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6-10-24 |
[SFW리뷰]영 포티, 2017 봄/여름 진태옥 컬렉션
지난 2015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인 후 2년만에 한국 패션의 레전드 진태옥이 '영 포티(Young Forty)'라는 테마로 런웨이로 복귀했다. 디자이너의 길을 걸은지 반세기를 넘긴 디자이너 자신의 시그너처와 트렌드 요소를 직절히 믹스해 대중들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다시 돌아온 진태옥의 패션 쇼는 넓은 런웨이 무대 만큼이나 깊은 울림과 넓은 메아리가 울려퍼졌다. 한국 패션의 살아있는 전설 진태옥의 패션 쇼를 볼 때마다 카리스마 넘치는 노장의 아우라와 벅차오르는 감동 때문에 늘 눈가에는 이슬이 맺힌다. 1934년 일제 치하의 척박한 한국에서 태어나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걸은 지 올해로 반세기가 지난 51년째다. 80대 거장이 걸어온 그 지난하고 험난했던 여정은 패션 코리아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전설이다.
대표적인 대한민국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은 90년대 초 11인의 동료 디자이너와 함께 일본의 도쿄 컬렉션에 맞선 패션 독립 선언을 하듯 SFA 컬렉션을 통해 1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열리는 컬렉션 문화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장본인이다. 어쩌면 현 서울패션위크의 토대는 패션코리아에 대한 그의 애정과 자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스트리트 감성의 웨어러블 패션 쇼가 대세인 지금 거장 진태옥이 보여준 패션 쇼는 아이덴티티 분명한 디자이너의 에스프리가 관객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선물하는지 확실하게 증명했다. 이번 시즌 가뭄의 단비 같은 그의 패션 쇼 덕분에 새삼 하이엔드 패션으로 가야할 K 패션의 정체성과 가야할 방향성을 읽을 수 있었다.
피아노 선율의 마치 꿈길을 걷는 듯한클래식 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미래적인 느낌의 입체적인 거울 조형물 사이로 모델들이 런웨이를 시작했다. 디자이너는 컬렉션 노트를 통해 "이번 쇼의 주제는 '영 포티(Young Forty)'다. 40대 여성들은 특별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성이 가장 풍요로워지는 이 시기에만 내뿜는 멋진 향기가 있다. 이런 여성들이 입을 법한 젊고 고급스러운 리조트 웨어 컬렉션이다"라고 밝혔다. 명분은 40대였지만 소녀에서 숙녀로 변을 시도하는 20대나 서른 즈음에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는 30대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한만한 트렌드 요소들이 많았다. 로맨틱과 섹시, 미니멀과 맥시멀이 어우러진 런웨이는 창조와 재창조 그리고 혼존성이라는 화두로 이어졌다.
먼저 쇼의 오프닝은 그의 시그너처인 이조 백자를 닮은 화이트 셔츠로 시작되었다. 소매는 길고 기장은 짧게 재단된 화이트 셔츠에는 유연하게 흘러내리는 스팽글 장식이나 혹은 진주 장식의 와이트 팬츠를 매치시켰다. 면과 튤, 벨벳을 사용한 드레스와 재킷의 소매는 다른 감을 대어 허벅지까지 떨어지도록 포인트를 주었다. 특히 컨템포러리 트렌드를 가미한 스웻 셔츠와 후디, 집업 점퍼 등은 나날이 젊어지는 패션 위크의 현주소와 호흡하는 거장의 위트있는 도발이었다. 잔잔한 메탈릭 프린지와 스톤으로 엘레강스한 느낌을 추가했고 여기에 셔츠를 레이어드하거나 와이드 팬츠와 매치해 성숙한 30대 밀레니얼 세대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제안이었다.
이번 시즌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프린트의 등장이었다. 보통 진태옥의 옷은 블랙이나 베이지라는 선입견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난 꽃과 나비가 프린트에서 화려한 몸짓을 해 동양화에서 보던 난과 나비와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즉 한국적인 감성을 표현할 때 날 것의 느낌이 감동을 줄 때도 있지만 세계 시장을 바라볼 때 웨스턴적인 감성으로 트위스트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본보기였다. 정적인 한국적 감성이 다소 동적인 서양적 감성이 만난 프린트는 튤이 가미된 가장 한국적이자 세계적인 프린트로 다시 태어났다. 이 역시 자신만의 50년 노하우를 창조와 재창조, 혼성물로 만들어낸 장인만의 보여줄 수 있는 은은한 패션 미학의 결정판이었다.
이윽고 피날레 무대. 거울 조형물 사이로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소매가 긴 깔끔한 화이트 셔츠와 검은색 와이드 팬츠를 입고 등장한 그의 모습에는 담백하고 기품있는 패션 거장의 카리스마가 물씬 풍겼다. 열정과 영혼이 없는 웰메이드(well-made) 패션은 대중추수주의이자 포플리즘으로 단명할 수 밖에 없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웰크리에이티브(well-creative) 패션만이 하이엔드 K-패션이 앞으로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패션 쇼였다. 패션은 생물이다. 그 창조적인 생명력은 창조와 재 창조, 융합을 통해 또다른 창조로 이어진다. 그 살아있는 본보기가 대한민국 패션의 레전드 진태옥이 아닐까 한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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