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뉴스 | 2021-04-06 |
한국에서 갑자기 유명세 타는 페라가모, 도대체 어떤 브랜드?
페라가모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뜻밖의 승자로 거론되면서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멋쟁이 중장년층 신사들이 선호하는 럭셔리 구두 브랜드로 알려진 '페라가모(Ferragamo)'가 갑자기 핫 브랜드로 부상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맞붙은 가운데 뜻밖의 승자로 '페라가모'가 거론되면서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
6일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일주일간 페라가모의 검색량은 한때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앞섰다.
페라가모는 지난 2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생태탕집 주인 아들이 "오세훈 후보가 하얀 면바지에 신발은 로퍼, 상당히 멋진 구두 페레가모를 신고왔다"고 증언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는 구두를 비롯해 핸드백, 가죽소품, 액세서리, 주얼리, 의류 등을 제작 · 판매하는 이탈리아의 패션 명품 브랜드이다.
▶ 이탈리아의 진정한 슈 메이커, 살바토레 페라가모
↑사진 = 살바토레 페라가모(1898-1960)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1898년에 이탈리아 나폴리(Naples) 근교에 위치한 보니토(Bonito)에서 14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났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성찬식에서 신을 신발이 없는 여동생을 위해 9살에 처음으로 구두를 제작한 페라가모는 나폴리의 구두점에서 수련공으로 일하며 13살에 자신의 집 한 켠에 여성용 맞춤구두 가게를 오픈하며 본격적인 신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1914년 16살에 형제들과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간 페라가모는 1919년에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 지역으로 이주해 구두 제조 및 수리점을 개점했다.
아메리칸 필름 컴퍼니에 영화 소품으로 사용하는 카우보이 부츠를 납품을 계기로 영화 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크게 사업을 확장했다.
▶ 여성의 발을 해방시킨 인체해부학적 구두
1923년 헐리우드로 이주한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착용하기 편한 신발을 제작하기 위해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야간대학에서 인체해부학을 공부했다.
이때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사람의 체중이 발의 중심에 실린다는 점을 깨닫고 신발 중앙에 철심을 박아 체중을 지탱하도록 했다.
발바닥에 장심을 부착해 안정감을 좋게 하고 발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는 등 인체공학에 따른 구두의 원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신발 디자인에 인체해부학을 적용시킨 것은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최초였다. 무게 중심을 활용한 그의 신발 제작 원리는 오늘날 모든 신발 제작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현재는 134가지 신발 제조 공정 중 중요한 몇몇 단계가 여전히 수작업을 고수하고 있다.
1920년대 세계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많이 어려워지자 살바토레는 1927년 이탈리아 피렌체로 돌아와 '살바토레 페라가모 컴퍼니(Salvatore Ferragamo Company)'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살바토레 페라가모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그는 다양한 컬러와 독창적인 디자인의 수제화로 이탈리아 및 유럽에서 인지도를 쌓았으며 직영 매장을 로마, 런던 등으로 확장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발발로 시중에서 강철을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라피아 코르크(Raffia Cork)를 이용한 새로운 신발을 발명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웨지힐(Wedge Heel, 밑창과 굽이 연결된 형태의 여성용 구두)이다.
▶ 슈 디자인 혁명! 세계 최초의 웨지힐
전쟁 이후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낚싯줄, 나무, 합성수지, 유리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새로운 신발을 출시하면서 구두 디자이너로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7백여 명의 수제신발 장인들을 고용하여 하루 350켤레의 신발을 생산했고, 유럽 전역으로 판매망을 넓혀 나갔다. 1947년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패션계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니만 마커스 패션 어워드(Neiman Marcus Fashion Award)'를 수상했다.
▶ 헐리우드에서의 마법같은 순간들
1948년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미국 뉴욕에 첫 번째 직영 매장을 열고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경제성장으로 미국의 상류층을 위한 명품 구두를 판매와 함께 마릴린 먼로, 오드리 햅번, 소피아 로렌, 주디 갈렌드 등 당대의 유명 헐리우드 배우들의 영화 소품용 구두를 제작하여 미국에까지 브랜드 인지도를 넓혔다.
마릴린 먼로의 스커트가 지하철 통풍구 바람에 들려 올라가는 영화 ‘7년 만의 외출’의 그 유명한 장면에서 먼로의 글래머러스한 다리를 지탱한 샌들은 살바토레가 만든 것이었다.
그의 신발들은 영화 속의 아름다운 장면을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과 발을 편하게 해주는 기능 덕분에 인기가 높아졌으며 유명인들이 직접 구두를 맞추기 위해 페라가모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의 피렌체까지 찾아왔다.
1960년에 살바토레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내 완다 페라가모와 그의 자녀들은 창업자의 경영철학을 기반으로 전통과 혁신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갖추면서 안경, 향수, 벨트, 스카프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당시하루에 11,000 켤레의 수제화를 제작했던 페라가모는 글로벌 시장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대량 생산 방식으로 전환하며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1971년 살바토레 페가가모는 액세서리 컬렉션, 1975년 기성복 컬렉션을 추가 런칭하며 사업영역을 확장시켰다.
아시아 시장은 지난 1986년 홍콩에 첫 번째 직영점 오픈을 기점으로 1991년에는 일본, 1994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매장을 열었다. 한국에는 1995년 처음 진출했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전세계 56개국에 진출해 2,300여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전체 영업이익의 45%를 아시아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다.
한편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수년동안 거대 자본그룹 또는 투자 기업의 잠재적 인수 대상이었지만 회사 설립자인 살바토레의 아들 페루치오 페레가모가 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독립 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페라가모 페밀리들이 전체 65 %을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33% 급감, 소수의 지분 매각을 위해 금융 투자자들과 비공식적 대화를 가졌다고 소식통들이 전하고 있다.
기성 세대로부터는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젊은 층으로부터는 외면받고 있다는 것이 페라가모가 직면하고 있는 고민이다.
↑사진 = 2021 F/W 살바토레 페라가모 컬렉션
↑사진 = 2021 F/W 살바토레 페라가모 컬렉션
↑사진 = 2021 F/W 살바토레 페라가모 컬렉션
↑사진 = 2021 F/W 살바토레 페라가모 컬렉션
↑사진 = 2021 F/W 살바토레 페라가모 컬렉션
패션엔 정소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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