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2014-02-26 |
2014 가을겨울 밀라노컬렉션 리뷰(2)
지난 2월 19일부터 24일까지 열린 밀라노 컬렉션에 선보인 패션쇼 중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18개 브랜드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그 두번째.
지난 2월19일부터 시작된 2014 가을/겨울 밀라노 컬렉션이 2월 24일 끝났다. 이번 밀라노 컬렉션에서 칼 라거펠트는 펜디 액세서리를 통해 컬렉션에 자신을 던졌고(?) 톰 포드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의 독립선언이 돋보인 구찌는 더 이상 섹시하지 않았고, 프라다는 지난 시즌 예술과 패션의 근사한 랑데부 이후 과도한 아르 데코를 선보였다. 한편 탈세 혐의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돌체 & 가바나는 동화를 들려주었고, 에밀리오 푸치는 이탈리아 제트셋의 헤리티지를 기렸고, 디자이너 질 샌더가 떠난 질 샌더 디자인팀은 약간 힘에 부친 듯 보였다. 그 어느 때보다 다이나믹했던 밀라노 컬렉션에 참가한 디자이너들을 만나보자.
DOLCE & GABBANA
스테파노 가바나와 도미니코 돌체 듀오의 2014 가을/겨울 돌체&가바나 컬렉션은 "옛날 옛적에... 시실리에는..."으로 시작되는 한편의 동화였다. 헐벗은 겨울나무가 서있는 마법에 걸린 숲속처럼 만든 무대로 인해 화려하고 낭만적이었던 이번 컬렉션은 비잔틴에서 영감을 받은 룩과 고대 시칠리안 문화를 재해석했다고 한다.
모델들은 차이코프스키의 곡 '호두까기 인형'에 맞춰 마더 구스같은 생물과 민속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여우 문양이 들어간 스웨터와 망토를 입고 패션쇼 오프닝을 열었다. 이어 레이스 업 코르셋을 허리에 단단히 고정시킨 세미 시스루 드레스와 레이스나 아플리케로 장식한 시프트 드레스를 선보였다. 액세서리는 컬러와 소재, 실루엣이 더 심플해진 느낌이다. 보석으로 장식한 클러치, 부츠, 분리가 가능한 후드 등 과거의 화려한 터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동화 <빨간 모자> 역시 하이패션으로 승화되었는데, 돌체& 가바나의 여 기사들이 피날레 무대에 등장하기 직전 모델 카시아 스트러스는 진홍색 털모자가 달린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꽃과 다람쥐 문양이 들어간 레드 가운을 선보여 탄성를 자아내게 했다.
GIORGIO ARMANI
2014 가을/겨울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모델들은 머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보헤미안 스타일을 연출하듯이 카키와 물빛 컬러의 순수한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잔잔한 패턴의 슬리브리스 그린 크롭 탑과 메탈 소재의 와이드 팬츠를 매치하거나 가슴 라인에 구조적인 디테일을 준 원피스, 단추 없는 카키 블레이저와 실크 원피스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아르마니 특유의 클래식한 투피스 스타일도 무대에 올렸다. 짤막한 소매의 연미색 블레이저와 원 버튼 블레이저, 통이 넓은 팬츠가 눈길을 끌었다.
이외에도 반짝이는 초록색 플레어스커트와 다크 그레이 탑을 매치하고 여기에 두툼한 니트 재킷을 걸친 스타일과 연두색 슬리브리스 탑과 9부 팬츠에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망토를 걸친 스타일, 다리 라인이 보일 듯 말 듯 드러낸 잔잔한 패턴의 칵테일 드레스, 블랙과 카키가 조화를 이루는 뷔스티에 점프 수트등 다양한 스타일이 소개됐다. 액세서리 또한 주목을 받았다. 커다란 뱅글 장식과 스웨이드 소재의 부츠 힐, 스트랩 힐, 빅 토트 백 등이 클래식 스타일에 포인트를 주었다.
VERSACE
요즘 패션쇼에서 도나텔라의 베르사체 쇼 같이 주제 의식이 명확한 컬렉션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몇 시즌 동안 도나텔라는 패션쇼장을 찾은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한때 마약과 방탕한 생활 때문에 관객들과 멀어졌을 때를 생각하면 당연한 처사로 보인다.
이번 2014 가을/겨울 베르사체 컬렉션은 베르사체식 미학의 톤다운 버전이다. 아주 릭렉스한 표정으로 도나텔라는 "이번 컬렉션은 베르사체 우먼이 또 다른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그것은 관능적이고 부드럽다. 하지만 나 언제나 터프한 부분을 원한다."고 말했다. 터프하고 파워플한 베르사체 우먼은 밀리터리에서 영향 받은 옷에서 여전히 빛이 났다. 금단추로 장식된 재킷과 힙 허그 드레스, 어깨에 술이 달린 탱크 탑과 블레이저 등 대부분은 고인이 된 오빠 지아니 베르사체의 유니폼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그러나 컬렉션의 중심 테마는 바이어스 커팅의 드레스에 포커스가 맞추어졌다. 하지만 뜬금없는 부드럽고 느슨한 실루엣은 전혀 베르사체답지 않아 아쉬웠다. 새로운 컷은 평상시의 베르사체 터치를 가리지 않았다. 몇몇 아이템들은 베르사체의 메두사 심볼로 장식된 오버사이즈의 금과 보석 체인과 매치되었고 다른 것들은 시스루 룩이나 하이 슬릿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특히 컬렉션에 선보인 딥 레드, 비브란트 블루, 옐로 등의 컬러는 블랙 & 화이트 팔레트를 파괴할 정도로 강렬했다. 새로운 베르사체 우먼은 매끄러우며 고급스러운 원단과 컷을 즐기는 것 같다. 지난 2014 봄/여름 컬렉션에서 21세기 베르사체를 표현했다는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나의 패션쇼는 오늘날 여성들이 베르사체를 입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만약에 오늘날 여성들이 내가 제시한 방식대로 옷을 입는다면 하늘나라에 있는 지아니가 아주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JIL SANDER
지난해 10월 세 번째로 디자이너 질 샌더가 질 샌더 하우스를 떠나자 브랜드의 미래는 불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회사는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꿋꿋하게 미니멀리스트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2014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질 샌더 브랜드의 기본 코드를 확인하고 복원해 하우스의 상징을 강화해 나가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이러한 변화는 내부 인프라에 의해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군더더기 없이 똑 떨어지는 실루엣 위에 파스텔과 무채색을 더해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클래식한 룩은 나쁘지 않았다. 확실하게 브랜드의 단순성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특히 오리가미 형태의 깃과 랩 장식이 눈길을 끌었는데 독특한 주름 장식의 라일락 원피스부터 두 개로 나뉜 깃을 세워 연출한 울 원피스, 파스텔톤 연두색 롱 코트와 터틀넥 탑, 슬랙스 팬츠의 조화도 돋보였다.
또한 별다른 컬러감 없이 잔잔하게 진행된 쇼에 쨍한 노란색의 파이톤 클러치를 들어 포인트를 주는 것도 심심함을 덜어주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었다. 커팅은 깔끔하고 심플했지만 모든 것을 포괄하는 캐시미어 아우터는 하이 네크라인이었고, 스커트는 A라인으로 단조로웠고, 스웨터와 트라우저 컴비네이션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컬러에만 의존했고 실루엣의 경우 너무 부피가 크거나 작업복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앞으로 질 샌더 디자인팀은 질 샌더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아직은 질 샌더 디자인팀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SALVATORE FERRAGAMO
이번 2014 가을/겨울 컬렉션은 "컬렉션 뒤에 숨어있는 장인의 손길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는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시밀리아노 지오르네티. 이번 시즌 지오르니티는 빛나는 딥 주얼 톤과 함께 브라인과 블랙, 그레이 등 다크한 컬러 팔레트를 선보여 페라가모의 럭셔리 유산을 기술적으로 마스터한 것처럼 보였다. 세련되고 젊은 스타일은 페라가모 하우스의 미학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하이 네크라인의 체크 패턴 망토와 풍성한 주름의 울 드레스가 눈길을 끌었다.
지오르네티는 숙련된 기술로 만든 럭셔리 소재를 특히 강조했다. 망토는 컬렉션에서 가장 박수를 많이 받았다. 불쑥 튀어나온 진한 보라색, 레오파드 가죽 콤비네이션, 바이올렛과 블랙의 선염 등도 돋보였다. 아마도 강하고 세련된 스타일리시한 페라가모 여성을 위한 적절한 융통성이 돋보였다.
MAX MARA
아우터가 주도한 2014 가을/겨울 막스마라 컬렉션은 다크한 모노크롬 팔레트가 돋보였다. '앵글로 스코티시'를 컨셉으로 한 이번 패션 쇼는 오버사이즈 트위드 코트와 베스트, 편안한 니트와 함께 치수가 긴, 일하기에 적합한 트라우저들이 실크 블라우스, 메탈릭 세퍼레이트, 연두와 바이올렛, 딥 블루 컬러의 소프트한 드레스와 병치되었다.
구조적인 피코트부터 벨티드 트렌치코트, 퍼로 장식된 푹신한 재킷에 이르기까지 아우터들은 여전히 막스마라의 강력한 파워 아이템이었다. 이번 시즌 역시 주목할 만한 아이템들이 많이 눈에 선보였는데 대부분 너무나도 웨어러블했다. 따뜻한 센스의 기능성을 갖춘 의상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스타일리시한 면모를 과시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ETRO
2014 가을/겨울 에트로 컬렉션은 포크 문화와 아늑한 포옹으로 몸을 감싸는 듯한 느낌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베로니카 에트로의 이번 컬렉션은 브랜드의 시그너처인 페이즐리 문양이 무게 중심을 잡았다. 이외에 물 흐는 듯한 커팅과 보헤미안 미학으로 승화된 따뜻하고 편안한 프린트도 눈길을 끌었다. 느슨한 드레스는 두꺼운 패치워크 코트 아래로 레이어드되었고, 니트는 실크 파자마 스타일의 팬츠와 쌍을 이루었다.
아우터로는 구조적인 울 재킷과 다양한 털로 만든 아이템, 담요 스타일이 판초가 선보였다. 액세서리 역시 봉투 모양 클러치와 모피 가방, 뉴트럴 스웨이드 부츠, 니트 스카프 등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편안한 스타일이 많았다.
ROBERTO CAVALLI
패션쇼장에 불을 낸(?) 로베르토 카발리 때문에 모델들은 화염에 휩싸인 뜨거운 무대에서 캣워크를 선보여야 했다. 스펙타클한 무대를 만들어 내는 것 이상으로 기발한 로베르토 카발리의 의상에는 극도의 섹시미, 과장, 동물 프린트 배열 등 그만의 디자인 미학을 담고 있었다. "나는 디자인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점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이라고 밝힌 카발리는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이번 시즌은 불사조와 같은 에너지와 부활에 개한 것"이라고 컨셉을 밝혔다. 패션쇼는 뱀 가죽 세퍼레이트 시리즈로 시작되어 그래픽 프린트 블라우스와 타이트하게 붙는 트라우저 그리고 오버사이즈 퍼 숄이 선보였다.
복잡하게 구슬로 장식된 드레스는 눈길을 끌었지만 재킷과 팬츠 탑에 사용된 불꽃 모티프는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드레스는 드라마틱했고 확실히 카발리의 손재주가 돋보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컬렉션이 너무 많은 방법으로 진행되어 혼란스러웠다. 패션쇼의 주인공을 옷이 되어야 한다. 너무 많은 곁다리 볼거리로 인해 옷을 제대로 볼 수 없다면 주객이 전도되니까 말이다.
MOSCHINO
아디다스와 뉴에라 등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역량을 키워온 미국 디자이너 제레미 스캇은 창업자인 프랑크 모스키노의 멘토이자 친구로 근 20년간 모스키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한 로젤라 자르디니가 갑자기 사임하는 바람에 지난해 11월에 갑자기 영입되었다. 사람들은 이 에너지 넘치는 젊은 디자이너가 만들어갈 모스키노 스토리가 궁금했다. 드디어 그 스토리가 공개되었다. 2014 가을/겨울 모스키노 컬렉션에서는 제레미 스콧의 아방가르드 감각과 펑키한 팝 컬처 감성이 복고적인 무대를 지향해온 모스키노의 컨셉과 조화를 이루어 마치 런던 패션 위크에 있는 듯 착각을 느꼈다.
제레미 스캇의 재치가 돋보인 장면은 모스키노의 ‘M’과 맥도날드의 ‘M’을 모티프로 한‘맥도날드 걸’들의 등장시켜 정크 푸드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관객에게 날린 것. 여기에 엉성한 젖소 패턴이 가득 그려진 원피스 위에 클래식한 퀼팅 재킷을 매치하고 거기에 맥도날드 음료수통을 형상화한 입체적인 체인 숄더백을 실제 음료수처럼 한 손에 쥔 모습부터 맥도날드의 상징인 진노랑 트리밍 장식의 레드 가운, 원피스, 재킷 등이 대거 등장해 키치 패션쇼를 보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햄버거 포장지를 연상케 하는 칼로리, 탄수화물, 단백질 등이 쓰인 새하얀 뷔스티에 드레스와 꽃다발이 무대를 장식했다. 여기에 숏 컷 헤어와 스틸레토 힐, 커다란 귀걸이 장식 등은 마치 60년대 패션 아이콘이자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팩토리 걸로 유명한 에디 세즈윅을 연상시켰다. 밀라노 컬렉션에 새로운 활력소룰 불어 넣고 있는 제레미 스캇의 모스키노 데뷔 컬렉션은 완성도보다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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