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5-10-18 |
[SFW 리뷰] 귀어를 통해 월척을 낚은, 2016 봄/여름 문수권 컬렉션
모던하고 실용적인 실루엣과 비율을 바탕으로 한 특유의 디테일로 표현된 군더더기 없는 정갈한 디자인 미학을 추구하는 남성복 디자이너 권문수. 그는 이번 시즌 귀어(歸漁)라는 테마를 통해 위트있고 깔끔한 모던한 마린 보이를 선보였다.
지난 7월, 2015 올마크 프라이즈 아시아 지역 남성복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디자이너 권문수는 이번 시즌 ‘귀어(歸漁)’라는 테마로 돌아왔다. 늘 모던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그는 매 시즌 디자이너의 경험과 감성을 반영한 주제로 대중의 공감을 자아낸다. 이는 그만의 패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디자이너 권문수는 “대중과 소통하고 즐겁게 입어야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평소 생각 때문에 늘 생활 주변의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자신의 취미인 ‘위닝 일레븐’ 게임에서 영감을 얻는 2014 봄/여름 시즌과 서울 시민들이 우연히 스쳤을지 모르는 한강의 교각과 하늘 위에 떠있는 연 등을 건축적 디테일로 풀어낸 2015 봄/여름 시즌에 이어 이번 2016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도시를 떠나 어촌으로 향했다. 즉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하던 일을 그만두고 어촌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의 ‘귀어’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이슈를 패션 테마로 풀어냈다.
국내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던 그는 군 복무 중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하고 제대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AAU(Academy of Art University)에서 남성복을 전공했다. 졸업 후 뉴욕으로 건너가 ‘이갈아즈루엘’ ‘톰브라운’ ‘헬무트랭’ ‘로버트갤러’와 같은 브랜드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이후 남성복 브랜드 ‘버클러’에서 정식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중 2011년에 국내로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이블 ‘문수권’을 런칭해 지금까지 5번의 컬렉션을 선보였고 이번이 여섯 번째 버전이다.
사전 보도 자료를 통해 테마가 ‘바다’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필자는 바캉스 시즌을 위한 리조트 룩이나 마린 룩 혹은 노티카 룩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 해외 여성복 컬렉션에 주목을 받았던 위트 있는 버킷 햇을 쓴 모델이 고급스러운 느낌의 클래식한 시어써커 원단을 사용한 슈트를 입은 모던 보이가 패션쇼의 오프닝을 장식하면서, 나의 상상은 그저 공상이었다. 어쨌든 여름 시즌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 청량감은 마린 보이의 쿨한 모던 변신이었다.
이어서 등장한 스코틀랜드 북쪽 작은 섬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페어 아일 패턴을 활용한 자카드 스웨터와 카디건은 모던한 어촌 라이프에 어울리는 새로운 베스트 셀링 아이템으로 내년 시즌을 기대하게 만드는 신의 한수였다. 여기에 그물 형태를 바이어스 재단으로 표현한 깅엄체크 스웻셔츠와 에어 매시 소재의 믹스 매치, 마린 룩을 연상시키는 시원한 스트라이프와 낚시 바늘에 걸린 이미지를 표현한 라벨 프린트는 그동안 보여준 위트있는 패션쇼의 연장선이었다. 특히 클래식한 모던한 슈트와 힙합 느낌의 캐주얼한 새기 팬츠를 모던하게 정리한 피셔 맨 팬츠의 조합은 ‘귀어 스토리’를 완성시키는 상징적인 드레싱 공식이었다.
사실 최근 남성복 트렌드의 최대 화두는 ‘리스(less)’로 대변된다. 젠더리스, 앤드로니너스 등 경계를 넘나드는 보더리스 트렌드를 통해 많은 남성복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남성복 드레싱 공식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젠더를 넘나드는 트랜드가 주목받는 상황에서 그는 남성의 본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안에 여성적인 매니시한 부드러움을 녹여낸 해석을 통해 젠더리스의 또 다른 해석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의 이번 패션 쇼는 색달랐다. 어쩌면 경계를 넘어서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은 모던 보이의 고집은 미이즘에 위한 남자의 자존감이 아니었을까?
이번 컬렉션에서는 최근 트렌드인 컬러의 활약도 눈부셨다. 오프 화이트와 베이지, 레드, 네이비, 블랙 등을 통해 캐주얼한 내추럴 어반 룩의 새로운 느낌을 연출했다. 여기에 눈에 띄는 화려한 색감으로 물고기를 유혹하는 루어와 낚시찌를 상징하는 네온 컬러의 오렌지와 그린, 핑크, 블루를 PVC 반사 테이프 디테일에 사용해 다소 심심한 실루엣에 위트와 재치를 양념했다. 아울러 포켓 곳곳에 배치한 물고기 꼬리 디테일의 전사 프린트와 물고기 자수 패턴의 원단을 통해 만선에 대한 기대감도 표현했다.
권문수는 본능적인 직감으로 패션의 본질을 간파한다. 사실 SNS가 대세인 디지털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소통은 기본이며, 그 소통은 권문수가 추구하는 패션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는 패션은 하나의 조형물로서 대중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입혀졌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문수권’의 옷을 보면 그 옷을 입은 디자이너 권문수가 연상된다. 그는 단순히 아이템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드레싱 공식도 함께 제시한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타인을 입고 싶은 머스트 바이 아이템으로 변주하는 것만큼 성공적인 컨셉을 없을 것이다. 자신을 닮은 옷만큼이나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그만의 매력은 다음 시즌에 선보인 새로운 패션 스토리를 기대하게 만든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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