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일 | 2021-04-09 |
81년의 사랑, 평생동안 여왕을 지킨 '퍼스트젠틀맨' 영면하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공이 99세로 별세했다. 필립공은 18세에 공주를 만나 69년간 여왕의 남편으로, 든든한 조력자로서 영국 사상 최장수, 최고령 `퍼스트젠틀맨`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사진 = 1947년 결혼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좌)과 필립공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공(에딘버러 공작)이 99세로 별세했다.
버킹엄궁은 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필립공이 이날 아침 윈저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고 BBC 등이 보도했다.
필립공은 슬하에 찰스 왕세자(73)와 앤 공주(71), 앤드루 왕자(61), 에드워드 왕자(57) 3남 1녀를 두었으며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 등 손주 8명, 증손주 10명을 두었다.
필립 공은 지난 2월 감염증 치료를 받기위해 병에 입원했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심장 수술을 받고 3월16일 윈저궁으로 돌아왔다.
지난 2017년 96세 나이로 왕실 공식 업무에서 공식 은퇴하기 전까지 여왕의 든든한 조력자로서 공무를 수행해왔으며 오는 6월 10일 100세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69년간 여왕의 남편으로 평생동안 여왕의 곁을 지키며 외조를 해온 필립 공은 영국 사상 최장수, 최고령 `퍼스트젠틀맨`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사진 = 1947년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서 치뤄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의 결혼식 장면
필립공은 1921년 6월 10일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인 안드레아스와 왕자비 바텐베르크의 공녀 앨리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났을 당시 그리스 왕위계승 서열 2위였으나, 큰아버지인 콘스탄티노스 1세가 독립전쟁 패배의 책임을 지고 퇴위하면서 1922년 일가족이 함께 추방 당해 프랑스로 망명을 하게 됐다.
아버지는 반역죄로 망명해야 하는 처지고 어머니는 신경쇠약을 앓았고, 형제들은 친구와 친척 집에 맡겨지기 일쑤였다. 필립공도 여기 저기 옮겨다니며 외로운 소년기를 보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찬가지로 필립공 역시 유럽 왕실 출신이지만 두 사람의 인생의 출발은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사진 = 1949년 첫아들 찰스 왕세자와 함께
1928년 영국으로 건너간 필립공은 1939년 다트머스 왕립해군학교에 진학, 이곳에서 엘리자베스 공주와 사랑이 시작됐다.
필립공은 생도 시절 해군사관학교 시찰을 나온 당시 13세이던 엘리자베스 공주를 안내하면서 처음 만났다. 아버지 조지 6세를 따라온 13세 공주는 호방한 성격에 출중한 외모의 5살 많은 18세의 필립공에게 반해 침실에 사진을 걸어두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두번째 만남 이후 두 사람은 편지를주고 받기 시작했고 필립공이 졸업 후에 영국 해군에 입대했지만 꾸준히 사랑을 키우다가 결국 8년만인 1947년 11월 20일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치렀다.
↑사진 = 1960 년대 4명의 자녀 에드워드, 앤드류, 앤, 찰스와 함께(왼쪽부터)
그러나 당시 영국에서는 환영받지 못한 결혼이었다. 필립공은 몰락한 왕족에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 신분이었고, 누나들이 독일의 옛 왕족들과 결혼한 점이 2차 대전 후 영국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며 극심한 반대 여론에 직면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그리스 왕실이 부여한 직위와 권리, 왕위 계승권을 모두 포기하고 영국인으로 귀화하는 동시에 종교도 성공회로 개종한 후 조지 6세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았다. 이때부터 성도 영국식으로 '마운트배튼'으로 바꾸었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화려하게 열린 필립공과 엘리자베스의 결혼식에 필립공의 가족들은 사망하거나 뿔뿔이 흩어져 아무도 초대받지 못했다.
필립공은 결혼 이후 비로소 행복을 찾았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격이 맞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엘리자베스는 필립공의 솔직함과 자립심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알려진다.
필립공은 70여년간 여왕의 배우자로 살아오면서 조용히 여왕을 보좌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97년 결혼 50주년 금혼식에서는 "내가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마지막도 결코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큰 아들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비와 이혼하고 지난 2020년 손자인 해리 왕자도 왕실을 뛰쳐나가는 등 자식들이 속을 썩히긴 했지만 여왕 부부는 큰 분란 없이 지내왔다는 평이다.
다만 아프리카, 인도 등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거나 이따금식 깜짝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나 꾸미지 않는 소탈한 성격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5년에는 국제승마협회 회장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으며 이후 1999년 고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방한할 때에도 함께 한국을 찾았다.
패션엔 류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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