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토크 | 디자이너 이석태, 칼이석태 2014-05-23

구조적인 실루엣과 아방가르드로 해외 패션피플 사로잡은 이석태의 도전



우리는 너무 가까이에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를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공기와 물이 그렇고, 김기덕 감독이 그렇고, 패션이 그렇다. 그 소중함을 몰라주는 사이 환경은 파괴되고 천재 감독은 좌절하고, 한국 패션은 수입 브랜드의 아류 취급을 당한다.

그럼 이 시점에서 한국 패션 시장의 현재를 보자. 1990년대 중반부터 ‘루이비통’과 ‘샤넬’ 등 명품으로 분칠한 수입 브랜드가 야금야금 한국 하이엔드패션 시장을 먹더니, MCM’과 ‘루이까또즈’와 같은 해외 출신 입양 브랜드들이 가세해 지하철을 타거나 패션 거리를 다니다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명품 대체재 성격의 국민 브랜드가 되었다.

여기에 그동안 동대문 시장 중심의 한국 저가 패션 시장을 ‘자라’와 ‘H&M’으로 대표되는 SPA라는 거대 공룡이 잠식중이다.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그 기세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오죽하면 국내 중가 캐주얼 브랜드들조차 자신들의 정체성을 SPA라고 외친다. 패션 양극화의 중심에 우리가 아닌 타자가 서있는 셈이다.

국내 백화점들의 국내 브랜드와 수입 브랜드의 차별화 전략(?)은 이미 오랜 된 관행이자 고질적인 불치병이다. 물론 정부나 서울시는 젊은 패션 디자이너를 육성하기 위해 국민 세금으로 재정적 지원을 하지만 그 돈은 실제 패션쇼나 페어가 들어가는 비용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시점에서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나 서울시가 앞장서 우리 젊은 디자이너들이 백화점에 외국 패션 유통처럼 완사입으로 옷을 팔 수 있는 유통 혁명을 가져온다면 굳이 국민 세금으로 디자이너들의 패션쇼 비용을 대주거나 학생들의 코 뭍은 돈을 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근본적인 대책 없이 몇 푼 안 되는 자금 지원으로 서울시 공무원이 젊은 디자이너를 좌지우지하는 한 한국 패션의 세계5대 컬렉션 진입은 그야말로 발칙한 공염불에 불과하다. 대가를 지불하고 불러오는 해외 바이어 뿐 아니라 국내 바이어들도 참여하는 수주형 서울컬렉션으로 변신하지 않고서는 그야말로 쇼쇼쇼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이석태라는 젊은 디자이너의 최근 행보를 주목했다.

세계가 아티스트 이석태에게 주목하는 이유

구조적이고 아방가르드하면서도 너무 어렵지 않고 웨어러블한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의 컬렉션은 천편일률적인 패션과는 상극이다. 주변에서는 그에게 좀 더 대중적이고 상업성을 입히라는 오지랖 넓은 조언도 하지만 늘 한결같은 패션에 대한 이석태만의 가치관은 변할 리 없다. 오히려 한 걸음 더 진보하지 못하는 국내 하이 엔드 패션 업계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고 말한다.

파리에서의 유학으로 인해 데뷔 이래 줄곧 구조적 아방가르드를 추구하는 모던 컨템포러리륽 추구하는 칼 이석태는 옷에 대한 구조적 해석과 시크하고 무게감 있는 테일러링이 특징이다. 또한 다양한 스트릿 패션과 문화적 감성을 수공예적으로 접근하고 있어 일본이나 벨기에 아방가르드와는 또다른 한국적인 아방가르드를 선보인다.

지난 2013 가을/겨울 서울 컬렉션에서 그가 선보인 컬렉션 테마는 트렌디하지만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하는힙스터였다. 꿀벌을 모티브로 곡선적인 커팅을 이용해 소재를 믹스매치 한 컬렉션을 선보여 패션쇼에서 선보인 벌들의 아우성만큼이나 화제를 모았다. 그 여세를 몰아 이번 2014 /여름 서울 컬렉션에서 그가 선보인 컬렉션 테마는리젝티드(REJECTED)’였다. 독실한 크리스찬으로도 유명한 그가 성경에서 영감을 받은 테마라고 한다. 평소 성경을 자주 읽는다는 그는건축가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 돌이 되었나니라는 구약 성경의 시편 구절에서버린 돌의 영어식 표현‘REJECTED’를 테마로 선정했다. 건축적 실루엣을 강조하고 톤온톤 소재의 믹스매치와 오버사이즈의 Y 실루엣을 선보인 이 테마는 한달 전에 열린 뉴욕 컬렉션에도 선보여 신선한 모던함과 구조적 아름다움이 돋보인 패션쇼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컨셉 코리아를 통해 뉴욕 컬렉션에 처음 참가한 그는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퀄리티 있는 옷으로 해외 컬렉션으로 승부하고 싶다던 꿈이 이루어 진 것이다. 반응도 좋았다. 프레스와 바이어들이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자신의 감각적인 옷을 알아보는 뉴욕 현지의 패션 피플의 태도가 너무 적극적이어서 스스로도 놀랐다고.

<바자> 러시아판의 영향력 있는 에디터이자 스트리트 패션의 지존이라 불리는 미라슬로바 듀마가 칼이석태의 원피스를 입고 파파라치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파격적인 패션으로 유명한 레이디 가가 또한 그의 컬렉션에 반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 뉴욕 컬렉션을 통해 실력만으로도 해외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이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였다. 단순히 한국을 알리는 이미지 패션이 아니라 입혀지는 웨어러블 패션에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분명한 그만의 아이덴티티와 컨템포러리 트렌드를 읽는 혜안 때문일 것이다.

패션 청년, 한국패션의 허리로 성장하다

1994년 건국대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한 이석태는 패션지 <>지를 통해 패션 디자이너 이신우의 ‘파리가 세계 패션의 헤게모니를 잡는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보고 그만의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패션 캐피털 파리에 직접 나가 승부하겠다는 포부였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많은 유럽 디자인하우스에 포트폴리오와 편지를 써서 보냈다. 한 달 후 티에리 뮈글러에서 먼저 콜이 왔다. 이후 많은 하우스와 미팅을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포트폴리오는 맘에 드는데 언어가 장벽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라크르와를 3시간이나 기다려 미팅을 했지만 대답은 같았다.

1년 어학 코스를 마친 그는 파리의상조합 2학년에 편입해 1996년 졸업하고 이듬해에는 파리 스튜디오 베르소도 졸업했다. 두 학교에서 그가 배운 것은 엄격함과 치밀함이었다. 지금도 이석태에게 레테르처럼 붙어다는 ‘패턴이 좋은 디자이너’라는 닉네임도 당시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터이다.

졸업 후 신진디자이너 콩쿨에 나가 베스트 10에 들어간 덕분에 크리스티앙 디올에 입사해 유럽의 정통 패션을 접했고 이후 니나리찌와 소니아 리키엘에서도 근무를 했다.

귀국한 그는 디자이너 브랜드 루비나부띠끄에 근무하면서 중앙디자인콘테스트에 응모해 입상하면서 JDG컬렉션 멤버가 되었고 이즈음 자신의 브랜드 ‘칼’을 론칭한 그는 JDG컬렉션과 SFAA 컬렉션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2000년에는 갤러리아백화점과 컬렉티드라는 편집숍에 입점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2001년 돌연 자신의 브랜드를 접고 내셔널 브랜드인 정하코리아 ‘미니멈’의 디자인실장으로 입사한다. 자신의 급을 스스로 한 단계 내린 것이다. 이유는 인지도에 비해 매출이 안 나오는 문제였다. 당시 자신의 추구하는 패션과 국내 내수 시장과 겉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정답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브랜드를 잡시 접고 6년 동안 ‘Y&K’ 디자인실장, ‘이상봉 파리스 컬렉션’ 실장, YK038’ 디자인실장을 거쳤다. 새롭게 패션 유통에 눈을 뜬 그는 가로수길에 ‘KAAL'이라는 컨셉숍을 오픈하며 서울 컬렉션 컴백의 발판을 다졌다. 그리고 2008 10 24, 6년간의 공백을 깨고 그의 브랜드 ‘칼이석태’는 2009 S/S 서울 컬렉션을 통해 화려하게 컴백했다. 공백이 컸기에 쇼 시작 전 쇼 장을 가득매운 관객 수 만큼이나 그의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그의 컴백 컬렉션이 호평을 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6년전 고민에 대한 정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패션 세계와 대중성의 접점을 고민해온 디자이너의 성숙함과 조화로움이 v패션쇼에 고스란히 묻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수트 재킷으로 명성을 쌓은 그의 탄탄한 테일러링은 자유롭고 색다른 아이디어들과 만나 더욱 모던한 아방가르드로 변주되었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프랑스 롱샹 성당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쇼에는 크고 둔탁한 이미지는 구조적인 테일러링의 팬츠와 스커트에 돋보였다. 컬렉션의 문을 연 새틴원피스는 아트성과 대중성의 접점을 찾은 이석태 패션의 전부를 말해주는 듯 했다. 구조적인 어깨 패턴과 반짝이는 파스텔톤 하늘색 새틴은 여성스러움을 더욱 견고하게 다져줬기 때문이다. 그의 스테디셀러인 재킷도 날개를 달았다. 앞면은 이석태식(?) 구조적인 디테일과 테일러링으로 제안했지만 뒷모습은 실크나 가볍고 부드러운 다양한 소재가 가미되어 완벽하게 다른 모습을 재현한다. 가볍고 부드러운 소재는 뒤태를 강조하는 듯 늘어뜨려져 바람에 날렸고, 딱딱한 우븐 소재는 색다른 볼륨감을 연출했다. ‘이석태식 패션’이라는 화두를 이끌어 낸 순간이었다.

지난 3월에 열린 서울패션위크 F/W 2011에서도 그는 변형된 테일러링을 중심으로 다양한 커팅, 색감을 선보여 바이어와 프레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더 그레이트 믹스(The Great Mix)’라는 테마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상, 패딩, 재킷 등 다양한 아이템들 믹싱했다. 특히 가죽, 나일론, 울 소재를 사용해 야상부터 패딩, 베스트, 재킷, 코트 등의 아이템까지 믹스매치해 해외 바이어들을 매료시켰다.

2011년 현재는 국적, 인종 모두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추세에 맞춰 모든 것을 섞어 옷이란 개념에 스스로 다시 규정짓고 싶었습니다. 패션쇼는 매번 정해진 개념을 흔들고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는 자신의 프리미엄 라인인‘칼이석태’의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계기로 비즈니스적으로 안정적인 뿌리내린다면 베이스를 외국으로 옮겨 해외 브랜드와 경쟁하고 싶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2~3년 후에는 뉴욕이나 파리의 해외 컬렉션에 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에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완사입으로 주문하는 백화점이나 편집매장 바이어가 없기 때문이다.


기업과 예술 장르와의 협업에도 관심

그는 기업과의 콜라보레이션(협업)에도 관심이 많다. 몇 년전에 주목을 받은 더블유쿱과의 콜라보레이션인 ‘칼 플러스 프런트로우(KAAL+FRONTROW)’ 컬렉션이 대표적이다. ‘프런트로우’는 인터넷 쇼핑몰(www.frontrow.co.kr)과 ‘위즈위드’ 등 온라인 유통을 중심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한 패션 크리에이티브 랩으로, 디자인의 구조적 해석과 과감하고 정교한 테일러링으로 주목받고 있는 디자이너 이석태와 협업, 다양한 패브릭과 컬러의 조화로 현대적이고 파워풀한 모던 컨템포러리 룩을 선보여 화제를 낳았다.몇 년에는 '한국패션문화페스티벌'에도 참가해 건축가 김영재 씨와 재미있는 패션과 건축의 만남을 보여주었다. 예술의 장르를 넘나들며 대중에게 '옷의 도약'을 보여주었다.

"저에게 옷은 작은 건축입니다. 집이나 건물이 그렇듯, 옷도 사람이 들어가 쉬게 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공간이니까요. 건축가 김영재 씨와 그런 점을 살리는 전시를 하자고 이야기를 나눴고, 함께 기하학적인 무늬와 설치를 옷에 반영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가 아파트나 자동차, 핸드폰 작업에 공동 참여하는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앞으로 패션과 다른 예술 장르와의 교류는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한국 패션의 미래는 그만큼 더 부가가기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FTA가 본격화되는 세계 시장의 흐름으로 볼 때 아마 국내 진출을 염두에 두는 유럽이나 일본 중국 브랜드들이 우리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콜을 할 것이다. 물론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기회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만큼 한국 패션의 젊은 동력을 잃어버리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최근 해외 패션 피플이나 바이어들의 관심이 그에게 집중된 이유는 간단하다. 색다른 아이디어와 완성도를 새로운 이미지로 다국적으로 통할 수 있는 그만의 색깔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패스트 패션의 순간 쾌락(?)에 빠진 세계 패션이 젊은 동력을 잃어버린 그 틈새시장에 싱싱하고 역동적인, 2002 월드컵의 붉은 악마 같은 우리 젊은 디자이너들의 감성이 유럽의 바이어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가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예술적 경지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세계를 감동시킨 것처럼 말이다.

도전을 즐기는 모험정신과 신앙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인 사고

이석태의 최근 행보는 국내 패션업계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세대 원로 디자이너도 최근 급성장하는 신진 디자이너도 아닌 ‘낀 세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한국 패션의 가장 중요한 허리라는 사실이다. 그는 국내 디자이너 패션업계가 가장 힘들어 하던 IMF 시절, 신진 디자이너로 데뷔했고 당시 함께 어깨를 겨루던 동기들이 하나 둘 패션계를 떠났지만 오뚜기처럼 부활해 한국 패션의 미래를 짊어질 허리가 되었다. 그의 표현처럼 무엇에 홀린 듯 한 운명적인 컬렉션 컴백처럼 한국 패션의 희망이라는 부담감도 운명처럼 안아야 그의 숙제다. 그는 매이드인 코리아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어깨에 두려워진 무게감을 알기에 K패션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도 남다르다.

“문화, 예술 산업의 발전에 국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패션위크가 많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특정 행사가 아닌 패션이 생활이 됐으면 한다. 다양성과 개성을 인정하고 패션 그대로 녹여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라며 패션 문화에 대해 조언한다. 이어 “내가 만드는 옷과 디자인으로 문화, 예술 분야에 열려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천편일률적인 패션이 아닌 디자이너의 아이덴티티를 가치 있게 여기는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 컬렉션 진출을 계기로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향후 뉴욕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히고 현재 파리, 미국 등 해외 시장의 매장을 확대해 공격적인 해외 마케팅 또한 펼칠 계획이다.

이석태는 현재 국내외 패션계에서 받는 스포트라이트만큼이나 개인적으로 상처도 많은 디자이너다. 하지만 신앙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인 사고와 내셔널 브랜드와 디자이너 브랜드를 거치는 동안 터득한 많은 경험은 그만의 내공이자 장점이다. 기회는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그 대가를 지불한다. 늘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그의 프론티어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패션엔 유재부 대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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