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8-01-04 |
단벌신사 김정은, 신년사 연한 회색 슈트에 정치적 메시지 담았나?
정치인들의 패션에는 늘 의도가 담겨있다. 특히 컬러의 경우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검은색과 군청색의 인민복을 주로 입던 단벌신사(?) 김정은이 최근 신년사를 발표할 때 이전과 달리 연한 회색 슈트를 입고 등장해 그 의도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월 2일(현지 시간)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가 발표된 바로 다음날 기사에서 “김정은은 그의 무기고(핵·미사일)와 함께 자신의 스타일을 업데이트하며 말쑥한 차림이었다.”는 제목으로 그의 신년사 의상과 외모를 다루며 그의 스타일 변화에 주목했다.
김정은이 새해 첫날 신년사에서 선보인 핀스트라이프의 밝은 회색 슈트와 회색 넥타이를 매치한 스타일은 보다 여유 있는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선택이라는 것이 뉴욕 타임즈의 평가다. 올 2월 평창 동계 올림픽에 북한 대표단 파견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이를 위한 남북회담 가능성을 시사한 신년사 메시지를 잘 포장하고, 북한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보이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주장이다.
평소 즐겨 입었던 검정과 군청색 슈트에서 벗어난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 TV 연설에서 옅은 회색 슈트에 회색 넥타이와 검색 호피 무늬 뿔테 안경을 매치하고 머리는 깔끔하게 올백으로 뒤로 넘겼다. TV 연설에서도 예전과 달리 거의 원고를 보지 않고 유창하게 말했다. TV 영상으로 봤을 때 해를 거듭할수록 연설에서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은 신년사 이후 나온 통일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새해 연설에서 김정은을 통해 묘사된 이미지로 봤을 때 북한은 막대한 경제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이전의 어두운 마오쩌뚱 스타일의 인민복에서 더 부드러워진 연한 회색의 웨스턴-스타일 슈트로 변화를 준 것은 김정은이 자신의 새해 연설에서 강조한 평화 이미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의 새로운 스타일 변화는 북한이 핵 야욕을 달성했다는 이전의 발표에서 비롯된 것으로 ‘편안한 마음 상태’를 반영한 것 같다고 밝혔다.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 사회의 맹렬한 비난과 경제적 제재 속에서도 호시탐탐 미국의 겨냥한 긴장감 확산을 시도한 지난 1년을 보낸 후,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북한을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했다. 아울러 남한과의 군사적 긴장 완화와 대한민국과의 관계 개선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는 김정은이 신년사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고위급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제의 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3일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북측이 먼저 연락하며 이에 화답했다.
이로 인해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끊겼던 판문점 연락채널이 1년11개월 만에 복원되었고 남북 고위급 회담 성사에 대한 기대치 역시 높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김정은의 정치적 의도가 들어간 스타일 변화는 일정부분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대북 분석가들은 연설을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좌우로 몸을 흔들던 과거와 달리 올해 김정은의 신년사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2013년 자신의 첫 신년사에서 목소리가 수시로 흔들리면서 종종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2012년 4월 15일 할아버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퍼레이드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연설을 한 이후 지속적으로 지적되었던 불안감은 올해 신년사에서 전혀 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향후 북한의 움직임을 위협 용이 아닌 그 이상일 수도 있기에 예의 주시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오고 있다.
탈북자들과 대북 분석가에 따르면 밝은 컬러의 웨스턴-스타일의 슈트와 안경 뿐 아니라 그의 목소리와 양쪽을 깎은 헤어 스타일은 할아버지 김일성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김일성은 김정은의 은밀한 아버지 김정일보다 더 사교적이고 대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김정은은 업그레이드된 할아버지 코스플레이로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고 북한 주민을 수습하는 기회로 이번 새해 연설을 이용했다. 지난해 신년사를 통해 그는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선언하며 주민들의 결속을 다지기도 했다.
처음 신년사를 발표한 2013년부터 4년간 김정은은 검은색 인민복을 입고 김일성·김정은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당시 얼굴과 목소리가 확실히 앳돼 보였고 원고를 보며 읽기 급급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2016년 신년사에 뿔테 안경을 쓰기 시작했고 복장도 한층 자유로운 옅은 실선이 들어간 인민복을 바꾸었다. 그러나 작년 신년사에서 처음으로 인민복을 벗고 짙은 군청색 슈트를 입었으며 처음으로 김일성·김정일 배지도 달지 않았다. 이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넘어 홀로서기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한 이미지 메이킹 전문가는 “회색 슈트는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촉발된 부정적인 국제적 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획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거나 부적절한 소문에 둘러싸인 고객들에게 하얀색이나 회색 중에서 착용하라고 조언한다고 밝혔다.
컬러 심리학 연구에서 흰색은 결백을 나타내는 반면, 회색은 상대방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김정은은 세계적인 초점의 중심에 있다는 일종의 압력을 느꼈을 것이고 부정적인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몇 년간의 지속했던 어두운 톤에서 밝은 회색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한편 뉴욕 타임즈는 별도의 기사를 통해 “김정은이 대한민국과 직접 대화를 시작한다는 약삭빠른 새로운 전략을 통해 70년간 지속한 한미 동맹을 이간질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핵 단추가 자신의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는 김정은의 언급을 지적하며 “김정은의 부드러운 톤의 의상은 그의 메시지에까지 일관되게 이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경가스로 이복형제(김정남)를 암살하거나 고모부(장성택)를 대공 기관총으로 처형한 혐의를 받는 지도자의 나쁜 평판과 새로운 스타일은 완전히 상충한다.”고 꼬집었다.
보통 수녀들과 수사들은 순종과 순결, 청빈의 이미지를 갖는 회색의 수도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서 예수가 입었던 옷도 회색이며 순례자들도 회색 옷을 입었다. 회색은 연륜과도 연관성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머리카락이 회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회색은 깊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회색은 흰색과 검은색처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김정은이 밝은 회색을 선택한 것은 핵 개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인 제스추어일 뿐, 회색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컬러 이미지와는 다소 동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김정은의 스타일 변화는 컬러 본래의 의미와는 모순이 되지만 정치적인 메시지로는 성공을 거둔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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