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 2015-08-14 |
[백투더패션5] 사진으로 만나는 스타일 아이콘; 엘리자베스 테일러
세기의 미녀, 은막의 여왕으로 불렸던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0살 때 아역 배우로 데뷔해 미모와 연기력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특히 1950년대 전성기 시절의 모습은 대중들로 보터 완벽한 얼굴의 원조인 ‘클레오파트라’로 불린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50년대 패션 아이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자신의 세대에서 어떻게 아이콘이 되었는지 사진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세기 스타일 아이콘 4인방은 보통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나탈리 우드 그리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린다. 7명의 남편과 8번의 결혼식(리처드 버튼과 이혼 후 재결합)을 한 화려한 ‘러브 어페어’ 만큼이나 스타일 아이콘으로서의 무게감도 만만치 않다. 아역 배우로 시작해 성인 연기자가 될 때까지 그녀는 빛나는 연기력과 글래머러스적 아름다움 그리고 보랏빛 눈동자로 50년대 핀업 걸로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동시대를 살았던 마릴린 먼로와 많은 부분 대조적인 길을 걸었다. 마릴린 먼로가 금발의 백치미를 내세웠다면, 그녀는 검은 머리의 바이올렛 눈빛이 고혹적이었던 천상의 피조물이었다. 마릴린 먼로가 아이젠하워와 케네디 시대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 이라면, 사실 그녀에겐 그런 시대성이 없을지 모른다. 마릴린 먼로의 섹스어필이 연민을 자아냈다면,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성적 도발은 붕괴된 내면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32년 2월 27일 미술상이었던 아버지와 연극배우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런던에서 태어났다. 둘 다 미국인이었던 부모를 따라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일곱 살 꼬마였지만, 그녀의 미모는 동네에 알아 줄 정도로 빛이 났다. 주변의 권유로 부모는 그녀를 할리우드 스크린 테스트에 데려갔고, 손쉽게 스튜디오와 계약해 1942년 10살의 나이에 영화 <귀로>로 데뷔했다. 이후 동물 영화 <래시, 집에 돌아오다>, <녹원의 천사> 등의 작품을 통해 아역 배우로 이름을 날렸고 <작은 아씨들>, <신부의 아버지> 등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소위 ‘엘리자베스 테일러 시대’를 연 영화는 1951년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함께 출연한 영화 <젊은이의 양지>였다. 바이올렛 빛의 커다랗고 촉촉한 눈, 검은 머리, 밝은 혈색, 짙은 눈썹 등 그녀의 미모는 단숨에 화제가 되었고, 1950년대 미의 표준이 되었다. <젊은이의 양지>는 한국에서도 상영되어 젊은이들의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비쳤다. 이후 <아이반호>, <랩소디>, <내가 마지막 본 파리>, <자이언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등에 출연하며 최전성기인 1950년대를 보냈다. 1960년대 들어 <버터필드 8>, <클레오파트라>,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에 출연했다.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주로 TV 영화와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다. 유작은 2001년의 TV 영화 <디즈 올드 브로드즈>다.
모두 다섯 번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었고 1961년 <버터필드 8>, 1967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제비꽃 색의 신비스러운 눈동자를 지닌 그녀는 ‘세기의 미인’이라 불릴 정도로 빼어난 미모로 유명했으며, 1950년대와 1960년대의 할리우드 아이콘이자 만인의 연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클레오파트라>의 패션도 눈길을 끌었다. 그녀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은 60년대 말까지 유행했는데 그녀는 영화에서 65번의 의상을 갈아입어 이 부문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이 기록은 그녀보다 먼저 <클레오파트라>에 후보에 올랐던 조안 콜린스가 1988년 TV 영화 <죄악들>에서 85번의 의상을 갈아입어서 그녀의 기록이 깨졌다. 당시 <클레오파트라>에서 그녀가 입은 의상 제작비는 60년대 치고는 어마어마한 액수인 19만4천 달러(약 2억 3천만 원)을 기록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방대한 양의 주얼리 컬렉션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그녀의 8명의 남편 중 많은 에피소드를 남긴 리차드 버튼은 그녀에게 이야기를 담아 보석 선물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결혼 후 까르띠에의 자연산 진주 ‘라 페레그라나’를 비롯해 ‘테일러 버튼’ 다이아몬드, ‘트룹’ 다이아몬드 등 희소성 높은 최고의 보석들을 선물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통해 만난 이들 커플은 2번의 결혼식과 두 번의 이혼으로 마무리했다.
한편 그녀는 뷰티 아이콘으로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수많은 영화에 등장한 만큼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 또한 다양하다. 특히 우아하면서도 육감적으로 틀어 올린 헤어와 클래식하고 여성스러운 웨이브 헤어는 여전히 사랑받는 그녀만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회자되고 있다. 여기에 또렷하게 그려진 아치형 눈썹, 풍성한 속눈썹, 그리고 입술 메이크업의 정석으로 불리는 완벽한 붉은 입술 등으 20세기 뷰티 교과서로 손색이 없다.
<1959년 작품인 영화 <지난 여름 갑자기> 세트장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1948년 할리우드 핀업 걸로 이름을 날린 엘리자베스 테일러>
<엄마와 아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그녀의 아들 마이클 와일딩 주니어가 레오파드 프린트의 수영복으로 모자 커플 룩을 선보였다>
<1956년 작품인 <자이언트> 세트장에서 선보인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드레스>
<1958년 작품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세트장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흰색 잠옷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1959년 작품인 영화 <지난 여름 갑자기> 세트장에서 헤드스카프와 핀 스트라이프 드레스를 입고 있다>
<1959년 작품 <지난 여름 갑자기> 세트장에서 관능적인 시스루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1959년 작품인 <지난 여름 갑자기> 세트에서 햇볕에 보기 좋게 탄 구릿빛 피부와 그린 드레스에서 건강미가 느껴진다>
<1961년, 영화 <버터필드 8>을 통해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차드 버튼>
<1962년에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찍는동안 완벽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1964년에 찍은 사진으로 나비 넥타이로 장식한 블라우스가 돋보인다>
<리차드 버튼과 이브닝 파티에 가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레오파드 프린트를 입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1959년 작품인 <지난 여름 갑자기>에서 자신의 시그너처 액세서리인 실크 스카프와 헤드밴드를 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1969년, 손에 담배를 들고 현대판 그리스 여신의 매력을 물씬 풍기는 드레스를 입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1963년 사진으로 베일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1960년대에 찍은 사진. 검게 그을린 피부에 담배를 파우는 모습이 매혹적이다>
<1961년 로마에서 찍은 오프-듀티 스타일.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1961년에 찍은 아이새도로 강조한 아이라인과 스카프를 한 모습은 뷰티 아이콘의 전형을 보여준다>
<1965년, 리차드 버튼과 영화 <고백>을 촬영하고 있는 매력적인 엘리자베스 테일러>
<1967년 푸치의 실크 스카프를 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남편인 리차드 버튼과 함께 '제트 셋'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1966년 로마에 간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플레어 진과 재킷의 아주 캐주얼한 앙상블을 선보였다>
<1969년에 찍은 사진으로 그린 카프탄으로 보석으로 장식한 아름다움을 뽐내 주얼리 컬렉터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1973년 영화 <애쉬 웬즈데이>에서 선보인 그녀의 아이코닉 룩>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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