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2010-04-19

[마켓 리포트] 아메리칸 실용주의 ‘프래티패션’이 뜬다

이지 테일러링, 오버 데님 룩, 정통 스포츠 룩 부상


올해 봄·여름 패션 마켓의 화두는 아메리칸 실용주의다. 지난 겨울 1980년대 무드의 영향으로 급부상했던 파워 숄더와 킬힐의 과장된 카리스마는 반짝 인기를 끝으로 사라졌다. 올해는 언제 어디서나 입을 수 있는 베이직하고 에센셜한 스타일이 트렌드의 전선으로 떠오르면서 실용주의 패션을 의미하는 '프래티패션(Pratifashion)’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경제 위기의 여파로 창의성과 매출 사이에서 갈망하던 패션 업계의 확실한 대안으로 선택된 실용주의 패션은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에 적용이 가능한 실용성과 패션성을 겸비한 합리적인 스타일로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

올해 등장한 실용주의 패션은 미국적 감성을 담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베이직 디자인을 중심으로 제안되고 있다. 특히 평상복과 외출복의 세분화된 개념을 버린 타임리스(timeless)한 디자인과 현실적이고 효용성이 높은 아이템들이 부각되면서 유니섹스, 데님, 스포츠 룩 등이 트렌드의 최전방으로 나섰다. 

이같이 경기 불황과 미니멀리즘의 도래, 현대적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삼박자가 만들어 낸 실용주의 패션은 친근한 라인과 아이템으로 패션 마켓을 잠식하고 있다.

타임리스 이지 테일러링의 가치 부상


실용주의 트렌드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는 실용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라인의 등장이다. 화려한 테크닉과 감성으로 패션 마켓을 리드해온 명품 브랜드들은 아이코닉하고 타임리스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웨어러블하고 스타일링이 용이한 디자인들을 제안하고 있다.

「이브생로랑」은 실용성과 럭셔리 코드를 가미한 ‘에디션 24’를 출시했다. 이 라인은 비행기로 장기간 여행을 하더라도 주름이 잡히지 않는 소재로 제작됐으며 다른 아이템과 쉽게 레이어드하고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편안하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에디션 24’는 고객들의 높은 호응으로 이번 시즌 세 번째 컬렉션을 선보였다.

「샤넬」은 이번 시즌 컬렉션에서 꾸띠르 터치를 가미하면서도 디테일을 배제한 베이직한 ‘에센셜 룩’을 선보였다. 기존 쇼피스보다 2/3~1/2 가격으로 책정된 ‘에센셜 룩’은 앞으로도 매 컬렉션마다 계속될 예정이다.

「디올 옴므」 역시 같은 맥락으로 ‘10 클래식’ 라인을 탄생시켰다. ‘10 클래식’은 「디올 옴므」의 타임리스 코드를 농축시킨 것으로 진, 턱시도, 가죽, 트렌치코트, 피케 셔츠, 풋웨어, 셔츠, 클래식 수트, 스티커, 백 등이 출시된다.

또한 제일모직의 10 꼬르소 꼬모는 디자이너 송자인과 함께 여성이라면 기본적으로 꼭 갖춰야 할 테일러드 재킷, 저지 티셔츠, 레깅스 등 10가지 기본 아이템을 중심으로 ‘10 에센셜스 by 자인 송’을 출시했다.

또한 올 봄 여성복 마켓에서 실용성을 기반으로 부상한 아이템으로는 재킷을 들 수 있다. 타임리스 실용주의의 영향으로 여성을 위한 만능 아이템으로서 스타일링의 주류로 떠오른 재킷은 실용적이면서도 활동성이 뛰어난 스트레치 소재의 재킷, 남자 친구의 재킷을 빌려 입은 듯한 넉넉한 재킷, 복고적인 스타일의 블레이저(blazer) 등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본래 운동선수의 제복을 뜻하는 블레이저는 얇은 모직물로 만든 재킷을 두루 지칭한다. 최근에는 모직 이외에도 면, 마, 스웨트, 데님 등 소재가 다양해졌으며 비즈니스 웨어 뿐만 아니라 캐주얼 웨어의 스타일링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잇미샤」는 싱글 재킷과 더블 브레스티드 블레이저, 배기팬츠, 블루 스트라이프 셔츠, 스트라이프 니트, 티셔츠 등이 매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티셔츠의 매출 상승은 편하고 캐주얼한 것을 추구하는 트렌드를 대변하는 대목이다.

「잇미샤」의 MD 전략실 이경진 차장은 “소비자들이 전반적으로 실용적이고 웨어러블하며 젊은 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 동안 셋업 아이템을 선호했던 소비자들이 스스로 코디네이션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높아지면서 크로스 착장이 용이한 베이직 단품 아이템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또한 올해 피케 셔츠와 치노 팬츠 등 이지 테일러링의 아이템이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한동안 시장에서 주춤했던 이지 캐주얼의 대명사 「지오다노」의 전체 매출이 20% 이상 고 신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이 같은 추세에 대해 현대백화점의 한 바이어는 “마켓을 주도하는 주력 아이템이 있었던 지난 시즌에 비해 올해는 베이직을 기반으로 한 실용적이고 미니멀한 아이템의 판매율이 높아졌다.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과감하게 유행 아이템에 투자하기보다는 웨어러블한 아이템을 구매하려는 합리적인 소비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버 데님 룩과 레트로 스포티즘, 정통 캐주얼로의 회귀


아메리칸 실용주의 무드가 부각되면서 데님과 스포티즘 룩이 부상하고 있다.
데님은 이제 언제 어디서나 허용되는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지만, 올해는 기존의 팬츠와 재킷뿐만 아니라 전 아이템에 걸쳐 데님의 다양한 핏과 워싱 기법이 활용되고 있다. 올 봄에는 지난 시즌 유행한 발맹 스타일의 록(Rock)무드가 아닌 정통 아메리칸 스타일의 데님 룩이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특히 그 동안 최악의 스타일링으로 평가되던 일명 ‘청청 코디’, 즉 상·하의 모두를 데님으로 코디하는 레트로 스타일의 ‘오버 데님 룩’이 트렌디한 스타일링으로 부각됨에 따라 데님은 캐주얼의 상징을 넘어 복종을 망라한 키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데님은 젊음, 반항, 혁명을 상징해왔으며 시대를 아우르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녔다. 올해 데님이 돌아온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부유한 시대에 대한 향수를 대변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즉 불경기로 침체된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대공항 시절 노동자들과 서부개척시대 카우보이들의 옷, 땀과 노동의 가치와 성공의 기쁨이 스며있는 데님을 끌어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신세계인터내셔널의 「GAP」은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한 1969 프리미엄 진 라인을 강화해 올 S/S에는 스타일을 다양화하고 합리적인 가격대로 책정하는 한편 데님 스튜디오 등의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통해 매출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기존의 7~8% 대를 차지하던 데님 라인의 매출 비중은 현재 15% 대로 높아졌다.

「GAP」은 데님뿐만 아니라 피케 셔츠, 치노 팬츠 등 실용성을 기반으로 한 베이직 아이템이 인기상품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최영익 사업부장은 “비즈니스 룩과 위크앤드 룩의 경계가 없어지면서 주중, 주말 상관없이 다양한 상황에서도 겸할 수 있는 스타일로 베이직 캐주얼과 데님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사회적 착장의 변화와 실용주의의 부상이 이 같은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캐주얼과 영 마켓뿐만 아니라 여성복과 남성복 브랜드들도 데님 소재를 활용하거나 데님을 연상시킬 수 있는 블루 컬러의 아이템들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유아복도 예외가 아니다.

「갭키즈」는 유아동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데님 풀 컬렉션(full collection)을 기획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닥스키즈」는 ‘D2Jean’을 런칭해 데님 라인을 강화했다. 「노튼 주니어」는 데님 아이템이 전년 대비 10% 이상 매출이 신장함에 따라 물량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지난 시즌 보이 프렌드 핏 등 유니섹스 무드의 확산 등으로 시작된 스포티즘 트렌드는 올해 S/S 시즌에 접어들면서 점차 강화되고 있다.

아메리칸 캐주얼 스타일이 마켓의 주요 무드로 다시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키 아이템으로 제안되고 있는 것이 점퍼다. 이번 시즌에는 저지나 코튼 소재를 중심으로 스타디움 점퍼와 아노락, 윈드 브레이커가 변형된 아웃도어 스타일의 점퍼 등 클래식 스포티브 아이템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올 봄 등장한 스포티즘은 미식축구와 테니스 등 미국 정통 스포츠에서 영향을 받은 스웨트 소재의 맨투맨 셔츠, 스타디움 점퍼, 피케 셔츠와 플리츠 스커트 등이 부각되고 있으며, 각기 아이템이 속한 복종의 정통성을 살린 클래식한 디자인을 믹스 앤 매치해 새로운 루킹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여성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스웨트 소재의 재킷과 보이 프렌드 핏의 유행도 변화된 스포티즘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자친구의 아이템을 착용한 듯한 보이 프렌드 룩은 루즈 핏 데님과 넉넉한 재킷 등으로 스타일링 되고 있으며, 캐주얼하고 편한 스웨트 소재의 세련된 룩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경계를 넘어 실용성과 활동성, 패션성을 겸비해 인기를 끌고 있다. <김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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