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 2011-03-29 |
[특집] 일본 백화점의 현재와 국내 백화점의 미래는?
영토 확장 최선인가? ··· 한국·일본, 패션에서 해답 찾다
일본 백화점이 부진의 늪에 빠져있다는 소식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백화점 매출은 전성기였던 1982년보다 매출액이 1/3 이하 수준으로 감소했고, 지난 2009년에는 처음으로 두 자릿수 감소를 보였으며 매출 감소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 연말에는 도쿄 번화가인 긴자 지역에 위치한 세이부백화점 유라쿠초점까지 폐점, 지방 백화점이 아닌 수도 도쿄의 도심부 백화점이 문을 닫는 상황까지 나타나 위기 극복이 쉽지 않음을 보였다.
일본 백화점의 이 같은 위기는 국내 백화점과 패션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백화점 업계가 신규 점포 출점을 가속화 하고 있고 지방 백화점을 위탁운영 하는 등 확장을 이어가면서 매출 성장을 기록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 나라에도 일본 백화점의 위기 요인으로 손꼽혔던 저출산과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소비부진을 부채질하는 디플레이션이 장기화 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일본 백화점 몰락의 근원적 원인으로 꼽히는 글로벌 SPA 브랜드와 해외 기업의 직진출이 이어지는 등 일본 시장 환경 변화의 모습이 한국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어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는 지적이다.
흔히들 일본의 유통은 한국보다 10년 앞서간다 말한다. 한국 백화점이 일찍이 일본 유명 백화점들의 앞선 기술과 영업 전략을 벤치마킹해 지금의 형태를 갖춰온 만큼, 일본 백화점의 몰락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으려면 고객들의 변화된 소비 패턴을 읽고 적극 대응해 나가는 전략이 시급한 시점이다.
추락하는 일본 백화점 이대로 몰락하나?
일본 백화점의 부진이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연말 폐점한 세이부 유라쿠쵸점 뿐만 아니라 이세탄 키치조지백화점 등 작년에만 전국적으로 대략 10여개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 현재 일본 백화점은 90% 정도가 적자에 허덕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매출 상위 10개 점포의 현황을 살펴보더라도 한큐한신백화점, 킨테츠백화점 2개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백화점들의 매출이 감소했다. 한큐한신백화점 등 매출 상승을 보이고 있는 백화점도 실은 동업계간의 경영통합으로 인한 외형 확대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많아 실질적인 영업이익 감소 기업들이 더욱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일본 백화점 업계는 유명 브랜드를 입점시켜 집객을 늘리려는 전통적인 MD개편에서 벗어나 상권 특성이나 소비자들의 니즈를 분석해 자신만의 편집매장을 확대하는 등 특단의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상황이 호전될지 의문이다.
100여 년에 걸친 일본 백화점 역사에 있어서 위기는 언제나 존재했고 일본 백화점은 변신을 꾀하며 문제에 맞서왔다. 그러나 현재처럼 기업의 존폐를 좌우할 수도 있는 수준의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애기다.
그간 일본 백화점 업계는 도심의 중심부에 대규모로 입점, 점내 매장을 기업에게 임대하는 형식으로 발전해왔다. 대부분의 일본 백화점들이 ‘매장 대여업’에 크게 의존했고 임대료 수익이 전체 매출의 60% 수준에 달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80년대 이후 다양한 유통채널이 등장함에 따라 백화점의 매장 임대업은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됐으며, 이러한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져 백화점의 장기 불황을 지속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오랫동안 지속된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의 악순환은 일본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변화시켰다. 일본 소비자들은 싸면서 실속 있는 상품으로 소비를 집중했고, 이에 따라 「자라」 「H&M」 「유니클로」 등 글로벌 SPA 브랜드들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더욱이 이들은 백화점 입점이 아닌 상권이 미형성 됐거나 쇠락한 지역에 대형 가두점을 오픈하는 형식으로 브랜드를 전개, 파워를 강화하고 나서 고품질과 고가격을 추구하는 백화점 업계에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국내 백화점의 영토 확장
국내 백화점 업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최근 몇 년간 국내 백화점의 매출은 일본과는 달리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일본 백화점의 위기 요인인 저출산과 고령화가 우리 사회에서도 진행되고 있고, 경기 회복 조짐 또한 여전히 미미하지만 롯데, 신세계, 현대 등 주요 백화점 3사는 신규 출점과 M&A 등을 통한 마켓 점유율 확대를 이어가 실적을 갱신 중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쇼핑공간’에 안주한 일본 백화점과는 달리 한국 백화점은 ‘엔터테이먼트 공간’으로 한층 진화, 백화점 내 오락요소를 강화했다는 점에서 선전이 계속될 것이란 견해를 밝히고 있다. 또한 수익의 상당 부분을 고객관리시스템(CRM)에 재투자하고 고객과 시대의 트렌드 변화를 따라잡는 상품 구색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는 만큼 일본 유통의 위상을 뛰어넘지 않겠냐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 백화점을 배우자는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채널인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함께 '지상 최대의 백화점'이라는 컨셉으로 신세계 센텀시티점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등 국내 백화점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선전에도 불구하고 내셔널 브랜드의 개발이 미흡한 상황에서의 단순 외형성장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논란도 일부 지적되고 있다. 특히 수도권과 지방 백화점들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글로벌 SPA 브랜드의 공격적인 유치는 대형 공간 할애와 낮은 수수료 등으로 저효율화를 야기하고 있어 고객집객을 위한 단기적인 방편에 불과, 강한 흡수력으로 고객을 끌어당길 수 있는 중장기적 조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백화점의 미래, 패션에서 해답 찾다
일본과 국내 백화점 업계 모두 패션 사업 강화를 통해 신규 성장동력 창출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대대적인 리뉴얼을 단행한 미츠코시 백화점 긴자점은 트렌드에 민감한 지역 고객들의 특성을 여실히 반영, 각 층에 ‘긴자 스타일’을 컨셉으로 하는 편집매장을 오픈해 눈길을 끌고 있다.
3층에 있는 ‘르 플레이스’는 고감도 도쿄 브랜드를 모아 리얼 트렌드를 발산하고 있으며 4층과 5층에는 드레스 자체 편집숍과 30~40대 직장 여성을 겨냥한 고감도의 셀렉트숍을 운영 중이다. 또한 현대화된 기모노 매장인 ‘살롱 드 기모노’ 등을 선보이며 타 백화점과는 다른 상품 구비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카시마야 백화점 역시 지난해 9월 단행한 MD개편에서 독자 편집매장 ‘스타일&에디트’를 선보여 수익 강화에 나섰다. 감도가 높은 30대 소비자를 공략하며, 본점 바이어들의 일괄적인 사입 상품 외에 지역 특성이 맞는 제품 사입 20% 내외로 병행, 변화하는 고객의 니즈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세이부 백화점은 젊은 층을 공략한 셀렉트 숍 「챠오 패닉」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챠오 패닉」은 해외 유명 브랜드나 도메스틱 브랜드의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개념이 아닌 의식 있는 가격의 오리지널 아이템 개발을 목표로 상품 생산을 병행하거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어 독특한 개성을 지닌 셀렉트 숍으로 고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차별화된 편집숍을 경쟁 우위를 이어가려는 일본 백화점과 비교해 국내 백화점 업계는 비슷하지만 좀 더 전문화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가격, 연령, 테이스트별 조닝을 세분화해 고객들의 다양한 소비가치를 만족시키고 있고 편집매장은 물론 직매입 브랜드, 단독 브랜드를 유치해 풍부한 컨텐츠로 소비자 공략에 나서고 있다. 또한 「자라」 「유니클로」 「H&M」 등 글로벌 SPA 브랜드 유치를 통해 집객 효과를 극대화 하는 방안도 활용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패션사업 육성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작년말 여성복 「나이스크랍」을 운영하고 있는 NCF을 인수해 새로운 브랜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일본 마루이백화점의 여성복 자체상표(PB)인 「타스타스」를 롯데의 대표 패션 브랜드로 키우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롯데백화점은 글로벌 패션 사업부 안에 16명으로 구성된 타스타스 디자인센터를 만들기도 했다. 이와 함께 롯데백화점은 위비스의 「컬쳐콜」, 미샤의 「아임」, 일본 핸드백 「사만다타바사」 등을 추가로 NPB로 런칭했다.
지난 3월 12일에는 소공동 본점에 일본의 패션 거리인 하라주쿠를 재현한 남성 스트리트 패션 편집매장인 'D-코드'를 선보이는 등 패션 사업 육성을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외 브랜드 직매입도 강화해 작년에 비해 2배 이상 그 규모를 늘릴 방침이다. 이미 이탈리아 인코텍스, 미국 인비스타 등 굴지의 글로벌 생산 전문업체와 계약을 맺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SPA 제품을 확대할 방침이다. 자회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전개하고 있는 「갭」 이외에도 경쟁사인 롯데쇼핑이 일본 패스트리테일링(FR)과 합작해 설립한 FRL코리아의 「유니클로」가 3년간의 독점 유통을 완료하면서 속속 신세계로 유통망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인천점과 천안점 2개 매장에 「H&M」 유치를 확정짓는 등 글로벌 SPA 브랜드의 입점을 통해 수익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패션은 물론 문구, 가구, 리빙용품 등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를 수 있는 셀렉트숍 ‘에이랜드’와 신진 디자이너 팝업 스토어인 ‘챌린져 샵’ 등으로 차별화된 MD를 제안하고 있으며, 갤러리아백화점은 「고야드」 「스테파노 리치」와 같은 명품 브랜드 발굴이나 글로벌 PB 개발을 통해 국내 시장은 물론 해외 시장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내셔널 브랜드 육성과 고객 다변화가 관건
백화점 업계는 과점화가 지속되고 있으며, 온라인과 모바일 쇼핑 등 신 유통의 거센 공략은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장기화되고 있는 디플레이션과 초고령사회라는 악재는 일본과 한국 할 것 없이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그간 백화점들은 국내 브랜드 대비 턱없이 낮은 수수료를 부담하는 글로벌 SPA나 명품 브랜드에 의존한 단기적 성과에 급급해 내셔널 브랜드의 육성을 등한시, 국내 브랜드의 위축을 가속화시켰다.
백화점의 양적,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노화되는 고객층 매출에 의존한 관행에서 벗어나 매출 규모는 작지만 젊고 빠른 소비를 함으로써 활력을 불어 넣어 줄 새로운 고객 창출과 이들을 유입시킬 신규 브랜드의 도입이 필수적이다.
경쟁력 있는 내셔널 브랜드의 육성은 그 시너지 효과로 집객력을 향상시키며 백화점의 안정적인 수익창출의 핵심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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