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5-07-18 |
헐! 모피 코트가 집 값 보다 비싼 12억5천만 원이라고?
2015 F/W 파리 오뜨 쿠튀르 컬렉션 때 선보인 흑 담비 코트 가격이 약 12억5천만에 달한다는 <파이낸셜 타임즈>의 폭로 덕분에 펜디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희귀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쇼 장 밖 동물 보호 운동가들의 시위와 칼 라거펠트의 펜디에서의 50년 모피 열정을 찬양하는 쇼 장 관객들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펜디 모피는 옷일까? 보석일까?
세계 패션의 카이저, 칼 라거펠트는 지난 7월 9일(현지 시간), 2015 가을/겨울 파리 오뜨 쿠튀르 컬렉션에서 펜디가 처음 참가한 2015 가을/겨울 펜디 오뜨 퍼레르(Fendi Haute Fourrure) 패션쇼를 통해 36벌의 호사스러운 비싼 모피 제품을 선보여 경악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최고급 모피 패션쇼가 진행되는 그 시간 쇼장 밖에서는 모피 반대 시위가 열렸다.
살쾡이, 여우, 밍크, 흑 담비, 페르시안 새끼양의 도살을 반대하는 모피 반대 시위자들의 공포에 가까운 시위가 열렸고,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 펜디에서 무려 50년 동안 장기 집권한 칼 라거펠트의 대담한 행동과 장수를 축하하는 패션 관계자와 충성 고객들에게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야말로 극과극의 반응이다.
이날 선보인 36벌의 모피 작품 중 한개(아래 사진)가 1백만 유로(약 12억 4,85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는 폭로가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정도의 비싼 가격의 모피 코트는 발끝까지 내려오는 흑 담비 코트로 부드럽고 세련돼 보이는 독특한 메탈릭 효과에 달빛이 드리우는 것같은 은박을 입힌 제품이라고 한다.
이 흑 담비 코트의 최종 가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고객 주문의 정확한 사양에 따라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즈>에 의해 처음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펜디 측에서 제작 비용이 ‘1백만 유로’ 이상은 될 것이라고 언급해 지금까지 판매된 모피 코트 역사상 가장 비싼 코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떻게 지구상에서 1백만 유로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코트 제작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주로 러시아와 시베리아의 숲에서 발견되는 담비의 일종인 흑 단비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어떤 방법으로 쓰다듬어도 그 부드러움을 유지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담비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옅은 색깔을 띤 생가죽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패션쇼가 열리기 직전, 칼 라거펠트는 모피 산업의 변화 때문에 그가 원하는 만큼 더 이상 많은 흑 단비 코트를 만들지 못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칼 라거펠트가 그에 대응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생산 공정에 더 많은 비용이 추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 라거펠트는 인터뷰에서 “나는 30년 전, 20벌의 흑 담비 코트로 패션쇼 피날레를 장식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동물들을 더 이상 사냥할 수 없기 때문에 두세 벌을 만들 수 있어도 행운이다. 지금은 모피 제조 환경 자체가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에 하이패션에서 모피를 적용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세상은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유사한 다른 소재를 믹스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더 이상 80년대에 살고 있지 않으며 오늘날 흑 담비 코트는 집을 사는 비용보다 비쌀 정도로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비싸졌다”고 덧붙였다.
“나에게 모피는 펜디, 펜디는 모피이며, 모피는 유쾌하다”라고 주장하는 칼 라거펠트는 패션쇼가 끝난 뒤 “너무 바빠 매년 펜디 모피 쿠튀르 쇼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딱히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펜디 모피쇼를 두고 증오와 찬사가 교차하는 냉온탕 모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모피는 그동안 사회문화적으로 뜨거운 감자였다. 패션업계조차 동물 가죽의 사용을 비도덕적이라는 주장과 럭셔리 패션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모피를 둘러싼 패션계 주장이 맞서는 가운데 동물보호단체인 PETA는 파멜라 앤더슨이나 에바 맨더스와 같은 동물을 사랑하는 셀러브리티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들 유명 스타들은 모피를 입느니 차라리 벗고 다니는 것이 낫다고 선언했고, 일부 동물보호 운동가들은 이 말이 과장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알몸 시위에 나서기도 한다. “모피는 아름다운 동물과 못난 사람들의 옷이다(Fur is Worn by Beautiful animals and Ugly people)”라는 PETA 슬로건이 그들의 주장이다.
모피 반대론자인 캐나다 배우 파멜라 앤더슨은 “나는 <보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를 혐오한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모피를 소재로 쓰고 모델들이 그것을 입도록 몰아가는 장본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고 미국 작가인 앨리스 워커는 “이 땅의 모든 동물은 각각 존재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흑인이 백인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 듯, 여자가 남자를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듯, 동물도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환경운동가들도 모피 사용에 반대한다. 영국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 맥카트니는 “나는 가죽이나 모피를 소재로 쓰지 않는다. 단순히 내가 채식주의자여서도 아니고 패션업계를 위해 도살당하는 동물이 한해 5 억 마리에 달하기 때문도 아니다. 모피와 가죽이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말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무두질 공장에서 흘러 보내는 폐수와 가죽 처리 과정에 사용되는 화학 물질은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한편 모피 옹호론자의 대모격인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는 “나는 모피에 대한 <보그>의 절대적인 지지가 모피 산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피 판매율이 바닥일 때 우리가 슈퍼 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에게 파란색 모피를 입혀 표지에 실었다. 모피는 우리 사업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모피를 사랑한다. 모피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좋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들이 모피를 액세서리에 이용하거나 모피에 색깔을 표현하는 것도 좋다. 우리는 그런 작업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그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영국 패션 디자이너인 줄리앙 맥도날드도 “모피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화를 낼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피를 사랑한다. 모피는 동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산물이다.”라며 모피 사용을 지지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아직도 필자는 12억 4천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펜디 모피가 과연 입을 수 있는 옷인지, 아니면 박물관에 걸어 두거나 경매를 해야 하는 유물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영원불멸의 보석 다이아몬드와 달리 옷은 세월이 지나면 유행에도 뒤처지고 서서히 닳아서 없어지기 때문이다. 동물 보호든 아니면 환경 보호든 모피의 운명은 세월이 가면서 점점 더 많은 공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작금의 모피 논쟁 때문에 만인에게 평등한 제2의 피부 ‘옷’이라는 민주주의적 패션 본질이 제2의 보석인 ‘옷’이라는 천민자본주의 속성의 속물주의 패션으로 그 개념이 바뀌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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