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6-04-12 |
2천년 유럽복식과 5천년 한국복식, 그리고 K패션
패션이란 무엇인가? 패션이란 주어진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에 다수의 집단 구성원에 의해 수용되어지는 스타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주기적인 특성을 지닌 인간 행동의 현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상에서 비롯해 현재까지 이어진 삶의 역사로 패션을 바라보며 반만년 한복의 역사를 K-패션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탐구해 본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패션의 의미는 ‘유행’이다. 즉 항상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패션은 의복이나 건축, 가구, 자동차 뿐 아니라 사상이나 관습, 태도까지 영향을 미친다. 패션은 라틴어 팩티오(Factio)에서 유래되었다. 만드는 일(Making), 행위, 행동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어원에도 내포하듯이 패션은 특정한 감각이나 스타일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 집단적으로 일정 기간 유행이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미시적인 개념으로 들어가면 패션이라는 용어는 적합성, 사회적 커넥션, 반란과 기이한 행동, 사회적 열망과 지위, 유혹, 기분 전환 심리를 포함한 다양한 개념을 포함하는 일련의 가치 표현이자 자기표현이다. 역사와 문화 지리적 경계, 형태와 콘텐츠를 관통해 그 것을 초월한 옷 입기에 대한 욕망은 지난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하게 등장했으며, 아울러 정체성의 표현 수단으로 몸에 치장을 하는 동기 부여와 같은 개념이었다.
알고 보면 패션은 단지 ‘유행’이라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잣대로 평가내리기에는 아주 복잡 미묘한 콘셉트다. 어쩌면 패션은 삶의 모든 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 속에서 패션 역시 진화와 변화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소와 물처럼 ‘의식주’라는 생존의 아이콘으로 너무 우리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인류는 그 변화를 눈여겨보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무관심 속에서도 패션은 인류의 삶과 함께 공존했다. 따라서 ‘라이프 스타일=패션’이라는 컨템포러리적 해석은 바른 해석이다.
패션은 옷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 포괄하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심지어 인류 역사를 살아온 개인의 이름까지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시적인 패션은 모던 라이프 스타일과 특히 각자의 취향을 포함하고 있는 다양한 측면의 일반적 메카니즘의 일종이다. 예를 들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부모나 더 거슬러 올라가 할아버지 세대와 똑같은 옷을 입지 않고 똑같은 음악을 듣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다. 또한 패션은 동시대성을 기억하게 해준다. 패션을 무엇인가 특별한 방법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옷을 선택하는 것 뿐 아니라 특별한 헤어스타일과 바디 랭귀지, 행동을 통해서도 겉모습을 유행시킨다.
방법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옷(Cloth)이라 불리는 것을 만들어 냈다. 즉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패션은 확실히 넒은 의미의 사회 경제적(Socio-Economic) 변화에 속한다. 그러나 다른 캐주얼적 요소들은 개인적 옷 뿐 아니라 의류 창조자의 영역 안에서의 개발을 포함한다. 심지어 패션은 협의의 의미로 해석한다고 해도 우세한 스타일은 늘 변화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바로 패셔너블 드레스다. 하지만 그것을 패션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기는 아직 힘들다. 그 주제에는 끊임없이 확장하는 거대한 정보를 담은 몸통과 함께 새로운 디자이너와 트렌드, 새로운 컬렉션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패션 학자들은 패션의 시작에 대해 다른 형태의 드레스나 장식을 어떻게 구분할지 아직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보통 서구 시각에서 패션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BC 500년) 스타일의 옷을 기준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 서양의 학자들은 고대 중국이나 이집트, 인도와 비슷한 시기에 패션이 시작되었다는 동일한 타당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한 지역에 존재했던 사람들은 다른 스타일의 드레스와 장신구를 발전시켜왔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패션의 진화는 인류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고유의 스타일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14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을 통한 자본주의의 탄생은 재봉의 변화를 통한 일정한 패턴이 강조되는 새로운 패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시작이 최근까지 패션의 시작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러나 패션 학자들은 최근 비유럽 국가에서도 패션이 동시성 개념으로 존재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7세기 초 중국 당나라에서는 정교한 실크를 짜는 공장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정교한 스타일의 드레스를 만들어 냈다. 실크 문화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이전 왕조와는 확연하게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 냈고 이는 실크 로드를 통해 서구에 패션을 전파했다는 의미다. 즉 보통 ‘서양복’이라 불리는 세계 패션의 기원이 서양이 아닌 동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패션의 중심 요소 중 하나는 여러 세월에 걸친 변화를 들 수 있다. 단지 그것이 우리가 패션이라는 현상으로 부르기 전에 얼마나 빠르게 정기적으로 광범위하게 의상에 변화가 일어났는가 여부가 중요하다. 아마도 ‘패셔너블(Fashionable)’이라는 옷의 정기적인 스타일 변화가 소수 엘리트의 특권에서 벗어나 서부 유럽의 대다수 도시 사람들에게 입혀진 것은 아마도 18세기가 아닐까 한다. 18세기가 되어서야 프랑스 파리의 꾸띄르 살롱들의 ‘패션 퍼레이드’가 생기면서 ‘패션’이란 표현은 복식사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결국 유럽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식민주의 역사 덕분에 서부 유럽의 패션은 결국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즉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은 인도와 아프리카, 남미를 식민지로 삼아 패션을 전파했다. 이때부터 민족 고유의 의상보다는 유럽의 패션이 최고의 패션으로 치장되어 세계적인 기득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식민지에서 벗어난 국가들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패션은 또 다른 방향으로 이동되었고, 오늘날 패션 시스템은 글로벌 현상으로 귀결되었다. 즉 패션은 유럽의 전유물이 아닌 인류의 공동 가치가 된 셈이다.
이후 20세기 패션은 아트와 비즈니스, 소비, 테크놀러지, 보디, 아이덴티티, 모더니티, 글로벌라이제이션, 사회 변화, 정치, 환경을 포함한 많은 라이프적인 측면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션의 일반화와 글로벌화 변화 속에서 패션의 미학적 측면은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다양한 현대 패션과 관련된 문헌에는 개별 패션 디자이너에 집중되고 있다. 패션이 아트든 아니든 상관없이 디자이너들은 전형적인 패션의 중요한 크리에이터로 간주되고 있다. 아무리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이 패션으로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한다. 즉 패션의 모더니즘이 등장하기 이전에 강요되거나 혹은 부유층의 패션을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즉 패션의 아이덴티티 개념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옷은 몸에 걸치기 때문에 우리의 개인적인 취향을 표현하며 그것은 독특한 문화 콘텐츠 사이에서 발전을 거듭한다. 20세기 패션은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옷이 ‘제2의 피부’라는 말은 타인에게 내가 누구인지 혹은 내 취향이 어떤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시그널이라는 의미다. 아직도 아프리카 소수 민족들의 경우 몸에 문신을 하거나 장식을 하는 것으로 부족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즉 패션은 옷이라는 형태를 갖추기 이전부터 인류의 정체성을 들러내는 원초적 자기주장이었던 셈이다.
현재 패션은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산업으로 발전했다. 또한 거대한 고용을 창출하는 지적 노동 산업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산업의 네트워크로 생각하는 경향도 강하다. 패션 시스템은 가공되지 않은 소재 개발부터 제조와 유통, 마케팅 등 넓은 의미의 패션(꾸띄르 가운부터 블루진 까지) 활동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패션의 존재는 물건으로서 가치 뿐 아니라 이미지나 의미 또한 담고 있다. 게다가 옷을 창조하는 사람들에게 패션 사진작가와 저널리스트, 심지어 박물관 큐레이터를 비롯한 많은 패션 관계자들을 창조 활동을 통해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디자이너들의 옷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알려준다.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리의 전통 복식을 보통 ‘한복’이라고 부른다. 대부분 조선 후기 복식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조선 말기에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침탈로 식민지 국가가 되었다. 일제 35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의 정체성을 폄하하기 위해 왕실을 ‘이씨조선’이라고 폄하하고 그 흔적을 없애고 조선 후기 서민들의 복장을 장려했다. 여기에 일본색이 들어간 패턴과 실루엣으로 인해 전통적인 느낌보다는 왜색이 짙은 한복을 강요했다. 여기에 식민지 이후에 태어나 성인인 된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한복보다는 일본을 통해 건너온 백화점을 통해 전파된 서양복이나 일본식 패션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들만의 문화의 ‘모단걸’과 ‘모단보이’라는 국적 불문의 패션 문화를 만들어 냈다. 그 당시 모단 걸이나 모단 보이들의 복장에서 한국적인 요소를 찾기란 힘들다. 당시 시대 상황으로 볼 때 식민지 국가에서 태어나 일본이 전파하는 문화가 최고인 줄 아는 젊은이들에게 우리의 전통 복식을 왜 무시하냐고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여전히 위안부 할머니들의 절규나 친일파 인명사전과 같은 흔적들이 여전히 일제 식민지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겉모양으로 봤을 때 한때 일제 식민지였던 흔적을 모두 지워버렸다. 하지만 한류를 통해 한국의 궁궐과 궁중음식이 K-문화 콘텐츠로 거듭나는 동안에도 한국 복식은 여전히 조선 후기에 머물고 있다. 사실 한류 드라마 <대장금>에서 외국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것은 서민의 밥상도, 한복이 아닌 바로 화려한 궁중 요리였다. 중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카피 왕국’이니 ‘세계의 생산 공장’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재의 중국이 아닌, 서양에서 부르는 오리엔탈이 아닌, 8세기에 부흥했던 중국의 실크 로드에서 영감을 얻어 서양복 중심의 세계 패션사와 맞서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다. 5천년이라는 역사는 서구 문화의 중심점인 예수가 탄생한 2000년하고 3000년이 더 긴 역사를 가졌다.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 중간에 발해도 있고 가야도 있고 많은 왕조 국가가 있었다. 하지만 한복에서 그 반만년의 역사가 투영된 옷을 목격하지 못했다. 간혹 조선 시대 사대부나 기생 옷 내지는 거의 코스튬 수준의 조선 왕족의 의상 패션쇼가 대부분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패션은 인류 역사의 삶의 변천사이다. 한민족도 비록 유럽과 같은 중세 시대가 없었기 때문에 전국 각지의 아름다운 성은 없지만 어쨌든 5000년 동안 패션은 진화하고 변화했다.
사실 우리나라 복식이 중국과 비슷한 것은 김춘추의 탓이 크다. 그는 삼국을 통일하면서 당나라와의 나당연합군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당나라 복식을 신라인들에게 입힌다는 이면합의를 했고 이후 통일신라 이후부터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쩌면 강요당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통일 신라 이전의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나름의 뚜렷한 복식 문화가 있었고 특히 백제의 경우는 여러 해외 국가와 교류를 했으며 중국에 백제의 복식을 수출하기도 했다. 요즘 한류의 시점이 백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 유산에는 창덕궁과 수원화성과 같은 조선시대 것도 있지만 고인돌유적, 백제역사 유적지구, 경주역사 유적지구, 석굴암과 불국사와 같은 삼국 시대 유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복은 여전히 조선 후기 바람의 옷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개량한복’ 혹은 ‘생활한복’이라 불리는 국적 불명의 한복은 운동권의 유니폼으로 폄하되어 세계화는 고사하고 국내에서 조차 외면을 받고 있다.
그럼 K-패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요즘 서울패션위크 런웨이에서 선보이는 컨템퍼러리 패션이 K-패션일까? 지난번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서울에서 한복에서 영감을 받은 샤넬 쿠르즈 쇼를 개최했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실망했다. 그 역시 한국의 미를 지금으로부터 몇 백 년 전 조선 후기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자료 부족이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아니면 한국에서 직접 영감을 받지 못하고 그냥 문헌으로만 참고를 했을 듯 하다.
그럼 우리 한복은 왜 조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먼저 선험 연구가 부족하다. 한국복식사 책을 보면 일제 강점기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다보니 사대주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학에서 진행된 여러 한복 관련 프로젝트를 보면 대부분 조선 시대에 머물러 있다. 실루엣과 패턴은 물론 장신구까지 온통 조선풍이다. 아예 고조선이나 삼국 시대는 고사하고 고려나 통일신라까지 그 범위를 확산시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젊은 디자이너들은 자료도 없는데 어떻게 응용을 하느냐고 반론을 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파리나 밀라노 같은 해외여행에서 영감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 경주 유적지나 백제 유적지를 시간을 내 돌아보면 건축과 땅, 벽화, 돌담 등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요즘 전 세계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패턴이나 소재 개발에 목숨을 건다. 웬만한 실루엣은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모두 나왔기 때문에 지금 젊은 디자이너들은 소재 개발이나 패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 중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8세기의 전통방식으로 만든 실크로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제 3지대 디자이너들은 조상으로부터 계속 살아온 신토불이에서 영감을 얻고 새로운 패션을 창조하고 있다.
이번 서울패션위크를 방문한 프레스와 바이어들도 대부분은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하이패션으로 보기에는 정체성이 모호하다. 하지만 컨템포러리 스타일을 소화하는 능력은 외국 디자이너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 놓았다. 즉 옷을 잘 만드는 능력은 수준급인데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이제 그 영감의 소스를 우리의 5000년 헤리티지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것이 우리 전통 복식의 형태든 아니면 서양복이든 그 안에 스며있는 아이덴티티는 사대주의적인 헤리티지가 아닌 우리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불고 있는 한복 입기 퍼포먼스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패션이 아닌 코스플레이 수준의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서 그 옷을 만든 어른들을 탓할 수밖에 없다. 특히 패션위크 기간 동안 DDP에 출몰하는 UFO(Unidentified Fashion Object) 중에도 한복을 입은 청춘들도 있지만 그 역시 코스플레이 수준이다. 패션은 파괴와 재생, 과거와 미래, 역사와 삶의 조화를 통해 삶이 녹아있는 스타일이어야 그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고 그것이 쌓이면 소위 명품이 된다. 서양에서는 1세기 그리스 로마 시대 이후 선보인 다양한 역사적 유산과 문화적인 감성을 바탕으로 100년전 모던 패션을 만들어 현재 명품이라 부르는 럭셔리 제품을 만들어 냈다.
이탈리아 역시 2차 세계 대전 이후 폐허가 되었고 재건과 복구를 통해 50년대 초반부터 패션 산업이 시작되었다. 파리의 하청 공장이라는 비아냥을 받았지만 타고난 손재주와 이탈리아 특유의 역시와 문화 전통을 바탕으로 70년대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장인의 손재주와 탁월한 소재, 그리고 베르사체와 아르마니와 같은 크리에이터들의 모던 감성이 가미되면서 현재 세계 빅 4 패션 캐피탈이 되었다.
우리는 늘 꿈꾸듯 말한다. 4대 컬렉션에 이어 5대 컬렉션으로 부상하는 것이 목표라고. 국력도 10위권 내외고 한류 바람도 거세고 한국의 국가 인지도 역시 올라갔다. 하지만 패션 캐피탈 순위에서는 늘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70년대에는 이탈리아처럼 OEM으로 제품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후의 행보는 이탈리아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어차피 100년 넘게 적응을 한 서양복이라는 틀을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안에 한국적인 정서와 헤리티지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 황태자비 케이트 미들턴이나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해외 순방을 갈 때마다 자국 디자이너의 제품을 입고 자국의 패션을 홍보한다. 물론 디자이너들 역시 자국의 이미지와 방문국의 감성이 조화를 이룬 디자인을 선보인다. 그것이 패션 문화를 통한 교류이자 K-패션이 나아야 할 방향이다. 우선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시대 복식부터 제대로 된 고증을 통해 오리지날을 복원한 뒤에 판타지를 기마하든 모더니티를 가미해야 한다. 그러한 움직임이 제대도 된 우리 옷 정체성 찾기의 시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패션은 옷을 파는 시스템이 아닌 라이프와 꿈을 파는 산업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패션은 파격적이고 체제저항적인 시도로 인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종종 잊혀 지기도 한다. 상업적으로 변신한 21세기 패션에서 이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한 끊임없는 변화를 넘어 패션은 현재 현대 사회와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소통하는 패션을 통해 패션 너머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 <저작권자(c) 패션엔미디어, www.fashionn.co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