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4-03-03 |
체게바라와 티셔츠
20세기 최고의 혁명가로 불리는 남자 체게바라. 그는 갔지만 그를 기리는 젊은 청춘들은 여전히 체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그를 기억한다.
배우 말론 브란도의 멋진 연기가 돋보인 영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관객들은 그의 옷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섹시하면서도 폭력적인 청년 역을 맡았는데 찢어지고 땀에 젖은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 것이죠. 그때가 1951년이었는데 당시 티셔츠는 남성들의 속옷이었기에 패션에 있어서는 과히 혁명이었던 셈이죠.
이어 제임스 딘이 <이유없는 반항>에서 티셔츠를 입고 나오면서 그 속옷은 젊은이들의 가장 인기 있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원래 티셔츠는 미군이 속옷으로 입던 옷으로 2차 세계 대전 때 작업하던 중 더위를 시키기 위해 티셔츠만 입었지만 민간에서는 어림도 없었다고 하네요. 이어 60년대부터는 히피 영향으로 여성들도 정치적 수호가 들어있는 티셔츠를 입으면서 70년대부터는 남녀 모두 사랑하는 유니섹스 유니폼으로 사랑 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티셔츠는 전 세계 어디를 가거나 만날 수 있는 만국 공통어가 되었습니다. 그 중 체 게바라의 티셔츠는 최고인 것 같습니다. 한 인물이 이렇게 전 세계인에게 묻지마 사랑을 받은 얻은 것은 아마 유래가 없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패션 중에서 유일하게 메시지를 가진 가진 아이템인 티셔츠의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 이태원 거리를 지나다가 문득 눈길을 잡아 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리어카 한 귀퉁이, 낡은 철재 옷걸이에 걸려 슬픈 꿈처럼 흔들리는 에리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체라 불렸던 이 혁명가는 군화도 신지 않은 채 총도 없었지만 여전히 티셔츠 중 제일 앞에 걸린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리어카 주인이 알려준 그의 새 이름은 1만원이었습니다. 날염된 그의 얼굴을 몇 번이고 만지작대며 고민하던 찰나, 그 주인은 검은 봉지 안으로 그를 포개서 넣어주었습니다. 두 손으로 검은 봉지를 받아 든 필자에게 다시 한번 그의 새 이름을 일러줍니다. 1만원이라고요. 대학 재학 시절 금기 어였던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20년이 지나 지금 1만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진 패션 아이콘으로 변주된 것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강제한 것도 아니지만 전 세계 젊은이들이 체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은 그의 사상을 추종해서라기 보다는 권력이 아닌 민중을 위해서 살았던 혁명가 체의 정신은 이어받다 보다 진보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이 아닐까 합니다.
뉴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14년이나 지났건만 60년대 혁명 영웅 체 게바라는 티셔츠와 모자, 음악, 영화, 평전으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으로 "진정한 리얼리스트가 되자"라며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전 세계 전장을 뛰어다닌 체 게바라. 그는 검은 베레 모자에 아무렇게나 기른 긴 머리칼, 덥수룩한 턱수염, 그리고 열정적인 눈빛, 굳게 다문 입술의 초상화로 60년대에 요절한 제임스 딘과 비틀즈 이상의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햅번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나 마돈나 같은 디바들이 티셔츠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많지만 남성들이 티셔츠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체' 혹은 '체 게바라'로 잘 알려진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1928-1967)는 라틴 아메리카의 게릴라 지도자이자 혁명 이론가로서 60년대의 좌익급진주의자들의 혁명 영웅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53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혁명만이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54년에 멕시코로 가서 그곳에 망명하고 있던 쿠바의 혁명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합류했습니다.
50년대 후반에는 쿠바의 영웅 피델 카스트로의 게릴라 전쟁을 도와 마침내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를 축출하는데 성공합니다.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은 후에는 쿠바의 산업부 장관을 역임했던 그는 65년 쿠바에서 사라졌다가 이듬해 볼리비아의 반군 지도자로 나타났다가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붙잡혀 67년 10월 9일 발레그란데 근처에서 의문의 총살을 당했습니다. 그의 시체는 사후 32년 후 볼리비아에서 발굴되어 혁명가로 활동했던 쿠바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는 23세에 라틴 아메리카를 오토바이로 횡단하며 민중들의 삶을 눈으로 목격했고, 26세에 과테말라에서 총을 들고 제국주의와 맞서 싸웠으며, 28세에 쿠바로 떠나는 혁명가들의 배에 몸을 싣고 31세 되던 1959년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39세의 세상을 떠날 때까지 총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웠습니다.
지금도 체 게바라가 투쟁한 볼리비아 지역의 농민들의 집에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와 함께 게바라의 초상화를 걸려 있을 정도로 체 게바라는 사후에도 여전히 민중들에게 '전사 그리스도'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역시 예수처럼 아무 조건이나 차별 없이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체게바라가 목숨을 잃은 볼리비아에는 매주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성지순례자'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합니다. 젊은 순례자들은 그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릉 입고 체 게바라가 66년 12월 볼리비아에 도착해서 67년 10월 최후를 마칠 때까지의'게바라 루트'를 그대로 뒤따르며 그의 리얼리스트 정신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체 게바라 티셔츠의 대중적인 인기는 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90년대 초 탄생해 빌보드차트를 휩쓴 미국의 하드코어 록 밴드인 RATM은 공격적인 사운드에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혁명 등 정치적 저항성이 강한 메시지를 담아 공연 때마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셔츠를 입거나 기타 앰프에 체 게바라 사진을 붙여 9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 체 게바라를 되살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RATM의 노래에 맞춰 헤드뱅잉을 하는 20대들에게는 체 게바라의 전기를 읽고 그의 브로마이드를 방에 붙이고 티셔츠를 입고 배지를 가방에 붙이는 행동은 동일한 맥락의 문화적 행위인 셈입니다. 80년대 세대들이 종이 책을 통해 정치적으로 체 게바라에 접근했다면 21세기의 젊은이들은 체 게바라 티셔츠를 통해 문화적, 패션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과거 유산이 현재의 패션이 되는 패션 리사이클 현상의 자연스러움인 셈이죠.
전 세계 젊은이들이 세대를 이어 체게바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화두는 바로 '사랑'과 '신념'일 것입니다. 그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전사 그리스도'로 남아 젊은 청춘들 영웅으로 남아 뜨거운 가슴을 공유하고 있다. 그 중심에 체게바라 티셔츠가 있습니다.
2002년 붉은 티셔츠가 서울 광장을 뒤덮은 감동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월드컵 경기가 열릴 때면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캐릭터 티셔츠가 가진 메시지의 힘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외치는 것도 좋지만 티셔츠로 폼 나게 자신의 의견을 외쳐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자는 구호부터 자신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앙증맞은 티셔츠까지, 다양한 캐릭터부터 멋진 핀업걸에 이르기까지 두타에서 다양한 티셔츠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말하는 패션 티셔츠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해 보세요. 티셔츠와 청바지 한 벌이면 당신은 최고의 패션 혁명가가 될 수 있답니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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