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8-08-10 |
테러·미투·폭염과 홍수·지정학적 붕괴의 시대...놈코어 지고 워코어 뜬다
보통 은행 강도를 연상시키는 '얼굴을 가린 방한모인 바라클라바(balaclava)'부터 경찰들이 사용하는 '폭동 진압용 방패'에 이르기까지, 밀러터리 트렌드 워코어(Warcore)가 급부상하고 있다.
패션이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최근 '보그' 잡지가 보도한 핫 트렌드는 상당히 암울하다. 스타일 전문가들은 최신 트렌드인 워코어(Warcore)가 놈코어(Nomcore)를 대신해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새로운 패션용어 워코어의 탄생 배경을 "지정학적인 붕괴... 폭력, 혼돈, 그리고 세계에 만연한 두려움에 대한 반영"으로 묘사하고 있다. 패니 팩으로 알려진, 돈·귀중품 등을 넣고 허리에 차는 작은 주머니 범백(bumbag)의 귀환이 워코어의 시초로 보인다.
↑사진 = 발망 2018 가을/겨울 컬렉션
이미 패션 위크를 통해 유명 디자이너들은 워코어의 단초가 되는 다양한 밀리터리 룩을 선보였다. 단순히 군복이 아닌 그 안에 멀티 스트링과 유틸리티적인 주머니가 달린 스타일로 분명 야상과 카키로 대변되는 이전 밀라터리와는 구별이 되었다.
백팩역시 유틸리티적인 도구로 이용되었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들은 범백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것 같다. 로스엔젤리스 브랜드 알릭스(Alyx)는 사막에서 군인들이 착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얼굴 스카프와 대(對)탄도탄용이나 근접 보호 장갑으로 사용되는 아주 거친 패브릭으로 만든 패셔닝 조끼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 = 알릭스 광고 이미지와 헤론 브레스턴 런웨이(왼쪽부터)
또 다른 미국 브랜드인 헤론 브레스턴(Heron Preston)은 방탄 조끼같은 웨이스트코트(waistcoat)를 만들고 있다.
가장 최근에 선보인 2019 봄/여름 루이비통 남성복 패션쇼에 참석한 모델 벨라 하디드는 허벅지에 권총집처럼 묶은 루이비통 백을 착용했다. 그녀는 다소 과도해 보이는 바바클라바와 멀티-스트랩의 유틸리티 베스트를 착용한 스트리트 스타일 스타들 중 한 명이다.
↑사진 = 루이비통 백을 착용한 벨라 하디드와 알릭스 웨이스트 코트를 착용한 카니예 웨스트(완쪽부터)
사실 군복은 지난 수백년 동안 민간인들의 패션과 조화를 이루며 밀리터리 룩이라 불리며 발전해 왔다. 그결과 1800년대에 러시아와 프랑스 군대의 제복은 남성복 테일러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남성잡지 '에스콰이어'는 '강력한 패션 위크'로 나폴레옹 전쟁(1796~1815)을 묘사하기도 했다.
아쿠아스큐텀(Aquascutum)과 버버리같은 영국 브랜드들은 크림반도 전쟁과 1차세계대전 때 참호(trenche) 속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마틴 마르지엘라와 꼼 데 가르송은 종말론에 사로잡힌 우울한 패션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릭 오웬스와 카니예 웨스트의 이지(Yeezy)도 당시와 유사하게 암울한 사막과 사막 색조의 생존 장비 혹은 모델 몸 주위에 침낭으로 묶었다. 걸프전 당시인 1990년대에는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헐렁한 바지인 카고 팬츠와 인식표가 유행했었다.
최근의 다소 경솔 해보이는 종말론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기이한 특이성이다. 컬트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안티 소셜 소셜 클럽은 아예 폭동진압용 방패를 만들고 있다.
강력한 워코어의 등장에 낭만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놈코어 트렌드는 구시대의 산물이 되고 있다. 이것은 몸에 잘 맞지 않는 브랜드나 상표 없는 옷을 입은 마크 저커버그나 아담 새들러가 주도했던 '놈코어'를 너무 일찍 과거 유산으로 만들고 있다.
놈코어는 '평범한'이라는 의미의 노말(normal)과 '철저한'이라는 의미의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로 평범함을 추구하는 패션을 말한다.
뉴욕 기반의 트렌드 예측 기관 케이홀이 2013년 레포트에서 처음 사용해 2014년부터 유행했다.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보여야 한다는 사실에 지친, 동질성을 지향하는 젊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언급한 용어였다.
↑사진 = 워코어의 영향을 받은 스트리트 패션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는 개성을 중요시하는 맥시멀리즘으로 진화하면서 미니멀리즘과 비슷한 놈코어는 워코어에 최신 트렌드 자리를 내주고 있다.
여기에 구찌의 알렉산드로 미켈레나 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가 주도하는 해체주의적인 하이-엔드 패션, 슈프림과 오프-화이트와 같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영향으로 인해 밀레니얼 세대들은 21세기 전사룩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워너원 강다니엘, 방탄소년단 슈가 등 국내에서 대중적 영향력이 큰 밀레니얼 세대의 아이돌 스타들이 워코어 패션 트렌드를 확장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 아이돌 스타들은 미세 먼지를 막고 바쁜 스케줄 상 얼굴 노출을 최대한 피하고자 선택한 마스크, 볼캡, 비니 등으로 연출한 공항패션, 리허설을 위한 출근길 패션이 대중들에게 노출되면서 전사룩을 연상시키는 카리스마 시그너처 룩으로 확장된 케이스다.
모자와 마스크로 최대한 외부 노출을 피하고 블랙 혹은 디스트로이드 데님 팬츠에 빈티지한 티셔츠를 입고 셔츠를 아우터로 걸치는 새로운 스타일링 방식이 워코어 트렌드의 지침서로 대중적 영향력이 거세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진 = 원너원 강다니엘, 강다니엘, 방탄소년단 슈가, 강다니엘(좌로부터)
워코어의 부상은 사회정치적 영향과 환경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국제 테러와 전쟁, 미투, 폭염과 홍수 등과 같은 이상기후 등으로 인해 젊은 밀레니얼 세대들은 그 어느 세대들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다.
결국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으로 인해 밀리터리 풍의 카고 팬츠나 컴뱃 부츠, 카무플라주 문양, 슬로건 티 등이 스트리트 웨어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영화 역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지구를 구하는 여전사가 나오는 영화 툼레이더, 원더우먼, 레지던트 이블, 투시부터 아이언맨, 닥터 스트레인저, 토르, 캡틴 아메리카, 블랙 팬서, 스파이더맨, 데드폴 등 유니폼을 입은 마블의의 영웅에 이르기까지 영웅이 대세다.
어려서 부터 만화와 영화를 통해 이들 캐릭터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워코어 패션은 어쩌면 숙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 = 2019 봄/여름 알릭스 컬렉션
결론적으로 워코어는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그들만의 리그'로 자리 잡으며 기성 세대의 놈코어를 서서히 밀어내고 있다.
기성세대들에게 조폭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비쳤던 문신이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거부감이 없이 개성을 표현하는 패션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워코어 트렌드의 영향이다. 젠더리스와 해체주의 트렌드가 상식인 요즘, 워코어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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