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토크 | DVF 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 2016-05-12 |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에 대해 미처 몰랐던 23가지 진실들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 명예회장이자 유니크한 시그니처 프린트와 랩 드레스로 유명한 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Diane Von Furstenberg)에 대해 알지 못했던 23가지 진실들을 소개한다.
그녀의 옷에 열광하는 잇 모델들과 랩 드레스는 그녀의 상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이엔 본 퍼스텐버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 기회에 살아있는 레전드에 대한 몇가지 중요한 사실을 통해 패션 지식을 넓혀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공주였던 시절부터 패션계를 떠나 휴식을 취했던 시간까지 그녀의 매력적인 스토리를 만나보자.
다이엔 본 퍼스텐버그는 벨기에 출신의 미국 디자이너로 랩 드레스의 여왕으로 불린다. 시업 초기에 패션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그녀는 파리로 건너가 패션 사진작가의 조수로도 일했던 그녀는 이후 이탈리아로 날아가 텍스타일 제조업체에서 3개월 수습기간을 거치면서 실크 저지 프린트 소재를 사용한 드레스 샘플을 만들었다.
1970년 3천만원의 투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한 그녀는 뉴욕으로 이주한 뒤 1974년 대표적인 저지 랩 드레스를 선보여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1979년에는 약 1,552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화장품과 향수를 함께 출시하는 패션 브랜드로 부상했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사업을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브랜드 네임의 과포화로 이어졌고, 결국 브랜드의 특성을 잃어가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후 몇 번의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라이프 스타일에 포커스를 맞춘 새로운 라인을 다시 시작했고, 1992년 TV 홈쇼핑 채널을 통해 카프탄 스타일을 판매한 결과, 첫 방송 2시간 만에 약 100만달러(1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재기에 성공했다. 1997년 브랜드 '다이엔 본 퍼스텐버그(Diane von Furstenberg)'를 재런칭한 그녀는 21세기 들어 DVF로 브랜드명을 바꾸고 인터내셔널한 브랜드로도 성공시켰다.
1. 그녀는 한때 공주였다.
스위스 제네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녀는 대학 1학년 때 독일의 왕족 가문 퍼스텐버그가의 에곤 본 퍼스텐버그왕자를 만나 1969년 23세의 나이에 결혼하면서‘본 퍼스텐버그’라는 성을 얻었다. 남매를 두었지만 둘은 몇년 후 갈라섰다. 1972년 왕자와 이혼함으로써 공주 자격은 잃었지만 이름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2. 어머니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언제가 그녀는 패션지 <하퍼스 바자>에 "대부분 사람들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그녀는 매우 강했다. 그녀는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강해 보이고 싶어했다. 그것이 더 중요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후 18개월만에 다이앤을 출산한 매우 강한 유태인 여성이었다고 한다.
3. 직업적으로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유명한 책 타이틀이 말하는 것처럼 다이앤 은 자신이 되고 싶은 여성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나는 독립적인 여성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어 "자신의 청구서에 대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여성,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여성이었고 결국 나는 그 여성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4. 1970년에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다.
다이앤은 왕자와 결혼해 70년대 초반에 비록 왕족으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간절히 일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1977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에곤의 아내가 되는 순간부터 나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 자신의 누군가가 되고 싶었지 분수에 넘치는 결혼을 한 평범한 여자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5. 다이애나 브릴랜드가 키다리 아줌마였다.
1970년대에 뉴욕으로 건너가 튜닉 드레스, 바이어스로 재단된 셔츠 드레스 등 3개의 드레스를 가지고 <보그> 편집장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브릴랜드는 그녀의 디자인을 높이 평가하며 <보그>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녀의 랩 드레스를 <보그>에 실렸고 곧바로 뉴욕패션위크으 라인업으로 추가되었다. 60~70년대 당시 전설적인 패션 저널리스트로 패션업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후원은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의 미국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다.
6. 랩 드레스는 줄리 닉슨 아이젠하워로 부터 영감받았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딸 줄리 닉슨 아이젠하워의 TV연설 장면에서 다이앤은 그녀가 랩으로 된 탑과 스커트를 보고 각각 따로 입은 것은 보고 자신의 시그너처가 된‘랩 드레스’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바로‘두 아이템을 합쳐서 하나의 드레스로 만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고 결국 그렇게 했다. 40년 이상 유행한 랩 드레스의 나오게 된 시초가 되었다.
7. 1976년에 5백만 벌의 랩 드레스를 판매했다
아울러 <뉴스위크>에서는 그녀를 뉴욕 패션계의 여왕으로 소개하며‘코코 샤넬 이후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라고 표현했다.
8. 남편은 사업가이자 미디어계 거물이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던 연인이었던 DVF 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 버그와 유태계 미국인이자 미디어업계 거물인 베리 딜러는 지난 2001년 재혼했다. 베리 딜러는 엔터테인먼트 업체 인터랙티브코프(IAC)의 회장으로 순재산이 13억 달러에 이른다. 부부가 비즈니스와 문화의 트렌드를 주도해 나아가는 셈이다.
9. 남편과 함께 '기부서약'에 사인했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처럼,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재산 중 절반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10. 한때 패션계를 떠났었다.
1985년에 다이엔 본 퍼스텐버그는 패션계로 부터 한걸음 뒤로 물러나 파리로 이동해 살비(Salvy)라 불리는 프랑스 출판사를 시작했다. 이후 1997년에 자신의 컬렉션을 다시 런칭했다.
11.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 회장이었다.
그녀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가 주최한 2005년 CFDA 어워즈에서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이듬해인 2006년 처음으로 CFDA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상대 후보인 조셉 어부드보다 더 많은 표를 획득해 당선되었는데, 당시 CFDA측은 "우리는 뛰어난 디자이너일 뿐 아니라 미국 패션계에 수년간 공헌 해온 분을 회장으로 모시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재는 회장직을 CFDA CEO인 스티븐 콜브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명예 회장을 맡고 있다.
12. 런웨이의 더 많은 다양성과 건강한 몸을 위해 싸웠다.
그녀는 CFDA에서 보낸 편지에서 "뉴욕패션위크를 준비하면서, 아름다움은 건강이고 건강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명심합시다"라고 썼다. 이어 "아름다움을 다양성과 산업으로 인식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전세계로 이 메시지를 전파하면서 우리 스스로 이것을 리마인드하는 것은 필수적이다"라고 덧붙였다.
13. '포에버 21'을 디자인 카피로 고소했다.
2007년 소수의 다이앤의 드레스가 패스트 패션 브랜드 '포에버 21'에 의해 카피가 되었다. 이에 다이엔 본 퍼스텐버그는 포에버 21을 법원에 고소했다.
14. 자신만의 TV 쇼를 진행한다
케이블 네트워크인 E!을 통해 2014년부터 리얼리티 텔리비전 사리즈로 선보인 그의 TV 쇼는 '하우스 오브 DVF'로 지금까지 두 시즌동안 방송되었다. 참가자들은 브랜드의 다음 홍보 대사가 되기 위해 경쟁을 한다.
15. 또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다
<다이앤: 시그너처 라이프(Diane: A Signature Life)>는 2009년에 발표되었으며, <내가 되고 싶었던 여성(The Woman I Wanted)은 2014년에 나왔다.
16. 패션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선정되다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는 2012년 <포브스> 매거진에 선정해서 발표한 '패션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업계에서 1위에 랭크된 안나 윈투어보다는 뒤쳐졌지만 100명의 여성 중 33위에 랭크되었다.
17. 랄프 로렌과 점심 식사 후 암을 발견했다.
랄프 로렌이 귀에서 소리가 나는 것으로 어떻게 뇌종양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그녀에게 말해 준 후 다이앤은 의사를 찾아갔었다.
2009년 <하퍼스바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그가 나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는 순간, 내 귀에서 소음이 났다"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랄프 로렌의 얘기를 듣고 난 후 귀에서소음이 들렸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도 소음이 들렸고 그래서 의사를 찾아갔다. 귀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대신 목에 멍울같은 게 부풀어 오른 걸 확인했다. 그녀는 혀에서 낭종을 제거하고 8주 동안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18. 신발에 관한한 기본적으로 캐리 브래드쇼다.
지난 2015년 <풋웨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이앤은 "나는 도나텔라 베르사체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어느 누구보다 많은 마놀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이어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많다. 나는 그것을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19.그녀의 디자인이 미드에 나온 적이 있다.
미드 <가십 걸>의 세레나 밴 더 우드슨(Serena van der Woodsen)가 스튜디오 54 파티에 가기 위해 입었던 골드 드레스는 바로 DVF 제품이었다.
20. 케이트 미들턴 역시 그녀의 옷을 좋아한다.
사진 속 의상은 2014년 호주로 여행 중일 때 입었던 DVF 제품이다.
21. 미셸 오바마도 그녀의 팬이다.
한때 미셸 오바마가 국빈초대 만찬회에서 비 미국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선택하자, 그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는 여전히 랩 드레스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22. 갭 키즈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다.
그녀는 2012년에 하나의 컬렉션을 발표했으며, 다른 컬렉션은 네년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23. 항상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자였다.
다이앤은 2008년 선거에서 힐러리를 지원했으며. 심지어 이번에는 대통형 후보를 위한 45달러 짜리 티-셔츠를 만들었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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