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8-08-16 |
패션지의 은밀한 거래...이젠 재벌 럭셔리 광고에 휘둘리는 편집권
엘르, 마리끌레르, 베니티페어 9월호 표지에 루이비통 홍보대사들이 표지와 내지 화보까지 거의 독점적으로 치장하고 장식했다. 우연의 일치일가? 아니면 협찬일까?
요즘 세계 패션잡지 업계는 다소 우울한 상황이다. 정리 해고와 매출 부진, 폐간 등 2018년은 이익을 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잡지를 운영하는 것 조차 힘든 시기다.
이는 결국 패션 잡지들이 창조적인 편집권을 발휘하지 못하고 거대한 재벌 스폰 브랜드가 도배된 잡지 발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누구나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광고 매출 및 경영상의 이유로 순응하거나 오히려 자초하는 모순적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 불편한 진실을 감내하는 게 공존이 아닌 공멸을 앞당기는 길이라면? 패션잡지계의 최대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아마도 거대 재벌 럭셔리 브랜드로 일정부분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패션지와 재벌 럭셔리 브랜드의 은밀한 거래는 지난 몇년동안 미국 출판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럭셔리 브랜드들은 그들의 홍보대사까지 표지 모델로 등장시키고, 거의 독점 수준의 자사 제품으로 패션 화보를 꾸미는 등 패션잡지들이 편집권을 통제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심지어 브랜드가 광고 캠페인을 찍기 위해 계약한 사진작가 중 한 명을 골라 잡지 촬영을 하도록 하는 등 도를 넘어서고 있다.
게다가 특정 브랜드들은 자사 제품이 다른 브랜드 옷과 섞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등 미국 스타일링 업계에서도 악명이 높다고 한다. 최근에 나온 잡지의 패션 화보를 살펴 보면 돈을 받고 작업을 해준 소위 '페이 포 플레이(pay-for-play)'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엘르' '마리끌레르' '베니티페어' 9월호 표지는 루이비통 홍보대사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루이비통 옷으로 치장하고 장식했다. 루이비통으로 도배한 9월호 표지가 빈발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뉴욕타임즈'의 패션 디렉터 바네사 프리드만은 기사에서 루이비통 홍보 대사이자 광고 모델인 미셸 윌리암스가 '베니티페어' 9월호에 실린 것은 이상한 우연 일치의 연속이라고 주장했다.
미셀 윌리암스는 표지에서 자신이 홍보하는 브랜드 루이비통을 입고 있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셀러브리티들이 등장하는 표지에서는 꽤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루이비통 최근 광고 캠페인을 진행한 시작작가 콜리어 쇼르가 잡지 표지까지 촬영했다는 점이다. 뭔가 브랜드와 잡지의 결탁이 냄새나는 부분이다.
물론 '베니티페어'의 편집장 라디카 존스의 주장처럼,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우연일 수도 있다. 라디카 존스는 미셸 윌리암스가 표지와 내지 패션 화보에서 한번 더 루이비통을 입었고, 사진작가 콜리어 쇼르 역시 루이비통 광고 캠페인을 찍기 전에 이미 자신들이 먼저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위터 이용자 알렉스 아파토트 바센은 또 다른 루이비통의 브랜드 홍보 대사인 영화배우 루스 네가가 9월호 '마리끌레르' 표지에 등장한 것에 대해 브랜드와 잡지의 은밀한 결탁을 제기했다.
그는 루스 네가 역시 루이비통 옷을 입고 표지를 촬영했으며 내지의 패션 화보 역시 거의 독점적으로 루이비통 옷을 착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더 터무니없는 예는 또 다른 루이비통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엠마 스톤이 등장하는 '엘르' 미국판 9월호 표지다. 짐작한대로 표지에서 엠마 스톤은 루이비통을 입었고 내지 패션 화보는 단 한 장만 빼고 모두 루이비통 옷을 입었다.
또한 이 피스는 곧 출시될 루이비통의 9번째 향수 광고에도 등장한다고 한다. 거의 브랜드 카탈로그 수준이다.
벤 하셋은 9월호 엘르 미국판 표지와 화보를 촬영한 사진작가로 크레딧에 올라있다. 그는 이전에 루이비통의 향수 캠페인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그가 엠마 스톤의 새로운 광고 사진을 찍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커버 스타를 인터뷰하기 위해 작가를 고용한 마리끌레르 영국판과 베니티페어와 달리, 엘르 미국판은 전문 인터뷰어가 진행하지 않고, 엠마 스톤과 동료 배우인 절친 제니퍼 로렌스와의 아주 가벼운 전화 통화를 '인터뷰'로 실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 표지들이 루이비통과 잡지 사이에 일종의 금전적인 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루이비통이 이러한 종류의 은밀한 거래를 하는 유일한 브랜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최근 패션지의 행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은 던질 수는 있을 것이다.
"과연 이것이 패션 출판의 미래인가?" "모든 잡지 표지에 #spon 태그를 붙여야 할까?" "특정 브랜드로 도배한 셀러브리티만이 표지에 등장할 정도로 패션지가 편집 파워를 잃어버렸는가?" "잠재적인 광고 비용이 창조적인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할 만큼 가치가 있는가?"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편집(editorial)과 광고(advertising) 사이의 경계가 결코 모호해질 수 없다. 독자에게 돈을 받고 판매하는 유가지이기 때문에 고객에 대한 배려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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