 오페라를 보는 듯 했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컬러인 블랙은 클래식한 쿠튀르 아방가르드로 풀어낸 내공에 숨이 멎는 듯 했다. 눈에 보이는 트렌드 그 너머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혼이 뿜어내는 장인 정신과 아우라는 눈이 부실정도였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어지는 감성의 무게를 보면서 새삼 패션에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온 몸 의 세포로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패션의 화두는 선후배 디자이너간의 소통의 문제였다. 흔히 신진 디자이너와 기성 디자이너, 혹은 신구 디자이너라는 표현을 언론에서 쓰지만 20년 동안 패션 전문 기자로 살아온 필자에게도 그 기준은 모호하기만 하다. 어디 까지가 신인이고 어디까지가 기성인가. 나이로? 아니면 학번이나 브랜드 창립일? 컬렉션 횟수? 매출인 인격이니까 매출로?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인다. 현업에서 활동하는 이상 나이를 초월해 동료 디자이너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위아래가 없을 수 없겠지만 나이가 많으면 수구이고, 나이가 젊으면 진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은 적어도 패션계에서는 잘못된 산수법이다. 디자이너들은 신구로 나누려는 것 자체가 디자이너들은 단결을 저해하려는 외부의 입김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20년 전 만났던 진태옥. 이상봉이나 4년 전에 만난 고태용, 이도이나 필자에게는 똑같은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일 뿐이다. 그들 역시 나에게 유기자라고 부르고 있고 나 역시 20년째 나이를 잊은 청년 기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글쟁이에게 정년이 없듯이 패션 디자이너에게도 정년은 없다.


칼 라거펠트나 조르지오 아르마니, 오스카 드 라 렌타, 토미 힐피거 등 원로 디자이너들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배척당한다는 해외 뉴스를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레전드로서 존경하고 그들을 롤 모델로 하는 후배 디자이너들이 늘어간다는 소식만 들릴 뿐. 나이가 들수록 그 깊이를 더해가는 장인의 손길은 나이테만큼이나 시간과 내공이 필요하다는 것은 후배들도 잘 알고 있고 그 헤리티지를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유행도 원하지만 같은 무게로 장인 정신 또한 요구한다. 패션이 명품이라는 작위를 받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패션을 보노라면 일부지만 후배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선배 디자이너들을 배척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선배 디자이너들이 너무 권위적이라는 이유다. 심지어 젊은 디자이너들이 회원의 다수인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역시 원로 디자이너들이 좌지우지한다는 출처불명의 괴 소문도 들린다. 물론 20년 전이었다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불만들이다. 당시 선배들은 후배들을 챙길 여유도 없이 치열한 적자생존의 한가운데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2014년 현재 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나날이 성장하는 후배 디자이너들의 원하는 방향으로 더디지만 꾸준히 발전해 가고 있다. 물론 좌충우돌하고 때로는 시행착오를 겪지만 보다 나는 미래를 위한 성장 통에 불과하다.


지난 4월 10일에 치러진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선거에서 다수의 선배 디자이너들이 이사로 선출되었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다수 투표에 참가한 컨템포러리 표심이다. 결국 후배 디자이너들 대다수는 아직도 선배 디자이너들의 경륜을 필요하다는 정서의 반증일 것이다. 개혁적인 후배 디자이너들과 경륜을 갖춘 선배 디자이너들의 조화를 선택한 표심은 2년간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의 조직력과 자생력을 높이는데 초석을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내년이면 대한민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들이 모여 단체를 만든 지 60주년이 된다. 반백년의 대한민국 패션 역사에서 많은 선각자 디자이너들의 피와 땀이 모여서 오늘의 K 패션의 초석을 다졌다. 그 60년의 세월동안 한국 패션계의 영원한 스승인 최경자 원장과 그 제자인 앙드레김이 세상을 떠났고 그 외에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숙환이나 지병 때문에 한국 패션계를 떠났다. 하지만 그들의 기리는 명예의 전당은 고사하고 그들의 자취를 찾아 반백년 한국 디자이너의 역사를 정리한 아트 북조차 전무하다. 그저 속상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가 없는 민족은 미래도 없다는 말이 있다. 같은 논리로 역사가 없는 K 패션 역시 미래는 없다. 가요, 영화, 문학, 순수예술 등 많은 예술 분야에서 뿌리 찾기를 통해 정체성을 찾고 자부심을 갖는다. 패션계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변변한 패션 박물관 하나 없는 60년 한국 패션은 번지르르한 외양에 비해 속이 없는 외화내빈에 다름 아니다. 그 속을 채워 나가야 하는 것은 후배 디자이너들의 몫이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팩트다.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고칠 것은 과감히 고치면 된다. 남의 탓만 보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라는 버나드 쇼의 생전 묘비명처럼 말이다. 어쩌면 후배 디자이너들이 앞장서 60년 한국 패션의 모든 것을 담은 패션 박물관 설립을 추진한다면 레전드 디자이너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은 물론이며 아울러 30년 뒤 나타날 후배 디자이너들에게도 최고의 유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선희가 후배들의 콘서트 장을 찾아다니면서 감성을 공유했듯 우리 디자이너들도 후배나 선배들의 쇼를 보면서 함께 감성을 공유하는 동료 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필자가 만난 몇몇 디자이너는 다른 디자이너의 쇼를 보면 카피할까 두려워서 쇼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핑계다. 동료의 쇼를 보고 카피 충동을 느낄 정도의 실력이라면 스스로 아티스트를 표기한 직업인에 매몰된 것과 진배없다. 자신의 정체성과 색깔만 분명하다면 카피 타령은 그저 기우에 불과하다. 후배는 선배의 경륜과 장인정신에서 감동을 느끼고, 선배는 후배의 창조성과 열정에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탄탄한 교육환경에서 배우고 자란 요즘 후배 디자이너들의 열정과 탁월한 실력은 자타가 인정하는 부분이다. 또한 이는 한국 패션의 미래를 담보하는 소중한 자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30년 이상 한 길을 걸어온 선배들의 끈기와 장인 정신 역시 우리가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K패션의 유산이다. 과거가 있기에 미래도 꿈꿀 수 있다.


너무 예술 지향적인 선배들의 패션 미학이 후배 디자이너들이 눈에는 비상업적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업화되고 획일화된 패션 현실과 타협하려는 후배들의 모습 또한 선배들의 눈에는 왠지 아쉽고 서글프게 보인다. 아트와 패션의 절묘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패션 산업의 특성상 옷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선배들의 생각이다. 패션 디자이너만큼은 예술인이라고 생각하기에 자신들이 닦아놓은 한국 패션의 길을 후배들이 끊임없이 발전시키며 이어가줬으면 하는 것이 바람 때문이다. 투병 중에도 패션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앙드레김, 80세 나이에도 여전히 마르지 않는 감성을 유지하는 진태옥, 37살에서 디자인 시계를 멈춰버린 이상봉 등 선배 디자이너들의 한국 패션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한국 패션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은 후배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 꽃이 좋고 열매가 많으며,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고 시내를 이루어 바다로 간다는 용비어천가가 생각하는 새벽이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려면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무수한 세월과 온 몸으로 그 것을 받아내는 세월이 필요하며, 깊은 땅 속 물줄기가 바다에 가 닿으려면 흐르고 흐름을 멈추지 아니하고 쉼 없이 흘러간 후에야 바닷물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애송하는 시인 김남주의 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로 칼럼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 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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