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4-03-31 |
스토리는 있었지만 드라마는 없었다.
6일간의 2014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가 끝났다. 그 어느때보다 화려하게 치워진 서울패션위크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에 대한 단상
우여곡절 끝에 6일간에 걸친 2014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가 대단원의 막을 무사히 내렸다. 세계 4대 패션위크가 진행되는 동안 참가 디자이너는 고사하고 스케줄조차 불투명했던 서울패션위크는 행사를 13일 앞둔 시점에서 서울디자인재단과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의 극적인 MOU로 급물살을 타 미흡하지만 나름 성공적인 행사를 치러냈다. 이번 서울패션위크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면 “스토리는 있었지만 드라마는 없었다”라고 정의하고 싶다. 허약한 스토리 라인은 그 쇼가 그 쇼 같았고 드라마 없는 패션쇼는 판타지라는 패션 미학을 앗아가 버렸다. 스토리에 치중한 쇼가 대세를 이루다보니 드라마적인 패션 미학을 선보인 어느 원로 디자이너의 패션쇼가 오히려 낯설어 보이기 조차했다. 커머셜이라는 스토리에 판타지라는 드라마가 그 자리를 내어준 이번 서울패션위크는 눈은 즐거웠지만 감동은 없는 시쳇말로 킬링타임(?)용 컬렉션이었다.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부상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개관 행사, 서울시 주도의 행사에서 민간 주도로 치러진 행사, 81개의 패션쇼가 같은 장소에서 열린 유례없는 신구디자이너의 조화 등 이전과는 달리 스토리적인 측면에서는 나름 의미 있는 행사였다. 하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드라마는 없었다. K팝이나 한류 드라마와 같은 우리만의 색깔이 분명한 드라마적인 요소의 실종으로 여전히 해외 패션위크의 아류라는 포지셔닝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다. 트렌드와 장인 정신이 실종된 웰메이드 패션쇼를 보고 느낀 점은 영혼 없는 테크닉에 대한 씁쓸한 뒷맛이었다.
거의 20년 넘게 외쳐 온 세계 5대 컬렉션 진입이라는 공허한 메아리는 어느새 아시아 패션의 허브라는 현실적인 목소리로 바뀌었다. 하지만 도쿄와 상하이, 싱가포르의 약진에 그 자리마저 그리 녹녹해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방향성 없는 서울패션위크의 모호한 정체성이다. 프로모션을 위한 대중적인 문화 행사인지 아니면 바잉을 위한 패션 비즈니스 행사인지 행사의 본질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만약 프로모션을 위한 문화 행사였다면 이전 서울패션위크는 그야말로 대박이다. DDP에 대한 호기심과 편리한 교통 때문에 역대 가장 구름 관객들이 행사장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위한 행사였다면 낙제점에 가깝다. 국내외 바이어와 프레스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스트리트 사진이나 셀러브리티들의 사진을 찍으려는 포토그래퍼들이 장악한 가운데 마치 출사 대회를 방불케 했다.
짧은 준비 기간 때문에 그나마 행사에 대한 후한 점수를 주었지만 주최 측의 행사 진행도 FM적 시각에서 본다면 낙제점이었다. 비표 문제에서부터 자리 배석 문제까지 소소한 부분에서 고성이 오갔다. 몇몇 디자이너의 경우 퍼포먼스인지 패션쇼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모호한 콘셉트에 프레스와 바이어를 위한 배려 또한 전무했다. 모 디자이너의 경우 셀러브리티를 위한 패션쇼로 진행해 프레스와 바이어들은 발길을 돌렸고, 어떤 디자이너는 셀러브리티와 VIP 고객을 입장 시키고 난 다음 프레스들을 줄 세워 놓고 패션쇼 장 앞에서 출입할 수 있는 매체를 호명할 정도였다. 디자이너별 홍보 대행사가 주도하는 자리 배치는 주최 측 역시 손을 놓은 상태라 몇몇 쇼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파워 블로거라 일컬어지는 듣보잡 저널리스트(?)들의 증가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프레스 비표가 발급되었지만 정작 활자화된 질 높은 기사는 전무했고, 셀러브리티들의 사진 기사를 빼면 지난 시즌보다 기사 량이 대폭 줄었다.
패션쇼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소위 상업성을 강조한 웰메이드(WELL-MADE) 패션쇼는 차고 넘쳤다. 뉴욕부터 시작해 4대 해외 컬렉션을 지켜본 입장에서 볼 때 적어도 옷을 만드는 테크닉은 여타 해외 컬렉션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웰크리에이티브(WELL-CREATIVE)에 입각한 드라마적인 요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서울패션위크만의 트렌드 키워드를 도출하기엔 감동도 없고 임팩트도 없었다. 물론 디자이너 나름대로 스토리 있는 패션쇼를 선보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실루엣의 파격성, 소재의 참신성, 창조적인 장인 정신이 실종된 웰메이드 패션은 SPA 패션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는 그저 잘 만든 옷에 불과할 뿐 비싼 돈을 주고 기꺼이 사야하는 가치 소비 수준에는 미달이라는 생각이다.
패션의 꽃인 패션쇼는 최근 보여주기와 엿보기라는 대중과의 타협 속에 눈요기나 오락으로 변질한지 오래다. 많은 관객과 화려한 연출, 딴따라 셀러브리티를 동원한 분식 회계식 트릭으로 가장한 영혼 없는 패션쇼가 늘어나고 있다. 패션쇼가 끝난 후 지인들의 엄지손가락 칭찬에 디자이너는 멋쩍은 미소를 짓지만 그것은 얄팍한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이 패션쇼 장을 벗어나는 순간 영혼 없는 패션에 가래침을 뱉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에는 질서와 비질서가 존재한다. 비질서의 삶이란 사회의 정규 코스에서 이탈한 삶이다. 우리 패션 교육처럼 정답을 찾기 시작하는 순간, 패션 코리아의 미래는 4지선다형의 획일화된 패션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패션에서 말하는 독창성이란 현실 속에서 꿈을 찾는 행위이다. 자분자분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그 너머 행복과 꿈을 보여주는 것이 컨템포러리 패션의 본질이다. 일필휘지로 내지른 단호하고 음영 깊은 아이덴티티는 여유 만만한 현실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물론 독창성이라는 초심을 잃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최근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도쿄 패션위크나 상하이 패션위크를 방문하는 프레스와 바이어들에게 뉴욕과 런던, 밀라노, 파리에서 이미 바잉을 다 끝난 상태에서 서울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을 찾는 이유를 질문했다. 이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나온 대답은 4대 컬렉션에서 찾을 수 없는 유니크한 패션을 찾아서란다. 이미 웰메이드 4대 패션위크에서 대부분 바잉을 끝난 상태에서 웰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를 찾기 위해 여타 패션위크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아무리 웰메이드 패션을 선보인들 바잉 시기를 놓친 패션위크로 수주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럼 결국 웰크리에이티브 패션위크로 그들의 주머니를 열어야 하는데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는 유니크하고 창의적인 컬렉션을 찾기한 쉽지 않았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 의무적으로 치르는 패션쇼에서 드라마적인 요소를 찾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을지 모른다. 패션쇼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이 그 안에 내용이다. 창의적인 발상과 장인정신이 실종된 그저 잘 만든 웰메이드 패션으로는 세계 빅 바이어와 프레스를 감동시킬 수 없다.
흔히 요즘 패션을 양극화 시대라고 말한다. 럭셔리와 SPA의 대결이다. 그런데 패션 코리아는 그 어디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소위 청담동 부티크 브랜드부터 별만 보이는 신진 브랜드와 내셔널 브랜드, TV 홈쇼핑까지 가세한 그야말로 버라이어티 패션 쇼쇼쇼에서 우리의 포지셔닝은 과연 어디인가? 여기에 서울패션페어라고 불리는 부대 행사는 그야말로 부록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쇼 장을 오가는 중간에 마치 동대문 포차처럼 배열된 부스는 관객들을 위한 것인지 바이어를 위한 것인지 모호했다. 이런 구색용 행사로 지속할 것이라면 차제에 일정을 앞당겨 독립하거나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폐지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참가 브랜드에 대한 한국어 가이드북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국내 프레스와 바이어의 주목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몇 명 안 되는 해외 프레스와 바이어를 겨냥한 영문 가이드북을 보면서 전시 행정의 끝장을 보는 듯 했다.
흔히들 하이엔드 패션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란 SPA로 대표되는 저가 브랜드가 5만 원 짜리 옷을 100벌 팔아서 500만원을 버는 수익을 1~2벌 팔아서 올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 가치 소비에 대한 개념 없는 서울패션위크는 그저 매년 두 번 열리는 행사를 위한 행사의 전시적 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소위 일간지에서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언급한 개막 갈라 쇼에서 보여준 혼란이나 패션쇼 중간에 전원이 빠져 음악이 중단된 해프닝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사고에 불과하다. 몰라서인지 아니면 건드리기 귀찮아서인지 모르지만 본질에 대한 접근을 포기한 국내 미디어의 문제점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안 없는 비판도 귀찮아졌는지 아예 눈과 귀를 막아버린 국내 패션 저널리즘의 현주소가 안타까울 뿐이다.
바잉을 하는 완사입제가 아닌 자리 장사식 위탁제로 운영되는 백화점 유통이 대세인 대한민국 패션에서 바잉을 위한 서울컬렉션이나 서울패션페어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국내 바이어와 프레스가 포기한(?) 서울패션위크를 해외 바이어에게 바잉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유럽에 비래 늦게 출발한 뉴욕패션위크의 발전에는 유럽 바이어가 미국 패션을 평가 절하했을 때 기꺼이 자국 브랜드를 바잉한 미국 바이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자국 바이어들의 수주가 활발한 상하이 패션위크가 우리보다 더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국내 백화점이나 편집 매장의 유통 시스템이 바뀌지 않은 현 상황에서 컬렉선이나 페어를 여는 것은 에너지 낭비이자 금전적 손실이다. 사실 90년대 초반 국내 최초의 정기 컬렉션인 SFAA 컬렉션이 열릴 때도 언론에서는 바잉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컬렉션 무용론을 외쳤다. 그리고 24년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적어도 100% 완사입은 아니더라고 50% 완사입, 50% 위탁판매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그나마 서울패션위크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TV홈쇼핑에서 디자이너 브랜드에 주목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역시 인지도만 이용할 뿐 100% 중국 OEM으로 생산된 제품들에서 디자이너의 장인 정신을 만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름만 빌렸을 뿐 100% TV 홈쇼핑이 만든 PP브랜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패션이라는 창작 작업은 얼마나 치열하고 도발적인가? 그리고 그 디자인을 재는 기준은 무엇인가? 현재까지 발달한 패션적 기능이나 문법을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유치한 걸로 단번에 표적이 된다. 트렌드나 유행, 콘셉트라는 아주 소소한 보드적 관점이나 빈곤한 패션 저널리즘적 편협성이 어떤 고정된 의미로 각인되어 진실인 것처럼 해석된다. 세상에 고정된 상식은 없다. 그 어떤 패션도 언론이나 평론가에 의해 대중 사이에서 좋은 패션, 나쁜 패션으로 절단 당해서는 안 되며, 그것은 창작 살인이다. 유행가 가사가 시끄럽게 들리다가도 실연 후에 가슴에 와 닿은 것처럼 무심코 지나친 패션이 어느 날 갑자기 가슴에 꽂힐 때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패션이 아닐까. 자신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굳이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대중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패션은 창의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가끔 좀스런 기자들이나 블로거들이 할 말 없을 때 마나 거론하는 소소한 결점은 누구에게나 있다. 주관성이 중요하다. 디자이너의 진정성과 아이덴티티가 전해주는 드라마적인 패션 미학은 오랫동안 관객들에게 감동을 울림을 줄 것이다.
이제 올 9월이면 어김없이 2015 봄/여름 여성복 컬렉션이 열린다. 물론 이보다 먼저 열리는 남성복 컬렉션을 위해 남성복 디자이너들은 이미 의상 제작에 들어간 상태다. 일부에서는 서울패션위크의 일정을 앞당겨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일정을 앞당긴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백화점 유통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우선되어야 한다. 디자이너 브랜드 행사나 팝업 스토어는 단지 미봉책에 불과할 뿐 본질적인 문제 해결 방안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서울디자인재단과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는 머리를 맞대고 서울컬렉션의 정체성을 확립학고 적어도 3년을 내다보는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서울컬렉션과 GN 컬렉션을 어떻게 차별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서울패션페어의 기형적인 운영을 지속해야 하는지, 남성복과 여성복의 개최 시기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지 대안을 내놔야 한다. 나열식 스토리텔링은 머리를 맞대면 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진정성과 장인 정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서울패션위크에서 프레스와 바이어들이 보고 싶은 것은 다른 해외 패션위크에서 볼 수 없는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서울패션위크만의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K팝이나 한류 드라마에 외국인들이 감동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만의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한류 바람을 이어갈 패션코리아의 드라마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온전히 패션 디자이너의 몫이다. 우리처럼 웰메이드 패션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는 지구상에 차고도 넘친다. 아트와 상업성의 조화라는 말 조차 헛소리에 불과할 정도로 세계 패션은 아트와 상업성의 융합이 대세다. 여기에 장인 정신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면서 하이엔드 패션은 SPA 패션과의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색깔 없는 패션은 개성이 없다. 굳이 6개월 앞서서 페션 쇼를 여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3차원은 현실적이면서도 창의적이다. 4차원을 미래적이면서도 엉뚱하고 기발하다. 패션코리아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3차원과 4차원의 중간 지점인 3.5차원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구호는 이제 의미가 없다. 한국과 세계를 편 가르기에는 세계가 너무 좁아졌다. 이제 글로벌이 아닌 유니버스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알렉산더 왕이나 프로발 그룽과 같은 아시아계 디자이너들이 미국에서 주목받는 것은 아시아와 미국을 넘어선 유니버스 패션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웰메이드 보다는 웰크리에이티브로, 실속 없는 스토리 보다는 한류라는 정체성을 갖춘 드라마에 더 비중을 둔 2015 봄/여름 서울패션위크를 기대해 본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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