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4-02-13

묻지마식 깜깜이 서울 컬렉션 해법은 없나?

서울컬렉션이 한달여 정도 남은 상황에서 장소와 일정만 정해졌을 뿐 참가 디자이너나 구체적인 일정이 아직 나오지 않아 디자이너들은 깜깜이식 준비를 해야할 판이다. 묻지마식 깜깜이 서울 컬렉션의 문제점과 함께 그 해답을 미국의 뉴욕 남성복 컬렉션 개최 움직임을 통해 알아본다.




올 가을/겨울 패션을 미리 선보이는 디자이너들의 시즌 밥상 스타트를 끊은 뉴욕 컬렉션이 끝나고 그 바통을 14일부터 런던 컬렉션 이어간다. 이후 패션 위크는 밀라노와 파리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패션 위크 퍼레이드 물결에 서울 컬렉션은 목하 휴점(?) 상태다. 날짜(3월 21일~26일)와 장소(DDP)만 정해졌을 뿐 참가 디자이너와 일정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날짜와 장소 또한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도 아닌, 관계자들만 아는 급비사항(?)이다. 마치 결혼식 날짜와 장소를 먼저 정한 다음 신부를 찾아 나선 얼빠진 사내를 보는 듯하다. 

 

설사 지금까지 시행해온 방식 대로 디자이너들의 참가 신청을 받아 심사로 참가 디자이너를 확정한다고 해도 약 2주나 소요된다. 거의 한달도 안 남은 상태에서 패션쇼를 준비해야 한다. 참가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미리 옷을 준비한다는 것은 디자이너들에게 모험이다. 그렇다고 미리 옷을 다 만들어 놓고 나서 혹여 심사에서 탈락해 컬렉션 기회를 놓지면 그 역시 낭패이기 때문에 디자이너들 역시 깜깜이 준비를 해야 할 판이다.

  

얼마 전 온오프라인 기사를 바탕으로 미국의 글로벌 랭귀지 모니터(GLM)가 발표한 글로벌 패션 도시 조사에서 서울이 21계단이나 추락한 55위로 꼴찌 불명예를 당한 것도 따지고 보면 우연이 아닌 듯하다. 시쳇말로 공부를 전혀 안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더욱이 우리와 이웃한 아시아 국가인 상하이(10위), 도쿄(11위), 싱가폴(18위), 홍콩(20위)이 톱 20에 들어간 것을 보면 패션 도시 서울의 이미지 하락은 심각해 보인다. ‘세계 5대 컬렉션 진입’이니 ‘아시아 패션 허브 서울’라는 구호가 갑자기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서울 컬렉션은 프레스와 바이어, 패션 행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글로벌 패션 행사다. 한국 디자이너들이 먹음직한 K 패션 밥상을 차려 놓은 다음, 국내외 언론에게 많은 기사를 쓰도록 유도하고, 해외 바이어에게는 많은 오더를 하도록 만들고, 패션 행정은 이를 측면 지원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할 진데 행사를 한 달 정도 남겨 놓은 상태에서 행사 일정이나 계획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점은 패션 행정의 난맥상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컬렉션은 뉴욕과 런던, 밀라노, 파리 컬렉션이 끝난 다음에 열리는 행사라 그나마 주목도가 떨어진다. 이 상황에서 사전 홍보조차 여의치 않으면 행사는 국내용 문화 행사로 전락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컨셉코리아’나 ‘10소울’ 등을 통해 한국 패션의 글로벌화를 외치면서 정작 서울 컬렉션의 글로벌 스텐다드에 팔짱 끼고 있는 패션 행정의 무기력함에 자괴감을 느낄 정도다. 올해로 14년째를 맞은 서울 컬렉션이지만 여전히 초보 수준을 넘지 못하는 현 상황을 보면서 다시금 자문하게 된다. 컬렉션을 왜 하는가?

 

지난 시즌 디자이너 강동준은 서울 컬렉션에서 잠정 은퇴(?)를 하고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으로 갈아탔다. 디자이너 우영미와 정욱준은 파리 남성복 컬렉션으로 배를 갈아탄 지 오래다. 상황에 이렇다보니 해외 시장 진출을 노리는 몇몇 남성복 디자이너들도 서울 컬렉션 참가에 회의적이다. 남성복 컬렉션이 끝난 지 3개월 뒤에 열리는 서울 컬렉션에서 수주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성복 수주 시장도 이미 두 달 전에 마감했기 때문에 설사 초청을 받아 남성복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보기 위해 서울 컬렉션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바잉 목적인 아닌 가능성 타진 정도로 봐야 한다. 컬렉션을 왜 하는가? 최근 뉴욕에서 불고 있는 뉴욕 남성복 컬렉션 개최 움직임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급성장하고 있는 남성복 럭셔리 시장 속에서 미국도 오는 7월에 뉴욕 남성복 컬렉션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밀라노와 파리가 주도하던 남성복 컬렉션에 런던에 이어 뉴욕까지 가세하면서 여성복 컬렉션처럼 남성복 컬렉션도 4강 구도가 되는 셈이다.

 

럭셔리 남성복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미국 남성복 브랜드는 미디어의 관심을 유도하고 바잉 비즈니스에 도움을 줄 뉴욕 기반의 플랫폼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미국 남성복 브랜드의 경우 어쩔 수 없이 반강제적(?)으로 런던이나 밀라노, 파리에서 열리는 남성복 컬렉션에 참여하거나 남성복 판매 사이클이 끝난 시점에 열리는 여성복 중심의 뉴욕 컬렉션에 참가해 왔다.

 

사실 2월에 열리는 뉴욕 컬렉션의 경우 파리 남성복 컬렉션이 끝난 지 두 달 후, 그리고 남성복 세일 기간이 종료된 지 한 달 후에 열리기 때문에 바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뉴욕은 캘빈 클라인이나 존 바바토스와 같은 키 남성복 플레이어를 밀라노에 빼앗겼고, 최근에는 톰 브라운이나 필립 림과 같은 디자이너는 파리로, 톰 포드는 런던으로 패션쇼 장을 옮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른 남성복 브랜드들도 파리 오트 쿠튀르 컬렉션과 뉴욕 컬렉션 사이에 자신의 컬렉션을 발표하거나 몇몇 디자이너들은 디지털 룩북으로 컬렉션을 대체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1년부터 5년간 버그도프 굿만 백화점의 남성복 디렉터로 일하다가 디자이너로 변신한 마이클 바스티안은 미국 남성복 시장의 하락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가 백화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남성복 조닝에서의 미국 브랜드와 유럽 브랜드 비율은 대략 5:5 정도로 균형을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유럽 브랜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며 코너로 밀려난 미국 브랜드는 존 바바토스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한다.

 

더 슬픈 진실은 그가 백화점에서 일할 때 뉴욕 컬렉션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뉴욕 컬렉션에서 그가 보지 못한 새로운 옷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구매를 다 마친 상태였기에 뉴욕 컬렉션에서 남성복 패션쇼를 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젊은 디자이너들과 미디어가 나서 뉴욕 남성복 컬렉션 개최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보그> 발행인에서 매직&프로젝트 트레이드 쇼를 진행하는 어드벤스타의 CEO로 변신한 톰 플로리오는 미국 남성복 시장은 강력한 비즈니스 시장이며 미국 남성복 디자이너의 재능도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왜 재능 있는 젊은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거의 바잉이 이루어지지 않는 우울한 시장에서 패션쇼를 해야 하는가? 우리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남성복 컬렉션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지난해부터 올 7월 개최를 목표로 뉴욕 남성복 컬렉션에 대한 다양한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를 비롯해 대표적인 미국의 미디어와 디자이너, 트레이드 쇼 관계자, 소매업자, 프로덕션 에이전시가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관계자들은 뉴욕 남성복 컬렉션이 인터내셔널 남성복 캘린더에 들어가는 하는 이유에 대해 여성복에 포커스를 맞춘 뉴욕 컬렉션에서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쇼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판매와 생산에 대한 시간적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삭스피프스애비뉴 백화점의 부회장 겸 남성복 디렉터인 에릭 제닝스는 뉴욕 남성복 컬렉션을 통해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젊은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패션쇼를 열게 되면 해외 바이어와 프레스들에게 어필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 수혜자는 젊은 디자이너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더 큰 효과는 뉴욕을 떠난 미국 남성복 디자이너를 다시 불러와 미국 남성복 시장의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스폰서십 문제나 구체적인 일정 등 앞으로 뉴욕 남성복 컬렉션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들도 많다. 현재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의 스티븐 콜브 대표를 중심으로 행사 비용인 200만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 후원 추진 등 구체적인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어서 올 7월 행사에 대한 전망은 낙관적이라고 한다.

톰 플로리오 어드벤스타 대표는 오는 7월에 행사가 열리든 열리지 않든간에 앞으로 뉴욕 남성복 컬렉션이 열릴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미국은 뉴욕 여성복 비즈니스에 활력을 불어넣은 안나 윈투어와 같은 거물과 <보그>라는 미디어가 있으며 디자이너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도 있고 IMG가 펀딩하는 뉴욕 패션 위크도 있다. 남성복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많은 간담회를 통해 인식을 공유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자금을 모으고 후원사를 잡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스폰서십이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퍼즐을 푸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현재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런던 컬렉션 부상의 주요 촉매제는 바로 버버리의 런던 귀환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뉴욕 남성복 컬렉션이 열리면 정신적 지주인 캘빈 클라인이나 톰 포드와 같은 빅 브랜드들이 귀환할 것이고 그렇게 인지도가 올라가서 해외 바이어와 프레스가 몰리면 스폰서십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린다는 계산이다.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의 스티븐 콜브 대표 역시 뉴욕이 남성복 컬렉션이라는 플랫폼을 세우면 스타 디자이너들이 뉴욕으로 컴백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구체적인 올 7월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뉴욕 남성복 컬렉션의 경우 퍼블릭 스쿨이나 마이클 바스티안 같은 15명 정도의 젊은 남성복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메인 장소에서 패션쇼를 열고 빅 브랜드들은 주변이나 혹은 적절한 스케줄로 자유롭게 참가하도록 유도 한다는 것이다.

 

뉴욕 남성복 컬렉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컬렉션을 하는 절대적인 이유는 바로 프로모션과 바잉이다. 즉 프레스와 바이어를 위한 행사이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백화점이 철저한 바잉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 백화점은 위탁 판매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즉 백화점이 부동산식 입점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실 국내 백화점 유통에는 바잉 개념이 없다. 유럽 바이어로부터 냉대를 받던 뉴욕 패션의 부상에는 미국 내 백화점의 바잉 시스템이 큰 역할을 했다.

 

최근 패션 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는 상하이의 성공 요인 역시 철저한 바잉 시스템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소비 시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 내 바잉만으로도 패션 산업의 뿌리를 튼튼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서울 컬렉션이 가야할 길은 명확해 졌다. 프레스와 바이어가 없는 행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그럼 바이어와 프레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일정에 대한 고민이다. 현재의 서울컬렉션 일정을 앞당겨 파리 컬렉션이 끝난 후 바로 개최해 도쿄 컬렉션과 경쟁해야 한다. 또한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 시즌이 따로 돌아가는 세계 패션의 생체 리듬을 받아 들여서 우리 역시도 장기적으로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의 분리가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적어도 행사 3개월 전에는 구체적인 일정표가 나와서 해외 프레스와 바이어들이 일정을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시간이 되시면 한번 들르시죠”라는 의미 외에 적극성이 없어 보인다. 최근 아베 정권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제2의 도약을 선언하고 바이어와 프레스 초청에 열을 올리는 도쿄 컬렉션 역시 왜 컬렉션을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3월초까지는 서울 컬렉션 스케줄이 나올 것이고 해외 프레스와 바이어들 역시 파리 컬렉션이 끝난 후 시즌을 클로징하거나 새로운 아시아 디자이너 발굴을 위해 도쿄와 서울, 상하이를 찾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 빅 프레스와 바이어들이 도쿄와 상하이에 끼어있는 서울을 건너뛰고 도쿄에서 상하이로 바로 날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실질적인 바이어와 프레스 초청에 힘써 양보다는 질에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관사인 서울디자인재단과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CFDK)와의 적극적인 공조가 필요하다. 디자이너들에게 관심을 가진 실질적인 바이어와 프레스들이나 친분이 있는 인사들을 초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내 편집 매장의 바이어들에게도 관심을 가져 이들을 위한 전용 페어를 만들어야 할 것이고, 미디어 홍보 또한 오프라인 미디어 못지않게 온라인 미디어나 SNS,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아울러 매일 행사를 알릴 수 있는 자체적인 온오프 미디어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6개월간 준비한 디자이너의 시즌 밥상을 뒤엎는 전시 행정적인 서울 컬렉션은 창조 경제의 한 축인 K패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다 발전적인 서울 컬렉션을 위해서는 패션 관계자들의 소통과 지혜가 필요한 때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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