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9-10-07 |
패션위크 최대 이슈! 당신은 지속가능한 디자이너인가?
2020 봄/여름 패션위크의 최대 이슈는 바로 지속가능이었다. 그러나 본질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지속가능 패션에 대한 움직임과 향후 과제 역시 모색해 본다.
↑사진 = 베르사체의 '정글 드레스'를 입은 제니퍼 로페즈와 프랑스 기후 운동가들의 시위 사진을 믹스한 프랑스 작가 겸 예술가 토마스 레루의 콜라주 작품.
지난 9월 초 뉴욕에서 시작되어 런던, 밀라노를 거쳐 10월 초 파리에서 종료된 인터내셔널 패션위크가 진행된 지난 한 달을 요약한 아주 적절한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프랑스 작가 겸 예술가 토마스 레루의 콜라주가 아닐까 한다.
토마스 레루는 프랑스의 기후 변화 관련 시위자들을 배경으로 ‘정글 프린트’ 드레스를 입고 베르사체 패 쇼의 피날레를 장식한 제니퍼 로페즈를 포토삽으로 합성했다.
이 사진은 마치 제니퍼 로페즈가 거리에서 삼림 벌채와 기후 파괴에 항의하는 팻말을 든 젊은 시위자들을 이끄는 그린 잔다르크처럼 보인다. 이 콜라주 이미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느껴졌던 패션계와 환경적 영향 사이의 긴장감을 완벽하게 요약해 주었다.
이번 2020 봄/여름 패션위크에서 스텔라 맥카트니 등 지속가능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및 일부 지속가능 패션을 추구하는 브랜드가 주목을 받은 가운데 과연 4대 패션위크 디자이너들의 환경변화에 대한 인식은 어디쯤일까?
먼저 4대 패션위크의 시작을 알린 뉴욕에서는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다. 디자이너 콜리나 스트라다는 그녀의 쇼를 통해 “지구에 더 친절 하라!”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크로맷과 제로+마리아 코르네조, 집시 스포트, 그리고 상대적으로 신참 디자이너인 라트레바즈와 같은 브랜드들은 모두 전통적인 소재에 대한 지속 가능한 대안을 제시했다.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최초의 탄소 중립 패션쇼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 공식 일정에도 지속 가능한 주제의 토론도 있었다.
↑사진 = 왼쪽부터 미국의 지속가능 디자이너 콜리나 스트라다, 크로맷, 제로+마리아 코르네조, 집시 스포트의 2020 봄/여름 컬렉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패션위크 디자이너들이 지속 가능한 실천 방안에 참여한 경우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영국의 활동가 그룹 멸종 반란(Extinction Rebellion)은 패션계가 기후 변화 문제를 간과하지 않도록 그 어떤 디자이너보다 많은 일을 했다. XR로 잘 알려진 이 그룹은 영국패션협회가 런던패션위크를 중단하고 대신, 기후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한 패션 업계 리더들과의 집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XR은 패션쇼장 앞에서 가짜 피를 뿌리고 마치 죽은 것처럼 드러눕는 시위 모습을 연출했고, ‘죽은 행성에는 패션도 없다’는 팻말을 들고 런던패션위크 사망을 선언하는 ‘장례식’을 공연했다.
↑사진 = 멸종 반란 시위자들이 패션쇼장 앞에서 가짜 피를 뿌린 '죽은 것처럼 드러눕는 시위' 모습을 연출하며 런던패션위크 중단을 요구했다.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케인은 '지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에코섹슈얼’을 테마로 한 2020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였다. 아이템에는 지구 그림이 그려진 스웨터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마음속에는 의류 제작에 있어 생태학적 우려를 해결할 의지가 아직 없어 보였다. 즉 컬렉션에 사용된 재료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진 = ‘에코 섹스’라는 테마를 선보인크리스토퍼 케인의 2020 봄/여름 컬렉션.
밀라노패션위크에서는 배우 콜린 퍼스의 아내로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이자 환경운동가인 리비아 퍼스가 만든 환경 모임 에코에이지가 주도한 그린 카펫 패션 어워즈가 다시 한번 지속가능성의 리더로 주목받았다.
10코르소 코모 아울렛에서 열린 전시회는 지속 가능한 디자이너들을 조명했다. 미소니는 패션쇼 참석자들에게 ‘우리는 우리 행성의 중요한 지점에 있으며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다.’는 카드와 함께 태양열 발전 램프를 선물로 주었다.
2018년 봄부터 모피 사용을 중단한 구찌는 탄소 중립 패션쇼를 열겠다고 주장했고, 발리는 프레젠테이션 세트의 목재를 재활용하고 녹초는 다시 땅에 심겠다고 약속했다.
↑사진 = 베르사체 쇼의 피날레를 장식한 제니퍼 로페즈와 디자이너 도나텔라 베르사체
'정글 프린트' 드레스를 입은 제니퍼 로페즈가 피날레 무대를 장식한 베르사체 컬렉션은 밀라노에서 가장 떠들썩한 패션쇼였지만 생태학적 이슈보다 19년 만의 리바이벌이라는 이슈만 부각 되었다.
마지막으로 4대 패션위크의 종착지인 파리에서 디올은 패션쇼 배경으로 사용한 나무를 쇼가 끝난 후 도시 전역에 심겠다고 약속했고, 대표적인 지속가능 브랜드 스텔라 맥카트니는 75%의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지금까지 '가장 지속 가능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브랜드 마린 세레는 다양한 업-사이클 소재가 돋보인 패션쇼를 통해 기후 전쟁, 한여름의 혹서, 대량 멸종으로 야기된 종말론을 중심으로 기억에 남을만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사진 = 디올은 패션쇼 배경으로 사용한 나무를 쇼가 끝난 후 도시 전역에 심겠다고 약속했다.
미우미우와 루이비통은 관객들에게 웨이 무대 세트에 사용된 목재를 기증한다고 밝혔고 알렉산더 맥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라 버튼은 2020 봄/여름 컬렉션에서 이전 시즌에서 사용한 소재를 재생된 리사이클 소재를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이번 시즌 4대 패션위크에서는 평상시보다 더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환경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었다. 디자이너들 스스로 패션쇼 무대 세트의 낭비적 요소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은 새롭게 느껴졌다.
↑사진= 알렉산더 맥퀸의 디자이너 사라 버튼은 2020 봄/여름 컬렉션에서 이전 시즌 컬렉션에서 재생된 소재를 선보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브랜드가 단지 세트 폐기물 최소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쉬웠다. 생 로랑이 지난 여름 바닷가 해변에서 패션쇼를 열고 무대 세트를 방치해, 환경단체의 비난을 받은 남성복 패션쇼의 영향을 받은 임시방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또 크리스토퍼 케인의 ‘에코 섹스’나 혹은 베르사체의 ‘정글 프린트’ 드레스처럼 자연을 영감의 원천으로 받아들였지만 결국 ‘환경 보호’라는 본질보다 ‘에코 패션’이라는 트렌드에만 매몰되어 있다는 사실만 부각되는 결과를 낳았다.
↑사진 = 스텔라 맥카트니는 75%의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지속가능 패션의 정석을 을 선보였다.
반이민 정책을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미국의 디자이너들은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패션쇼로 대응했다.
‘나는 이민자다’ ‘혁명엔 국경이 없다’와 같은 문구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을 비꼰 ‘미국을 뉴욕처럼’까지 다양한 말들이 런웨이를 점령했고, 반이민 정책의 대표적인 대상이 될 무슬림들이 직접 런웨이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테러리스트를 연상케 하는 가면을 쓰거나, 히잡을 둘러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진 = 반트럼프적인 의미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을 비꼰 ‘미국을 뉴욕처럼’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스냅백을 쓴 퍼브릭 스쿨 모델.
이러한 반응은 정치적 현실이 그들의 삶과 사업에 미칠 엄청난 파장을 예상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만약 기후 파괴가 트럼프 대통령 반이민 정책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우리 사회와 미래를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제 패션 산업은 기후 변화에 대응해 최고의 창조적 재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이나 브렉시트의 경우, 패션피플들은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해 직접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패션이 기후 변화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패션 산업은 모든 국제선과 해상 운송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탄소를 대기에 방출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환경 파괴자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 = 영국의 활동가 그룹 멸종 반란 시위자들이 런던패션위크 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금은 문제의 규모에 상응하는 결정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다.마린 세레와 스텔라 맥카트니와 같은 브랜드는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고전적인 미디어 전술과 함께,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한 패션의 힘이 지구의 운명에 대한 진실을 전달하는 긍정적인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시 말해 가장 환경적으로 민감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옷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구를 중심에 둔 런웨이쇼 테마는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 = 미세 먼지를 의미하는 마스크를 착용한 모델이 마린 세레의 2020 봄/여름 컬렉션 런웨이를 걷고 있다.
미국의 집시 스포트나 크로맷과 같은 지속 가능 브랜드는 우리에게 모든 인종, 성별, 사이즈, 섹슈얼리티에 대한 공간을 이끌어내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비전을 제공했다.
멸종 반란의 활동가들은 패션산업의 환경오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패션위크 중단을 요구해왔다. 패션계가 이 모든 교훈을 바탕으로 한다면, 아마도 패션위크는 진보하는 일종의 지구 살리기 환경 모임으로 변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공정무역이나 윤리적 패션과 같은 철학적이거나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다.
↑사진= 지구에 더 친절 하라!”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디자이너 콜리나 스트라다의 2020 봄/여름 컬렉션.
탄소 제로, 플라스틱 사용 금지, 미세 먼지 유발 방지, 디톡스 실천과 친환경 소재 개발,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호와 인권 보호 등과 실생활에서 활용 가능한 사회과학적인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그 대안을 디자이너들이 런웨이쇼와 광고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모션을 통해 제시해야 한다. 향후 윤리적인 지속가능성 브랜드만이 소셜 미디어가 주도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 <저작권자(c) 패션엔미디어, www.fashionn.co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