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 2010-07-26 |
토종 패션기업이 무너지는 이유는?
쌈지, 톰보이 이어 내셔널 중소 패션기업 위기감 고조
국내 토종 패션기업들이 잇따라 몰락하고 있다.
지난 4월 한때 국산 잡화 브랜드의 대표 주자였던 「쌈지」가 무너진데 이어 지난 14일 올해로 33년 된 토종 장수 패션 브랜드 「톰보이」도 결국 최종 부도처리 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2000년 이후 글로벌화의 급진전이 이루어지면서 규모와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 파워와 해외 글로벌 브랜드의 역량에 밀려 중소 전문 패션기업이 무너지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국내 패션시장을 이끌어온 토종 패션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지 못하고 몰락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세대 패션기업이 하나 둘씩 도태되면서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4년 전부터 물밀듯이 밀려오는 해외 대형 브랜드의 공세로 매출에 타격을 받고, 경기 불황으로 인한 매출 침체를 이기지 못한 중소 규모의 패션기업의 경우 제3의 쌈지·톰보이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쌈지와 톰보이 몰락은 무리한 사업확장?
쌈지와 톰보이 두기업은 수익성이 없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한 자금 압박으로 경영난에 허덕이다 결국 경영권을 넘긴지 1년도 안돼 무너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패션사업에 대한 전문성과 비전이 없는 금융 펀드 또는 사모 펀드에 회사를 매각, 매각을 단행한지 1년도 안돼 또다시 주인이 바뀌거나 경영권 다툼에 휘말려 회사를 정상화시키지 못한 경우다.
물론 위기를 자초한 이유가 구체적으로 보면 다르긴 하지만 토종 브랜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업들이 한순간에 휘청거리는 모습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1993년 정형화된 핸드백 시장에 독특한 아이디어의 캐주얼풍 핸드백으로 선풍을 일으킨 쌈지는 「쌈지」외에 「놈」「딸기」「아이삭」「진리」등 한국적 정서가 반영된 참신한 잡화브랜드와 「쌈지스포츠」「쌤」등 의류 브랜드를 잇따라 런칭하며 창업 5년만에 500억원 규모의 중견 패션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창업자인 쌈지 전 천호균 대표는 실험적인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마틴싯봉」을 인수하고 엔터테인먼트 예술 영화 부동산 테마파크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확장을 꾀했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딸기가좋아’, 서울 인사동의 ‘쌈지길’ , 딸기카페, 쌈지갤러리 등이 적자를 면치못했고 영화사업 ‘무방비도시’와 ‘인사동스캔들’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패션과 문화예술을 접목한 문화 대기업을 표방했으나 핵심역량에 투자하기보다 본업 외의 업무에 에너지를 집중한 결과 쌈지의 경쟁력은 점차 사라지고 지난해 6월 최대주주 변경을 통해 천호균 사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쌈지, 2번 주인 바뀐 후 결국 부도
지난 2009년 6월 유상증자를 통해 최대주주가 신재생 에너지 사업가인 양철호 외 2인으로 변경된 이후 몇 개월도 채 안돼 경영권이 또 바뀌는 등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했다. 쌈지는 매출감소 및 적자경영으로 돌입했고, 주가가 급락하며 부도설까지 나돌았다 잇따른 어음위변조, 신용등급하락, 불성실 공시법인 지정 등 계속된 악재로 신음하는 가운데 자본조달을 위해 준비했던 CB발행도 실패로 돌아가 결국 부도처리되며 상장 폐지됐다.
쌈지의 부도는 지난해 발행한 약속어음을 막지 못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근본적으론 쌈지 자체가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라는 평이 주를 이룬다
톰보이는 지난 14일 16억8천900만원 규모의 전자어음 88건을 지급 기한까지 입금하지 않아 최종 부도 처리됐으며 상장 폐지절차를 밟고 있다.
부도와 함께 롯데, 현대, 신세계백화점 등 전국백화점의 「톰보이」「톰보이진」 「코모도」「코모도스퀘어」 매장은 현재 영업을 중단했으며 상설매장만 영업을 진행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부도 처리될 경우 모든 브랜드는 매장 철수로 이어지고 현재 톰보이 매장은 영업을 이미 중단한 상태로 추후 대응은 채권단의 의견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33년 장수 브랜드 톰보이 몰락 배경은?
지난 1977년 설립된 톰보이는 1세대 패션기업으로 여성복「톰보이」와 남성복「코모도」를 중심으로 전성기를 누려왔으나 창업주인 최형로 회장이 지난 2006년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별세하면서 경영공백과 자금압박으로 고전하는 등 사세가 급격히 꺽였다.
고 최형로 회장의 부인인 김명희 회장이 취임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톰보이잇셀프」신규 브랜드를 런칭하는 등 사세 확장에 나섰지만 100억원 이상의 적자와 논현동 본사를 260억원에 매각할 정도로 어려움이 가중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커져 자금 압박이 더욱 심해졌으며 자금압박을 견디다 못해 '회사 매각'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게 됐다.
톰보이는 결국 경영승계에 실패하고 2009년 금융권 출신의 신수천씨 등이 톰보이를 인수하면서 새출발을 선언했지만 이들 또한 무리한 차입을 통한 불투명한 경영으로 인수 1년도 안돼 부도처리되는 아픔을 겪었다.
톰보이, 기업 사냥꾼 희생양되다
톰보이의 공식적인 대표이사는 신수천 사장이 맡아왓으나 톰보이를 인수한 배준덕 사장이 실질적으로 자금 조달 등 경영에 개입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지난 해 인수 당시 최대주주였던 강대호 부회장도 영업총괄 사장을 맡아 혼란을 겪어왔다.
결국 여러명의 경영진들이 얽히고 섥혀 이권과 경영권 싸움으로 변질됐으며 은행권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차입금을 상환하기 과정에서 고금리의 사채를 쓰면서 자금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톰보이는 지난 6월 28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으로부터 기업신용위험 상시 평가 C등급을 받으면서 이미 업계에서는 부도가 임박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부도의 결정적 원인이 자금조달 문제가 아닌 경영권 분쟁과 전현직 임원의 자금 횡령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특히 신수천 대표와 배준덕 전 총괄사장이 36억9천만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 이에 채권단은 횡령 혐의에 대해 고소한 상태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10여명으로 구성된 톰보이 투자자집단(투자단)이 1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한 상태에서 톰보이 신수천 대표에게 경영권 포기 각서를 요구하며 14일 자정까지 톰보이측과 협상을 벌였으나 협상이 결렬돼 이날 자정 최종 부도처리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톰보이 관계자는 "당시 LG패션, 신원, 이랜드, 한세실업 등 주요 패션회사에서 인수에 관심을 가졌지만 결국 금융펀드 출신들이 인수하게 돼 재기를 도모하던 회사가 기업사냥꾼들의 표적이 되어 결국 희생양이 됐다 "고 분통을 터트렸다
톰보이는 현재 김정주 코모도스퀘어 사업부장을 직원대표로 선출, 기업회생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백화점 매장이 영업을 중단한 상태라 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업다각화는 장수기업의 무덤이다
쌈지와 톰보이의 몰락으로 국내 장수 패션 브랜드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도 제기되고 있다.
다각화는 장수기업의 무덤이라고 할 정도로 수십,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들이 본업이 아닌 다른 사업에 한눈을 팔다가 몰락한 사례가 많다.
사업 다각화를 통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전한 기업이 전혀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세계적인 경기불황이 지속되고 치열한 경쟁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의 경영전략이 필요한 시기다. 사업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브랜드 노후화를 막고 체질개선 노력과 자기계발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로 접어들었다.
쌈지와 톰보이 등 토종 패션 브랜드의 몰락은 글로벌 트렌드에 부응하기 못하고 내실을 키워야 할 시점에 무리한 사업확장 등으로 자금악화를 겪고 패러다임 전환기에 체질개선을 하지 못한데 실패의 원인이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소비시장과 트렌드에 부응하고 유연한 대응능력을 갖춘 기업은 중소규모라 할지라도 승승장구하고, 과거의 영광에만 매달려 과거의 방식으로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기업들의 위기는 계속될수 밖에 없을 것이다. <류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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