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패션 | 2016-04-24 |
'영감'이라고 쓰고 '카피'로 읽은 최악의 패션 복제품 10
21세기 패션에서 '창조적 영감'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그에 따른 '상업적 카피'도 동시에 등장한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패스트 패션의 절묘한 상술이다. 올 봄 시즌에 출시된 '최악의 패스트 패션 복제품' 10가지를 소개한다.
지난 2004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브랜드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는 '샤넬'의 디자인을 그대로 카피하고 있었던 스웨덴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과 손잡고 리미티드 컬렉션을 출시해 1시간 만에 전 세계 매장에서 매진되는 신기록을 세웠다. 당시 선보인 샤넬의 시그너처 아이템 블랙 미니 드레스의 가격은 상징적인 99.99달러였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여성들은 짝퉁이지만 샤넬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만날 수 있었다. 이후 패스트 패션의 디자이너 브랜드와 럭셔리 제품 베끼기는 모험이 아닌 상술이 되었다.
당시 라거펠트는 H&M과 함께 리미티드 컬렉션 출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사람들은 항상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지 않는다. 때로는 바쁜 도시 생활 때문에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옷을 만들어 보았고, H&M과 함께 내 생애 가장 싼 옷도 만들어 보았다. 바야흐로 패션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의 (경제) 수준에 맞는 소비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옷이 카피 된다는 것은 내 디자인이 일반 여성들에게 유행하고 있다는 의미이기에 개의치 않는다"라며 생전의 코코 샤넬과 같은 발언을 했다. 이는 카피를 허용하는 듯한 발언으로 진짜와 짝퉁의 구별을 소비자들의 판단에 맡긴 셈이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칼 라거펠트와의 H&M 콜라보레이션은 스텔라 매카트니, 로베르토 카발리, 꼼데 가르송, 소니아 리키엘, 베르사체, 이사벨 마랑, 알렉산더 왕을 거쳐 발망까지 이어졌다. 참신한 조합과 흔해 빠진 조합, 파괴력 있는 디자이너와 이름만 빌려주는 연예인까지 다종다양한 합종연횡의 콜라보레이션은 현재 세계 패션계를 지배하고 있다. 노숙 패피들을 양산하며 ‘발망 대란’을 일으킨 H&M의 콜라보레이션처럼 SPA 패션이 럭셔리 브랜드 디자이너와 만났을 때 대중들은 가장 뜨겁게 반응한다.
'참을 수 없는 카피의 가벼움'으로 럭셔리 브랜드를 베끼는 패스트 패션에 소비자들은 접근가능한 럭셔리 유혹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쇼핑의 가벼움'으로 어느새 패스트 패션의 무단 복제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다.소유할 기회가 없는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패스트 패션을 통해 경험해 본다는 긍정적인 의도는 블랙 마켓의 암묵적 허용(?)을 가져왔으나 또다른 문제를 양산시켰다.
최근 버버리와 톰 포드, 모스키노, 베트멍, 프로엔자 스콜러 등의 상당수의 디자이너들은 더이상 패스트 패션의 무단 카피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올 가을부터는 컬렉션이 끝나자마자 직접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인-시즌 컬렉션으로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B2C로 유통의 틀을 바꾸고 있다. 이제 더이상 카피를 위한 6개월의 시간을 패스트 패션에게 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다.
이런 세계 패션계 흐름 속에서 올 봄 시즌 역시 패스트 패션의 무단 복제는 여전했다. 즉 공식 콜라보레이션이 아닌 유사한 디자인이지만 가격은 오리지날과 비교해 볼 때 극과 극이다. 지금쯤 지난해 9월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2016 봄/여름 컬렉션 대부분의 제품들이 백화점이나 편집 매장에 '신상'이라는 타이틀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오리지날로 부터 "영감"을 받은 더 저렴하고 대량 생산된 많은 상품들도 동시에 선보이고 있다.
사실 오리지날과 카피의 차이는 종이 한장 차이다. 패션 디자이너의 제품을 카피한 패스트 패션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상업적인 패션 민주주의 이면에는 디자이너들의 창조에 대한 열정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면도 동시에 존재한다. 어쩌면 최근 불고 있는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인-시즌 컬렉션을 열겠다는 일부 디자이너들의 움직임은 당연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아래 제시한 제품들은 이미 하이 스트리트 매장에 등장한 유명 디자이너 룩을 그대로 카피한 패스트 패션 아이템 중 일부를 모은 것이다. 디자인 차이는 미미하지만 가격 차이는 극단적이다. 우리는 가격차이가 오리지날과 짝퉁 구별의 기준이 되어버린 패션 양극화 시대를 살고 있다.
왼쪽부터; 아소스(ASOS), 43달러. MSGM 2016 봄/여름 컬렉션의 탑, 545달러. 픽시 마켓(Pixie Market), 72달러.
왼쪽부터; 프로발 그룽 2016 봄/여름 컬렉션 의 스웨터, 1,950달러. 탑샵, 85달러.
왼쪽부터; 아쿠아주라(Aquazurra) 샌들, 785달러. 자라, 69.90달러.
왼쪽부터; 티비(Tibi) 2015 리조트의 점프슈트, 495달러. 픽시 마켓, 129달러.
왼쪽부터; 밀리(Milly) 2016 봄/여름 컬렉션의 탑. 픽시 마켓, 112달러.
왼쪽부터; 만수르 가브리엘(Mansur Gavriel) 2016 봄/여름 컬렉션 뮬, 475달러. H&M, 29.99달러.
왼쪽부터; 스텔라 맥카트니 2016 봄/여름 컬렉션의 탑, 1,195달러. 픽시 마켓, 36달러.
왼쪽부터; 프로엔자 스콜러 2016 봄/여름 컬렉션 재킷, 2,450달러. 자라, 149달러.
왼쪽부터; 구찌, 650달러. 자라, 69.90달러
왼쪽부터; 요한나 오르티즈(Johanna Ortiz), 500달러. 픽시 마켓, 56달러
<사진출처=패셔니스타>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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