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5-10-16

[SFW2016리뷰] 젠더리스 경계 넘어선 실크의 재발견

지난 시즌 70년대 풍의 우아하고 클래식한 룩을 통해 아련한 향수를 지극했던 디자이너 김서룡은 이번 시즌 역시 마치 위대한 개츠비를 연상시키는 30년대 재즈 시대를 연상케 하는 무드 있는 낭만적인 향수로 관객들을 안내했다.




지난 1996, 화가 출신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남성복 브랜드 김서룡옴므를 런칭한 이후 변함없이 클래식 슈트를 기반으로, 디자이너 특유 테일러링 테크닉을 통해 모던한 패션 센스와 위트 있고 포멀한 스타일을 지향했던 김서룡의 정체성은 늘 한결같은 지조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늘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내년 봄 시즌의 최대 화두는 바로 향수(nostalgia)’휴식(relax)’을 기반으로 한 편안한 내면적 힐링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억지 춘향식 스타일링보다 몸과 정신이 하나가 되는 안락함을 품은 패션은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의 로망일지도 모른다. 이제 옷은 화려한 날개가 아니라 따뜻한 둥지가 되어야 한다.

 


이번 시즌 디자이너 김서룡의 패션쇼를 보면서 느낀 점도 향수와 편안함의 조화였다. 대지의 따뜻함을 느끼게 만드는 브라운과 핑크, 휴양지의 편안함이 느껴지는 블루와 화이트의 조화는 내추럴이라는 자연주의적 지속가능 방정식으로 전개되었다. 더블 블레스티드 슈트와 캐주얼한 실루엣이 클래식하고 부드러운 남자를 느끼게 해주었다면, 점프 슈트와 자연스럽게 흐르는 섹시한 블라우스 셔츠, 슬리브리스 니트, 하이 웨이스트 팬츠는 페미닌한 섹시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어쩌면 남성적인 섹시미의 김서룡 식 해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런웨이를 가득 채운 실크의 향연이었다. 실크는 패션 사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만약 실크 소재의 탄생을 기준으로 한다면 세계 패션사의 시작은 중국, 즉 아시아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실크는 이스트 패션의 최고 유산이다. 이번 시즌 김서룡은 점프슈트와 더블브레스트 슈트와 트렌치코트, 블라우스 셔츠, 팬츠 등 거의 모든 아이템에 실크를 시용해 유려하게 흐르는 곡선미를 강조했다. 실루엣을 통한 인위적 아름다움이 아닌 실크 소재의 특성을 살린 자연스러운 미는 소재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패턴 메이킹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시도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테일러드 메이드와 패턴 메이킹에 있어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김서룡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시치미를 떼는 깍쟁이처럼 도도하게 굴었지만 왠지 부담스럽지가 않았다. 오히려 남성복에 녹아든 실크는 여성복보다 더 시크하고 당당해 보였다. 강함을 숨긴 부드러움, 남성복의 외유내강을 보는 듯 했다.



 

또한 다소 내추럴한 단순함을 상쇄시키기 위한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패치워크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인 프린트와 폭 넓은 밴드, 라이트 스트라이프, 과감한 격자무늬는 상큼한 느낌을 넘어 남성 버전의 도도함을 발산했다. 정렬적인 컬러 프린트의 슈트로 출발해 순수한 점프 슈트로 안착할 때까지 패션쇼는 마치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라는 불교적 철학도 보여주는 듯 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존경한다는 평소 디자이너의 지론처럼 이번 시즌 패션쇼는 늘 군더더기 없는 비움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게 내달리면서 강약을 조절하는 패션쇼를 보면서 마치 흘러가는 맑은 개울과 파란 하늘의 구름을 보는 것처럼 마음을 비웠더니 어느새 패션쇼는 끝나고 모델들의 피날레 무대가 이어졌다.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을, 인위성보다는 개연성을, 특이성 보다는 보편성을 선택한 김서룡의 이번 시즌 컬렉션은 가식 없는 휴머니즘적 드레싱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본질적으로 이번 시즌 김서룡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젠더리스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 한다. 오버사이즈와 카무플라주, 밀리터리가 이제 남성복의 전유물이 아닌 남녀 모두를 수용하는 범용적 테마가 된 지금, 지난 시즌 벨벳에 이어 이번 시즌 실크를 남성복에 녹여낸 그의 실험적 도전은 남성복을 전개하기 전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했던 감성과 타고난 테일러드 감성이 만나 융복합적인 효과를 내면서 남과 여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닌 너와 나의 차별과 구별이 사라진 휴먼 버전의 진화를 보여주었다.

 


젠더리스 트렌드가 심화될수록 남성복과 여성복의 경계가 없어지는 컨템포러리 패션의 최근 경향에 비추어 봤을 때 김서룡의 옷은 여성들이 입어도 무난할 정도로 부드러움과 유려한 곡선미를 과시했다. 이제 강함은 남자, 부드러움은 여자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부숴버리는 그의 위트와 재치는 내년 시즌 그의 블라우스 셔츠를 커플룩으로 입은 남녀 커플이 연상시킨다. 이성의 옷을 서로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피플 패션의 길목에서 김서룡은 테일러드 메이드라는 클래식한 감성과 젠더리스라는 진보적인 감성을 담아 실크의 무한 변신을 꾀했다. 남성들도 이제 책임감과 마초 정신에서 벗어나 인간 본성으로 돌아가 원초적인 자아를 찾을 때가 된 듯하다. 어쨌든 웨스턴의 헤리티지인 테일러드 메이드의 패턴 메이킹과 이스턴의 헤리티지인 실크의 조합은 이번 시즌 변증법적 패션 해석의 절묘한 한 수였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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