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토크 | 디자이너 신재희, 재희신 | 2011-05-15 |
절제된 동양적 미학과 철학적 미니멀리즘의 조화를 그려내는 신재희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디자이너 신재희의 남성복 브랜드 ‘재희신’의 아뜰리에를 찾았다. 쇼룸에 들어서자 들려오는 감각적인 비트의 하우스 음악과 가공하지 않은 시멘트를 제멋대로 발라 놓은 거친 벽면, 그리고 육중함이 느껴지는 쇠 여닫이문이 절묘한 부조화 속 조화를 이루었다. 실내 인테리어만 봐도 알 수 있듯 디자이너 신재희는 자연과 아날로그적인 감성에 집착하는 마초 기질이 있는 모던한 ‘올드보이’였다.
백열등으로 환한 사무실과 분리된 인터뷰 장소는 어두운 공간에 중앙만 포지셔닝된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는 새침한 스튜디오 분위기였다. 어둠에 시각이 익숙해질 즈음 행어에 걸린 다크한 모노톤의 ‘JEHEE SHEEN’ 옷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첫 느낌은 미니멀한가하면 아방가르드했고, 모던한가하면 젠(Zen)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벨기에풍 아방가르드도도 일본풍 젠도 아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면서도 처음 보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바라보고서야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두루마기였다. 아방가르드한 누빔 코트 안에는 두루마기가 숨은 그림처럼 스며 있었다.
한국 패션도 명승부 명장면이 필요하다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른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결과를 모르기 때문이지만 장면 하나 하나가 경기 흐름을 이루고 때론 드라마 같은 순간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나온 한대화의 역전 스리런 홈런,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 16강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이 터트린 역전골, 2010년 김연아가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눈물을 흘리던 장면 등 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명장면이 있을 것이다. 그 마약적인 속성 때문에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경기장을 찾는다. 바로 극적인 순간을 느끼고 싶은 욕망 때문일 것이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스포츠처럼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고 디자이너가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만큼 기대 심리도 클 것이고 결국 패션에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패션에서도 스포츠처럼 극적인 순간이 있다. 그 옛날 패션쇼에서 디올의 뉴록을 처음 봤던 짜릿함처럼, 멋진 옷을 발견했을 때의 흥분과 멋진 패션쇼를 봤을 때의 감동이 그것이다. 평생 기억에 남는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관객들은 1년에 두 번 패션쇼장을 찾고, 패션 디자이너들은 극적인 순간을 기대하며 런웨이를 통해 자신의 패션 세계를 선보인다. 특히 젊은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에너지는 한국 패션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 중심에 디자이너 신재희가 있다. 그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패션 DNA를 가진 디자이너다.
그에게 패션쇼는 스포츠와 같다. 자신과의 싸움이자, 시간과의 싸움이자, 크리에이티브와의 싸움이다. 관객은 바이어와 프레스, 관객들이다. 그들에게 극적인 명장면을 선보이는 것은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좋은 디자이너들은 카피를 하고 위대한 디자이너는 훔친다(Good designers copy, great designers steal) 라고 했던가. 어쩌면 디자이너 신재희에게 주어진 6개월의 시간은 ‘창조의 대도(?)’가 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20세기의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그에게 유혹을 손짓을 보낸다. 즐거운 유혹이다. 패션을 창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아트작품처럼 걸려 있는 박제된 오브제가 아닌 사람들이 소통하고 즐길 수 있는 생활 속 패션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에게 패션은 사람들과의 예술적 교감을 위한 소통적 도구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늘 예술과 함께 한다. 패션과 예술은 본질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본질이다. 예술이 우리에게 감동과 경이로움, 기쁨을 주듯 매일의 생활에서 패션 또한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동시대적인 인간상을 담아왔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후세인 사랴얀이 미래주의를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앞서간 예술가들 덕분이죠. 이탈리아 미래파의 거장 옴베르토 보초니의 ‘공간속에서의 연속적인 단일 형태들’과 후세인 사라얀의 2009 봄/여름 컬렉션 ‘관성’은 ‘공간 안에서 지속성을 갖는 움직임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습니다. 예술가들은 인간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들 또한 내일의 트렌드를 셋업하기 위해 고민하죠. 따라서 예술가들이 상업 예술의 최전선에 있는 패션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추상화가 마크 코스코나 이브 클라인의 작품에 나타난 색의 영역에 심취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초현실주의 작가 프렌시스 베이컨의 ’미셀레리의 초상‘을 보면서 인간의 내면세계와 심리 상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컬렉션에 꼭 응용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감은 스쳐가는 찰나에서 잡아낸다. 굳이 영감의 원천을 들라면 스트리트 패션에서 찾아낼 수 있는 캐주얼과 데일리 감성이다. 옷장에 모셔두는 옷이 아닌 일상 속에서 함께하는 옷 말이다. 그의 대안은 인간적이고 편안한 옷이다.
“한 벌로 입는 옷이 아니라 믹스매치가 가능한 디자인과 옷장에 처박혀 어쩌다 한번 손이 가는 옷이 아닌 자주 입게 되는 옷을 만드는 것이죠. 그것을 위해 정장마저도 워싱 처리를 통해 긴장감을 빼려고 노력하죠. 앞으로 삼청동에 어울릴만한 남성룩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술가적 감성이나 철학적인 깊이가 담긴 그런 옷을 말이죠.”
동양이라는 그릇에 인간을 담다
디자이너 신재희는 지난 10월 2014 봄여름 컬렉션을 통해 자신만의 에스프리를 다시 한번 과사했다. 쇼장을 압도하는 웅장한 북소리로 시작된 신재희의 컬렉션은 ‘날 것’ 그대로였다. 전혀 가공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의 의도가 담긴 듯 최소한의 디테일과 컬러로 남성성을 극대화시켰다. 옷의 베이식한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되 브랜드의 시그너처 컬러인 블랙과 화이트를 중심으로 모던한 스타일로 표현되었다. 이제는 시즌리스 소재가 된 가죽의 활약이 돋보이기도 했다. 재킷이나 집업의 가슴과 팔 부분에 가죽을 굵은 띠처럼 덧대어 시크함을 곁들인 것. 소재 또한 자연친화적인 면까지 고려해 천연 섬유인 텐셀과 면을 믹스해 편안함과 고급스러움을 선사했다.
그는 2010 가을/겨울 서울 컬렉션을 통해 국내에 이름을 알렸다. 첫 컬렉션은 '중용'이라는 주제로 선과 악을 다뤘다. 또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패션브랜드 육성 프로젝트인 'Seoul's 10 Soul'에 선정되어 트라노이 전시 참가와 컬렉션 개최를 지원을 받았다. 그는 패션쇼를 통해 철학을 이야기한다. 보이는 외면보다 내면에 더 신경 쓰는 동양적인 철학이다. 다소 어렵다고 느낄 정도로 쇼에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그의 옷을 만드는 과정은 ‘오늘의 인간’과 ‘내일의 인간’이 가진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네오휴머니즘’이라고 표현한다.
“르네상스와 같은 사조나 유럽의 문화적 깊이는 컨템포러리 패션을 만드는 밑바탕이자 저력입니다. 때문에 한국 패션에 대해 생각할 때 전통 문화를 깊이 들여다보게 되죠. 그런데 생각보다 어려워요. 이것을 내면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에 집착하다보면 고민의 깊이는 그만큼 깊어지죠.”
2011 봄/여름 서울 컬렉션에서는 ‘절제’라는 테마에 동양의 무도인 검도를 선보이며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동양의 많은 무도 중 검도는 상대방을 공격하기보다 자기 수양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절제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직접 검도복은 입어 본 느낌은 옷 자체가 딱딱하고 끈을 묶는 부분, 겹쳐 입고 강하게 조이는 부분이 많았다. 그 느낌은 자연을 닮은 여유로운 실루엣과 부피감, 여밈 디테일로 선보였다. 승려복에서 모티브를 얻은 드레이프 팬츠와 티셔츠도 주목을 끌었다. 목사나 신부는 단정하고 딱딱한 반면 스님은 ‘땡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분히 인간적이고 친근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적인 승려복 이미지에 모던한 소재를 사용해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미래적인 한마디로 영화 <스타워즈>에서 제다이 전사들이 입고 나온 미래적인 스타일을 재창조했다. 그가 만드는 옷에는 그의 패션 철학처럼 대립되는 두 가지 옷이 적용된다. 어깨를 조인다면 어딘가는 풀어주는 데가 있다. 또한 반드시 감아 내려고 하는 것이 ‘긴장감’이다. 긴장감이 있으면서도 편안한 옷이다.
“힙합 바지를 입은 친구들이 껄렁껄렁해질 수밖에 없고 넥타이에 베스트, 재킷을 차려 입고 외출하면 걸음걸이가 달라지는 것처럼 옷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유러피언의 공식이 아닌 브랜드 ‘JEHEE SHEEN’만의 방식으로 보이는 장치를 하죠. 어깨를 조인다든가 가슴을 조인다든가 옷자락을 풍성하게 해서 걸을 때 바람을 느끼고 자연을 느끼면서 드라마틱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디테일에 특히 신경을 씁니다.”
그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는 가장 동양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가치는 절제된 스타일과 무드로써 표현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그만의 패션 철학이다. 또한 그의 컬렉션에는 늘 철이 오브제처럼 등장한다. 철의 강함, 변함없음, 단단한 성질처럼 모방할 수 없는 순수함과 고급스러움을 지향하겠다는 디자이너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백지에 그려나간 동양적 미니멀리즘
디자이너 신재희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모든 사물의 오리진에 대해 무궁무진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그의 눈에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나 개나 고양이의 눈은 모두 비슷했다. 그가 기억하기에 어린 시절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지는 않았다. 다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좀 유별난 아이였을 뿐이다. 법관이나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고3이 되면서 인문계 출신으로 미대(?)가 있어 너무 좋았다. 바로 의상학과였다.
그는 1998년 건국대학교 의상학과를 입학해 새내기 시절부터 세계를 무대에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었다. 신입생 환영식에서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의상학과에 들어왔다”고 포부를 말하자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그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선배들의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었다.
“죽는 순간까지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 자체에 매력을 느껴 무작정 의상학과를 지원했어요. 그냥 내 길이다 싶었고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죠.”
패션에 대한 열정은 불탔지만 백지 상태로 입학한 학과 생활은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며 들어온 감각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가 학교에 적응해 나가는 최고 무기는 성실함뿐이었다. 아이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패턴 학원과 일러스트 학원을 다니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고 군 제대 후에는 동대문에서 직접 옷을 떼다 팔면서 패션의 가치와 가격에 대한 고민도 했다.
그럼에도 매순간 치고 올라오는 2% 부족한 갈망은 어쩔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옷을 만드는 원리가 아닌, 공식화된 패턴을 배우며 빈껍데기만 바꿔가며 디자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선택한 것이 유학이었다. 목적지는 이태리였다.
신입생 시절 선배들의 비웃음을 샀던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꿈에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그는 2003년 이태리 유학길에 올라 이태리 마랑고니 일반 코스에 2학년으로 편입한 후 두각을 나타내며 현지 교수들의 인정을 받았다. 마랑고니에서는 학생들의 진정성과 성실성을 높게 평가하는 학풍 때문이었다.
“이미 한국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왔기 때문에 수업 내용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가장 힘든 점은 제가 디자인으로 학교를 설득하는 과정이었어요. 학교에서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강요하지 않았거든요.”
첫 패턴 시간이었다. 무작정 마네킹을 주며 아무렇게나 다트를 잡아보라는 것이었다.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첫 패턴 시간에는 가슴 다트를 BP를 향해 지나가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마랑고니에서 그는 처음부터 하나의 고정 값을 대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교육 방식은 그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교수들의 칭찬과 자신이 세운 비전으로 인해 그는 나날이 ‘일취월장’ ‘청출어람’이라는 단어에 걸 맞는 폭풍 성장을 한다.
마랑고니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교수들의 만장일치로 4학년을 건너뛰고 바로 최종코스인 마스터스 코스로 월반, 마랑고니 5년 과정을 3년 만에 마쳤다. 유학생에게 유례가 없는 특전이었다. 그런 그가 졸업 후에는 바로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입사한 것은 정해진 엘리트 코스였다. 아르마니에서 3년간 남성복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그는 3년 동안 아르마니에서 배운 것은 장인 정신이었다. 그들은 몇 십년동안 만드는 티셔츠 한 장에도 수십년된 장인들이 또다시 패턴을 고민했다. 속옷 한 장에도 7차례 이상의 가봉을 본다. 무심코 입은 아르마니 이너가 괜히 명품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디자이너로 일하는 틈틈이 자신의 브랜드를 준비했다. 그러던 중 2009년 1월 남성복 ‘JEHEE SHEEN’을 런칭하고 피티워모에 참가, 신인 디자이너로 첫 신고식을 치렀다. 해외 각국 바이어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2월에는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유명 트레이드쇼인 '트라노이'에도 참가했다. 해외 무대에서 먼저 인정을 받은 그의 옷은 영국, 독일, 캐나다 등 해외 각국에서 팔리고 있다. 세계 진출을 위해 한단계 씩 올라가고 있는 국내 신진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인상 깊은 커리어라 할 수 있다.
‘한국 패션’에서 한국의 ‘패션 공간’으로 진화
최근 20년 동안 국내 패션 시장에서 해외 브랜드의 영향력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1990년대중반 부터 시작된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의 서울상륙작전의 성공은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를 한국 하이엔드 패션의 주류로 등장하게 만들었다. 이제 한국 디자이너라고 해서 받을 수 있는 특권은 없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위축과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 성장’으로 요약되는 이 사태를 두고 ‘한국 패션의 영향력 상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기성 디자이너만을 염두에 둔다면 맞는 말이겠지만 새로운 패션 DNA로 무장한 신재희 같은 신진 디자이너를 두고 본다면 틀린 말이다.
자본, 기술, 노동력, 문화가 국경을 넘어 빠르게 이동하고 유포되고 있고 지구적 차원의 교류와 소통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한국 패션은 거시적인 관점을 갖춘 새로운 패션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신재희의 생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시장을 ‘한국 패션’에만 제한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패션 공간’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패션’이라는 제한된 틀로는 글로벌이나 다문화라는 새로운 문화 담론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언어와 국가의 장벽은 넘나드는 역동적이고 거침없는 패션 공간의 생성과 해체, 재구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의 ‘패션 공간’에서 한국 패션이 위축되고 해외 패션이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패션과 해외 패션이 서로 침투하고 견제하며 만들어 내는 역동적 공간이 생성된다고 보면 됩니다. ‘한국 패션’의 장이 위축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패션 공간’으로 활대되는 것이죠.”
이러한 한국의 ‘패션 공간’에 내놓을 한국 패션의 대안이 바로 해외에서 커리어를 쌓고 브랜드를 런칭한 후 국내에 들어온 신재희 같은 젊은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에게 국적 있는 메이드인코리아는 무의미하다. 이들은 이미 글로벌이라는 갑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갑옷 안에는 한국인이기에 태생적으로 내재된 한국적 패션 DNA가 숨어있고, 부단히 정체성 찾기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무국적 문학 코드로 소설을 써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상실의시대》를 쓴 무라카미 하루키나 일본인이지만 파리지앵의 시각으로 오리엔탈을 재해석한 다카다 겐조처럼, 우리의 젊은 디자이너들도 이제 열린 마인드와 글로벌 마인드를 가져야 할 것이다.
“한국 패션 시장에서 해외 패션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한국 패션이 문화적 교환과 지구적 순환으로서 세계 패션의 장에 편입되었다는 즐거운 반증입니다. 이제 한국의 ‘패션 공간’은 자율적인 별개의 실체가 아닌 세계 패션 공간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는 것이죠.”
한국 패션과 세계 패션은 나무와 물결과 같다. 한국 패션은 한국의 토양에서 자라난 나무들의 잎새와 열매를 관찰하는 일 뿐 아니라 세계 패션의 공간으로부터 밀려오는 물결이 나무에 미치는 세밀한 움직임까지 포착해야 한다. 앞으로 한국의 ‘패션 공간’은 바로 나무와 물결이 요동치며 만들어 내는 역동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거리를 지나가다가 명품을 발견했어요. 자세히 보니 전혀 들어보지 못한 브랜드였어요. 그런데 가격은 이브생로랑과 비슷하더군요. 잘 만들어졌고 느낌이 좋아서 샀어요. 그렇게 구입한 제품은 그 사람에게 오랫동안 명품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번에는 반대의 경우에요. 굉장히 저렴한 옷이에요. 너무 편해서 즐겨 입게 되고 명품 이상의 가치를 느낍니다. 저는 이 또한 명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대중적은 많이 입는 SPA 브랜드 유니클로도 그 제품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면 명품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유니클로나 자라를 명품으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건 제품에 완벽한 퀄리티와 오리지날리티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명품의 대체품으로만 만족한다. 물론 사회적 인식이나 가격을 떠나 구매한 브랜드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면 샤넬이나 디올 등 럭셔리 제품을 입는 사람들보다 더 큰 자기만족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지만 말이다. 물론 완벽한 퀄리티와 오리지날리티가 전제됐을 때 가능하다.
그는 일에 있어서는 워크홀릭에 가까울 정도로 엄격하고 섬세하지만 평소 생활은 다르다. 일상 마져 그렇게 산다면 숨이 막힐 것이다. 슬럼프에 빠지면 하루 종일 흑백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떠난다. 삼청동이나 경복궁으로 가서 산책을 하거나 나무 재질을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고궁에 자주 가는 이유는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된 느낌이 좋아서다.
해외컬렉션 진출은 때가 되면 과감하게 지를(?) 생각이다. 하지만 시장의 니즈가 없으면 또 몇 년 미뤄질 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문을 두드리기 전에 세상이 먼저 자신에게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린다. 어느 쪽이 먼저 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목표를 향해 그저 자심만의 마이웨이에 올인할 뿐이다.
디자이너보다는 예술가, 철학가라는 말이 더 듣고 싶다는 그는 평소 즐겨 찾는 삼청동, 경복궁에 느낀 예술적 여유와 철학적 깊이를 ‘JEHEE SHEEN’만의 독창적인 감각과 명확한 아이덴티티로 완성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경험할수록 매력적인 옷, 진정한 하이앤드 패션의 정상이 되기 위해 브랜드 ‘JEHEE SHEEN’과 디자이너 신재희는 오늘도 굳건한 진정성을 무기로 대중과 소통하며 폭풍 성장 중이다.
패션엔 유재부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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