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6-10-24 |
[SFW리뷰] 해체와 재구성, 2017 봄/여름 뮌 컬렉션
디자이너 한현민은 2017 봄/여름 뮌 컬렉션을 통해 더욱더 숙련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선보였다. 세번의 GN 컬렉션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서울컬렉션 데뷔 무대에서도 그 실력을 발휘해 해외 바이어들의 투표로 결정된 2017년 '텐 소울' 멤버로 당당하게 입성했다.
디자이너 한현민이 전개하는 남성복 브랜드‘뮌’은 자신의 정체성인 ‘낯설게 하기’ 철학을 기반으로 봉제의 순서와 방법, 패턴 메이킹, 디테일, 소재 개발과 실루엣 등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디자인 작업을 한다. 지난 시즌 GN 컬렉션에서 처음 그의 패션쇼를 보았다.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테마 아래 옷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녹슬어있는 필자의 패션적 뇌구조를 마구 흔들어 놓았다. 지난 시즌 그는 쇼 노트를 통해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들의 지각은 보통 자동적이며 습관화된 틀 속에 갇혀있다. 특히 일상적인 의복은 이런 자동화에 의해 애초의 신선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목적은 복식에서 재현의 관습적 코드들로 인해 지각이 무디어지게 놔두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친숙하지 않게 만들고, 지각 과정을 더욱 곤란하고 길어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끼니를 때우듯 습관적으로 옷을 입는다. 하지만 옷의 본질로 들어가면 옷은 철학이자 과학이다. 그런 점에서 ‘뮌’의 패션 쇼를 보면 마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인체의 신비를 보는 것처럼 옷에서 보지 못했던 날 것의 본질을 목격할 수 있다. 고풍스러운 소재를 사용했지만 컨템포러리 스타일을 구석구석 집어 넣어 올드하지 않은 신선함을 연출한다. 어쩌면 사진과 그래픽을 디자인을 먼저 경험한 후 패션 디자이너로 변신한 그의 이력을 패션을 다르게 보는 혜안을 주었고 그 남다른 시선이 늘 새로운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 7월에 열린 2016/17 울마크 프라이즈’ 아시아 지역대회의 남성복 부문 우승자로 선정된 작품 역시 편안하게 테일러링된 우븐 울코트와 와이드 팬츠에 셀비지를 독특하게 믹스한 룩을 선보여 심사위원단으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이번 시즌 뮌의 컨셉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서 영감을 받은 영어 영화 제목 '핸드메이든(Handmaden)'이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근대 문화가 뒤섞인 영화 속 1930~40년대 배경처럼 디자이너 한현민은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여성과 남성, 클래식과 모던의 모호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보더리스적인 융합을 선보였다.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자신의 화두를 이번에는 시대를 배경으로 위크있게 버무린 셈이다. 쇼 시작을 알리는 영상 속 미닫이 문이 열리고 하나씩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하나 둘씩 나오면서 관객들은 비로소 런웨이 위에 깔려져있는 돗자리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시즌 전체 컨셉 뿐 아니라 소재의 텍스처와 연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쇼에서 주목할 점은 디테일이었다. 셔츠의 앞 여밈을 재킷이나 드레스의 뒷면으로 디자인하고 겉감과 안감을 섞고 뒤집으며, 재킷이나 셔츠의 일부분을 재킷에 붙였는데 그 해체와 재구성은 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최고의 무기였다. 여기에 브랜드 특유의 소프트 테일러링과 핸드메이드 기법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그만의 색깔이었다. 섬세한 터치 역시 돋보였다. 데님 위에 일일이 수놓은 벚꽃나무, 원단의 헴 라인을 이용한 장식, 레이스와 실크, 돗자리처럼 직조된 특유의 우븐과 상큼한 시어서커까지 고급스러운 솓재를 이용한 패블릭 블로킹을 통한 섬세함은 어쩌면 여성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젠더리스 시대기 때문이다. 시즌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색깔, 즉 '아이덴티티'를 이미 찾아낸 그는 행복한 디자이너다. 필자는 그 정체성을 찾지 못해 디자인적인 사춘기를 겪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린과 바이올렛, 오렌지 등 이번 시즌 포인트 컬러가 뿜어내는 오묘한 색감의 에너지는 초콜렛바 이상의 열량으로 월드 라운드에서도 화이팅할 수 있는 '뮌'의 맷집을 튼튼하게 키웠다. 이 열정이라면 울 마크 프라이즈 세계 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동서양을 섞어 놓아 난해하면서도 아름다웠던 영화 <아가씨>처럼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난해함을 경계를 넘나드는 보더리스적 모호함 덕분에 서양적일 수도 있도 동양적일 수도 있는 이중적인 지킬과 하이드적 속성 때문에 해외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올드하고 촌스럽지만 시간이 갈수록 따뜻함을 더해주는 그 만의 클래식한 패브릭-브로킹 철학은 새로운 디테일, 패턴의 연구, 봉제 방법과 순서에서의 변화, 소재 개발과 실루엣 등 뉴 클래식에 대한 연구로 이어진다. 젊은 디자이너의 다소 무모해 보이는 학구적인 자세는 뉴룩을 창조한 하얀 가운을 입은 크리스찬 디올의 학구적인 태도를 연상시켰다.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에 방점을 찍은 그의 소재 놀이는 손맛을 아는 옷 짓는 젊은 청년의 혁신적인 독백으로 들렸다. 과로로 입원까지 하는 투혼을 불사른 라이징 스타 디자이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fashionn@fshionn.com
- <저작권자(c) 패션엔미디어, www.fashionn.co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