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뉴스 | 2019-02-19 |
'샤넬의 전설' 칼 라거펠트, 향년 85세로 영원한 안식
1984년부터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칼 라거 펠트는 창업자 코코 샤넬의 근본 정신을 계승하고 샤넬에 동시대 생명력을 불어 넣으며 샤넬 제국 건설을 주도해왔다.
패션 거장 칼 라거펠트가 별세했다. BBC 등 외신은 19일(현지시간) 독일 출신의 전설의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파리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필드는 85세로 최근 몇주간 건강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22일(현지시간) 열린 2019 봄/여름 샤넬 꾸띄르 컬렉션에 칼 라거펠트가 나타나지 않아 그가 곧 물러날지도 모른다는 은퇴설이 일파만파 확산됐다.
샤넬은 2019 봄/여름 샤넬 꾸띄르 컬렉션을 두 번이나 개최했지만 샤넬 패션쇼의 상징적인 존재 칼 라거펠트는 피날레 등 그 어느 곳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관객들이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칼 라거펠드는 30년 넘게 샤넬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 지금까지 1년동안 6번에 걸쳐 샤넬의 기성복 쇼와 꾸띄르 쇼, 크루즈 쇼를 진행해왔다.
동시에 끌로에와 펜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자신의 브랜드 '칼 라거펠트'를 전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한편 독일 출신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어려서부터 드로잉에 뛰어났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 혼자 책을 읽고 공상을 즐겼으며 예술과 옷에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1952년 프랑스로 이주한 칼 라거펠트는 1954년 국제양모사무국 콘테스트에서 코트 부문 1등을 수상하면서 파리 패션계에 입문했다.
칼 라거펠트는 1955년부터 피에르 발맹 하우스에서 견습 디자이너로 일했고, 3년 후에는 장 파투로 자리를 옮겨 5년간 꾸띄르 컬렉션을 진행했다.
그러나 칼 라거펠트는 보수적이고 느린 변화를 추구하는 파리 꾸띄르의 세계에 점차 염증을 느꼈고, 결국 1963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독립해 자신의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같은 경연대회에서 드레스 부문 1등을 차지하며 디올의 계승자로 부상한 이브 생 로랑과는 대조적인 행보였다.
1961년 자신의 꾸띄르 하우스를 설립한 이브 생 로랑과 달리 칼 라거펠트는 파리 패션계의 아웃사이더로서 마리오발렌티노와 크리지아, 찰스 주르당 등 다양한 브랜드를 위해 디자인을 제공하면서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1964년부터 끌로에에 합류해 수석디자이너로서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끈 칼 라거펠트는 펜디의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면서 요즘 세계 패션계에서 기본이 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원조가 되었다.
끌로에와 펜디와의 성공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칼 라거펠트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꿰뚫어보는 정확한 판단력과 시대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이어 샤넬은 1982년 9월 칼 라거펠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독일인이자 기성복 디자이너라는 칼 라거펠트의 정체성과 경력이 거센 반발과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그의 샤넬 입성을 막지는 못했다.
샤넬의 소유주들은 샤넬 하우스에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적극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했고 그 적임자로 칼 라거펠트를 선택했다.
1983년 1월 샤넬 오뜨 꾸띄르 컬렉션 데뷔 무대를 통해 칼 라거펠트는 죽은 샤넬을 환생시켰다는 평가를 이끌어내며 꾸끠르의 세계에 회귀했다.
끌로에와의 계약이 종료된 직후 1984년부터는 샤넬의 프레타 포르테까지 감독하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샤넬 제국의 건설을 주도했다. 칼 라거펠트는 창업자 코코 샤넬의 근본 정신을 계승하며 동시대의 새로운 취향을 가미해 샤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칼 라거펠트에 의해 샤넬의 오랜 클래식 아이템들은 대중적인 거리 문화 요소들과 섞여 젊고 캐주얼하게 변화시켰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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