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9-02-20 |
'패션 카이저' 칼 라거펠트, 샤넬 부흥을 이끈 천재 디자이너 별이 되다!
2월 19일은 패션사에서 가장 슬픈 날로 기록될 듯 하다. 세계 패션계의 거장 칼 라거펠트가 85세의 일기로 별세했기 때문이다. 칼 라거펠트는 2019 가을/겨울 컬렉션을 준비하느라 마지막까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뿐 아니라 샤넬과 펜디의 오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잘 알려진 전설적인 디자이너이자 패션업계 거물 칼 라거펠트가 8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 1월 22일(현지시간)에 열린 2019 봄/여름 샤넬 오뜨 꾸띄르 패션 쇼의 피날레에 등장하지 않아 와병설과 은퇴설이 제기되었지만 WWD의 소식통에 따르면, 칼 라거펠트는 2019 가을/겨울 컬렉션을 준비하느라 마지막까지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라거펠트는 샤넬, 펜디, 칼 라거펠트 등 3개 브랜드를 지휘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샤넬에서만 기성복 쇼와 꾸띄르 쇼, 크루즈 쇼 등 1년동안 6번에 걸쳐 진행해왔다.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사랑은 일이었으며 일은 그에게 숨 쉬는 것과 같았다. 휴가도 가지 않고 일에만 전념하는 일중독자였다.
세계 패션계는 반세기 이상 패션 비즈니스를 정의하고 대표해 온 패션 거장 칼 라거펠트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애도하고 있다.
1933년 9월 10일 독일에서 태어난 전설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함부르크 근처 시골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예술과 옷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젊은 시절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경력을 쌓기 위해 파리로 건너가 1954년 국제양모사무국 디자인 대회에서 코트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패션계에 입문했다.
같은 대회에서 드레스부문 1위를 차지한 이브 생 로랑이 크리스찬 디올의 디자이너가 되는 동안, 그는 피에르 발망의 어시스턴트로 약 60년간의 경력을 시작했다.
하지만 피에르 발망에서 오래 있지 않았다. 3년 동안 일한 후 1958년에 그는 프랑스 디자이너 장 파투에 합류했고 그 후 5년 동안 '로랜드 칼(Roland Karl)'이라는 이름으로 10번의 오뜨 꾸띄르 컬렉션을 디자인했다. 미국의 패션 저널리스트 캐리 도너반에 따르면 그의 첫번째 컬렉션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 후, 칼 라거펠드는 1964년 프랑스 브랜드 끌로에의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매 시즌 전에 몇 개의 작품을 디자인했고 결국 풀 컬렉션을 디자인했다. 1970년대에 그는 로마의 오뜨 꾸띄르 하우스 쿠리엘(Curiel) 뿐 아니라 그가 여전히 크레이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던 펜디와도 콜라보레이션하기 시작했다.
칼 라거펠트는 1982년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공식 임명되면서 그를 세계적인 유명인사로 발돋움시킨 역할을 시작했다. 당시 오뜨 꾸뛰르 디자이너가 아닌 기성복 디자이너로 활동한 라거펠트의 경력은 거센 반발과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독일인이라는 점도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1983년 가을 시즌에 맞추어 프랑스 헤리티지 브랜드를 위한 자신의 첫 컬렉션을 발표해 '죽은 샤넬을 환생시켰다'는 극찬을 받았다.
↑사진 = 1983년 1월 첫 데뷔작 샤넬 컬렉션을 치룬 칼 라거펠트는 '죽은 샤넬을 환생시켰다'는 극찬을 받았다.
샤넬의 지휘봉을 잡은 약 35년 동안 칼 라거펠트는 브랜드 설립자 코코 샤넬이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선보인 브랜드 상징이자 한때는 혁명적이었던 실루엣에 대해 일관된 경의를 표했다.
또한 서로 맞물린 'CC'모노그래프와 같은 보다 현실적인 잘 팔리는 요소들을 소개하며 회사를 멀티-카테고리 블록버스터로 변모시켰다.
샤넬, 펜디, 끌로에(브랜드에 복귀해 1992~1997까지 일한 후 스텔라 맥카트니가 그의 뒤를 이었다)에서의 업무량과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칼 라거펠트는 활발한 '아웃사이드 파트너십'을 진행했다.
그 중에는 2002년의 디젤과의 콜라보레이션과 더 유명한 2004년 H&M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있는데. 후자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현재는 아주 흔한 하이-로우 디자이너 콜라보레이션을 이끌어냈다. 즉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디자이너 콜라보레이션의 원조인 셈이다.
또한 그는 밀라노의 유명한 라스칼라와 같은 극장과 마돈나부터 카일리 미노그까지 음악 공연을 위한 수많은 무대 의상을 디자인한 코스튬 디자이너며 사진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창조적인 지휘아래 하우스를 위한 광고 캠페인을 촬영하는 것 외에 그는 V 매거진, 하퍼스바자, 다양한 보그 국제판 등과 같은 인쇄 출판물을 위한 에디토리리얼 작업도 진행했다.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칼 라거펠트는 논쟁에도 익숙하다. 종교적인 전용부터 모피 사용 찬성과 하이디 클럼, 피파 미들턴, 아델 등을 가론한 여성의 외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한 악명높은 강력한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2012년에는 칼 라거펠트는 아델을 '조금 뚱뚱하다'고 부른 것이 영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어 결국 나중에 사과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입을 샤넬 드레스를 맞춤 제작했는데 메릴 스트립이 협찬비를 주지 않는다고 입기를 거부했다고 주장하며 메릴 스트립을 '짠순이'로 비유해 설전을 벌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프랑스 잡지 누메로와의 인터뷰에서 #미투 운동이 지긋지긋하다며 성추행 피해 사실을 밝힌 모델들을 비난하는 인터뷰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칼 라거펠드는 패션 역사책을 통해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으며 확실히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될 것이다.
흰색 칼라 셔츠, 넓은 검정색 넥타이, 검은색 스포츠 코트, 그리고 손가락이 없는 검은 가죽 장갑, 까만 선글라스, 백발의 포니테일 머리 등으로 구성된 그의 독특한 의상은 칼 라거펠트와 동의어인 이미지가 되었으며 그이 이름은 영원히 패션 어휘집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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