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4-03-19 |
디자이너 르웬 스콧을 추모하며
모델로 데뷔해 스타일리스트와 영화 의상 디자이너를 거쳐 패션 디자이너로 화려하게 변신해 주목을 받았던 디자이너 르웬 스콧이 맨해튼 자택에서 자살을 해 세계 패션계와 할리우드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 2010년 자실한 알렉산더 맥퀸 처럼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보인다. 49세에 요절한 그녀의 명복을 빌며 지난 발자취를 살펴본다.
디자이너 르웬 스콧을 추모하며...
18세의 나이에 모델로 데뷔해 이후 스타일리스트와 영화 의상 디자이너를 거쳐 주목받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로 변신해 주목받았던 르웬 스콧이 자택에서 숨진채로 발견되었다. 롤링스톤스의 리더 보컬 믹 재거의 오랜 여자 친구로도 유명한 그녀는 올해로 향년 49세의 나이로 한창 왕성한 활동을 하던 차에 갑자기 사망해 세계 패션계와 그와 친분이 돈독했던 할리우드 스타들은 충격과 함께 애도를 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르웬 스콧이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평소 자신이 좋아했던 스카프로 목을 맨채 숨져있는 것을 이날 오전 비서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보도했다. 비서는 스콧이 이날 오전 중에 집에 들러달라는 연락을 했다고 경찰에게 증언했다. 유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사인 역시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1964년 4월 28일에 태어난 르웬 스콧은 모르몬교를 믿는 부부에게 입양되어 미국 유타주에서 자랐다. 13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긴 다리를 가진 그녀는 이미 신장이 188cm에 달해 맞는 옷을 구매할 수 없자 자신의 키에 맞는 옷을 직접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1985년 18세가 된 그녀는 스키를 타러온 전설적인 패션 사진작가 부르스 웨버의 눈에 띄어 이후 캘빈 클라인 광고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모델로 데뷔를 했다. 이후 그녀는 티에리 뮈글러와 샤넬의 파리 컬렉션 패션쇼 무대에 서면서 패션지와 광고계의 주목을 받았고 지금도 회자되는 사진작가 데이비드 베일리가 찍은 ‘프리티 폴리’ 시계 광고를 통해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으며 왕성한 모델 활동을 했다. 1990년대 중반 그녀는 파리를 떠나 프라다의 PR 담당이 되어 로스엔젤리스로 향했다. 이후 그녀는 셀러브리티 스타일리스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으면서 샤론 스톤, 니콜 키드만, 엘린 버킨, 사라 제시카 파커 등의 스타일을 맡았고 전설적인 사진 작가 허브 리츠와 많은 작업을 함께했다.
이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13>과 스텐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드 와이드 셧>의 영화 의상 디자이너로 변신한 그녀는 수많은 유명 인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그 중 한 사람이 오랜동안 연인 관계를 유지했던 믹 재거였다. 2001년에 처음 만난 르웬 스콧과 믹 재거 커플은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르웬은 매우 독립적이며 자신들의 유명세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며 그녀를 입양한 어머니 룰라 밤부르가 2003년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어 "스콧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얻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스콧이 믹을 꽉 잡고 있는 것은 나에게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스콧은 주체성이 강한 여성으로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믹이 스콧을 사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두 커플은 연인이자 파트너로서 서로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믹 재거는 늘 르웬 스콧의 패션쇼 앞자리를 빛내 주었고 르웬 스콧은 롤링스톤즈의 50주년 기념 투어를 위한 의상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르웻 스콧은 "믹은 내가 옷 입는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늘 내 옷에 대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며 2009년 <데일리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어 "그가 옷입는 스타일을 보세요. 아마 세상에서 가장 감각적인 남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르웬 스콧은 할리우드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2006년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론칭하며 패션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디자이너로 변신하면서 "열 두살 짜리 아이를 위한 옷을 만드는데는 흥미가 없다"고 밝힌 그녀는 노골적으로 강하고 섹시하고 페미닌 미학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 2월 르웬 스콧은 생산 지연을 이우로 마지막 순간에 런던 패션 위크 참가를 취소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패션 관계자는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르웬 스콧이 런던 패션 위크 쇼를 취소한 것은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패션쇼는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프로모션이다. 그녀는 인스타그램에 많은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최근에는 게시물을 많이 올리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냈다"고 말했다.
한편 비보를 접한 믹 재거는 침묵을 깨고 자신의 웹사이틑 통해 현재의 심정을 토로했다. "나는 아직도 나의 연인이자 베스트 프렌드였던 그녀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그녀는 훌륭한 존재였고 적에도 나에게 그녀의 재능은 존경받아 마땅할 만큼 뛰어났다."면서 비통한 심정을 전한 믹 재거는 4월로 예정된 자신의 월드 투어인 호주와 뉴질랜드 공연을 취소했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직도 그녀가 왜 자살을 했는지 알 수는 없다. 믹재거의 불화설이 아니라면 아마도 런던 패션 위크 쇼 취소 이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다른 지인에 따르면 재정적인 문제가 자살의 원인일 수 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0년 자신의 런던 자택에서 40세의 나이로 자살한 알렉산더 맥퀸 역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맥퀸은 자신의 정신적인 지주인 이사벨라 블로우가 2007년 자살한 후 우울증을 앓아왔고 업친데 덥친 격으로 자살하기 열흘 전에 숨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게재면서 자살의 전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맥퀸은 2010년 2월 7일 자신의 트위터에 “충격적인 한주를 보냈다. 훌륭한 친구들 덕분에 이제 스스로를 조금씩 일으켜 세우고 있다”고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글을 올렸었다. 르웬 스콧 역시 런던 패션 위크 패션쇼 취소 이후 누구보다 활발하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게시물로 올렸던 인스타그램에 그녀의 게시물이 급속하게 줄면서 신상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었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패션계는 충격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재정적인 문제이든 아니면 또다른 문제이든간에 재능있는 패션 디자이너를 잃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매 시즌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하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중압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인의 장벽에 쌓여있는 디자이너이지만 결국은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밀려오는 허무함은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이다. 그래서인지 디자이너 중에는 유난히 종교를 갖고 있는 이들이 많다. 오늘은 친구지만 내일은 적이 되는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디자이너들은 창조에 대한 열정과 팬들의 박수에 의지한채 위태로운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오는 21일부터 동대문 DDP에서 대한민국 패션 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울패션위크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80명이 넘는 신구 디자이너가 총출동하는 패션쇼를 보는 관객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응원의 기립 박수를 보내주시기를...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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