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4-02-07

‘꼴찌의 반란’을 기대하며

글로벌 랭귀지 모니터에서 지난 2월 5일 발표한 2013년 최고의 패션 도시 설문 조사에서 서울이 21계단이나 하락한 55위로 꼴찌를 차지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바닥을 친 패션 도시 서울은 ‘꼴찌의 발란’을 꿈꾸며 명예회복에 나서야 한다.



충격적이다. 이 정도일 줄이야. 다소의 성적 하락은 예상했지만 결과는 예상 밖으로 비참했다. 혹자는 말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하지만 때로는 그 성적이 동기 부여를 해주는 약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좌절의 단초인 자신감을 잃게 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나(서울)는 글로벌 패션 도시 37등에 랭크되었을 때 내심 올해는 톱 20 진입을 기대했었다. 과제 발표인 서울패션위크를 도와줄 대행사가 지명도 있는 기업이라 기대도 더 컸다. 그들이 애초 내놓은 기획안만 제대로 실행된다면 탑 10에도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1년이 지나 21계단이나 추락한 55등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보니 말문이 막힌다. 사실 55등이라고 하지만 우리 반 정원은 55개 도시가 전부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글로벌 초등학교 패션 반에서 꼴찌다.


결과는 나왔다. 학교 측의 평가 방법이 불공평하다고 무시할 수도 있다. 또한 성적은 숫자에 불과할 뿐 진짜 실력이 중요하다고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성적표를 보니 창피하고 열 받는다. 하지만 속상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학창시절 수많은 시험을 통해 느낌 아니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문득 그동안 말이 안통해서 피했던 미주아파트에 사는 뉴욕과 유럽 아파트에 사는 파리와 런던과도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참에 특별과외도 받고 4당5락의 정신으로 공부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목표는 꼴찌 탈출! 1등은 바라지도 않는다. 한 때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5등을 목표로 공부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20등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야 ‘꼴찌의 반란’이라는 체면치레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닥을 쳤으니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다시 의욕이 샘솟는다.



내가 바닥을 치는 동안, 같은 아시아 아파트에 사는 상하이는 12계단이나 오른 10등을 했고, 도쿄는 9계간이나 오른 11등을 했다. 싱가포르도 1계단 하락한 18등으로 현상 유지를 했다. 하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는 발리는 25계단이나 떨어진 39등을 했고 방콕도 23계단이나 떨어진 52등을 했다. 동변상련은 아마 이럴 때 쓰는 표현일까 싶다. 사실 옛날에는 도쿄 빼고 나머지 아이들을 경쟁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동안 너무 방심했었나 보다.

과외 선생님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비결을 알려준다. 뉴욕은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어려서부터 조기교육을 하고 장학금을 주는 곳도 많고 무엇보다 뉴욕 매뉴팩쳐링 형이 협업을 통해 공부를 도와준다고 한다(패션 칼럼 CFDA 전략에서 배워야할 것들 참조). 그리고 근소한 차이로 2등을 한 파리는 집안에서 100년 전통의 ‘패션 집안’라는 헤리티지와 선조들이 만든 족보인 ‘오트 쿠튀르’와 ‘프레타포르테’가 조화를 이루고 있고, 1등에서 3등으로 내려 않은 런던은 예술에 대한 감수성과 기본기가 튼튼하고 무엇보다 공부를 즐기는 법을 아는 아이기 때문에 언제든 1등을 할 수 있는 실력파란다. 이외에 레드카펫 파티와 영화 과목와 친한 로스엔젤리스, 수영복을 잘 만드는 바르셀로나, 전시회를 통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베를린, 아방가르드 과목을 잘하는 앤트워프, 새로운 교육 환경에 적응하며 단기간에 성과를 낸, 얼마 전 시골에서 아시아 아파트로 이사 온 상하이까지 10등 안에 든 아이들은 나름의 전략과 노하우가 있었다.

그동안 나는 상위권 성적은 아니었지만 성실함과 꼼꼼한 손재주로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노력만 하면 상위권에 오를 수 있다는 담임의 격려를 받으며 공부했다. 미주 아파트나 유럽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받으며 상위권을 노렸지만 5등이라는 잡힐 듯 말 듯 멀어져 갔다.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학습법 때문이 아닐까 한다. 공부 잘하는 친구인 뉴욕이나 파리의 노트를 빌려 공부했지만 너무 어렵고 늘 2% 부족했다. 자신들의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핵심을 뺀 노트를 빌려주었기 때문이라는 오해도 해본다. 어쨌든 부모님에게 배운 대로 암기 위주로 공부하다보니 논리력이 부족했고 정답만을 찾다보니 상상력도 부족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이나 친구들로부터 내용은 좋은 데 창의력이 부족하다거나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곤 했다. 패션은 논리적이고 입체적인 3차원적 사고와 상식을 뒤 업는 톡톡 튀는 상상력의 4차원적 사고가 조화를 이루는 3.5차원적 사고가 필요한데 그동안 너무 평면적인 2차원적 사고로 접근하다보니 늘 미주 아파트나 유럽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 보다 뒤쳐졌던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다른 아이의 노트를 빌려서 그냥 외울 것이 아니라 내 수준에 맞는 학습방법과 나만의‘서울 패션 노트’를 부모님과 함께 만들어야겠다.

부모님의 재정적인 지원과 관심도 절실하다. 학교만 보내주면 됐지 무엇을 더 바라느냐고 나를 다그치지 말고,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과외비를 줄이겠다는 서운한 말씀도 하지 말아 달라. 부촌인 미주 아파트나 유럽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처럼 지원해 달라는 말도 하지 않겠다. 적어도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정도의 지원만 해준다면 중위권으로 다시 치고 올라갈 용기와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 그리고 유럽 아파트에 놀러가 공부 잘하는 방법을 체험할 수 있도록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많이 할애해 주었으면 좋겠다.

주위 어른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프레스 삼촌, 백화점 이모, 쇼핑몰 고모, 원단 큰 아버지, 샘플실 할아버지도 나의 공부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특히 좋은 글로 나에게 용기를 주고, 잘못한 점은 따끔하게 지적해 주고, 잘한 점은 칭찬해 주는 프레스 삼촌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나의 잘못을 혼내기 전에 원인부터 파악하고 행동하길 부탁드린다. 대안 없는 혼내기는 나의 공부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무엇보다 자율성을 달라.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잦은 잔소리와 간섭은 학습 의욕만 쇠퇴시킬 뿐이다.

이번에 성적이 떨어진 결정적인 원인은 홍보 과목에서 거의 낙제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과목은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하지만 배점이 높기 때문에 포기할 수도 없고 유통 과목과 연관되어 있어 아주 중요하다. 프레스 삼촌이 도와주지만 삼촌 혼자서는 힘들다. 다른 아파트의 프레스 삼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부모님이 나서달라. 요즘은 홍보 과목 공부를 위해 인터넷, 블로그, SNS 라는 최신 게임기는 필수다. 나도 게임기는 샀지만 부모님은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제한된 시간에만 사용하라고 한다. 그러나 보니 도대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이제 스마트 시대에 게임기도 홍보 과목에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게임 시간을 늘려 달라.

‘꼴찌의 반란’은 아주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먼저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칭찬과 격려를 해주질 바라며, 부모와 가족들의 지속적인 재정 지원과 관심도 지속성이 필요하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지원이나 수업 방식의 변화는 좋은 성적을 내기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아울러 과외 활동으로 옆 동네 아파트 아이들과의 폭넓은 커뮤니케이션을 가질 수 있도록 캠프를 정기적으로 열어주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재미있게 공부하고 스스로 미래 비전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지나친 간섭이나 규제도 자제해 주기를 부모님께 부탁드린다. 내년에는 꼭 20등 안에 들어 ‘꼴찌의 반란’을 보여줌과 동시에 아시아 아파트 아이들에서 나의 존재감을 다시 과시하고 싶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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