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4-01-20 |
엠마 톰슨이 스텔레토를 던진 이유
엠마 톰슨의 레드 카펫 패션이 화제다. 스티렐토 힐이 공식인 레드 카펫 드레스 코드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등장하는가 하면 플랫 슈즈를 신고 등장한다. 스티레토의 유래와 함께 그녀가 스틸레토 힐을 집어 던지 이유에 대해 살펴본다.
영국을 대표하는 지성파 여배우 엠마 톰슨의 레드 카펫 패션이 요즘 화제다. 바로 스틸레토 힐과의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사실 스틸레토 힐은 레드 카펫에 등장하는 스타들의 필수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엠마 톰슨의 도전은 무모해 보이기조차 한다.
지난 19일 로스엔젤리스에서 열린 2014 SAG(Screen Actors' Guild) 시상식의 초미의 관심사는 엠마 톰슨의 발에 집중되었다. 이번에는 맨발이 아닌 크리스찬 루브틴의 플랫 슈즈를 신었다. 이제 관심은 3월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녀가 다시 맨발로 등장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도대체 왜 한 여배우의 신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월 12일에 열린 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엠마 톰슨은 자신의 스틸레토 힐을 벗어 던지는 퍼포먼스를 감행해 TV로 생중계를 지켜보던 전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딸과 함께 맨발로 레드 카펫을 밟아 주목을 받은 엠마 톰슨은 각본상 시상을 위해 역시 맨발로 무대에 올랐다. 이날 엠마 톰슨은 양 손에 마티니 한 잔과 하이힐을 들고 무대에 등장 했다. 그는 15Cm 쯤 되는 스틸레토 힐의 붉은 밑바닥을 가리키며 “박수 그만 치세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구두의) 빨간색은 바로 내 피와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자가 수상자가 적힌 카드를 건네자 엠마 톰슨은 카드를 받기 위해 오른 손에 들고 있던 하이힐을 무대 뒤로 내던고 마티니 잔을 사회자에게 건넨 다음 사회자로부터 받은 카드를 오픈해 수상자를 발표했다. 엠마 톰슨의 이 같은 돌발 행동은 스틸레토 힐의 위험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퍼포먼스로 알려졌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는‘제7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최고 명장면으로 엠마 톤슨이 힐을 벗어던지는 장면을 뽑을 정도로 쇼킹한 뉴스였다.
그동안 사회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 운동가로 활동해 온 엠마 톰슨은 ‘하이 힐 벗기 캠페인’을 꾸준히 전개해 왔었다. 골든 글로브 사상식 1주일 전에 열린 전미비평가협회 시상식에서도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스틸레토 힐을 던지고 맨발로 시상대에 올라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엠마 톰슨은“왜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어야 하나. 하이힐을 신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정말로 의미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흔히 하이힐이라 부르는 스틸레토(Stiletto)의 역사는 약 6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태리어로 ‘작은 단검’이라는 의미를 가진 스틸레토는 1950년대 초반 이태리에서 처음 탄생했다. 이후 여성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패션 아이템으로 등극한 스틸레토 힐은 여성들의 실루엣은 물론 그들이 옷을 입고 걷고 움직이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섹시하고 도전적이고 매력적인 스틸레토 힐의 매력에 여성들은 자신의 발 건강을 담보로 내 놓았다.
사실 패션사적으로 볼 때 누가 처음 스틸레토 힐을 만들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슈즈 디자이너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로저 비비에가 서로 자신이 스틸레토 힐을 지지하는 금속으로 된 중심축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하이힐은 두껍고 튼튼한 굽으로 만들었다. 하이힐의 중심축을 나무와 같은 약한 소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953년 크리스찬 디올은 자신 브랜드에 새로운 슈즈 라인을 추가하면서 당시 잘 나가던 프랑스 디자이너 로저 비비에에게 신발 디자인을 부탁했다. 그리고 이듬해 로저 비비에는 문제의 스틸레토 힐을 대중에게 내놓았다. 한편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의 구두장인 살바토레 페라가모 역시 독자적인 스틸레토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스틸레토 원조 논쟁이 오가는 사이 스틸레토는 빠르게 여성들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 두 사람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스틸레토 힐 시대의 개막은 여성들에게 자기 키 보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해주었고 날씬한 다리를 드러내는 섹시한 실루엣으로 자신감을 선물했다. 여기에 마릴린 먼로나 베티 페이지 같은 핀업 스타들이 스틸레토 힐을 애용하면서 스틸레토 힐은 발 빠르게 여성 패션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여성은 물론 그 여성을 지켜보는 남성들도 이 고통스러운 발명품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스틸레토는 발목을 곧게 펴지게 하고 발끝이 구르러짐으로써 골반을 기울어지게 만든다. 그러면 엉덩이가 높이 들리면서 약간 삐딱하게 서게 되는데, 이러한 형태로 인해 섹시한 실루엣이 만들어 진다. 스틸레토 힐의 최대 매력은 바로 다리가 길고 날씬하게 강조되어 키가 커 보이는 효과다. 앞코가 날렵하다 못해 뾰족하기까지 한 스틸레토 힐로 인해 발가락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이유다. 사실 스틸레토 힐을 신었을 때의 팜므 파탈적인 느낌을 쉽게 포기할 여성은 아마 드믈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스틸레토 힐은 여성의 로망이자 굴레였다. 좀 더 날씬한 다리와 큰 키를 위해 스틸레토 힐을 신었지만 덕분에 발 변형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19세기말의 여성들이 가는 허리를 위해 뷔스티에를 입느라 갈비뼈와 위를 혹사한 것과 같이 스티레토 역시 발과 허리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사실 육체에 대한 사회적 압박 때문에 제 몸을 학대하거나 변형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미드 <섹스앤더시티>에서 마놀로 블라닉이나 지미 추가 제시한 중력을 무시한 스틸레토로 인해 그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졌지 사그라들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엠마 톰슨이 벌이는 ‘스틸레토 안 신기 켐페인’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페미니즘 운동은 신선한 느낌이다. 이는 타인(혹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여성 자신의 몸을 혹사하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의학적으로 스틸레토 힐의 위험성에 대한 기사가 넘쳐난다. 스틸레토 힐은 보기에는 예쁘지만 오래 착용할 경우 뼈와 관절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앞 코가 뾰족한 스틸레토 힐은 특히 엄지발가락이 두 번째 발가락 쪽으로 쏠려 ‘무지외반증’을 유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무지외반증’ 은 엄지발가락이 두 번째 발가락의 바깥 방향으로 발가락이 휘고 엄지발가락이 갈라져 뿌리 부분이 바깥쪽으로 튀어나오는 질환이다. 유전적인 원인도 있지만 최근에는 여성들이 스틸레토 힐과 같이 편하지 않은 신발을 신었을 때 앓게 되는 병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건강과 패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여성에게 엠마 톰슨처럼 스틸레토 힐을 던져 버리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여성의 욕구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필요악이니까 말이다. 엠마 톰슨의 ‘스틸레토 벗기 캠페인’은 미에 대한 욕구를 버리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다만 스틸레토 힐을 신어서 만들어낸 왜곡된 신체 이미지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보인다. 즉 여성 스스로 타인에게 비쳐지는 외양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마음이 패션보다 우선순위라는 점에 방점을 찍은 행동이 아닐까.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 역시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엠마 톰슨의 스틸레토 던져 버리기 퍼포먼스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일지 주목된다.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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