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6-10-21 |
[리뷰] 효를 옷으로 지은, 2017 봄/여름 카루소 컬렉션
한국 남성복의 레전드 디자이너 장광효는 2017 봄/여름 카루소 컬렉션에서 '한복'이라는 복식적인 유산이 아닌 '효'라는 정신적인 유산을 옷으로 담아내는 색다른 방식으로 한국적인 모티브를 응용해 주목을 받았다.
남성복 디자이너 장광효는 컬렉션 노트를 통해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정조 대왕이 어머니 경의왕후의 회갑연을 맞이하여 아버지 사도 세자가 묻힌 화성(수원)으로 참배 가는 거대한 행차를 기록한 김홍도의 '화성행행 반차도'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고 말했다. 이어 "행사에 참여한 나인부터 호위군사와 문무백관이 임무와 품계에 따라 아주 세밀하게 표현된 그림을 보며 디자이너로서 마치 등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시지푸스의 운명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디자이너는 그들이 입고 있는 의복 디자인과 색상, 디테일을 마주하는 순간 그 옷 속에 숨어있는 많은 겹의 삶과 다채로운 문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그 모든 것의 근간인 '효' 사상을 옷으로 담아냈다.
패션 쇼가 시작되기 전, 쇼 장 전면의 카루소(Caruso) 로고 아래에 'Since 1987'이라는 작은 글자가 눈에 띄었다. 이는 2년 후면 30년차 디자이너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옷짓는 예인으로 30년 이상 산다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한 여정은 아니다. 하지만 디자이너 장광효는 꼬박꼬박 컬렉션을 통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며 오직 남성복 디자이너 한 길만을 우직하게 걸어왔다. 이번 시즌 그는 컬렉션을 통해 야성적이면서도 편안한 실루엣과 패턴을 표현하고 싶었다. 비록 디자인 영감은 옛날 그림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복과 서양복은 패턴과 실루엣에 있어 전혀 다른 형태이기 때문에 잘못 적용하면 코스튬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련된 모던트위스트를 시도했으며 그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마치 행차도의 길을 연상시키는 넓은 무대에 두 벌의 서로 다른 턱시도 재킷이 등장하며 시작된 패션 쇼는 반짝이는 헤링본 체크 무늬 블레이저와 해군복 소매를 덧붙인 겹 여밈 수트가 이어졌다. 전통적인 색동 옷 소매가 연상되는 긴소매의 셔츠는 복고적이었지만 동시에 컨템포러리한 트렌드였다. 여기에 '박남규모자연구소'의 박남규 디자이너가 쇼를 위해 직접 디자인한 해군 모자를 변형한 듯한 하얀 모자는 시즌 청량감과 백의민족이라는 민족의 정체성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듯 하다. 특히 패션 쇼의 대미를 장식한 다양하게 변주된 무명 소재 재킷 시리즈는 섬세한 남성복의 진수를 보여주며 28년차 장인 정신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흔히 한국적 모티브를 말할 때 우리는 보통 한복 이미지만 떠올린다. 하지만 그 한복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입었던 복식 형태일 뿐이지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민족을 대표하는 옷이라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현대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입었던 옷이기에 익숙할 뿐 그 이전 시대인 고려와 통일신라,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시대, 고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너무나 많은 복식들이 태어나고 사라졌다. 그런 의미에서 '한복'이라는 복식적 유산이 아닌 '효'라는 정신적 유산을 모티브로 한국적인 정서를 옷으로 표현한 선택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특히 한국적인 모티브를 숨은그림처럼 숨겨놓은 영민함은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을 미덕으로 삼는 성리학의 정신 철학과도 맞아 떨어졌다. 다음 시즌에는 드 넓은 광야를 말 다리던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개척 정신과 민족의 자주성을 런웨이에서 만나고 싶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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