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5-05-25

루이 비통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던 25가지 비밀

만약 당신이 2000년대 초반의 로고 마니아로 살고 있었다면 루이 비통만큼이나 대중들이 쉽게 알 수 있는 모노그램이 없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루이비통에 대해 거의 알고 있지 못했던 25가지 시크릿을 소개한다.




루이 비통 브래드의 스그너처 LV는 패리스 힐튼에서 부터 안젤리나 졸리까지 모든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에 찍혀 있을 정도로 럭셔리 제품의 랜드마크같은 존재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스타들의 팔에 자리잡고 있는 루이 비통 백보다 더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있다. 사실상 패션 파워하우스 루이 비통은 몇번이고 계속해 루이 비통을 문화 현상으로 만들기 위한 오래된 매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루이비통(Louis Vuitton)은 가방, 의류, 주얼리, 신발, 선글라스, 시계 등을 제작 판매하는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다. 창업자 루이 비통 말레티에의 이름에서 유래한 루이비통은 1854년 프랑스 파리에서 ‘여행가방 전문매장’으로 시작하였으며, 이는 19세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철도 및 수로 교통의 확산으로 인해 여행 인구가 증가했던 사회적 배경과 연관이 깊다. 여행을 근간으로 탄생하고 성장해 온 루이비통은 현재까지 150여 년간 5대에 걸쳐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따라서 아래에 열거한 약간의 브리프 히스토리를 읽게된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가방의 럭셔리 브랜드 뒤에 숨어있는 의미있는 멋진 사실을 만날 수 있을 듯 하다.          



1, 창업자 루이 비통 말레티에

루이 비통의 설립자 루이 비통 말레티에(Louis Vuitton Malletier) 1821년 8월 4일에 프랑스 동부 안쉐(Anchay) 마을의 목공소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부터 나무 다루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의 재혼을 계기로 14세 때 집을 나온 루이 비통은 온갖 잡일을 하며 파리로 향했고, 집을 나온 지 2년 만인 1837년에 파리에 도착했다.




2. 루이 비통 역사의 시작

16세에 파리로 온 루이 비통은 당시 파리 생 제르만 부근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가방 제조 전문가 무슈 마레샬(Monsieur Marechal)밑에서 일을 배우며 트렁크 메이커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했다. 루이 비통은 섬세한 패킹 기술로 귀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패커(Packer, 짐 꾸리는 사람)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으며, 결국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유제니 황후의 전담 패커(짐 꾸리는 사람)가 된다. 





3. 위대한 운명적 만남

1854년, 루이 비통은 그의 재능을 높이 산 외제니 황후의 후원으로 ‘뤼 뇌브 데 까푸신느 4번가(4 Rue Neuve des Capucines)’에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매장이자 포장 전문 가게를 열었다. 그 매장에는 ‘손상되기 쉬운 섬세한 물건들을 안전하게 포장하며, 의류 포장에 전문적임(Securely packs the most fragile objects. Specializing in packing fashions)’이라고 쓴 간판이 걸려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루이비통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4. 원조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

프랑스 자본주의의 성장으로 인해 발전한 휴양문화는 루이 비통에게 큰 행운을 안겨 주었다. 당시 여행용 트렁크들은 여러 개를 쌓기 어려운 둥근 형태였고 매우 무거웠기 때문에 공간이 좁은 철도나 배로 실어 나르기에 무척 불편했다. 자신의 작업장 부근에 최초의 철도선인 '파리 생 제르맹’이 건설되는 것을 지켜본 루이 비통은 1858년 평평한 바닥에 사각형 모양의 트렁크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Grey Trianon Canvas)'를 만들었다. 그는 어릴 적 배웠던 목공일과 패커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캔버스 천에 풀을 먹여 방수 처리한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를 사용해 물건을 적재할 수 있고 무게도 가벼운 사각형 트렁크를 개발한 것이다. 이 트렁크는 프랑스 황후뿐만 아니라 윈저공 부부,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등의 저명한 고객들이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5. 트렁크 클럽

루이 비통과 아들 조르주 비통은 텀블러 자물쇠라는 새로운 유형의 잠금 장치를 만들었다. 조지 비통은 여행용 트렁크가 강도들의 표적이 되자 자신만의 열쇠 하나로 여러 자물쇠를 열수 있는 텀블러 잠금장치를 개발했다. 루이비통은 텀블러 자물쇠를 오늘날까지도 발전 · 응용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최근에 판매되고 있는 식스 텀블러는 구입 시 잠금 장치의 고유 넘버와 고객 정보 등을 기입하게 하여 열쇠를 잃어버렸을 경우 새로 제공하고 있다.





6. 위대한 탈출(?)

이버지와 아들은 자물쇠의 강력한 효과를 선보이기 위해 미국의 유명 마술사인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에게 루이비통의 케이스와 자물쇠에서 탈출해 볼 것을 신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제안하여 화제가 되었다. 결국 후디니는 이 도전에 응하지 않았지만 이 광고로 인해 사람들은 자물쇠의 효과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7. 진정한 오리지널

브랜드의 시그너처 모노그램 캔버스는 짝퉁과 싸우기 위한 방법으로 1896년에 처음 선보였다. 1858년에 루이 비통이 최초로 만든 사각형 트렁크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Grey Trianon Canvas trunk)가 큰 인기를 얻자 모조품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루이비통은 모조품과의 차별화를 위해 다미에 캔버스(Damier canvas)를 개발해 제품에 적용했다. 다미에는 프랑스어로 체크 무늬를 의미하는 단어다,




8. 토트-테스틱

1914년, 루이 비통은 당시 7층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여행 가방 전문 매장을 파리의 샹제리제에 열었다. 2004년에는 루이비통 창립 150주년을 맞이하여 파리 샹젤리제 매장을 1년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여 재오픈했다. 파리 관광객들이 들르고 싶은 패션 명소다.





9. 철저한 수공예 장인 정신 

루이 비통의 모든 아이템들은 아직도 프랑스에서 장인의 손을 통해 제작되고 있다. 트렁크의 성공으로 사업 확장이 필요하게 된 루이 비통은 1859년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아니에르(Asnieres)에 첫 번째 공방을 개점하였다. 이 공방은 현재까지도 남아 있어서 영국 작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김연아 등 유명 인사의 트렁크와 FIFA 월드컵 트로피 트렁크 등 전 세계 고객의 특별 주문을 받아 상품을 제작하고 있다




10. 모노그램 캔버스

1892년 창업자인 루이 비통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조르주 비통이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그는 다미에 캔버스 개발에도 불구하고 모조품이 끊이지 않자, 1896년 모노그램 캔버스(Monogram canvas)를 새로 개발했다. 모노그램 캔버스는 창업자인 루이 비통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그의 이니셜인 ‘L’과 ‘V’가 비스듬히 겹쳐지고, 꽃과 별 문양이 번갈아 교체되는 패턴이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자연 형태에 일본 판화 등에서 유래한 프랑스 아르누보 양식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이었다.특히 그 유명한 모노그램인 '달리그램(Daligram)'을 만들기 위해 아트스트 살바도르 달리로 부터 영감을 받았다.




11. 오드리 햅번이 선택한 3초 백

1930년대 키폴 백(둥근 원통형의 여행용 가방)의 인기로 인해 키폴의 형태를 핸드백으로 제작한 것이 스피디백(Speedy bag)이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가장 좋아했던 백으로 알려져 있으며, 거리에서 3초마다 볼 수 있다고 하여 일명 ‘3초 백’으로 불릴 정도로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다. 스피디는 1930년대 출시된 이래 현재까지도 루이비통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한 아이콘이자 베스트셀러 가방이다.




12. 코코 샤넬이 주문한 알마 백

1930년대 코코 샤넬의 의뢰로 제작했던 알마 백(Alma bag)은 반달 모양의 심플한 디자인에 넉넉한 수납공간으로 실용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알마는 루이 비통의 아이콘 백으로 첫 출시 이후 지금까지 모노그램, 에삐, 베르니 레더(‘반짝이다’는 뜻으로 소가죽 위에 에나멜을 특수 코팅하여 모노그램을 현대화) 등 다양한 소재를 접목시켜 재탄생하고 있다




13. 실용적인 가방 개발 주력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여행의 수단이 기차에서 자동차로 바뀌게 되자 루이비통은 트렁크보다 작고 실용적인 가방 개발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빠삐용 백(Papillon bag, 1966년, 짧은 스트랩 형태)과 에삐 라인(Epi, 1985년, 이삭 결 무늬 위에 다양한 컬러를 도입한 소재)을 선보였고, 1978년 일본을 시작으로, 1983년에는 태국과 대만, 한국 등 아시아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매장을 개장했다.





14. 모던 아트

최근에 루이 비통은 다카시 무라카미와 스테판 스프라우스 같은 아티스트와 팀을 이루었다.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크 제이콥스는 2001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처음 선보인 모노그램 그라피티(Monogram Graffiti)는 1980년대의 다운타운적인 펑크와 팝 센스를 믹스한 룩의 개척자로 알려진 뉴욕의 패션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인 스티븐 스프라우스와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전통을 대변하는 모노그램 캔버스 위에 강렬한 그라피티를 역동적으로 활용한 굵은 형광색 그라피티를 채워, 젊은 이미지를 표현한 모노그램 그라피티한정판을 출시했다. 2003년에는 일본의 네오 팝 아티스트인 무라카미 다카시(Takashi Murakami)와의 협업을 통해 모노그램을 컬러풀한 93가지 색으로 표현한 새로운 모노그램 멀티컬러(Monogram Multicolore)를 론칭하였다. 그 후 체리, 체리 블러섬, 코스믹 블러섬 등을 출시했다.




15. 캐리 브레드쇼의 선택

미드와 영화로 히트를 친 <섹스 앤 더 시티>는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와 루이 비통 모조품에 대한 열풍을 선도했다. 2008년 개봉된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에서는 수많은 브랜드가 나왔던 미드와 달리 '루이 비통 앤 더 시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루이 비통의 모습이 두드러졌는데, 케리 브레드쇼(사라 제시카 파커)가 비서의 대여한 루이비통 모노그램 백을 보고 감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16. 스타 파워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 진행된 ‘코어 밸류 캠페인’에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2007년), 숀 코네리(2008년), 펠레(2010년), 안젤리나 졸리(2011년), 무하마드 알리(2012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 굵은 인생을 살아온 배우, 뮤지션, 스포츠 스타 등을 등장시켜 ‘인생에서 여행이 주는 의미’와 ‘유산’에 초점을 맞춰 감성적인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는 여행이 주는 의미를 유명 인사의 삶에 대입시켜 철학적으로 풀어낸 일종의 기업 이미지 광고였다.





17. LVMH가 의미하는 것

1984년 루이비통은 뉴욕과 파리 주식 시장에 상장했으나 가족 경영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자 루이 비통(Louis Vuitton)은 1987년 샴페인과 코냑 제조업체인 모에 헤네시(Moet Hennessy)와 합병하여 거대 럭셔리 기업인 LVMH 그룹을 설립, 루이 비통은 LVMH의 일부분이 되었다.LVMH 그룹의 사명은 “삶 속의 예술(Art de Vivre)”로 우아함(Elegance)과 창의성(Creativity)을 세계적으로 실현한다는 뜻이다. LVMH 그룹의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는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한 분산 정책’으로 개별 브랜드들의 특성을 극대화하면서 브랜드 간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LVMH를 세계 최대 규모의 럭셔리 그룹으로 성장시켰다.크리스챤 디올(1987년), 지방시(1988년), 겐조(1993년), 겔랑(1994년), 태그호이어(1999년), DKNY-도나카란(2000년), 펜디(2002년) 등 다양한 명품 브랜드를 사들이면서 현재 패션 가죽, 유통, 화장품, 시계 및 보석, 주류 등 6개 분야에 70여 개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18. 파워 플레이어

세계적인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루이 비통은 세계에서 14번째로 가치있는 브랜드라고 한다. 또한 루이비통은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사인 인터브랜드(Interbrand)에서 선정하는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 100)’에 매년 상위에 랭크되고 있다. 루이비통은 전 세계 74개국에 진출해 총 465여 개의 매장과 18,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LVMH 그룹 총 영업 이익의 절반을 점유하고 있다.






19. 네버풀 백

2009년에 출시된 네버풀(Neverfull) 숄더백은 역사다리 형태로, ‘네버풀(Never full)’이라는 이름처럼 많은 양의 소지품을 수납할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특징이다. 할리우드와 국내의 많은 스타들이 메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잇백(It bag, 그 시즌에 유행하는 바로 ‘그 가방’ 이라는 신조어)으로 인식되어 스피디 백만큼이나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네버풀의 안감은 루이비통의 전통적인 앤티크 트렁크의 스트라이프 무늬 내장에서 모티브를 따와 디자인된 것이며, 사이드의 가죽 스트랩을 조정하여 가방 모양에 엑센트를 주거나 입구 양 옆을 조일 수 있다.





20. 철저한 럭셔리 전략

루이비통은 제품 출하 전 4일에 걸쳐 핸드백 낙하 실험, 무차별적 자외선 노출, 5,000여 번의 지퍼 여닫기 테스트 등을 통해 품질을 유지 및 관리를 한다.브랜드 라인과 유통 관리 측면에서는 프라다, 도나 카란 등 여러 명품 브랜드들이 미우미우(MiuMiu), DKNY 등 세컨드 라인(Second line, 오리지널 디자이너 브랜드의 보급판)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달리, 루이비통은 이를 금지하여 브랜드 라인을 차별화하고 있으며, 아웃렛(outlet, 재고품을 염가에 판매하는 가게)에서 자사의 제품을 판매하지 않고 주요 거점지역에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를 전략적으로 개장함으로써 럭셔리 브랜드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21. 희소 가치의 강조

루이비통은 판매량을 제한함으로써 제품에 대한 희소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한정판 제품의 판매 기간을 최소화하고 가장 인기가 많을 시기에 판매를 종료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마크 제이콥스가 2007년 루이비통의 오랜 역사를 기리기 위해 만든 루이비통 트리뷰트 패치워크(Tribute Patchwork)는 14개의 루이비통 가방 조각을 서로 꿰매 붙인 것으로 전 세계에 24개만 한정판으로 출시되었고 가격도 개당 5만 2천 달러가 넘었다. 미국의 세계적 팝스타 비욘세(Beyonce)는 미국에 단 4개만 배정된 루이비통 트리뷰트 패치워크(Tribute Patchwork) 핸드백 소유자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또한, 루이비통은 특별 주문 생산 서비스인 몽 모노그램(Mon Monogram) 등을 통해 고객들이 브랜드의 희소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국내에서는 2010년 캐나다 동계 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인 김연아가 루이비통의 요청으로 디자인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아니에르 공방에서 특별 제작한 스케이트 케이스 트렁크를 사용하고 있다.




22. 셀러브리티 마케팅 전략

루이비통은 1996년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7명의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패션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현대 패션의 경향에 그들의 재능을 가미한 모노그램 캔버스로 새로운 작품을 한정 제작하도록 했다. 1998년 마크 제이콥스가 루이비통에 영입 된 이후, 그의 미션 중 하나는 모노그램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활력과 젊음을 주는 것이었다. 루이비통은 스티븐 스프라우스 및 무라카미 다카시 등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면서 기존 브랜드가 갖고 있던 클래식한 이미지를 벗어나 젊고 트렌디한 느낌을 표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루이비통은 지젤 번천, 제니퍼 로페즈, 샤론 스톤, 마돈나, 이영애 등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 스타들을 루이비통의 뮤즈로 선정해 왔으며, 그 외 다방면의 저명인사들을 광고 캠페인에 영입하며 이들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23. 루이스 루이스 루이스

2013년, 카니예 웨스트의 노래에서 19번이나 루이 비통 브랜드가 언급되었다. 그림도 잘 그리고 패션 쪽으로 재능이 있는 카니예 웨스트는 루이 비통과 함께 콜라보레이션 아이템을 출시했는데 중고 가격이 엄청나다고 한다. 




24. 루이비통의 황태자

마크 제이콥스는 1997년부터 2013년까지 16년단 루이 비통의 아스스틱 디렉터로 일했다. 1997년 루이비통의 아트 디렉터로 합류하게 된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뉴욕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는 브랜드 정체성은 유지하되 젊은 이미지를 가미하며 의류와 신발, 주얼리 컬렉션 등으로 상품 영역을 확장했다. 루이 비통에서의 마지막 쇼에선 칠흑의 전사 스타일 깃털 머리장식을 하고 자기보호 분위기를 연출한 모델들이 제이콥스의 주위에 도열해 그의 퇴진을 아쉬워했다. 마크 제이콥스는 쇼 프로그램 해설을 통해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에게 "베르나르 아르노에 내 모든 사랑을 언제나"라는 감성적인 작별인사를 보냈다. 뉴욕 출신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현대문화의 속성을 완벽하게 읽고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디자인 철학으로 승화시킨 패션 스타일을 창조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2010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올해 가장 영향력이 높은 인물 100인'에 뽑혔으며, 스타 디자이너로서 활동 외에도 동성애 결혼 지지, 중국과 티베트 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해 눈길을 끌었다.




25. 루이 비통의 새로운 시작

루이 비통의 헤드 디자이너는 현재 니콜라 제스케에르로, 2013년부터 합류해 마크 제이콥스 버전과 다른 자신만의 버전을 선보이고 있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있을 때 모터백으로 잇백 열풍을 일으키며 잘 만든 백 하나가 패션 하우스를 먹여 살린다는 것을 입증한 장본인. 발렌시아가를 박차고 나와 본인의 패션 하우스를 만든다는 소문도 무성했으나 루이비통의 아티스틱 디럭터로 화려한 복귀를 했다. 2015 봄/여름 컬렉션에서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선보인 모노그램 패턴의 꽃과 별 모양의 부츠 힐 그리고 쿠튀르 터치가 들어간 스커트와 드레스는 봄이 왔음을 알리기 충분했다.그중에 빅토리안 시대에서 영감을 얻은 빈티지한 로맨틱 룩과 1970년대 스타일에서 얻은 프린팅이 단연코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이는 루이비통의 아카이브를 잃지 않기 위한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노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과거의 룩에 혁신적인 소재와 실루엣 실험을 더하고 웨어러블하게 재해석한 루이비통의 새로운 봄이 시작되었다. 




<참고 자료=네이버 지식백과>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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