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5-03-13 |
[패션칼럼] 액세서리 디자이너들이 크레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되는 이유
구찌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있을 당시 럭셔리 시장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프리다 지아니니를 대신해 2015년 1월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사실은 패션 진화의 새로운 단계를 보여준것으로 보인다.
<구찌의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렉산드로 미켈레>
구찌의 프리다 지아니니와 알렉산드로 미켈레. 발렌티노의 마리아 그라지아 치루이와 파올로 피콜로,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의 케이티 힐러리, 코치의 스튜어트 베버스, 멀버리의 조니 코카에 이르기까지 이들 스타 크리레이티브 디렉터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 전 럭셔리 브랜드의 실질적(?) 매출을 좌지우지하는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했다는 점이다.
한때 업계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의붓자식이었던 액세서리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성공의 길로 접어들어 현재는 판매를 주도하는 성장엔진으로 폭넓게 인식되고 있다. 패션의 변방으로 평가받았던 액세서리 디자이너들이 최근들어 럭셔리 하우스의 레디-투-웨어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승격되는 하이프로필 직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액세서리 디자이너 출신이 레디-투-웨어 총괄 디렉터로 승격된 파격적인 움직임은 알렉산드로 미켈레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해왔던 톰포드가 2006년 구찌를 떠나면서 당시 액세서리 디자이너였던 프리다 지아니니가 구찌의 크리이에티브 디렉터로 발탁되면서 시작되었다. 프리다 지아니니는 펜디의 가죽 제품 디자이너로 시작해 펜디 합병 이후 구찌의 핸드백 디렉터를 거쳐 톰 포드가 떠난 구찌를 거의 10년 동안 이끌었다.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듀오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루이 & 피에리 파울로 피치올리>
또 발렌티노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했던 마리아 그라치아 치루이 & 피에리 파울로 피치올리 듀오도 2008년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텍터로 승격되었다. 이들 듀오는 2008년 해고된 알렉산드라 파키네티를 제치고 공동 크레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까지 발렌티노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10년 넘게 일했다. 그리고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의 케이티 힐러리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 전 스텔라 맥카트니와 살바토레 페라가모, 마크 제이콥스, 빅토리아 베컴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했다.
셀린느 액세서리 디자이너 출신의 조니 코카는 2014년 11월 멀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이 되었다. 코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튜어트 베버스는 캘빈 클라인에서 시작해 보테가 베네타, 지방시, 루이비통, 루엘라의 액세서리 디자이너를 거쳐 2004년 멀버리의 디자인 디렉터가 되어 액세서리는 물론 남성복과 여성복을 담당했고 브랜드의 머스트 해브 백인 베이스워터를 선보였다. 결국 코치에 안착해 브랜드의 전체 룩을 책임지게 되었다.
럭셔리 하우스들이 액세서리 디자이너 출신들을 레디-투-웨어 총괄 디렉터로 영입하는 이유는 럭셔리 브랜드의 매출과 수익 모두 대부분 백과 신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럭셔리 브랜드에서 핸드백과 구두 등 액세서리 부문은 수익을 창출하는 황금알이다. 톰 포드가 구찌를 이끌던 시절에도 그의 섹시한 구찌 컬렉션은 섹시한 구찌 하이힐을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매출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아마도 당시 구찌 그룹이 이브 생 로랑의 후계자로 그를 지목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럭셔리 하우스들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별개로 액세서리 전담팀을 꾸리고 책임자를 임명한다. 하지만 액세서리 디렉터는 대외적으로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음지에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패션쇼의 영광과 피날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몫이었다.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크 제이콥스가 가죽제품을 히트시키켜 영광을 독차지하는 동안 정작 가죽 제품 디렉터였던 니콜라스 나이틀리는 패션업계 종사자가 아닌 이상 그를 알지 못했다.
최근들어 액세서리 디자이너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부분에 대해 궁금해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장인 정신을 발휘해 온 액세서리 디자이너들이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섰다는 것은 100년 역사를 가진 패션계로서는 혁명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즉 요즘은 액세서리 디자이너도 스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문이 열린 셈이다. 구찌가 자사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였던 프리다 지아니니에 이어 자사의 액세서리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미켈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 것은 변화된 패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다. 심지어 마크 제이콥스도 자신의 세컨드 브랜드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액세서리 디자이너 출신의 케이티 힐러리를 자후계자로 지명했다.
<왼쪽부터 멀버리의 크리에이티 디렉터 조니 코카와 전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
마크 바이 마크제이콥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케이티 힐러리는 “나는 액세서리 시장이 성장하는 시기에 디자이너로 활동했으며 전체 패션 시장에서 액세서리 부분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어 많은 기회를 가질수 있었다. 내가 만약 기성복 디자이너였다면 이 정도의 지식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액세서리 팀에서는 단순한 액세서리 제작 과정 뿐 아니라 브랜드의 형성과 패션 산업의 성장 요소에 대해 밀접하게 배운다. 대부분의 럭셔리 하우스들의 주요 수입원은 액세서리 부문이다. 브랜드의 수입원인 액세서리 부문에 정통한 사람이 중요한 자리에 오르는 것은 자연스럽고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액세서리 디자이너의 부상을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멀버리와 로에베 액세서리 디자이너를 거쳐 코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성공적인 데뷔 컬렉션을 마친 슈트어트 베버스도 “가죽 제품은 패션산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힘이기 때문에 액세서리 시장을 이해하는 능력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중요한 자질이라고 볼 수 있다.”고 액세서리 디자이너 전성시대를 옹호했다.
런던의 럭셔리 애널리스트 루카 솔카는 “ 액세서리, 특히 가죽 제품은 전체 럭셔리 시장의 성장세보다 더 빠르게 성장한다”고 말했다. 2013년에 발표한 엑산 BNP 파라바스의 ‘카테고리 다이나빅믹스’ 리포트에 따르면 가죽 제품중에서 특히 핸드백은 럭셔리 시장의 떠오르는 별이라고 강조했다.
럭셔리 패션 시장에서 핸드백 부문은 18%에서 27%로 증가했고 반면 의류는 29%에서 26%로, 향수와 화장품은 26%에서 20%로 줄어들었다. 또한 제품 생산 뒤 원래 가격으로 판매되는 비율은 기성복이 50%에 반해 가죽제품은 90%였다. 즉 패션 시장에서 핸드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케이티 힐러리와 코치의 크레에이티브 디렉터 스튜어트 베버스>
에밀리오 푸치의 이미지 디렉터 라우도미아 푸치는“액세서리 상품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액세서리 시장이 수익성을 내는 이유는 브랜드 확장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동남아, 일본, 남아메리카, 중동, 러시아 등으로의 확장 전략을 구사할때 문화와 환경이 등이 다른 여성들에게 제일 먼저 접근할 수 있는 제품이 바로 신발, 가방, 선글라스 등이며 패션 문화가 성숙하지 않은 국가에서 찾을 수 있는 성장 기회는 액세서리"라며 액세서리 강세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즉 부르카와 차도르, 히잡을 쓰는 이슬람 여성에게 기성복은 부담이지만 액세서리는 부담이 덜하다는 뜻이다.
액세서리 시장의 강세를 뒷받침하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스마트 시대에 따른 온라인 시장의 성장세다. 패션 의류와 액세서리는 미국의 전자 상거래에서 전자제품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온라인 시장의 강세에 가장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바로 액세서리다. 액세서리는 사이즈를 확인할 필요도 없고 확인해야 할 조건들이 의류에 비해 적기 때문에 온라인 구매가 용이하다는 점이 최대 강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액세서리가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닌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즉 액세서리 디자이너들은 브랜드의 DNA를 간파하고 이를 핵심부문으로 침투시켜 제품을 개발하기 때문에 브랜드의 핵심 가치에 능통한 편이다. 따라서 이들이 크레에이티브 디렉터로 승격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구찌 가방은 이탈리아인의 용기와 섬세한 장인 정신의 핵심을 가방안에 녹여낸다. 이에 대해 스튜어트 베버스는 “브랜딩은 가죽 제품이 가진 유산이며 가죽 제품의 품질과 모양, 로고의 여부 등은 브랜드를 인식하는 가장 쉬운 특징이다. 브랜딩은 액세서리 제품군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덕목이다" 고 말한다. 케이티 힐러리 역시 “하나의 가방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매우 긴 작업 과정이 필요하다. 브랜드에 적합한가? 브랜드를 대표할만한가? 브랜드에 적합한 가격인가? 이러한 모든 질문들은 아주 작고 단순한 가방 하나에 주어지는 요소”라고 말한다.
최근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의 부상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로 보인다. 세계 경제 불황으로 인해 소비자들은 럭셔리 브랜드를 카피한 패스트 패션 구매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액세서리, 특히 가방은 오리지날을 구매하려는 심리 또한 강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액세서리가 부상하고 있으며 최근 버버리 역시 액세서리에 가까운 망토와 스카프로 재미를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케이티 힐러리는 “중요한 보직을 맡은 액세서리 디자이너의 작업은 아주 매력적이다. 젊은 액세서리 디자이너들은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유력한 차세대 디자이너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기회와 브랜드를 탄생시킬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현재 액세서리 스튜디오는 점점 재능의 온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바로 넥스트 유명 디자이너를 배양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유력 액세서리 디자이너들이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다렌 스파지아니, 미리암 쉐퍼, 알바로 곤잘레스, 엘레나 기네셀리>
패션엔 유재부 기자
- <저작권자(c) 패션엔미디어, www.fashionn.co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